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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자료]]반세기 이상을 서방의 주력전차로 활약중인 패튼전차 PT1 (M46/M47 편)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작성시간11.03.14|조회수1,183 목록 댓글 16

 

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벌써 3월도 10여일이나 지났습니다. 요새 새삼스럽게 느끼는거지만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미라지는 또 다른 리뷰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요새 경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당분간 미라지도 지름을 줄이고 기존의 킷을 살펴보면서 소일해야 할 듯 싶네요.. 얼른 입학시즌이 끝나서 경기가 다시 돌아왔음 좋겠습니다.

 

오늘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차라 할 수 있는 패튼전차 시리즈를 큰 맘먹고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M1 에이브람스 전차 등장 이전 반세기 이상을 미군의 주력전차로 활약한 그리고 지금도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주력전차로 활약중인 서방을 대표하는 전차중 하나 입니다.

요새 엔하키미러 싸이트란 곳에 자주 놀러가는데 이런저런 링크를 타다보니 이 전차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재밌게 나오더군요.. 마침 예전에 모아두고 있었던 자료고 있고해서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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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지켜온 미국전차 설계의 자존심 패튼전차

                       번역 및 정리 미라지나이트 (미라지의 콤프방 www.compmania.co.kr)

미국은 2차대전 이전부터 전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터라 막 벌어진 2차대전에 참전하자 마자 전차강국 독일군에게 무참하게 깨지기 시작합니다.

 

 

[ 남북전쟁의 남군의 유명한 장군 이름을 딴 이 전차는 M3 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음에도 LEE 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다 새로운 중전차인 T6 가 완성되기 전까지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이 전차는 M4 셔만전차가 등장한 후에도 오랫동안 아프리카 전선등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M4 셔먼 전차 역시 차체의 대부분은 M3 와 호환이 가능한 전차였다] 

 

2차대전 참전 당시 미국은 구시대의 유물인 M3 전차와 더불어 가까으로 이를 개량한 M4셔먼 중전차로 독일군을 상대하게되었는데 말이 중전차지 장갑이나 탑재포의 위력 모든면에서 독일군의 전차에 모두 열세였습니다.

 [M4 셔만 전차는 1942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처음 데뷔 하지만 그 성적은 처참할 정도 였다 독일군은 곧 새로운 전차의 등장을 알아챘지만 운영중인 3~4호 전차에 가볍게 격파가 가능한 이 전차를 보고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행히 셔만전차는 엄청나게 구조가 간단했기 때문에 질적 불리함을 수적우세와 항공력으로 커버하면서 겨우 전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비록 독일군 전차에 떨어지는 성능이였지만 그 단점을 막대한 양으로 이겨낸 전차가 바로 셔만전차 였다. 1942년부터 1945년 3년동안 5만여대 이상의 셔만전차가 생산되었으며 이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부터 유럽전선 그리고 태평양 전선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대전중반이후 독일군은 5호전차 판터나 6호전차 티이거 그리고 이를 개량한 타이거II 등소련전차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중전차를 잇따라 내놓게 되자 기존의 서먼전차로는 도저히 맞상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공식적으로 티이거를 마주하면 도망쳐도 좋다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르죠..

 

 

[셔만전차하면 생각나는건 어머어머한 생산양이다. 보통 독일군 전차 1대를 생산할동안 셔만전차를 10여대가 생산되었을 정도로 어마한 차이였으며 이는 결국 막강한 독일군 전차세력을 무찌를수 있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같은 셔만이지만 조금씩 외형에 차이가 있는것에 주의!!]

 

한편 미군 역시 이런 독일군의 막강한 전차세력을 상대하면서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였는데일단 아쉬운대로 대공포로 사용되던 90밀리 M3 대공포를 장착한 대전차자주포인 M36 잭슨 이나 M10등을 먼저 만들어 전장으로 내놓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중전차를 개발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M26 퍼싱전차 입니다.

 

 

[미군은 날로 성능이 강화되는 독일군의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하여 90밀리 M3 대공포를 장착한 대전차자주포인 M36 잭슨 대전차자주포를 투입하여 겨우 이들을 막아낼수 있었으나 거의 장갑이 없는 자주포인 이 전차는 본격적인 대전차 임무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라는것이 사실이였다] 

 

퍼싱전차에 대해서는 앞서 다룬적이 있으므로 용량관계로 아래 링크를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M26 퍼싱전차는 철저하게 독일군의 타이거II (Panzerkampfwagen Tiger Ausf B) 를 상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차로 모든 설계 기준은 당대 최고의 전차로 불리던 타이거II 전차를 이길수 있는 전차로 개발되게 됩니다.

 

[쾨니히스 타이거라 불리는 타이거II (Panzerkampfwagen Tiger Ausf B)형은 대전말엽 등장한 가장 뛰어난 중전차중 하나로 공격력이나 방호력면에서 당시 이를 능가하는 전차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를 위해 앞서 소개한 90밀리 대공포를 개조한 M3 전차포의 장착과 이를 탑재하기 위한 대형 포탑과 대형차체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차는 대전후반에 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실전에 투입결과 여러가지 크고작은 문제점이 많았고 아쉬운대로 대전종반에 몇 대를 시험적으로 투입했지만 독일의 전차세력이 거의 와멸되는 바람에 제대로 실전평가를 받지를 못했습니다.

 

[퍼싱전차가 목표로 삼은건 독일이 개발한 타이거2 전차였다. 이는 티이거1을 잇는 독일이 만들어낸 최고의 중전차로 종합적인 전투력은 훗날 등장하는 M60 패튼에 맞먹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우수한 전차였다] 

 

1945 430일 히틀러의 자살과 58일 독일의 항복으로 긴 6년간의 유럽에서의 2차대전은 종전을 맞게되고 전쟁기간동안 계획되었던 모든 전차계획 프로젝트는 백지화되면서 퍼싱전차의 문제점은 해결되지 못한채 냉전시대를 맞게 됩니다.

냉전의 시작과 공산진영에 마주 서게 된 패튼전차

독일의 항복과 함께 동서로 나뉜 베를린을 경계로 소련진영과 미국진영으로 양분되어 50여년간의 냉전체계로 들어서게 되면서 미국의 고민은 더 이상 독일이 아닌 소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일찌감히 전차의 무기로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20년대부터 전차부대를 창설하면서 새로운 전차들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 결과는 KV 전차와 T-34 전차를 통해 성과를 보여주게 됩니다.

 

 

[한국전쟁에서 노획된 북한군의 T-34/76 (맨우측) M4A3E8 셔먼전차(중간) 그리고 퍼싱전차가 시험을 위해 나란히 이동중인 모습]

 

이들 전차는 2차대전동안 독일의 우수한 전차군단을 상대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전과를 보여주게 되는데 특히 T-34 전차는 현재까지도 공수의 균형이 가장 잘 맞는 우수한 전차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T-34 전차는 2차대전중 개발된 전차중 가장 뛰어난 전차로 불리는 전차로 공수의 밸런스 뿐 아니라 경사장갑의 대폭도입 등 혁신성을 두루 갖춘 우수한 전차였다. 특히 대전말엽 등장한 85밀리 포 장착형 T-34/85형은 독일의 타이거II (Panzerkampfwagen Tiger Ausf B) 에 맞설수 있는 펀치력을 가진 대안중 하나였다]

대전후반에는 소련은 T-34전차의 뒤를 이을 전차로 KV전차를 개량한 IS-2/3 스탈린 전차를 개발하여 서방세계를 놀라게 하는데 이 전차는 당시의 어떤 전차설계사상보다 뛰어난 전차로 세계최초로 반구형의 포탑을 장착한 방어력이 상당히 뛰어난 전차였습니다.

 

 

[2차대전중 소련은 T-34 전차와 더불어 KV 전차를 쌍두마차로 운용했었는데 KV 전차의 차체에 122밀리 포를 장착한 중전차가 바로 IS-2 스탈린 전차이다. 이는 중장갑에 122밀리 라는 당시 어마어마한 펀치력으로 독일군 전차를 일시에 보낼수 있는 카운터펀치를 가진 전차중 하나였다 ]

여기에 대전차포로 사용되던 122밀리 주포를 장착하여 그 위력 역시 엄청났습니다. 서방은 스탈린전차의 등장으로 큰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대전말엽에는 (혹은 종전후) IS-2 를 개량한 IS-3 전차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주조제 포탑에 스프접시를 엎어놓은듯한 형태의 포탑을 가진 중전차로 내부는 공간장갑으로 되어 있어 당시 어떤 전차라도 이를 원거리에서 격파하는것이 불가능한 그야말로 충격적인 전차중 하나였다. 이에 대한 서방의 충격은 그야말로 '어이상실' 그 이상이였다고..]

그러던중 1950년 동아시아의 변방국가였던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훗날 한국전쟁(KOREA WAR)’으로 알려지게 된 이 전쟁은 그동안 미국와 소련으로 나뉘어 기회만 엿보던 민주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정면으로 맞붙은 전쟁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조선민주공화국 의 김일성일당의 기습으로 한국은 3년간의 긴 내전을 치루게 됩니다.

이 전쟁은 2차대전 이후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전쟁으로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앞서 소개한 미그15와 세이버 제트전투기간의 최초의 공중전이 있었고 지상에서는 소련의 T-34/85형과 미국의 새로운 중전차인 M26퍼싱 그리고 이를 개량한 버전인 M46 패튼전차가 처음으로 맞붙은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퍼싱전차 그리고 패튼전차로 진화하다

2차대전이후 서독과 나토군이 우선 배치되었던 퍼싱전차는 비록 문제점이 많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종전이후 모든 군비가 감축되면서 대부분 백지화 되게 됩니다.

퍼싱전차 역시 제대로 된 개량을 받지 못한채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었는데 마침 벌어진 한국에서의 전쟁소식으로 인해 미국은 이 전차를 다시한번 전장으로 끌고 나오게 됩니다.

 

[한국전쟁 당시 유일한 전차세력중 하나가 바로 M24 채피(Chaffee) 경전차 (Light Tank ) 였다. 보병지원용으로 제작된 이 전차는 75 mm Gun M6 L / 39 라는 등장 당시에는 꽤 쓸만한 중무장을 한 경전차였지만 최대 장갑두께가 25밀리에 불과할 정도로 방호력 수준은 형편없는 편이였다. 일본의 항복이후 북한과 남한으로 양분되있던 한국은 당시 남한의 대통령이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북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북침통일을 주장한것에 우려한 나머지 남한을 신탁통치하던 미군은 남한의 대전차 세력을 거의 빼버려 훗날 한국전쟁발발후 이에 대한 댓가를 톡톡하게 치루어야 했다]  

 

  

[한국전에서 산지에서 지원사격중인 이지에잇의 모습 신형 T80 궤도를 장착하고 있는것에 주의!! 한국전 초기 이지에잇은 미군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중전차중 하나였지만 북한군이 장비한 T34/85 형에는 턱업이 부족한 성능으로 말미암아 최신의 전차인 M26 퍼싱전차와 M46 패튼전차가 급거 투입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한반도에서 전차가 별로 효용이 없을것이라는 오판으로 인해 M24 차피같은 경전차나 기껏해야 셔먼전차의 개량형 버전인 M4A3E8 ‘이지에잇을 배치했지만 당시 북한군이 장비한 신형전차인 T-34/85형 에게 이런 전차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것이 바로 증명되게 됩니다.

 

[미군에 의해 나포된 T-34/85형.. 한국전쟁 발발시 북한군은 300여대 이상의 각종 전차를 지원받아 동원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대부분을 차지하던 전차가 바로 T-34/85형으로 이는 2차 대전중 개발된 전차였지만 당시 이를 격파할 전차는 남한쪽에는 없었다. 초기에는 M4A3E8 이지에잇등을 동원해 막아낼수 있다고 판단한 미군은 그 생각이 오판이였음을 수차례의 전투를 통해 단단히 깨달게 되었으며 급한대로 당시 최신 전차였던 M26 퍼싱전차를 투입하고 나서야 겨우 이전차를 막아낼수 있었다]

 

북한군이 장비한 T-34/85형에게 셔먼전차들은 일방적으로 밀리게 된것이죠..

이런 사실은 안 미군은 바로 본토에 배치되어 있던 M-26 퍼싱전차를 투입하게 됩니다.

 

 

[박물관에 전시중인 퍼싱전차 한때 라이벌이였던 옆의 JS-3 스탈린 전차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당시 미군은 최강의 전차인 퍼싱전차를 투입하고 나서야 겨우 북한군의 T-34/85형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전차들의 지옥이라 불리던 한반도에서의 퍼싱전차의 운용은 이후 많은 개량점을 시사하게 됩니다.

퍼싱전차.. 한반도에서 개량되다

우선 퍼싱전차가 장비한 500마력 포드 V8 엔진은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한반도에서 출력부족이라는 문제점이 있었고 변속기 역시 잦은 고장이 많았습니다.

 

 

 

[눈덮인 산야를 힘들게 오르며 포발사를 하는  퍼싱전차 퍼싱전차는 미국이야심차게 개발한 중전차였지만 첫 실전을 한국의 산악지형에서 치루면서 엔진 출력부족이 라는 단점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에서 이를 완벽하게 개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보병을 태우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퍼싱전차.. 패튼전차로 이어지는 특징적인 다지인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M4A3 형테 탑재된 Ford사의 GAA V8 가솔린엔진의 모습 이는 M26 퍼싱전차와 M26 패튼전차에도 장착된 매우 신뢰성이 우수한 가솔린 엔진중 하나였다. 항공기용으로 개발된 이 엔진은 신뢰성이 우수했지만 날로 무거워지는 전차를 받치기에는 다소 출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일단 엔진과 기동륜등을 개량한 M-26A1이 한국에 파견되어 있는 해병대와 육군에 우선 배치되고 이어 추가적인 개량이 가하진 전차라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M-46 패튼전차라 부르게 됩니다.

 

[서울 수복후로 보이는 사진으로 공산군 포로들을 압송하는 모습과 경계중인 퍼싱전차의 모습이 묘한 느낌을 준다. 한국전쟁을 통해 투입된 퍼싱전차는 북한군이 장비한 T-34/85 를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거두며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M46 Medium Tank

 

 

 

 

 

    [M46 패튼전차는 M26퍼싱전차의 개량형으로 등장한 미군의 중전차 이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M26 퍼싱 중전차를 뒤늦게 실용화 시킨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 베를린에서 열린 대독 승전 퍼레이드에서 공개된 소련의 세련된 형태의 경사장갑의 극치와 엄청난 두께의 장갑을 가진 IS-3 중전차를 보고 충격과 공포에 ㅎㄷㄷ 거리기 시작한다. 냉전의 조짐이 보이고 서로 주도권에 대한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시기에 신형 전차를 보고 놀란 미군은 퍼싱을 개량한 전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이동중인 M46 패튼전차의 모습 한국전쟁에 급히 투입된 이 전차를 퍼싱전차의 단점을 급히 개량한 버젼으로 훗날 M47~M48/M60 으로 이어지는 패튼전차의 아버지뻘 되는 전차이다]

 

 

이 계획은 1948 1월 시작되어 처음에는 M26E2로 불리웠다. 제일 욕을 먹었던 변속기와 엔진을 M45(M26 퍼싱의 105mm 곡사포 탑재형. 보병지원용이라 장갑이 대폭 강화되었다)전차용으로 개발되던 AV-1790 가솔린 엔진과 CD-850-1 크로스 드라이브식 자동변속기로 변경한 M26의 개조차량[2] 1948 5월에 개조가 끝나 주행시험용 차량 T40로 명명된다. 이 개발속도는 미군이 얼마나 충격과 공포를 느꼈는지 알려준다...

 

 

 

[대전중 급히 만들어진 퍼싱전차는 가혹한 환경의 한국지형에서 철저하게 실전을 테스트를 겪었다.이후 엔진출력 부족 과 트랜스미션의 잦은 고장등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수정하엿으며 장포신의 90밀리 주포를 장착한 수퍼퍼싱의 개발도 준비되었으나 모두 백지화하고 M46 패튼전차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 M47..M48..M60 으로 이어지는 40년이 넘는 패튼전차의 계보로 이어지는건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다]

 

 

 

 

 

[2차대전 말엽 급히 개발된 M26 퍼싱전차는 종전후 여러가지 시도가 가해졌는데 이중 50구경 이상의 장포신의 주포를 장착하려는 시도도 그중 하나였다. 수퍼퍼싱으로 불리는 이 전차를 몇대가 제작되어 다양한 실험용으로 사용되었고 훗날 패튼전차의 개발에 큰 영향을 주게되었다. 엄청나게 비대해진 퍼싱전차와 비교하기 위한 사람의 모습이 꽤 대조적이다]

 

 

이 테스트 차량의 시험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무장계통은 원래 포탄 발사속도 등을 개량한 초고속 90mm T54포탑을 장비할 예정이었지만 개발이 삽질을 계속하여 우선적으로 M3A1을 장착하기로 결정된다. 그리고 변속기와 엔진의 자잘한 문제를 해결한 시제차량 10대가 급하게 주문된다. 이어서 1948 7 30일에 M46 패튼으로 제식 명명되면서 1949 800대의 신규 발주가 시작되었다. 또한 M26/M26A1 415대를 M46사양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실시되어 전력지수를 급하게 메꾸는데 사용되었다. 심지어는 시제차 T40 10대중 9대도 M46A1으로 개수되어 실전배치 되었다. 이중 신규 생산분을 포함한 360대는 M47 패튼용으로 개량된 AV-1790-5 + CD-850-4 파워팩을 탑재, M46A1으로 명명된다. 이에 따라 엔진 냉각 계통과 브레이크, 전기장비를 교체하는 정도의 마이너 업그레이드가 실시되었으나 M46과 외관상 차이는 없다.

 

 

 

 

[M26 퍼싱전차는 대전말엽 급하게 만들다 보니 문제점이 한두군데가 아니였다. 하지만 종전후 모든 무기개발에 대한 지원이 급격하게 끈기게 되어 이에 대한 개량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고 결국 5년후 일어난 한국전쟁에 급히 투입하면서 이런 단점들이 문제화 된다.. 급한대로 몇몇 부분만 개량하게 되고 이중 엔진과 변속기등을 대폭 개량한 타입을 M46 패튼 전차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즉시 투입,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며 북한군의 T-34/85를 뻥뻥 터트리고 다녔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군 개입 이후 몇 대가 전장에 유기되어 중국군의 손을 거쳐 소련에까지 넘어갔지만 복잡정밀한 자동변속기 같은 경우 카피는 꿈도 꾸지못하고 겨우 주포 배연기만 카피하여 T-55에 탑재하는데 그쳤다는 것.

 

 

 

 

[M46 패튼은 사실상 M26 퍼싱전차와 외형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퍼싱전차에서 문제시 되었던 엔진과 변속기등이 교체되어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에서 운영하기에 그나마 나았다. 전쟁중반이후 북한군의 대전차 세력이 사실상 와해되어 대부분의 패튼전차를 고지점렴의 지원역활을 수행하게 된다] 

 

원래 단순한 땜빵용으로 만든 물건이고 생산량 또한 적은 편[3]인데다 나중에 나온 동생격인 M47이 워낙 단기간에 대량생산되고 역시 대량으로 공여된 탓에 미국 이외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에 M47의 훈련용 차량으로서 소량 공여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외의 퇴역차량은 대부분 퇴역 후 표적용, 고철, 어초 따위로 소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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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46 MBT 개념 확립 이전에 개발된 전차로 사실상 미군 최후의 중()전차로 분류된다. 미 육군이 50 11월에 포 구경으로 전차를 분류한 적이 있었기에 한때는 "90mm포 전차 M46"으로 불리기도 했다.

[2] 이 과정에서 차체가 살짝 대형화되었다. 정확하게는 후미 엔진 데크가 20cm 연장되고 중량이 약간 증가한 것.

[3] 다 합쳐서 1300대 미만.

 

 

 

[지금의 의정부 부근을 이동하고 있는 미군 소속의 패튼전차의 모습 퍼싱전차와 더불어 패튼전차를 투입하고 나서야 유엔군은 겨우 북한군의 전차들을 일소할수 있었으며 1952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북한군 전차세력이 와해되버려 보병의 지원역활을 주로 수행하였다]

 

 

제원 

길이  8.48m (포신 제외 6.47m)

  3.51m

높이  3.12m

중량  42.1t

주포  90mm 70구경장 M3A1

부무장  M2 12.7mm 기관총 1, M1919A4 7.62mm 기관총 2

장갑  13~104mm

마력 / 엔진  초기형 : 704마력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3 V12 공랭식 가솔린 엔진

후기형 : 810마력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5A V12 공랭식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

변속기  앨리슨 CD-850 (전진 2, 후진 1)

속도 / 항속거리  48km/h / 130km

승무원  5 (전차장, 포수, 장전수, 조종수, 부조종수)

생산댓수  M46 800, 개량형 M46A1 360

메이커  디트로이트 전차생산 공장

 

출처 엔하키미러 M-46 패튼편

 

 

패튼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2차대전 맹장으로 유명한 조지-S- 패튼장군의 이름을 따 지은 이름이며 그는 안타깝게도 2차대전중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하면서 그를 기리기위해 새로운 전차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George Smith Patton III 흔히 패튼장군으로 불리는 이 인물은 2차대전 미군을 대표하는 명장중 하나였다. 미국남부의 부유한 군인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로 부터 유명한 군인들의 무용담을 듣고 자랐으며 웨스토포인트를 1909년 졸업하였다. 그는 직설적이며 상당히 다혈질이였으며 성격이 급했다. 오죽하면 그를 가르켜 쌈닭 (Bandito, Old Blood and Guts) 으로 불렀으며 이런 성격으로 인해 후배인  오마르 브래들리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이들은 1915년 졸업)보다 늦게 진급했으며, 후배인 이 2명은 자신들의 선배가 사고치고 다니는걸 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는 말보다 행동하는것을 즐겼으며 행동이나 말은 거칠었으나 병사들의 고충과 아픔을 이해할줄 아는 몇안돠는 지휘관중 하나였다. 2차대전의 중요작전중 그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던 작전이 꽤 있으며 당시 미군장성중 기갑세력의 유용성을 빨리 깨달은 몇 안되는 지휘관중 하나였다. 항상 앞서 진격하는 솔선수범하는 그의 용맹성은 칭찬해줄만 했다. 하지만 앞뒤 안가리고 일단 부딫히고 보자는 식의 지휘는 문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벙크부상병 (그는 오늘날 전쟁증후군으로 불리는 PTSD환자였다) 구타사건 같은 그의 명성의 치명타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등 성격 하나는 좀 문제가 있는 장군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말로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휘자중 하나였으며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재주도 있었다. 독일의 항복이후 독일에서 사령관으로 뒷처리를 하던중 그를 태운 지프가 트럭에 치이는 바람에 아깝게 사망하였다.(1945.12.9일) 그의 나이 60세 2차례의 전쟁을 이끈 명장으로 안타까운 사망중 하나였으나 그렇치 않았더라면 그의 성격상 불명예스럽게 제대했을지도 모를 위인중 하나로 미군이 사랑하는 가장 용맹한 장군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패튼전차는 그의 용맹성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M-46 전차는 당시 M-26퍼싱전차의 개량형으로 한국에서 퍼싱전차를 운용해본 결과 우선 보이는 엔진출력부족과 변속기등을 수정한 버전으로 일종의 땜방식 전차였습니다.

 

[M46 패튼전차는  M-26퍼싱전차의 개량형으로 한국에서 퍼싱전차를 운용해본 결과 우선 보이는 엔진출력부족과 변속기등을 수정한 버전으로 일종의 땜방식 전차였다]

가장 큰 차이는 M26 에서 포드 GAL 500 마력 엔진이 M46 에서는 콘티넨털모터스사의 AV-1790-1 엔진으로 교체되었으며 이는 740마력의 힘을 낼수 있는 엔진으로 한국에서 문제시 되던 산악지형에서의 출력부족 현상을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패튼전차에 장착된 콘티넨털모터스사의 AV-1790-1 엔진의 모습 740마력을 낼수 있었던 이 엔진은 M26 에서 포드 GAL 500 마력 엔진보다 출력이 높아 출력부족이라는 문제점을 어느정도 해결할수 있었고 신뢰성 역시 끝내주는 엔진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료를 가득채우고도 고작 180킬로 밖에 못가는 최악의 연비는 문제점중 하나였으며 이는 두고두고 패튼전차의 문제점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가솔린엔진이라 피격시 불이 잘 붙는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변속기는  앨리슨 CD-850 (전진 2, 후진 1) 타입으로 바뀌어 퍼싱전차에서 자주 있었던 고장문제도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에서 적의 토치카를 분쇄하는 M46 패튼전차의 모습 전차 뒷부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재밌다. 1952년 초이후 대부분의 북한군의 전차세력이 와해되는 바람에 패튼전차는 이처럼 보병의 이동 토치카 정도로 이용되는데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M46 M26과 큰 차이가 없는 모델로 궁극의 해결책이 될수는 없었습니다.   

 

M-47 패튼전차의 등장!!

미군은 사실 퍼싱전차의 후속전차를 이미 개발중에 있었습니다.

퍼싱전차는 워낙 다급한 대전후반에 서둘어 설계되다 보니 한두가지 문제점이 있는게 아니였는데 이를 수정하려 했지만 갑자기 종전이 되는 바람에 흐지부지 되었고 종전후 찬찬히 살펴보면서 고치려고 했더니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갑자기 본토에 있는 전차를 투입하면서 가까으로 엔진과 변속기등을 수정한 M-46 패튼으로 때우게 됩니다.

 

[M46 패튼전차는 M26 퍼싱전차의 개량형 전차로 궁극의 해결책이 될수는 없었다. 그림에서 보듯 퍼싱전차와의 외형적 차이는 뒷 부분에 궤도이탈용 아이딜러가 추가된것 외에 거의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미군이 궁극적으로 계획했던 전차를 따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을 통해 워낙 다급했던 미군은 M26 퍼싱전차와 이의 개량형 M46 패튼을 투입하면서 어느정도 급한불을 끄게 되었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M26/M46 전차는 워낙 다급했던 한국전쟁에 소방수로 등장하여 그 역활을 멋지게 해내기는 했지만 대안은 아니였다. 그점을 알고 있었던 미국은 바로 다른 전차 개발을 진행중에 있었다]

 

소련은 이미 새로운 중전차를 개발하고 있었고 한국전쟁에 투입된 전차는 2차대전에 투입되었던 한물간 T-34/85형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새로운 전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프로젝트에는 T41 경전차, T42 ()전차, 그리고 T43 ()전차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종전이후 이미 새로운 전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프로젝트에는 T41 경전차, T42 ()전차, 그리고 T43 ()전차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중 경전차 프로젝트로 진행된 T41 경전차는 훗날 M41 워커불독 (M41 Light Tank "Walker Bulldog") 으로 제식화되었다]

 

이중 T41 경전차 는 보병지원용의 소형경량의 전차로 훗날 M41 워커불독 (M41 Light Tank "Walker Bulldog") 으로 제식화되었고 T-42 역시 T-41과 같은 엔진과 차체를 이용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M41 워커불독 (M41 Light Tank "Walker Bulldog") 으로 불리는 이 전차는 대전이후 미국이 개발한 경전차로 이 전차 역시 T-42 와 같은 엔진과 차체를 사용하는 전차로 서방세계에 널리 이용된 전차중베스트셀러 전차중 하나였다. 30톤 내외로 가볍지만 우수한 성능의 90밀리 주포와 조준장치를 가진 전차로 1960~80년대 까지 각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현재에도 덴마크등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T42 의 날렵한 주조제 신형포탑을 싣기에는 T41 차체는 너무 작고 엔진 역시 출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있었습니다. 그러던중 한국전쟁이 터지게 되고 마침 M26 퍼싱전차를 개량한 M46 패튼전차가 개발되게 되자 M46의 차체에 신형 포탑을 장착해보자는 시도가 있게 됩니다.

 

[T-42 개발안은 M46 패튼전차를 대신할 중전차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M12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를 탑재한 신형 포탑을 장착하는것을 주요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장착할 마땅한 차체 개발이 어려워 난황을 겪던중 M46 패튼전차가 개발되게 되자 M46의 차체에 신형 포탑을 장착해보자는 시도가 있게 된다. 사진은 T-42 의 시제품의 모습] 

 

 

[M12 조준장비가 장착된 신형포탑과 M46 의 자체를 결합한것이 T-42의 주요개발 포인트로 훗날 이를 다듬어 M47 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본격적인 신형전차가 아닌 기존의 개량형 모델인 M46 전차에다 피탄효과가 우수한 신형포탑을 장착하는 어중간한 형태의 전차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런대로 급조한 이 전차는 괜찮은 성능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도져장비와 신형 라이트를 장비한 M47의 모습으로 T-42 타입을 다듬은 것이 바로 M47 패튼전차였다. M12 스테레오식 신형거리측정기를 장비한 포탑은 디자인 마져 미려하였으며 특유의 작고 둥근형상을 가져 특히 피탄률이 매우 우수했다]

 

우선 신형포탑과 구형차체의 부조화 와 특히 사격통제장치의 결합이 큰 문제였는데 미육군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심하는 사이 한국전쟁은 끝나버리고 맙니다.

 

한국전쟁이라는 급한불이 꺼지고 나서 미육군은 차근차근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우선손을 대기시작한 곳은 차체로 엔진을 비롯한 기본골격은 M46과 동일했지만 차체를 일체 주조형으로 개량하여 전면경사각이 커졌고 그로인해 M46에 비해 둥그스럼하고 전체적으로 스마트한 형태로 변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전차가 바로 M-47 패튼전차였습니다.

[1953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신형전차 M47 은 M46의 차체와 신형 조준기가 장착된 포탑의 결합으로 2차대전부터 쓰여왔던 단악식 목측조준기 보다  조준하기가 훨씬 쉽고 명중률이 뛰어났다. 특히 잘 다음어진 포탑은 외형적인 면도 뛰어났지만 피탄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차였다] 

 

 

 

M-47 PATTON

 

 

 

 

 

[M47 패튼전차는  M46 패튼의 후계전차로  T42로 명명된 시제차량은 M46의 차체에 신형 T119 90mm포탑을 탑재하고 1949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바뀐 점은 차체 경사가 조금 바뀌고 포탑에도 본격적인 경사장갑을 도입, 좁아진 포탑폭 때문에 후면부를 탄약고로 바꿔 포탑 수납량을 늘렸다. 또한 T자형의 머즐브레이크를 탑재한 차이가 M46과의 외관상 차이점이다. 이 차량은 1951 4 M47 패튼(II)로 제식 명명되어 발주가 시작되었지만 막상 생산에는 차질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1952년에서야 실전부대에 배치되었다]

 

 

1948, 미군은 전후 전차 정비계획을 세우고 경()/()/() 3체급의 신형전차 개발 계획을 시작한다. 그중 M46 패튼의 후계차가 바로 M47이다. T42로 명명된 시제차량은 M46의 차체에 신형 T119 90mm포탑을 탑재하고 1949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바뀐 점은 차체 경사가 조금 바뀌고 포탑에도 본격적인 경사장갑을 도입, 좁아진 포탑폭 때문에 후면부를 탄약고로 바꿔 포탑 수납량을 늘렸다. 또한 T자형의 머즐브레이크를 탑재한 차이가 M46과의 외관상 차이점이다. 이 차량은 1951 4 M47 패튼(II)로 제식 명명되어 발주가 시작되었지만 막상 생산에는 차질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1952년에서야 실전부대에 배치되었다.

 

 

 

 

 

[M47의 가장큰 특징중 하나인 신형 T119 90mm 포탑의 모습 디자인면으로도 폭이 좁아지고 경사각을 주면서 피탐률 감소와 방호력이 증대되었으며 특히 M12 스테리오식 신형 조준기가 장착되면서 조준능력이 대폭증가되었다]

 

 

 

 

[M47 은 M46 전차의 차체를 그대로 이용했으나 일부 디자인에 변경이 가해져 정면의 각이 증대되었으며 장갑두께 역시 증가되었다] 

 

 

 

여기까지 써놓으면 이걸 뭐하러 만든 건가 싶지만 야심찬 변경점이 있었으니 바로 M12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가 탑재된 점이었다. 포수의 숙련도와 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2차 대전시 목측식 조준경을 버리고 시차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거리를 측정하게 하는 M12의 제식채용이 바로 생산차질을 빚은 주범이었다. 뭐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이 판터 F형에 먼저 채용하여 역시 선진적인 덕국을 외치게 하였지만, 이를 제식채용하여 대량 생산한 건 미국이 처음이었고, 이 때문에 M47은 두고두고 까이게 된다. 사실 조준기 자체의 결함보다는 조준기를 포탑 전면에 배치한 설계상의 미스 탓으로 차량 가동시와 포사격시 생기는 진동으로 정밀 광학기기인 조준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켜 정확한 거리측정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원래 테스트 하면서 개량해야 할 문제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번개불에 콩궈먹듯 생산해버린 것... 정작 한국전 기간 중엔 한반도에 오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겨우 2년에도 못미치는 기간 중 무려 8,500여대나 찍어낸 미국도 대인배... 역시 천조국...

 

 

 

 [문제의 주범 M12 광학식 거리측정기.]

 

 

사실 이보다 더한 문제가 있었으니 전설적으로 허접한 연비였다. 878리터를 가득 채운다 한들 겨우 130km 가는 게 전부라 돈이 넘쳐서 비명을 지르던 국방성조차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M47 패튼전차에 장착된 콘티넨털모터스사의 AV-1790-1 엔진의 모습 740마력을 낼수 있었던 이 엔진은 M26 에서 포드 GAL 500 마력 엔진보다 출력이 높아 출력부족이라는 문제점을 어느정도 해결할수 있었고 신뢰성 역시 끝내주는 엔진중 하나였다. 하지만 연료를 가득채우고도 고작 130킬로 밖에 못가는 최악의 연비는 문제점중 하나였으며 이는 두고두고 패튼전차의 문제점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가솔린엔진이라 피격시 불이 잘 붙는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후에 M60 패튼의 파워팩을 도입, 캐허접 연비를 대폭 개선하고 사통장비도 개량한 M47-M도 제안되었지만 이미 주 방위군에서도 M47이 씨가 마른 시점이라 미국은 채용하지 않고 파키스탄이 장비한 기존의 800대를 개수하는 선에서 그쳤다.

 

 

 

[M47 패튼전차는 전후 개발된 미군의 신형중전차로 큰 기대를 끌었고 성능도 어느정도 개선이 되었지만 최악의 연비로 인해 정작 미군에서는 1953~1959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만 사용되었다 그것도 대부분 이해병대에 배치되다 1959년 이를 개량한 전차인 M48과 M103 파이팅몬스터가 배치되면서 조기퇴역이라는 불명에를 안게 된다]

 

 

결국 문제점을 개선한 M48이 등장하자 미군에선 서둘러 퇴역시키고는 NATO와 아시아 등의 17개국에 뿌려버린 비운(?)의 전차... -_-

 

그래도 소련군의 기갑웨이브에 떨던 유럽국가들에게는 퍽 든든한 소방수 역할도 했고 엔진과 자동변속기가 유닛화된 선진적인 파워팩은 나중에 NATO의 신형 전차들(레오파르트1, AMX-30)이 따라할 정도였다. 또한 몇몇 국가는 도입한 M47의 엔진을 디젤로 교체하는 등의 개수를 가해 1990년대까지 사용했다.

 

 

 

[비록 개발국은 미군에서는 일찍 버림(?) 받았지만 연비외에는 별다른 단점이 없던 이 전차는 독일을 비롯 전세계 17개국에 수출되어 8천대 이상이 생산되었다. 사진은 서독군에 채용되어 사용되던 M47 패튼의 모습 포탑 앞 부분에 4X4 방식의 발연탄 발사기가 추가된것이 큰 차이점이다]

 

 

 

한국군은 1956년에 처음 1개 대대분을 인도받아 운용하기 시작, 1960년대 중반에 미군이 주한미군의 전차를 M48A2C로 대체하면서 이들이 이때까지 운용하던 잉여 M47[2]을 수령하여 총 531대를 수령, 그 전까지 운용하던 M4A3E8의 대체로서 군단 직할 전차대대의 주력 장비로 사용하였다. 이어진 M48의 도입 이후에도 계속 현역을 지켰고, 큰 개수를 받지도 않았다.

 

 

 

 

[특히 한국군 역시 1959년부터 M47을 도입하여 미군이 공여해주고 간 M4A3E8 과 M36 등을 대체하는 주요 기갑세력으로 사용되었으며 2006~2007년 퇴역시 까지 50년 가까이 운용하였다]

 

 

한국군의 운용 경험에 따르면 지속사격 정도의 발사속도이면 조준선 유지도 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엔진 마력에 여유가 있어 M48보다 진동과 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좋았다고 한다. 타고 모는 사람에겐 (전투실 내가 좁은) K-1보다도 편한 전차였다고.

 

 

 

[M47은 항속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산익지형이 많은 한반도에서 운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며 우수하고 간단한 조준장비로 인해 한국군에서 사랑받던 전차중 하나였다. 1980년대 팀스피리트 훈련중인 M47들의 모습]

 

 

2003년 하반기에도 몇몇 보병사단 산하 전차중대에서는 현역이었으며, 2006년경에야 모두 퇴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현재에도 해안포나 전방 고정포로는 계속 운용되고 있다.

 

 

 

[M47은 현재는 대부분이 퇴역하여 이처럼 전시용 차량으로 사용되거나 포는 떼어내 해안가에 해안포로 운용중이라고 한다]

 

 

 

미확인된 이야기에 따르면 M47 이후의 퇴역전차들은 전시 치장물자로서 폐기되지 않은 채 대부분 보관되고 있다고 하며, 100여대로 추정된다.

 

 

 

제원 

길이  8.51m

  3.51m

높이  3.35m

중량  46t

주포  90mm M36 32조 우선 강선(M12 광학식 거리측정기 탑재)

부무장  M2 12.7mm 기관총 1, M1919A4 7.62mm 기관총 2

장갑  13~104mm

마력 / 엔진  810마력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5B V12 공랭식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

변속기  앨리슨 CD-850-4 (전진 2, 후진 1)

속도 / 항속거리  48km/h / 130km

승무원  5 (전차장, 포수, 장전수, 조종수, 부조종수)

생산댓수  8,576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오스트리아군 M47 전차 운전병 출신이다.

 

 

 

     
     

 

[우리에게는 터미네이터등의 영화속 액션배우로 잘 알려진 아놀드수왈츠제네거 는 그의 고향 오스트리아에 한때 전차병으로 복무하였으며 그가 몬 전차가 바로 M47 전차였다. 사진은 성공한 이후 방문한 그의 고향에서 옛동료들과 추억에 젖으며 M47 전차를 모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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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47 MBT 개념 확립 이전에 개발된 전차라 현재는 중()전차라 분류되지만 미 육군이 50 11월에 포의 구경으로 전차를 분류한 적이 있었기에 "90mm포 전차 M47"라는 제식명이 붙게 된다. 이런 분류법은 MBT 개념의 도입으로 몇년 못가 폐지된다.

[2] 주한미군은 미군에서도 비교적 장비 개선이 늦는 편이어서, M47 1956년까지, M48A2C 1974년까지, M48A5 1980년대 후반까지 운용했다.

 

출처 엔하키미러 M-47 패튼편

 

M47 패튼전차( M46~M60 전차를 실질상으로 개량형 모델인 같은전차로 보기 때문에 모두 패튼전차이다) 는 성능상으로 외형적으로 2차대전중에 만들어진 퍼싱전차의 잔재를 모두 떨쳐버린 진정한 의미의 중()전차 (Medium Tank) 로 탄생한 전차였습니다.

 

[M47 패튼전차( M46~M60 전차를 실질상으로 개량형 모델인 같은전차로 보기 때문에 모두 패튼전차이다) 는 성능상으로 외형적으로 2차대전중에 만들어진 퍼싱전차의 잔재를 모두 떨쳐버린 진정한 의미의 중()전차 (Medium Tank) 로 탄생한 전차였다.]

 

M47 패튼전차에는 2차대전중 독일이 시도하였으나 기술부족으로 완성을 보지 못한 스테리오방식의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M47 패튼전차에는 2차대전중 독일이 시도하였으나 기술부족으로 완성을 보지 못한 스테리오방식의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가 최초로 양산되어 장착된 최초의 전차였다]

 

 

[M47 패튼전차 포탑에 장착된 스테레오방식의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의 모습 포탑 양옆에 뒤처럼 솟은 반구형 모습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이후 등장하는 M48/60 패튼전차에의 중요 외형적 포인트가 된다]

) 조준장비를 드디어 완성하여 대량생산하게 됨으로서 조준장비의 일대 혁명을 가져오게 됩니다.

 

 

[ 스테레오방식의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는 2차대전 당시 포발사를 위한 거리 측정장비로 사용된 장비중 하나이다]

이는 2차대전부터 사용되어온 포수의 숙련도와 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차의 조준장치인 단안식 목측식 조준경 대신 인체의 눈과 비슷한 두개의 조준장치를 통해 정확하게 거리를 측정하는 장비로 이는 2차대전말엽에 독일이 판터F형에 도입하려했던 신형조준장비중 하나였습니다.

[독일군이 사용하던 거리측정기 역시 원리는 같다]

M12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는 포수의 숙련도와 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2차 대전 전차에 주로 사용되던 목측식 조준경 보다 성능이 탁월했으며 두개의 렌즈 시차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거리를 측정하게 하는 방식으로 상당한 훈련과 경험으로 거리감을 익히는 기존의 조준장비보다 성능도 뛰어났지만 훈련받지않은 전차병도 쉽게 적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스테레오식 조준장치는 독일이 개발을 시작했지만 대전말엽의 복잡한 상황하에 완성을 보지 못했고 종전후 독일의 이 기술을 흡수한 미군이 완성하면서 이를 제식채용하여 대량 생산한 건 미국이 처음이였다. 원리는 두눈을 이용하는 인체의 거리측정 기술과 비슷하며(좌그림) 아래위의 그림이 딱 맞으면 정확한 거리가 측정되는 방식 (우그림) 으로 비교적 사용법이 간단하며 정확도가 뛰어났다] 

스테레오식 조준장치는 독일이 개발을 시작했지만 대전말엽의 복잡한 상황하에 완성을 보지 못했고 종전후 독일의 이 기술을 흡수한 미군이 완성하면서 이를 제식채용하여 대량 생산한 건 미국이 처음이였습니다.

 

[M26 퍼싱전차를 비롯 M47/48 씨리즈의 주포로 사용된 M3 90mm 포는 대공포로 설계된것을 대전차포로 개량한 것으로  53구경의 최대 사거리 약 17킬로 포구속도는 823 m/s 에 달하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로 독일군의 88밀리 포에 견줄만한 성능을 가진 포중 하나였다]

하지만 M12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는 M47전차의 최대 장점이자 최악의 단점이 됩니다.

일단 오랜훈련이 필요한 단안식 목측식조준경 보다 쉽게 적전차 조준이 가능했으며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여 원거리 타격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반면 제작에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이 장비로 인해 당시 기술로는 대량생산에 어려움이 있었으며

M47전차를 배치하여 운용해본 결과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 다름아닌 M12 조준기의 잦은 고장이 바로 그것이였습니다.

이는 사실 조준기 자체의 결함보다는 조준기를 포탑 전면에 배치한 설계상의 미스 탓으로 차량 가동시와 포사격시 생기는 진동으로 정밀 광학기기인 조준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켜 정확한 거리측정이 거의 불가능한 문제가 추후 운영결과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8,500여대나 찍어낸 터라 이를 수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였고 두고두고 M47 전차의 단점으로 남게 되지요..

 

 

[M12 영상합치식 광학 거리측정기는 M47전차의 최대 장점이자 최악의 단점이 됩니다. 일단 이 조준기는 초보자도 쉽게 사용이 가능해 숙련된 베테랑급의 조준실력을 보여줄수 있었지만 조준기를 포탑 전면에 배치한 설계상의 미스 탓으로 차량 가동시와 포사격시 생기는 진동으로 정밀 광학기기인 조준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켜 정확한 거리측정이 거의 불가능한 문제가 추후 운영결과 보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M47전차에 장착된 810마력급의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5B V12 공랭식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당시 기술로는 상당히 우수한 전차용 엔진이였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엄청난 연료소비율로 인해 항속거리 약 130km 라는 최악의 연비를 보여주어 돈많은 미국조차도 그 운용비에 치를 떨게하게한 최악의 연비를 자랑하는 전차였습니다. (사실 미군전차의 낮은연비는 비단 이 전차의 문제만은 아니였다… M1A1 전차의 가스터빈 엔진은 기름잡아먹는 전차의 대표적인 예이다)

 

 

[M47전차에 장착된 810마력급의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5B V12 공랭식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당시 기술로는 상당히 우수한 전차용 엔진이였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엄청난 연료소비율로 인해 항속거리 약 130km 라는 최악의 연비를 보여주어 돈많은 미국조차도 그 운용비에 치를 떨게하게한 최악의 연비를 자랑하는 전차였다. 사진은 운전미숙으로 강에 쳐박힌 M47전차를 견인하는 모습으로 M4셔먼을 개량한 전차회수차의 모습을 볼수 있는 재미난 사진이다]

 

M47전차는 미육군의 전차개발에 큰 교두보를 확보한 전차 입니다.

M4셔먼전차부터 M26퍼싱전차에 이르는 기존의 미군전차들이 중()전차 (Heavy Tank)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M47 부터 훗날 이전차의 개량형 모델인 M48/M60 까지 중()전차 (Medium Tank)로 분류하게 됩니다.

이는 기존의 무게로 따지던 전차의 분류법을 버리고 모든 전차를 같은급의 전차로 분류하는 주력전차 (MBT ;Main Battle Tank) 의 등장을 의미하게 됩니다.

어차피 당시 개발되던 전차들은 모두 무겁고 덩치도 커지는 터라 더 이상 무게로 전차의 등급을 메기는 것이 별의미가 없어진 이유이기도 했지요..

M471952년 늦게 개발이 완료되어 1953년부터 미해병대에 배치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문제점이 발견되고 이의 개량형 버전인 M48A1 PattonM103 파이팅몬스터 중전차(heavy tanks) 들이 배치되면서 1959년 모두 퇴역하게 됩니다.

하지만 M47 NATO와 그 주변국에 널리 수출되기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Austria) (147), 벨기에 (Belgium) (784), 에티오피아 (Ethiopia) (30), 프랑스 (856), 그리스 (300 plus over 30 from West Germany), 이란 (Iran) (around 400), 이탈리아 (2,480), 일본 (1 for eval‎uation only), 요르단 Jordan (49), 파키스탄 (Pakistan) (230),포르투갈(Portugal) (161), 사우디아라비아 (23 from the US, 108 on the international market), 소말리아 (Somalia) (25 from Saudi Arabia), 한국(531), Sudan (17 from Saudi Arabia), 스페인 (Spain) (389), 스위스(Switzerland )(2 for eval‎uation), 터키 (Turkey) (1,347 from the US and West Germany), 서독 (1,120)을 비롯해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319)에 까지 전세계 17개국 이상 8,576 대 이상이 생산되어 최근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M47 패튼전차는 전세계 17개국 이상 8,576 대 이상이 생산되어 최근까지 사용되고 있다.]

 

 

 

 

1952년 성능시험중인 M-47 Patton 중전차

 

1952 4월 미육군 Aberdeen Proving Ground에서 성능 시험중인 M-47 전차모습을 LIFE지에서 공개하였습니다,.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가 장착된 M47(좌) 과 그렇치 않은 M46 패튼전차의 명중률을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M47은 집탄성이 일정한데 반해 우측의 M46 은 편차가 큼을 알수 있다. 실제로 M12 영상합치식 (M12 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 를 장착한 M47은 초탄 명줄률이 75% 이상을 넘었으며 숙련된 포수라면 90% 가까운 명중률을 보이기도 했다]

 

 

1952년이면 한국전이 한창이던 시절로 60년대부터 한국군의 주력 전차로 운용됩니다.

 

 

 

[험지를 기동중인 M47의 모습으로 초기 M47 은 M46 의 차체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것이 재밌다 본격적인 양산형에 이르면 차체의 형상이 급경사를 이루는 형태로 다듬어지게 된다]

 

 

 

[M-47 Patton의 가장큰 특징중 하나인 신형 T119 90mm 포탑의 모습 디자인면으로도 폭이 좁아지고 경사각을 주면서 피탐지률 감소와 방호력이 증대되었으며 특히 M12 스테리오식 신형 조준기가 장착되면서 조준능력이 대폭증가되었다]

 

 

M-47 Patton은 미군의 2번째 Patton 전차로 2세대급 성능을 가졌으며 M36 90mm 주포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M4 Sherman M46 Patton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어 1951 ~ 1953년 사이에 8,676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곧이어 개발된 M48 M60으로 주력전차를 다시 교체하면서 생산된 M47들은 대부분 동맹국들에게 공여한다. 우리나라도 1959년에 육군에 463, 1963 ~ 1964년에 해병대용 68대 등 총 531대를 도입하여 기존에 보유중이던 M36을 퇴역시키고 M4 M47을 주력전차로 운용한다.

 

 

M47 전차는 M26·M46 전차로 이어지는 1940~50년대 미국의 주력 전차 계보를 계승하는 전차 중 하나다.

 

 

 

[M47 전차는 M26·M46 전차로 이어지는 1940~50년대 미국의 주력 전차 계보를 계승하는 전차 중 하나로 이후 이어지는 M48 과 M60 패튼전차의 기술적 토대를 완성한 전차로 패튼전차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높은 차체도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미군 전차는 거주성을 우선시 한탓에 유독 차체의 높이가 높았으며 이는 적 전차를 발견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반대로 적전차로 부터 탐지율이 높다는 단점도 되었다. 이런 문제점은 패튼전차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작용했으며 이런 문제점은 M1전차가 등장하고 나서야 겨우 다듬어 질수 있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주력으로 사용한 M4 셔먼 전차는 이미 당시에 독일·소련 전차에 비해 성능상 열세였다. 기갑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이 새롭게 개발한 전차가 M26 퍼싱 전차지만 제대로 운용해 보지도 못하고 세계대전이 끝나고 말았다.

 

 

[M47전차에 장착된 810마력급의 컨티넨탈 모터스 AVDS-1790-5B V12 공랭식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은 당시 기술로는 상당히 우수한 전차용 엔진이였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엄청난 연료소비율로 인해 항속거리 약 130km 라는 최악의 연비를 보여주어 돈많은 미국조차도 그 운용비에 치를 떨게하게한 최악의 연비를 자랑하는 전차였다.하지만 가솔린 엔진 특유의 급가동과 급발진에는 매우 유리했으며 동절기에 시동걸림도 디젤엔진에 비해서는 확실하게 나은 부분도 있었다]

 

 

전후 미국은 M26 전차로도 기갑전력의 우세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 개량형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 M26 전차의 엔진부를 개량한 M46 전차를 개발했다. M46 전차는 6·25전쟁에 투입돼 공산군 측의 T-35·85 전차를 상대하는데 크게 공헌했지만 단기간에 급조된 전차로 전체적인 성능상의 부조화가 많았다. 이에 M46 전차의 차체와 포탑의 형태를 바꾸고 전면 장갑의 경사각을 높인 개량형을 다시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52년에 개발이 완료된 M47 전차다.

 

 

M47 전차도 여러 가지 성능상의 문제점이 지적돼 새롭게 신형 M48 전차 개발을 시작했지만 M48 전차의 개발 진전을 기다리지 않고 M47 전차 생산을 강행했다. 디트로이트(Detroit) 전차 공장과 아메리카 로코모티브(Locomotive)사는 52~53년 짧은 기간 동안 무려 8,676대의 M47 전차를 생산했다.

 

 

[몇몇의 문제점이 있기는 했지만 M47패튼전차는 기술적으로나 성능적으로 매우 잘 다듬어진 전차중 하나였다. 비록 개발국인 미군에서는 6년에 불과한 기간에만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17개국에 8천여대가 넘는 수량이 생산되어 최근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M48 전차 생산이 시작된 후 M47 전차는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대만 등 미국의 17개 동맹국에 제공됐다.

 

한국은 59 M47 전차 463대를 도입하고 63~64 68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우리 군에서는 육군·해병대가 M47 전차를 운용했으며 현재 상당수가 퇴역한 상태지만 일부 부대에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한국은 59 M47 전차 463대를 도입하고 63~64 68대를 추가로 도입했다. 우리 군에서는 육군·해병대가 M47 전차를 운용했으며 현재 상당수가 퇴역한 상태지만 일부 부대에 여전히 남아 있다.]

 

미 육군 당국은 M47 전차에 그렇게 만족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많은 전차였다. 특히 M47 전차는 그 이전의 미군 전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정확한 사격을 위해서는 사거리 측정이 필수적이지만 초기의 전차들은 단순히 눈으로 거리를 측정했기에 포수의 숙련도에 따라 명중률의 편차가 컸다.

 

 

하지만 M47 전차는 M12 입체식 거리측정기(stereoscopic ballistic computing range finder)를 장착, 비교적 정확한 거리 측정이 가능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판터 F 전차에도 이와 유사한 거리측정기가 장착된 사례가 있으나 대량 양산된 전차 중에서 거리측정기가 장착된 것은 M47 전차가 처음이다.

 

 

보통 전차가 차내에 전차 포탄 30~50발을 탑재하는데 비해 M47 전차는 71발을 탑재할 수 있는 것도 무시 못할 장점이다. M47 전차에 탑재된 가솔린 공냉식 엔진 AV-1790은 신뢰성이 높아 고장이 잘 발생하지 않는 것도 호평받았다. 이런 여러 가지 장점 때문에 무려 50여 년 동안이나 M47 전차가 일선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방일보 김병륜기자 2004.05.18)

 

미국이 M-47 전차를 조기에 퇴역시킨 것은 연비 문제가 컸다. 878리터의 가솔린으로 130km밖에 주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전차를 실전에 투입한 적은 없으며, 터키가 1974년 키프로스 침공 당시 사용했고, 6일 전쟁 중에는 요르단,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에 파키스탄,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이란이 사용했으며, 크로아티아도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벌이며 실전 투입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주로 동부전선의 산악지대에서 보병 지원 및 이동 포대 정도로 사용하였으며 2006년 말 ~ 2007년 사이에 대부분 퇴역했고, 100여대가 예비물자로 보관되어 있다.

 

 

 

 

[1980년대 팀스피릿 훈련시 위장을 하고 이동중인 M47 전차의 모습 M47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공여해준 M4 셔먼전차과 M36 전차를 대체하여 한국 기갑세력을 새롭게 구축해준 전차로 2006~2007년 퇴역할때까지 한국군의 주력전차로 오랫동안 이용되었다] 

 

 

이 치장물자는 국회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국방부가 2005년 국회 국방위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육군은 매년야전정비 160억원창정비 32억원외주정비 1691억원해외정비 128억원수리부속 3500억원 등 5531억원가량을 장비유지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 중 도입된 지 50년이 넘는 노후장비를 유지하는 데 1170억원을 쓰는 탓에 신형 장비를 제때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육군이 6·25 전쟁 이후 미군으로부터 무상지원받아 사용 중인 105㎜ 곡사포와 M-47, M-48계열 전차 등 총 4,445대의 각종 노후장비를 보유하고, 이를 관리하는 부대를 없애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50년 이상된 노후장비 유지에 매달리지 말고 과감히 도태시켜 신형장비 관리에 힘쓸 것을 요청받기도 하였다. (2008 12월 말 현재 상황은 알 수 없습니다)

 

 

 

생산회사 : Detroit Arsenal Tank Plant, American Locomotive Co.

생산시기: 1951~1953

생산수량: 8676

 

제원

전투중량 46 tonnes (50.7 short tons)

길이 27 ft 11 in (8.51 m)

전폭 11 ft 6.25 in (3.51 m)

전고 11 ft (3.35 m)

승무원 5 (commander, gunner, loader, driver, assistant driver)

장갑두께 4 in (100 mm)

주무장 90 mm 주포 M36, 적재탄수 71

부무장 0.5 in (12.7 mm) M2 기관총, 2 × 7.62 mm 기관총

엔진 Continental AVDS-1790-5B V12, 공냉, 트윈터보챠지 가솔린엔진.

출력 810 hp (600 kW)

Power/weight 17.6 hp/tonne

변속기 General Motors CD-850-4, 2 ranges forward, 1 reverse

현가장치 Torsion bar

연료용량 231.94 gallons (878 liters)

행동거리 81 mi (130 km)

최대속도 30 mph (48 km/h)

 

 

M47 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전투에 투입하지는 않았지만 터키가 1974년 키프로스 침공 당시 사용했고, 6일 전쟁 중에는 요르단,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중에 파키스탄,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이란이 사용했으며, 크로아티아도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벌이며 실전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M47 전차는 최근까지도 분쟁지역에서 사용중이다. 사진은 걸프전에서 노획된 이라크군의 M47 전차의 모습으로 아마 이란=이라크전에서 이란군의 전차를 노획해 사용중이였던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에게는 196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하여 한국전쟁이후 미국이 공여해준 M4A3E8 셔먼 전차를 대체하는 주력전차로 2006~2007년 퇴역할때까지 50년 가까이 동부지역의 주력전차로 사용되어오기도 했습니다.

 

 

[한국군에게 있어 M47전차는 1960년대초부터 500여대가 넘는 M47전차를 도입해 2007년까지 50년 가까이 사용해온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군의 M47 전차의 도입

 

 

 

 

 

 

[전차샹륙함에서 상륙훈련중인 한국 해병대 소속의 M47의 모습 한국군은 한국전이 끝난 후 미군의 원조한 M36 구축전차에 이어 1957 M4A3 Sherman 전차 480대를 도입하고, 이듬해 추가로 15대를 도입하여 전차부대가 창설된다. 1959년에는 한 ·미간 추진된 신형장비 교체계획에 따라 1963년까지 M-46 전차의 개량형인 M-47 Patton 전차 215대를 도입하면서 북한과 본격적인 대결이 가능한 전차를 운용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이 끝난 후 미군의 원조한 M36 구축전차에 이어 1957 M4A3 Sherman 전차 480대를 도입하고, 이듬해 추가로 15대를 도입하여 전차부대가 창설됩니다.

 

 

 

1959년에는 한 ·미간 추진된 신형장비 교체계획에 따라 1963년까지 M-46 전차의 개량형인 M-47 Patton 전차 215대를 도입하면서 북한과 본격적인 대결이 가능한 전차를 운용하기 시작합니다.

 

 

 

[M47은 1960~80년대 북한군에 비해 열세엿던 한국군의 전차세력을 유지하던 소중한 장비중 하나였다. 사진은 1980년대 팀스피릿 훈련중 사진으로 볏짚으로 꼼꼼하게 위장한 (M12조준경만 내놓은) 상태가 참 인상적인 사진중 하나이다]

 

 

또한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을 계기로 `브라운 각서'에 의해 1966 7 2개 기갑여단과 1개 전차대대 창설을 위한 M-48 전차를 새로 도입함으로써 전차 전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됩니다. 이어 1969년에는 주한 미군이 운용하던 M-48A2C 전차를 인수하여 전차 전력을 보강합니다.

 

 

 

 

 

[M47 전차와 같이 훈련중인 한국군의 모습으로 베낭에 M72 LAW 를 달고 있는 모습이 재밌다. M72 LAW 는 미군은 퇴역시킨지 오래지만 현재까지 한국군은 대량으로 장비하고 있는 1회용 로켓발사기로 사용후 버리는 장비중 하나다. 베트남전에서 M72 의 성능에 감격한 한국군은 대량의 M72를 도입하였으며 미군이 이 장비를 퇴역시키자 이 물자분까지 공여받아 현재도 수천발 이상을 장비중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역시 1980년대 팀스피핏 훈련중 사진으로 M48 에 장착된것과 같은 제논 라이트가 포탑 앞 부분에 장착된것이 인상적으로 일부 M47의 경우 M48 전차와 비슷한 상태로 개량이 되기도 하였다]

 

 

M47은 대부분이 퇴역하였지만 현재에도 동해안에는 적의 상륙을 저지하는 토치카 용도로 읿가 사용되고 있을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전차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M47의 주요임무는 해상으로 통해 침투하는 북한군의 상륙을 저지하는 임무가 부여되었으며 이를 위해 수시로 해안포격 훈련을 해왔다. 이후 일부는 해안포 (중간 사진) 의 역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이처럼 기념물로 남기도 하였다 (아래)]

 

 

[임무를 다한 노장의 휴식... 2006~2007년 한국군은 더이상 M47의 운용을 하지 않고 대부분 퇴역시켰으며 그 자리는 M48KA3 등이 맡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M47은 전차사격의 타켓역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치기도 하였다..]

 

 

이어 PT2 에서는 M48 패튼전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용량관계로 PT2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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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wyvern(장세종) | 작성시간 11.03.15 관심있는 전차라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미라지님도 대단하지만 태경님의 지식도 대단하네요. 오류가 있다면 수정하고 더더욱 정확하고 영양가 있는 정보가 되길 바래봅니다.
  • 작성자레이(정호경) | 작성시간 11.03.15 어렸을적 에이브람스를 처음으로 킷으로 만나기전.. 엠48은 저에게 가장 강력한 전차로 알고 있었죠.. 지금도 그때 그 기억이 있어서 엠60계열은 정말 다 좋아합니다..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 작성자jhkimrad(김진형) | 작성시간 11.03.15 패튼의 등자배경과 타 전차들의 역사를 한눈에 알수 있는 아주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모델러에겐 이런 배경지식도 있어야 해당 모델에 대한 애정과 혼을 불어 넣을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작성자선박왕[김영호] | 작성시간 11.03.17 혹시 마지막 부분의 팀스프리트 훈련 사진은 한국 해병대 M-47과 행군중인 주한미군이 아닌가요? 얼핏보면 해병대 전차승무원이 행군중인 미군을 불쌍히 처다보는 모습같아서요...이거 사람들의 앞모습은 안보이고 뒷모습만 보이니깐 당췌 미군인지 한국군인지 구분이 안되네요...
  • 답댓글 작성자mirageknight [왕성국]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3.17 m47 맞는데요~~ M48 에 장착된 것과 같은 라이트가 장착된 M47 이라고요`~ 군인들은 한국군 입니다. 저당시면 미군들 다 우드랜드 입고 있었거든요.. 빨간띠 맨거 보니 한국군 해병대원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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