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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식기록에 의한 왜곡유대역사의 반론-기원전 763년 6월15일 개기일식 (4)-시리아-에브라임 전쟁.다마스커스 정복

작성자매이그래스|작성시간13.11.13|조회수1,866 목록 댓글 3

기원전8세기 중후반. 지중해 동부의 올망졸망한 나라들에 닥친 가혹한 역사로 주의를 기울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중해 동부. 서구권에서 레반트(Levant-중세의 유럽용어로서 두로 시돈 이스라엘 블레셋 페르시아 남부등의 지역을 유럽에서 이렇게 불렀습니다.)라 불리는 지역. 바로 이곳에 당시 팔레스타인의 도시국가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두로, 시돈,아람 다메섹(다마스커스)모압,암몬 그리고 이스라엘과 유다..이 나라들이죠.

 

 

이들은 당시의 초강대국.앗시리아라는 맹수를 이웃하고 있었으며, 이 앗시리아라는 대제국에 대해 각 나라들은 복종 아니면 대적..둘중한가지 입장을 취할것을 시대로부터 요구받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는 한때의 침체기를 다시 극복하고. 타글렛 빌레셀3세라는 강건한 제왕의 인도아래..이들 소국들 앞에 실질적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앗시리아 왕, 타글렛 빌레셀을 성경은 처음에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열왕하15: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이 사건은 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당대의 호랑이 앗시리아왕인 디글랏 빌레셀3세에게 조공을 바쳐 복종을 맹세하고 위기를 면하는 역사를 설명한것입니다.

 

이 사건은 디글랏 빌레셀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나는 쿠무흐 Kummuh의 쿠쉬타슈피Kushtashpi,다마스쿠스의 르신, 사마리아의 므나헴, 두로의 히람..(중략)..에게 조공을 받았다.(Ann 13* :10-Ann 14*(=Ann 27) -타글렛 빌레셀 3세의 비문중-(*1)

 

열왕기하 15장에서 말하는 앗시리아 왕 불에게 북이스라엘의 므나헴이 조공을 바치는 사건을 바로 이 타글렛 빌레셀이 밝히는 자신의 사적에서 설명하죠. 성경기록과 앗시리아 사료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불이 누구인가는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 다시한번 확인됩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 a: '우킨 젤(Ukin-zer)이 3년,불루(Pulu)가 바빌론에서 2년을 통치하니..'

바빌로니아 연대기 b: '우킨 젤(Ukin-zer)이 3년,타글렛 빌레셀이 2년'

그레이슨:갈데와와 바빌론 왕의 연대기중에서-(*2)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불'이 바로 앗시리아왕 타글렛 블레셀 3세의 바빌론식 명칭 '플루'라는 이름을 표현한것입니다.

이들 이스라엘 지역에 대한 1차원정에 대해 그를 풀네임으로 설명하는 성경기록에 의해;..이 플루가 다글렛 빌레셀임을 교차적으로 확인할수 있습니다.

 

왕하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이 사건 또한 타글렛 빌레셀3세의 기록에 있습니다.

 

"(나는) 오므리 왕조(북이스라엘을 말함)의 16지역을 완전히 파괴하였다...도시로부터 x명,>>도시로부터 625명,히나투나Hinatuna에서 x명, 쿠?에서 650명,야트비트 Yatbite에서 x명 그리고 sa...도시에서 656명을 포로로 잡았다"

Summary -Ann 18:3'-7'(타글렛 빌레셀 3세의 요약 비문중에서)(*1)

 

성경과 그 티글랏 빌레셀3세 자신이 공언하듯..치세내내 맹수와 같은 제국팽창적 패권주의를 보인 왕이었던것입니다.

 

Photo from: -Britishmuseum.'Room6'

 

 

 

이런 혼란스럽고 엄혹했던 앗시리아의 제국팽창기...북 이스라엘왕국 북동쪽의 다마스커스왕국엔 하사엘에 이어 벤 하닷.그리고 다시 르신이 왕위를 이어서 그외 아람 도시국가들의 맹주로서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동맹을 맺고 앗시리아에 대항하고자 계획중이었으며.(열왕하 17:5)

 

유다왕 아하스는 이들 이스라엘 -아람 다마스커스 동맹에 가담하여 함께 앗시리아에 대항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위에 올린 열황하 15:29에 소개되듯 이미 이런 동맹군이 일어나기 수년전에..앗시리아의 타글렛 빌레셀3세는 이들 국가들을 공격하여 속주로 만들고 친 앗시리아 성향의 군주를 봉신으로 책봉하는 정책을 실행한바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속주로 편입되면 막대한 공물을 해마다 바쳐야 했으며 해당국가의 왕은 독립국가의 왕이 아닌 앗시리아의 해당지역의 총독과 비슷한 지위로 전락하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기에, 이미 앗시리아의 속주로서 그런상황에 있던 하맛,시돈등의 도시무역국가를 비롯하여 굴욕적 상황에 있던 이스라엘과 다마스커스 왕국은 동맹으로 힘을 합쳐 앗시리아를 대적하기로 결의하고 있던것이었습니다.

 

동맹의 주축인 이들을 시리아- 에브라임이라 부르게 된것은...북이스라엘에 대해선 이 왕국의 주요 족속인 '에브라임'(성경내의 에브라임 지파..그들입니다.)족속의 이름으로 불리던 경우가 많았기에..이들을 에브라임으로 부르며, 또한 다마스커스가 대표하는 시리아를 아람족들의 땅이라 불렀던것을 들어, 이 동맹군이 유다와 앗시리아를 대적하며 벌어진 3년간,9년후 다시 3년간의 고대 팔레스타인의 국제전쟁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이라 부릅니다.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근동학자 베그리히-Joachim Begrich-로 상당수 학자들의 동의를 얻고있습니다.)(*3)

 

이 시절 활약한 성경속 인물이 이사야 입니다. 그는 당시의 아하스 왕에게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의 위협에 대해 야웨를 믿고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충고하죠..(이사야 7장)

그러나 자신들의 동맹에 합세하여 앗시리아를 같이 대적할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힘은 유다왕국으로선 감당하기 두려운것이었다는점은 사실이었습니다.

 

이들은 유다를 공격하여..성경기록에 의하면 38만명의 인명을 죽이거나 유배하였습니다.

성경기록에 따르면,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20만명의 인명을 유배해 포로로서 끌고 가다가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오데트에게 설득되어 이들을 다시 유다로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아마 이때 이 유배가 그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이후의 유다는 확실한 촌락국가로 전락했을것입니다..그만큼 유다는 동맹군에게 큰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역대하 28:5-15)

 

이들이 유다에 대해 의도한것은 다브엘이라는 자의 아들을 유다의 왕으로서 세우고 그들의 뜻대로 유다를 조종하고자 하는것이기도 했습니다.(이사야7:6) 이 다브엘에 관해서도 앗시리아 기록과의 교차점이 있어 보이는데..길르앗을 포함하는 요단동편을 관리하던 관료의 왕에 대한 편지중 '다브엘의 땅'이라는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아마도 다브엘은 이 지역의 유지였을것이며.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은 그의 아들을 내세워 남유다를 찬탈하려 했던것 같습니다.

 

시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은 막강해보였고 사기등등했으며... 앗시리아를 능히 대적할것으로 보였습니다.

유다와 같은 약소국가로선 풍전등화신세였을것입니다.(이사야  7:2)

 

결국 친 앗시리아적 정책경향이었던 남유다의 아하스왕은 앗시리아의 타글렛 빌레셀왕에게  구원요청을 하기에 이릅니다.(열왕기하 16:7)

 

아하스의 구원요청과 앗시리아의 황제인 타글렛 빌레셀이 그에 응하여 움직였는가 하는점은 확실지 않습니다.

 

물론 아하스의 구원요청과 상관없이...이 맹수같은 앗시리아 황제라면 이런 반 앗시리아 동맹따위를 가만히 둘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들 동맹을 벌하기 위해 출병합니다. 그의 출병기록은 앗시리아 문헌에 남아있습니다.

 

이때가 언제인가 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이 전쟁으로부터 문제의 유다왕국멸망까지의 연대는 촘촘히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 왕 타글렛 빌레셀3세..그의 제위17년동안 그는 계속 군사원정을 감행했습니다.

팔레스타인/레반트 지역에 대한 그의 입장은 강고한 패권주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의 신뢰는 에샬라의 아들에 있다' 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택한 세번째 앗시리아 왕입니다.

 

그 이름 [에샬라(앗수르신의 다른 발음)]의 이름대로..그는 신을 위한 성전을 주장하며 앗시리아 제국의 봉신들을 늘려갔습니다.

그의 패권주의로 인하여 지금의 이란의 남부부터 이집트,이들 레반트 지역 도시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에 앗시리아의 군사력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타글렛 빌레셀3세이었은즉..이들 시리아 -에브라임 반 앗시리아 동맹군은 그에게 있어, 용납할수 없는 존재들이었겠죠.

 

..그는 이들 동맹군을 대적하여 승리한 기록을 전합니다.

 

"나는 ..중략..넓은 하사엘 왕국(다마스커스 왕국)의 땅을 앗수르에 병합시켰다"

Summary 4:5'-8'/9:r,3-4 (타글렛 빌레셀 3세의 요약 비문중)(*1)

...

 

그의 이 대 시리아- 에브라임전쟁을 다시 에포님 기록에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도표에 타글렛 블레셀3세의 이름을 뚜렷이 기록하고 있는것을 보실수 있습니다.(*4)

 

 

 

 

도표에서 보이는 검은줄친 첫행입니다:

 

 

해당인물의 이름(Limmu)      관직명                  사건

티글랏 빌레셋 3세                앗시리아의 왕      아르파드에:우라루트를 격파

 

 

 

앗시리안 에포님 리스트는  타글렛 빌레셀3세의 우랄루트왕국 원정을 묘사하면서 처음 그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의 제위1년(앗시리아/바빌론 관습으로서 즉위년으로부터 다음해)의 첫 업적을 기리키고 있는것입니다.

 

이 행이...멋젓번에 검토한 기원전 763년 개기일식 절대연도로부터 20행째. 그러니까 763-20=743

기원전 743년이 되겠군요.

 

열왕기하 15장의 므나헴과 타글렛 빌레셀의 만남은 일단 이 기원전 743년 이전엔 이루어질수 없는 샘입니다. 이점은 나중에 유다역사와도 맞물리므로 다시 다루겠습니다.

 

다시 이 해로부터 9행째를 보십시오..빨간줄친 부분입니다.

"To Philisitia"..(블레셋으로)..이 문구가 있습니다. 대 반 앗시리아 동맹군 전쟁의 시작은  레반트 남단의 블레셋의 도시국가들부터 시작되었습니다.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은 이스라엘 바로 옆이고 유다의 서쪽 국경에 닿아있습니다.

 

아마도 이 블레셋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스라엘의 해안지대를 진군해 왔을것이며 이 전술은 대단히 빠른속도로 전개되었을것입니다.이것은 그 너머에 있는 이집트의 간섭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전술이었을것입니다.

 

763년 개기일식의 행으로부터 20번째 행,20번째행인 타글렛 빌레셀3세의 제위1년으로부터 9번째 행이므로 이때는 기원전 734년입니다.

 

다시 이어지는 에포님 리스트를 보겠습니다.

 

 

 

 

"To Damascus 즉 다마스커스로..2년에 걸쳐 이어지는 원정끝에...타글렛 빌레셀은 다마스커스를 함락합니다.

따라서 다마스커스의 왕 르신은 타글렛 블레셀에게 죽게 됩니다.

 

다마스커스 원정..그러니까 기원전732년입니다.

 

이 사건을 기록한성경구절을 참조해 보겠습니다.

 

열 왕하16:09 앗수르 왕이...중략..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로 옮기고 또 (다마스커스 왕)르신을 죽였더라

..

 

이떄 앗시리아에 패한 동맹군과 그 주민들은...

 

 

Photo from: -Britishmuseum.'Room6'


이렇게 가죽을 벗기우거나..

 

 

 

                                                           Photo from -Britishmuseum.'Room6'


말뚝에 박혀 매달리는 꼴을 당했을것입니다..

 

 

당시 앗시리아제국을 비롯한 고대제국의 패권주의란 강력한 공포정책이기도 했습니다.
정복한 지역의 수장과 주민들의 가죽을 벗겨 전시하거나 그 머리,수족등을 잘라 본보기로 전달하거나 전시하여 타 지역이 앗시리아에 대항하여 그런 꼴을 당하지 않도록 경고로 삼았습니다.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의 주축인 다마스커스의 왕과 주민또한 이렇게 되었을것입니다.

 

 

이 역사가 바로 참혹했을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1차종말..즉 다마스커스 정복입니다.

 

성경은 이때 있던 이스라엘의 정치적 변화를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공격해)와서...중략..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열왕기하 15:29,30

 

 

시리아 -에브라임 전쟁이 동맹군의 참패로 종결되고...북이스라엘은 정권교체를 맞습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왕 베가를 죽이고 호세아가 왕위에 오르게 된것입니다. 이에 대해 타글렛 빌레셀 또한 중요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는(호세아는) 사라비니 sarrabani  에 있는 내앞으로 왔다. 나는 [호세아]를 그들을 통치하는 왕으로 세웠다.'

-Ssmmary 9:r.5-10 (타글렛 빌레셀의 요약 비문중)(*1)

 

또한 타글렛 빌레셀은 호세아를 왕으로 세우면서 다른사건 하나도 같이 언급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왕 베가를 몰아냈고  나는 호셰아를 그들 위에 왕으로 앉혔다. 나는 그들로부터 금 10달란트[385만 3500달러]와 은 1000(?)달란트[660만 6000달러]를 조공으로 받아..

-Summry 4:15'-17'(타글렛 빌레셀3세의 요약비문)(*1)

 

사라비니는 고대 바빌론의 비트-쉴라니(Bit-Shilani)의 수도입니다..다마스커스 원정후 타글렛 빌레셀은 다시 바빌론 원정에 돌입하였기에..이 지역에서 호세아를 만나 그를 이스라엘왕으로 승인하였던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앗시리아가 다시 바빌론 점령중에 호세아를 만나 그를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봉신제후로서 승인한것입니다.

 

다마스커스는 멸망하고..이스라엘은 베가에서 호세아로 정권교체가 벌어졌던것입니다.

 

 

성경과 앗시리아 사료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그 전의 도시인 비트 야킨의 샤피아(Sapiya)를 먼저 점령하지 않고선 점령할수 없는 지역입니다.

사피야 바로 옆에 이 사라비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에포님 리스트를 보겠습니다. 에포님 리스트는 이 바빌론의 사피야 점령시기를 알려줍니다.

 

 

분명 Shapiya를 말하고 있죠.그렇습니다. 에포님에서도 이 부분을 확실히 알려줍니다. 다마스커스 정복후 타글렛 빌레셀은 바로 바빌론 정벌에 들어갔으며 이해 기원전731년. 사피야(Sapiya)를 점령했음을 기록하는군요. 그리고 이 해에 바빌론에서 타글렛 빌레셀을 만나 충성맹세를 행한 호세아가 북이스라엘 왕에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오래 통치하지 못했습니다.

 

다마스커스 왕국의 처참한 최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의 '천조국'앗시리아에 대적하는게 얼마나 파괴적인지 학습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앗시리아에 조공을 중단하고 이집트와 교신하기 시작합니다.

 

왕하17:04 -저가(호세아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

(여기서 애굽왕을 '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 자신이 항복하고 충성을 맹세한 타글렛 빌레셀이 4년뒤 죽자 앗시리아는 더이상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조공이 중단되자마자,호세아의 이집트 접선을 포착하자마자.즉위한지 4년된 살만에셀5세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호세아는 밀린  조공을 챙겨들고 앗시리아왕 살만에셀 5세를 알현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대노한 살만에셀5세는 그를 감금하고 (왕하 17:04 후반)북이스라엘 공격에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은 3년여를 저항했으나 앗시리아를 당해낼수는 없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벌이 있은 해..이때가 언제인지 성경기록을 봅시다.

 

왕하17:06- 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호세아 9년이군요...

 

그렇다면 호세아 9년이란 언제인가..아까의 에포님에서 알게된 그의 즉위년 기억하실겁니다.

기원전731년이었죠...열왕기의  상당부분은 티쉬리월((9~10월)을 기준하여 연도를 표현합니다.그렇게 해서 기원전 731년으로부터..그의 9년째는 기원전722년이 됩니다.

 

기원전 722년의 에포님 리스트를 보겠습니다.



 


 

 

아쉽게도 이 기간즈음의 에포님의 설명은 손상되어 알아볼수 없으나..아마도 살만에셀 5세의 원정행적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추정은 매우 합리적이라 볼수 있을것입니다.


이 살만에셀의 3년의 걸친공격끝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왕하17:03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 조공을 드리더니

 

왕하17:04 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왕하17:05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삼년을 에워쌌더라


왕하17:06 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에포님은 이 3년간의 공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살만에셀5세의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정벌에 관해선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도 확실한 기록을 볼수가 있습니다.

"티벳(Tebet)월 25일에 살만에셀(V)은 앗시리아와 아카드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사마리아를 폐허로 만들었다. 

즉위 5년째: 테벳월에 살만에셀(V)은 서거하였다. 살만에셀(V)은 5년동안 아카드와 앗시리아를 통치하였다. 테벳월 12일에 사르곤(Sargon II)이 앗시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Babylonian Chronicle 1,i 27-31)(*2)


이 바빌로니아 연대기에서 살만에셀의 사마리아(Sa-ma/ba-ra-'-in)-북이스라엘 정벌을 언급하며 이는 다시 위의 에포님 리스트에서 암시됩니다. 이후 그의 아들 사르곤2세가  등장합니다.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북이스라엘)정복의 실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르곤의 비문을 참고해보겠습니다.

"내가 즉위한 원년에...사마리아(북이스라엘)를  포위하여 정복하였고 2만7290명의 사람을 전리품으로 잡아왔다..그들에게 조공을 부여하였고"

ANET,pp. 284-285; ARAB II,&55(사르곤 비문중)(*2)

 

  아마도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원정의 후속업무를 이어받았을지도 모릅니다.물론 그가 선왕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기록했을지도 모르죠.아버지인 살만에셀의 행적은 곧 자신의 실적이기도 하다는 동화의식에서의 기록일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설명을 취합하면 기원전720년경 사마리아 원정은 정리되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사마리아(북이스라엘) 정벌이 살만에셀5세와 사르곤2세의 2번의 침공으로 이루어진 역사인가..혹은 두 앗시리아 왕의 이어지는 역사인가에 대해선 여러의견들이 있으나..대체로 이 기간 동안 두 앗시리아왕이 북이스라엘 정벌에 관련되어있다는것은 합의될만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앞서 살펴보셨듯이 성경본문과도 조화되고 있습니다.

 

 

이후의 사르곤의 비문을 참고해보겠습니다.

"내가 즉위한 원년에...사마리아(북이스라엘)를  포위하여 ...중략....가자의 왕 '한노'(가 대항하였으며)"

ANET,pp. 284-285; ARAB II,&55(사르곤 비문중)(*2)

 

위의 가자의 한노(Hanno)왕이란 블레셋의 아스돗왕을 말하는것입니다.

이 사건도 성경기록과 교차됩니다.

 

이사야20:0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니)

 

앗시리아 기록과 성경본문이 이 역사와 관련되어 온전히 조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만에셀5세와 그의 아들 사르곤 2세에 의해 북이스라엘과 그 일대가 앗시리아에게 평정되었습니다..

 

 

 다시 기억해볼까요.이때를 성경은 언제라고 묘사합니까..

이때가 호세아 9년입니다.(왕하17:6)

 

호세아는 언제 즉위했던가요..다마스커스 정복후입니다.(기원전731경)

 

에포님 리스트에서 살만에셀5세의 이스라엘정벌을 암시하는 해는 언제입니까..기원전723년입니다.북이스라엘 멸망의 때가 호세아 9년이란 성경의 설명과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간동안 즉위한 사르곤2세가 주장하는 사마리아 정벌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절대연도인 개기일식 기원전763년으로부터 32번째행.다마스커스 정벌이 진행되었고 41째행. 이스라엘 정벌이 완료되었습니다.

 

763년부터의 계수로서 이해는 기원전731년, 기원전722년으로 정리 됩니다.



 

호세아가 즉위한 다마스커스 정복(기원전731년) 후 9년(기원전722년)..정확히 이스라엘은 정복되었습니다. 3년간의 저항끝에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이때가 북 이스라엘 멸망의 시기입니다.


기원전763년의 에포님 리스트는 그해에  실제로 있었던 개기일식으로 인해 고정.즉 절대연도가 됩니다.이후 에포님의 행에 의한 추적으로 기원 730년대와 720년대의 아람제국 멸망.북이스라엘 멸망을 찾아가볼수 있습니다.

다만 에포님행의 추적방법에 따른 학자들의 견해차이가 있습니다. 학계에는 아람제국멸망이나 북이스라엘 멸망에 대해 몇년정도의 견해차이들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연대에서처럼 십수년,20년 임의로 설정할수는 없다는뜻입니다.

 

 

워치타워협회측이 주장하는 기원전740년설은 어디에도 위치할수 없는 연대입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20년을 앞당겨 말하고자 한다면 이미 확인된 다마스커스 정벌연대부터 이스라엘 정벌및 모든 역사가 한없이 비틀려버릴것입니다.

 

이 기록들의 일치하는 조화를 애써 외면하지 않으면 주장할수 없는 연대인것입니다.

 

이상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역사에서 밝힐수 있는 역사연대의 실재였습니다.

 

에브라임 전쟁이후에도 역사는 계속됩니다.

 

 

 

............................

 

(*1)James B.Pritchard,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1965) Princeton University Press

(*2)A.K.Grayson:"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1975) Eisenbrauns(P)
A.K.Grayson:Assyrian Royal Inscriptions (2 Vols)

(*3)Die syrisch-ephraimitische
Kriege und seine weltpolitischen Zusammenhange,” Zeitschrift der deutschen morgenlandischen
Gesellschaft 83 (1929), 213-237.
(*4) Assyrian Eponym list-Alan Millard."The Eponyms of the Assyrian Empire" The Neo Assysian Text corpus project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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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메이그레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4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말하는바에 혼동되는 분이 있을듯하여 말씀드리자면..우리가 이스라엘이라 통칭하는 그 지역사람들은 사실 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죠.


    우리가 익히 듣는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가진 나라가 남유다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인들은 앗시리아에 멸망후 아마도 남유다로 몰려들었을것입니다.
    이들 사마리아인들은 성경서 설명하는대로 금송아지등의 형상을 숭배하는등 남유다쪽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기괴한 숭배양식을 가졌기에
  • 답댓글 작성자메이그레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3 이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사람들이 보기엔 경멸스러운 자들로 보이게 됩니다.

    신약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이 왜 그리 경멸당하는가가 이런 역사가 얽혀있는것입니다..

    본래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유다인이라 부르고(그래서 '유대'인입니다.)..저 북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또는 사마리아인으로 칭했는데..통칭하여 이스라엘인이라 부르게 된것은 기원전539년 해방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 글에서의 '이스라엘'이란 앞서의 에브라임..즉 북 이스라엘 10지파왕국.'사마리아'를 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메이그레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13 성경연대나 역사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의 교육이 매우 애매모호한것은 전도인들이 정확한 역사추적을 하길 원치않기때문이라 생각할수 있습니다.그들의 설명은 항상 구호일색에 자의적 용어와 구분 투성이죠.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우리들 여호와의 증인(출신)분들에겐 그렇지 않을수 있다고 봅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역사서술엔 온갖 의도된 혼동스런 언급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설명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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