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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_ 창45:1~20

작성자김영준|작성시간14.11.16|조회수121 목록 댓글 1

채색옷 입으며 왕자 노릇하는 요셉을 싫어했습니다.(창37:3) 왕 노릇하겠다는 앙큼한 꿈을 꾸는 요셉을 싫어했습니다.(창37:7) 그래서 형들은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던졌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창37:24)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간 사연입니다.(창37:28)

 

요셉을 이집트로 보낸 건 형들입니다. 동생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형들 때문에 요셉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고,(창39:1)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39:20) 노예일 때에도,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지만 요셉의 처지가 달라진 건 아닙니다. 요셉이 노예일 때 주인이 더 부유해졌지만 요셉은 여전히 노예였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 간수장이 평안했지만 요셉은 여전히 죄수였습니다.(창39:2,21)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도 요셉의 처지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이게 다 형들 때문입니다. 형들 때문에 요셉은 구덩이에서 무서웠고, 형들 때문에 요셉은 노예가 되어 고단했고, 형들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 갇혀 억울했습니다. 요셉이 맞이한 모든 문제의 원인은 형들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진 이후, 노예로 팔려온 이후, 감옥에 갇힌 이후 꿈도 말라버렸습니다. ‘꿈 꾸는 자’ 요셉의 꿈 이야기가 더 이상 소개되지 않습니다.(창37:18) 그런데 요셉이 소년 시절의 꿈을 다시 기억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꿈입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7) 소년 시절의 꿈은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견치 못했던 재회를 통해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창42:5~6)

 

극심한 기근 때문에 사람들이 양식을 구하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습니다. 이집트에 몰려든 사람들 중에 요셉의 형들도 있었습니다. 형들이 이집트의 총리 요셉에게 절하며 양식을 구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모른 체 합니다.(창42:7) 형들의 마음도 알고 싶었고, 오래 전에 잊어버렸던 꿈도 생각이 났습니다. 자신의 꿈을 해석해야 했고, 형들을 용서할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형들 때문이 아니라 꿈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던 것도 요셉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꿈 때문에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졌고 노예가 되었고 감옥에 갇힌 셈입니다. 형들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모든 사달의 원인이 형들인 줄 알았는데, 엎드려 있는 형들을 보게 되니 꿈이 생각납니다. 꿈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꿈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 믿고 있었습니다.(창40:8) 그렇다면, 구덩이에 던지신 이도 노예가 되게 하신 이도 감옥에 갇히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기근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지고,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갇혔던 일련의 악몽 같은 사건들은 어린 시절 꿈의 연장이었습니다. 악몽 같은 현실은 소년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버렸던 형들 뒤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소년 요셉의 꿈은 무례했고, 무례한 요셉을 다루는 형들은 악독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형들을 다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무례하고 악독한 형제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무례함과 악독함을 역이용하셔서 ‘선으로’ 바꾸시고 ‘생명을 구원’하십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살다보면 꿈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자에게 무슨 꿈이 있으며, 노예에게 꿈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감옥에 갇힌 자에게 꿈은 사치일 뿐입니다. 다 지나고 나서야 꿈이 다시 생각나고, 어느 순간 꿈이 이루어졌음을 깨닫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것도, 노예가 된 것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도 지나고 보니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렇습니다. 무서웠고 막막했고 억울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알겠습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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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anna | 작성시간 14.11.17 요셉은 참..... 오랜 친구와도 같네요. 청년시절부터 여러차례 요셉을 묵상하며 인내도 연습하고, 꿈도 꾸어보고...그랬거든요. 지금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한홍 목사님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도 그시절엔 참 감동이었고. ^^ 모처럼 요셉 이야기 듣고 다시 청년으로 돌아간 듯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나'에게 주목하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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