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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 해수욕장

작성자唯 一|작성시간26.02.21|조회수80 목록 댓글 7

   설날을,

맞이하여 2박 3일로 강화도 동막

해수욕장을 찾은 건, 작년 추석

다녀간 후 2번째다.

 

    40여년 전 여름,

동막 해수욕장을 찾아갔을 때는

하얀 백사장에 피서지 인파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2월,

바다가 얼음으로 뒤덮였다.

   손주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이 준비해간

바둑판으로, 사돈과 바둑부터 한

판 두었다.

   사돈이,

강화도에 올 때 마다 찾는다는

‘치마바위’ 식당으로 옻닭을 먹

으러 갔다.

    오른쪽,

산위에 치마바위가 있어 붙인

인데 ‘직접 기른 토종 닭 잡

줍니다’ 라고 하니 맛좋을 게

림없다.

 

   섬으로,

들어와 먹는 옻닭은, 육지의

것과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사돈부부와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수담手談을 나

어 보았는가.

   신선神仙이, 따로 없다.

 

   꽤나,

유리한 흐름을 타고 있었던 것.

 

   선제점을,

올렸다해도 지키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하였는가.

 

   순례를,

가는 라마의 선승처럼 침묵에 잠

긴다.

 

   앗!

토끼가 나무를 타고 오르네.

   강화도는,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10여차례

오고 있는 중인데, 서울에서 그

리 멀지 않아서인지 많은 이들

이 찾고 있는 섬이다.

 

   석양을,

바라보며 두는 오로삼매경은

다른 매력이 있다.

   초반부터,

빠르게 판을 전개해 가다 이제

고민이 깊어질 차례.

 

   거대한,

모양을 키워가며 팽팽했던 흐

은 백이 침투하면서 단번에

돌이 친다.

 

    아쉬움이, 가득한 복기.

 

    다음날 새벽,

일행이 꿈나라에서 한참 헤매

있을 6시30분, 주섬주섬 옷

고 슬그머니 바닷가 산책

섰다.

 

   어둑어둑한,

겨울바다를 즐기는 하나의 방

법은 가만히 나를 관찰하는 것.

 

   성자의,

경지가 겨울 바다에 있거늘, 묵

언수행은 냉혹하다.

 

   바다로 난,

둑방에 흠이나 내지 않을까, 새

색시처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데 희끄무레 동이 터온다.

 

   찰라,

동막 해수욕장 위로 붉은 불덩

가 쑥 올라온다.

   안긴,

바다가 고요하고 스산하다.

 

   이,

겨울의 끝에서 맞이하는 일

출이 서서히 얼음바다의 몸

뚱아리를 칼질한다.

 

   아침을 먹고,

때는 설날인지라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일제

히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

았다.

   지들을,

낳아 헌신으로 키워주고 있

부모님들한테도 일동세배.

 

   니들이,

힘들 때, ‘제일 먼저 도와 줄

람’은 역시 부모님이란다.

 

    부모님의,

은혜는 한이 없도다.

 

   작은 사위,

사돈부부와 우리부부는 역

방길에 나서고 큰딸.사

위, 작은딸, 작은사위 여동

생 부부와 손주들은 놀이기

구 동산으로 나뉘어 졌다.

   광성보廣城堡는,

조선 1658년(효종 9년)에 설치한

강화도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로,

신미양요때(1871년) 미군 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의 현장이다.

   용두돈대는,

강화 해안에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암반 위에 설치한 돈대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사돈부부와 우리부부, 작은사위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강화의 전적지

돌아보고 “여기는 우리 민족의 자

주정신과 호국의 기상을 이어 받는 국민

교육의 신적 도장이 될 곳이라 정성들

여 복원 정하라” 는 분부를 내려

그 뜻을 받들문화공부부가 이

일을 마치게 되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 江華聖堂’ 은

1900년에 축성한 우리나라 최

초의 한옥 성당인데 배의 형상

을 따랐으며, 한국정통 양식으

로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 정

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

江華聖堂’ 아래는 조선 제25대

금 철종(1849~1863) 이 왕위에

르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임금

되기 전에 살던 집) ‘용흥궁龍興’이

있다.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

재와 같은살림집 형식

으로 지어져 소박한

위기를 풍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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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이필복(천안) | 작성시간 26.03.01 唯 一 맞절
    감사 합니다.
    카페에서라도 자주 인사 나누어요
  • 작성자이필복(천안) | 작성시간 26.03.01
    초봄이었다 여기저기 전전하며 거지같이 살고있었다

    그때는 한림에있는 목욕탕에서 남탕 청소와 어쩌다

    손님이 때를 밀어달라면 때밀이 일도 하고 있었다

    동준이가 찾아와서는 서울 미아리에서 일하고있는 ᆢ

    후배랑 통화를 했는데 ᆢ 일자리가 있는데ᆢ 먹고자고

    일하는만큼 돈을 받을수있는 일이라고ᆢ 꿈같은 얘기ᆢ

    중국집에서 일하고있는 친구에게 차비를 빌렸다ᆢ

    그때 우리사회에서 가장 최고의 직업은 중국집이였다

    짜장면 먹을수있고 룸에서 잘수있고 환상적이였다ᆢ

    일해서 부칠게ᆢ 손님도 명절 아니고는 별로 없는곳 ᆢ

    시골의 목욕탕이라ᆢ 서울 간다고하니 ᆢ 어서 가라고ᆢ

    입하나 줄인 그런느낌 ᆢ 가야호ᆢ 제주에서 목포로ᆢ

    한라산이 점점 흐릿하게 ᆢ 큰가방한개ᆢ 내 기록물들ᆢ

    지금도 갖고있는 상장 노래책 스크랩북 ᆢ 지금 생각하면

    ᆢ 너무 우습다ᆢ 그렇게 형편없는 생활에도ᆢ 훈장처럼

    갖고 다녔으니ᆢ 간다 한양으로 ᆢ 육지로ᆢ두번째다ᆢ
  • 답댓글 작성자이필복(천안) | 작성시간 26.03.01 죄손죄송
    준회원 글쓰기가 안되어
    훔쳐온 글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唯 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02 이필복(천안) 이 글을 쓴,
    이 홈페이지 바둑과 사람 홍시범 대표는 2000년 부산 롯데배 전국바둑대회
    갔을때 만나 지금까지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2006년경 여기에 몇가지를 끄적거려 올렸더니만 아주 '唯一' 란을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코가 꿰어 오늘날까지 어줍잖은 글을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 작성자이필복(천안) | 작성시간 26.03.04 아... ... 인얀이란 우연에서 나오는듯 합니다.
    저도 코 꽤여 20년 지났으면.. 푸하하
    61년 생이니 가능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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