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지명을 밝히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아시아=조선 패러다임에서 지구전반구를 조선으로 추적중에 있다. 대서양이 있는 유럽쪽이 서역이라는 사실은 유럽이 갈 곳이 없다. 아프리카는 조선의 강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연암집>의 '과농소초'에 조선의 서남쪽은 아득히 멀고먼 넓은 지역[曠遠]이라고 했다. 결코 한반도를 두고 이런 말이 통할 까닭이 없다. 서남쪽이라면 옛날의 백제이다.
그 백제에서는 <삼국사기>에 일식현상이 있지 않던가?
위덕왕 때의 일이다. 위덕왕 39년 7월 그믐, 양력 592년 9월 11일에 일식이 있었다. 이날의 일식도 한국천문연구원의『삼국시대 일식도』의 풀이에서는 어김없이 “식 없음”이라고 했지만, 계산에 의한 일식에도『삼국사기』「백제본기」에 있는 것과 같이 분명 일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식 현상은 매우 특이하다. 왜냐하면 남아메리카에서나 볼 수 있는 일식이며, 그것도 아프리카에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나 겨우 0.1의 확률로 볼 수 있는 짧은 일식이기 때문이다.
이 일식에 대해 남아메리카를 두고 백제라고는 할 수 없으며, 백제가 보았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아프리카 자체가 백제였다는 말이며, 그 아프리카에서도 그 남부 지역에서만 보였던 일식을 백제의 위덕왕이 아시아, 그것도 극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있으면서 어떻게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위덕왕이 보았던 559년 6월 21일의 일식 현상에 대해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오기”라고 풀이한 것은 왜곡된 력사에 이은 또 하나의 왜곡이고, 잘못된 분석이며, 592년 9월 11일의 일식도 ‘식 없음’이란 해석으로서 그 일식을 백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보았던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므로, 조선 강역의 개념을 전연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곧 백제 북쪽의 소해小海는 지중해이고, 그 남쪽에 백제, 그 북쪽에 고구려가 있었으며,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 또한 그곳이었던 것이다. ‘조선은 한대 온대 열대를 아우르는 나라였다’는 헝가리 민속학자 버라토시 벌로그 베네데크의 증언 가운데서 이 부분만큼은 참으로 실감난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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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호근 작성시간 13.11.13 지중해 위쪽에 있었던 고구려는 분명히 러시아 영토일겁니다 그곳에는 러시아계통의 그루지아인들이 살고있었죠.
그럼에도 한반도에 살고있는 라후족의 후손들을 조선의 적자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
작성자유현동 작성시간 13.11.21 남아메리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식기록이라면 백제가 남아메리카에 걸쳐있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까요? 조선의강역을 새롭게 조명한다고 하면서 지구 전반부에만 국한하지 말고 북 중 남미 전체를 새롭게 보아야 남북 5만리 강역도 이해되고 북아메리카 서해안의 한국귀신고래, 푸른발 얼가니새, 사다새, 북방물개의 해구신, 향유고래, 라마의 기록등이 사료에 나오는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래전부터 그리고 어느시기까지 북아메리카에도 고려, 조선이 있었기에 대방의 동남쪽 대해(멕시코해,카리브해등)에 왜구들과 일본이 해적질하였다는 사료가 이해되지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지만 연구검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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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두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03 좋은 생각이라 봅니다. 진실을 연구한다면서 또 한번의 범위의 제한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식을 연구하다보면 그 한계는 분명이 있다고 봅니다. 일식이 지구반대편에 있다는 말이나, 일식이 땅밑에 있다는 말의 그 일식대는 아메리카 쪽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는 조선의 강역에서 제외시켜보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 지역도 포함될 수 있다면 그럴만한 까닭이나,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