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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가린 옷 위로 < 박해영론>

작성자소대가리|작성시간26.06.07|조회수148 목록 댓글 2

박해영의 드라마는 세상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는다. 해부하고 다시 꿰매는 대신 상처를 가린 옷 위로 손을 뻗는다. 당신이 가진 모든 아픔을 알 수는 없지만, 나 역시 비슷한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기에 위로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다. 직장인과 실업자는 반복된 생활에 지쳐 있고, 자영업자와 그 밖에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은 공허와 피로를 안고 있지만 표출할 창구조차 마땅치 않다. 눈물조차 사치인 사회에서 병들어 메말라가는 현실이 지금의 민낯인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시청자들은 묘한 정동을 느낀다. 인물들은 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사건 속 인과는 우연으로 발생하고, 뱉어내는 말들은 지나치게 문학에 가깝다. 핍진한 서사를 지닌 인간이 아닌 하나의 상징적 존재를 빚어내는 듯하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인물이 흐릿하다는 지적을 받겠지만, 박해영이 구현하려는 세계는 직설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 포착된 것은 삶의 객관적 구조가 아닌 개인이 체감하는 감각이다. 출퇴근길 내 몸을 실어 나르는 허무와 권태로운 가로등 불빛은 누구도 위로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직시한다. 사건보다 핍진한 감정을 들여다보며 소설보다 시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다.

노동은 나를 소진시키고, 가정은 침묵한다. 피난처는 술자리뿐이다. 『또 오해영』에서 출발한 자존감의 문제는 자기혐오와 인정 욕구에서 발현해 『나의 아저씨』에서 존엄을 말한다. 『나의 해방일지』에 이르러서는 응어리진 감정으로부터 해방을 원하는 이들을 다룬다. 인물들은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고 존재의 가치를 생각한다. 이런 관념은 최근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까지 연결된다. 오해로 시작된 자존감 찾기는 결국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일로 이어진다. 나는 나로 충분하지 않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안심하는 현대인의 피로를 그린다.

작품들의 감정적 연대는 공감을 불러오고, 박해영의 약점인 지나치게 현학적인 대사와 우연이 만드는 개연성의 흔들림을 상쇄한다. 사건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극중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사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지점은 레이먼드 카버와 닮아 있다. 카버가 평범한 일상에서 무너지는 인간을 발견한다면, 박해영은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아니 애써 외면한 상처를 포착한다. 동시에 밀란 쿤데라의 존재론에도 접근한다. 인간은 어째서 외롭고, 삶은 왜 이토록 무거운가를 고민한다. 다만 박해영은 카버보다 인간적이고 쿤데라보다 정서적이다. 그들이 그리는 인간 군상은 아이러니로 가득하지만, 박해영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연민은 말 그대로 연민에서 끝을 맺는다. 추앙하면 해방될 거란 희망은 낙엽처럼 바스라진다. 박해영의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인물들은 여전히 그곳을 살아간다. 변하지 않는 절망적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아주 작은 틈을 열어 둔다. 그 틈은 타인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재를 인정할 때, 희망은 내일에 걸린 열매가 아닌 틈으로 스며들어 오는 온기임을 말한다.

박해영의 드라마엔 대안이 없다. 사회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고 노동자의 피로는 보상받지 못한다. 계급으로 파생된 외로움은 개인의 위로로 해결하려 한다.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지만 생채기를 만드는 원인을 추적하지는 않는다. 맞서는 대신 어루만진다. 웜톤의 화면 질감은 그 세계를 대변한다. 박해영의 인물들은 황혼 속에서 실존한다. 갈색의 미장센은 가을의 쓸쓸함이다. 곧 사그라들 듯 초라한 인물들의 인상은 삶에 지친 채 겨울로 향하는 우리를 대변한다. 가끔 노을빛의 따뜻함을 구원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닿지 않는 진짜 빛임을 알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기억에 남는 건 줄거리가 아닌 시어에 가까운 풍경들이다. 담벼락에 기댄 연인들, 가로등 불빛 아래 해맑은 웃음, 술잔 위로 흔들리는 전등과 빛바랜 코트 아래로 떨어지는 입김, 그리고 말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던 시선.

박해영은 급진적인 대안 대신 보수적인 질문을 던진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원 없는 현실에서 나를 알아본 너를, 너를 알아본 나를 찾는 여정이 그의 드라마다. 낮과 밤 사이의 가장 밝은 빛이 림보(limbus)라면, 우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잃었다고 믿는 많은 것들 중에 그것이 있음을 박해영의 드라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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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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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젤리나 졸려 | 작성시간 26.06.08 우와~!!!!
    또 오해영부터 박해영작가님 드라마를 다 보셨다구요?ㅎ
    대박쓰~!!!!

    모자무싸를 아직 못보고 있어서 속상했는데
    이 글을 보니 얼른 나를 찾은 여정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히 잘읽었습니당~^^
  • 작성자House | 작성시간 26.06.10 아따...찐득하네영.

    오랜만에 나저씨를 다시 봤는데 역시 박해영작가의 최대 업적은 나저씨 같습니다.
    특히 할머니 요양원에 모시고 나오는 시퀀스는 지금 봐도 참...
    참 좋아했던 배우를 다시 봐서 그런 것도 있고...우리 지은이 인생연기도 있고...

    이후 해방일지나 이번 모자무싸는 촬영이나 완성도는 좋은데 뭔가... 쪼오금...
    영상이 모자라면 각본집으로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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