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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연민의 환상통 <사운드 오브 폴링> 리뷰

작성자소대가리|작성시간26.01.08|조회수117 목록 댓글 5

양자의 세계에선 서로 다른 시간 때가 동시에 동작하고 있다. 고통은 고통으로 연결되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장벽은 서로를 갈라놓는다. 카메라는 그들 각자의 세계를 담지만 어딘가 이어진 듯한 감각은 장면을 넘나드는 것들 강물과 파리, 장어 그리고 기억들이다. 제발트는 ‘토성의 고리‘라는 작품을 통해 오래된 기억들은 어느 한계에 부딪혀 바스러지고 그 자리를 맴돈다고 했다. 여성의 기억은 항상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 속에는 많은 참담한 것들이 내면으로 추락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운드 오브 폴링>은 우리가 외면했던 시선과 귀 막고 안 들으려던 주변의 소리에 집중한다. 소녀의 시점숏은 현실과 꿈을 경유하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학대와 억압으로 탄생한 죄책감, 여성으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게 하고 생존의 위협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영화는 교차편집을 통해 여성 4인의 삶을 조망한다. 1910년대를 사는 알마는 천진난만한 아이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본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아이, 상복을 입고 늘어진 채 있는 모습을 통해 처음 죽음이라는 감각을 알게 된다. 그 후 1차 대전이 개전하고 알마에게 전쟁과 죽음은 일상으로 다가온다. 1940년대를 사는 에리카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쓸모없는 존재, 가축을 돌보는 일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삼촌인 프리츠를 부러워한다. 전쟁에 보내지 않기 위해 가족이 단합해 다리를 절단해 버린 남자 그 덕에 온 가족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에리카는 그런 애정조차 자신이 받지 못하기에 갖고 싶다. 한편 알마는 그 사이 집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목도했다. 집안의 하녀는 겁탈당하고, 오빠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다리를 절단하고 가난을 못 이겨 언니인 리아가 다른 집 하녀로 팔려 갈 때 자살하는 모습, 두 번의 전쟁은 집안을 박살내고 비극과 부조리로 버티는 이곳에서 점점 자아를 읽어간다.

40년이 지난 1980년대 종전 이후 세상은 달라졌지만 총칼이 없을 뿐 여성은 여전히 억압과 사회 관념에 묶여있다. 앙겔리카는 삼촌인 우베에게 성적 유린을 당하고 그의 아들인 라이너 또한 욕정의 배출구로 앙겔리카를 이용하려 든다. 그녀는 일부러 과감한 행동으로 자신의 성적 주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주변인들의 시선은 창녀로 본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괴로운 마음에 잠시 자살을 생각하지만 결국 자유를 찾아 서독행을 결심한다. 시점은 다시 현대로 가 렌카를 비춘다. 가족들의 무관심과 친구 아버지의 불쾌한 시선은 소녀를 자기혐오로 몰아간다. 그녀 역시 자기라는 존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불안이 우울과 슬픔을 만든다. 죽음이 마음속에 피어나려던 그때 카야가 나타난다. 자유롭고, 남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고 카야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한다.

영화는 다른 시간을 경유하며 같은 삶을 반복하는 이물들을 조명한다. 에리카의 가족은 몰려오는 소련군을 피해야 한다. 여성이 감당해야 할 공포는 죽음과 강간이다. 그들은 강을 건너려 하지만 장어에게 물려 도강을 포기한다. 장어는 다시 앙겔리카의 가족의 게임에 등장한다. 장어를 움켜잡고 통에 넣는 행위를 통해 그들은 즐거워 하지만 앙겔리카의 엄마 일름에겐 물림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장어는 과거와 현재를 거쳐 여성에게 심리적 불안을 야기한다. 장어는 생감새와 넘치는 활력으로 인해 남성성의 상징이 된다. 즉, 여성을 억누르고 상처 입히는 공포가 장어인 것이다. 시대와 상관없이 죽음의 냄새를 맡는 존재는 파리다. 항상 먼저 시신에 붙어 피부를 맛보고 날개를 떨며 깊은 애도를 한다. 매 시점 죽음의 순간에 등장함으로써 모든 비극은 애도받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하녀인 트루디는 하층민 여성이 겪은 폭압과 착취의 전형을 보여준다. 노동 착취와 성마저 갈취당한다. 주인은 물론 다른 남자 하인들도 이용하도록 불임 시술을 받는다. 그런 일상을 지켜보며 자라온 알마의 언니 리아는 자신이 하녀로 팔려 가게 되자 마차에 뛰어내려 자살을 택한다. 리아는 트루디를 동정하고 트루디는 그녀의 오빠인 프리츠를 연민한다. 강제로 다리가 잘린 남자와 생식 기능을 잃은 여자, 에리카는 서로를 동정하는 그들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정체성을 느낀다. 이어지는 상징들과 시대를 초월해 닮아가는 캐릭터들을 통해 역사의 트라우마는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리카의 가족도 앙겔리카도 강을 건너지 못했다. 그들에게 강 건너는 자유와 행복이 가득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강은 우리를 막고 있는 불행의 장막처럼 느꼈다. 렌카와 카야에 와서 그곳은 건너는 지점이 아닌 오히려 물속에서 서로를 믿고 속박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장어들 역시 그들을 스쳐갈 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강은 비로소 죽음 그 자체임을 받아들인다. 렌카와 카야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삶이라는 시스템에 역사라는 굴레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마침내 자기 인생에 방향성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은 밭을 일구던 에리카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막을 내린다. 그 부양은 생을 위한 도약이라 믿고 싶다. “바닷가에 시체가 떠밀려오면 파리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 자리가 시인의 자리다. “ 이성복 시인이 말했던가? 내게 이 영화는 파리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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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경 선배 | 작성시간 26.01.08 파리처럼 손 비비며 안타까워 하셨으려나요? 보는 것 자체가 선의인 영화에요. 관람도 리뷰도 감사합니다.
    이 영화의 고발이 너무 괴롭네요. 부디 소녀의 시점으로 완곡하게 표현되었기를 바랍니다.
    많은 여성들이 매혹의 주체 이전에 폭력의 객체가 될 위험을 안고 삽니다. 완력의 열세는 엄존하기에 약자의 잠재태입니다. 그래서 평화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디 peace.
    여성이 힘에서도 지지 않았으면 생각합니다. 그점에서만큼은 델마와 루이스보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이 좋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소대가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8 부당이 정당으로 둔갑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듯 합니다. 존엄이 하나의 세계로 인정되길….
  • 작성자코코아마녀 | 작성시간 26.01.15 다른 시간대를 살지만 같은 고통을 겪는 여성 4인의 삶이란 글로만 읽어도 마음이 힘드네요. 파리의 자리라니... 소대가리님이 아니었음 몰랐을 영화,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소대가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28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ott로
  • 작성자어린왕자 | 작성시간 26.02.14 부국제에서 봤어요
    기대가 큰만큼 실망했던...
    소갈님 리뷰에도 크게 애정이 느껴지진 않네요
    (저의 착각?ㅋ)
    지나치게 영상무드에 신경쓰다보니 네소녀의 서사연결에 진입하기가 애매하더라고요
    주제가 트라우마와 억압과 연대인데
    엔딩의 해방감이 제대로 발휘되었나 싶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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