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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 <베짱이>와 <베로니카>

작성자김세진|작성시간26.06.14|조회수77 목록 댓글 3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8)을 읽었습니다.

단편이라 오가는 기차나 지하철 안에서 읽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한 번 읽어서는 그 뜻을 짐직하기 어려웠습니다.

밀린 책이 많아 다시 읽기도 그렇고...

그렇게 겨우 읽어냈고, 책은 다시 책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책을 읽느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메모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문득문득, 그때 읽은 내용이 떠오르더라고요.

 

오늘이 그랬습니다.

집 근처에 카페가 하나 생겼습니다.

문 앞에서 카페 입구까지, 걸어서 가면 5분이면 도착합니다.

아내와 아침 일찍, 카페 문 열자마자 첫 손님으로 찾아갔습니다.

커피 마시며 책 좀 뒤적이다 일상을 나누는 순간,

며칠 전 읽었던 체홉 단편 <베짱이>와 <베로니카>가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 모두 눈앞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전혀 모르다가,

영원히 잃어버리고 나서야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베짱이> 여주인공 올가 이바노브나는 화려하고 예술적인 삶을 동경합니다.

늘 무언가 '특별하고 위대한 것'만을 쫓아다니느라 분주합니다.

정작 곁에서 묵묵히 자신을 사랑해 주고, 의사로서 자기 일에 충실하고 근실한 남편 드이모프를 

'지루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며 소홀히 대합니다.

남편을 떠나 특별해 보이는 화가들을 쫓아다니면서도, 금세 실증내고 또 다른 예술인과 그런 문화는 간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되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남편 곁에서 올가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위대하고 특별한 인간'이 바로 늘 곁에 있던 남편 드이모프였음을.

드이모프가 채워주던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은 늘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공기와 같았던 겁니다.

 

<베로치카>의 이반 알렉세이치도 '차가운 이성과 관성'에 갇혀 눈앞의 사랑을 놓쳤버렸습니다.

베로치카의 고백 앞에 자기감정을 말하기보다 자꾸 분석하려고만 했습니다.

인공지능처럼 당사자를 분석하려고만 했고, 완벽하게 설계했던 미래를 어떻게 수정할지 난감해했던 겁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순간, 베로치카는 돌아서 떠나갔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주인공 '두목'처럼, 자기감정이나 욕구를 그 즉시 말하지 못해 일을 그르쳤고,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올가와 이반, 두 사람 모두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문득 체홉(체호프)의 경고가 떠오르자, 의자를 아내 쪽으로 더욱 가깝게 붙였습니다.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욱 다정하게 말하고 열심히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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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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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진실 | 작성시간 26.06.15 와~ 선생님, 정말 멋진 후기입니다.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또 하나 찾았네요.

    읽을 때는 미처 다 소화되지 않았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 불쑥 떠올라 내 삶과 맞닿아 있음을 느낄 때,
    그 책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덕분에 궁금한 책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세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비싼 물건, 해외 여행, 고급 음식 몰라도
    일상이 여행이고 소박하게 가족과 먹는 식사가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진리를 자꾸 잊으니
    체홉 같은 작가도 이런 단편을 쎴겠지요.

    시설 사회사업가 진실 선생님도 당사자를 도울 때,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닌 소박한 일상 속에서 자기 삶을 살고 둘레 사람과 어울리게 도우려 하지요.
    인공지능 시대, 더욱 단순하고 단정하면서 단단한 실천을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세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5 체홉과 같은 시절에 나온 19세기 러시아 고전들은,
    삶의 끝자락에 놓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뤄요.
    당시 생활이 무척 힘들었잖아요.
    극단에 놓였을 때,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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