한 때 나의 어릴적 꿈은 순회감독자가 되는 것이었다. 홀로 진리?안에서 3남매를 키우신 어머님의 바람이기도 했다.
80년대 지방회중에서 순회방문은 상당한 이벤트였다. 순회감독자가 방문하는 5일 동안 회중의 분위기는 극적으로 고조되었다.
한달 전부터 순감과의 봉사계획을 짜고 식사마련을 계획하고 회관청소를 하며 순회감독자 부부를 기다렸다.
대부분 순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방문회중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시절이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 순감의 숙식을
마련했는데 장로들이나 부잣집 자매들이 이 일을 하곤 했다. 간혹 없는 집안에서도 순감을 한번 모시고 싶다고 숙식을 억지로 유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침만 준비하면 점심과 저녁은 다른 성원들이 대접하긴 했지만, 없는 살림에 아침밥을 같이 먹는 영광?을 서로 차지하려 경쟁했다. 식사때면 이어지는 경험담 퍼레이드, 귀신 쫓아낸 얘기며 폭력남편 이렇게 변했어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증인이 최고야 자화자찬 등등.. 지금 와 생각하면.. 그 많고 극적인 경험담은 리얼이었을까, 아니면 각색을 했을까...연예인처럼 인기를 먹고 산다는 신념의 순감이라면 각색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화요일 오후에 도착하는 순감은 서기감독자와 회중서류검사를 하고 회중의 필요를 파악한다. 평소같으면 개인집에서 하던 서적연구집회는 회관에서 행해졌고 순감의 봉사강연도 있었다. 일요일에 하는 공개강연과는 달리 서적연구와 봉사회 이후 하는 봉사강연에는 다소 로컬하고 비공식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이 때에도 순감의 개인기들이 발휘되는데 각종 경험담이며 현란한 성구적용과 미사여구들이 동원된다. 달변의 순회감독자들 예를 들면 김창률, 최문경, 천정식 같은 이들은 중년자매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다. 봉사강연 이후의 노래소리는 더욱 우렁찼고 집회 후 정규파이오니아 신청서가 여러장 씌여지기도 했다. 지적인 연설을 하던 김인복, 전재관씨의 말에는 젊고 유능한 형제들이 감복을 받았다.
우리의 신권조직에는 이런 달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흥도 없는 연설을 리듬도 없이 하던 노르범, 후무아드,해밀튼과 같은 선교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인상만 쓰고 천편일률적인 표현만을 해대던 눌변브라더스 박흥신, 박영신과 같은 마이너 연사들이 있었다. 순회방문 후 파이오니아 숫자가 얼마나 늘어나느냐에 따라 순감의 능력이 측정되곤 했다. 한 순감의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위에서는 그런거 많이 본다고 했다니ㅜㅜ.
출판물의 고상?한 표현은 달변의 순감들에 의해 변용되고 증폭된다. 1975년에 대한 애매한 기사들도 이런 연사들에 의해 확실하게
변형되어 전달되었다. 파수대가 때가 직선거리에 남았다고 부추긴 80년대 말의 세계평화적 분위기도 마지막때의 강력한 전조가 분명하다고 침 튀기는 순감들에 의해 상당히 증폭되었다. 출판물이 자리만 깔아놓으면 부흥회식의 연사들이 잔치상으로 바꾸는 식이었으니 세월이 흘러 예언?이 빗나가면 일부 연사들이 오버를 해서 그런 것이라고 협회는 슬쩍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었다.이제 와 생각하니 탄복할 만한 신권전략이다.
그 시절 지방회중에는 대부분 인문학적 가방끈이 짧고 순감 몇 마디에 머리를 조아리는 무대뽀 고정관념덩어리들이 많았다. 단순무식의 장로들은 완장을 찬 청년기수처럼 순감을 떠 받들고 가난한 성원들에 군림했다. 순감 방문때만 유독 집회 일찍 나오고 호별 꼬박꼬박 출근하는 배 나온 장로들이 회중마다 한 두명씩 있었다. 온몸이 다 알고도 남게 오른손으로 봉투를 챙겨주는 이들...나는 그들을 가짜신권조직의 쁘띠브루조아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도 간혹 보이는 양심적인 순회감독자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 잡고 순감의 꿈을 키우던 어느 날, 지역대회의 벧엘봉사 지원자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당시 순감이 되는 유일한 길은 특파가 되어 빼어난? 실적을 남기는 길인데, 특파가 되려면 벧엘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었다. 모임의 공식적 연설보다 형제들끼리 수근대는 말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 벧엘도 빽있으면 빨리 가' '결국 학벌도 따지더라구' ' 특파 10년 20년 해도 순감 안되면 어찌 되는거야' '특파하려면 돈 좀 있는 집안에 장가를 가야 해'... 대부분 대학교육을 무기한? 보류한 증인청년들은 마치 취업에 목을 매는 학생들처럼 카더라 통신에 이리 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이 무렵 나는 벧엘을 가기 위한 또 하나의 단계, 현장자진봉사...벧엘 증축공사에 참여했다. 거기서 본 충격적 사건들, ..부산형제의 추락사망, 벧엘형제들의 위선과 일탈, 세상공사장같은 억압적이고 무력적인 지휘체계, ..나의 사고가 크게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91년 나의 결혼식 주례는 존경하던 순회감독자 최문경 형제였다. 감동적인 연설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설악산 등산 얘기를 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감흥하는 그에게 참 순수한 인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인자한 미소의 부인 천자매는 코끼리에 붙은 아이처럼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가 지역감독자로 일하고 있을 때 한번 만나 본 적이 있지만,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텐데, 건강하시길 빈다.
한때 나의 멘토였던 그분에게 묻고 싶다.
"형님, 만약에 말이죠...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가짜라면,...말이죠. 형님 그거 버릴 수 있어요? 그 완장 말이에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클로버 작성시간 12.05.23 어쨋든 증인조직에서 순감의 폐해가 무척 큰 것 같습니다..
일반증인에게 떠받들여지다보니 근거없고 비합리적인 카더라 얘기, 지극히 주관적인 위기의식 조장,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군림하려는 태도,처음의 마음을 잊고 점점 돈욕심에 사로잡히는 그들 때문에
많은 순수증인들이 실망하고 조직을 떠났지요.. -
작성자라일락 작성시간 12.05.24 최문경형제는 저도 친분이 있습니다, 저희 결혼식 주례도 서 주셨구요.
제가 증인 떠난 걸 아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천정식형제는 지금 같은 동네에 있읍니다. 가끔 우리집에 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하셨는데
지금은 집회 참석도 못하시고 사람도 못 알아 보시고,
언어도 잊어 버리셨다고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Blue sky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5.24 아 저런 ,,천형제는 인간성이 좋은 분입니다. 몸이 안좋으시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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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불혹지천명 작성시간 15.10.19 최문경형제는 지역감독자 하시다가
지역감독자제도 없어지면서
특파가 되시어 구파발
은평뉴타운 예쁜아파트에 살고계십니다.
아마 진관회중 일듯싶네요.
두달 전쯤 뵈었는데 건강하시더라구요. -
작성자계몽 작성시간 16.02.01 최형제 몇달전 공강오셨는데 옛시대에 듣던 그런 내용 연설 여전히 하시고,
집회마치고나니 형제자매들 따라나가서 돈 봉투 쥐어 드리고
옛 순방분위기 좀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