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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경제, 아직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마음의 목록... 친절한 사회사업가?

작성자이주상|작성시간08.12.03|조회수116 목록 댓글 6

얼마 전, 김세진 선생님과 다녀온 나눔문화 100회 기념포럼,

그리고 오늘 도착한 나눔문화 소식지 '나누는 사람들'에 실린

100회 포럼 기념 박노해 시인의 강연 초록 중 에서

사회사업가 들으라고 하는 것 같은 부분이 있어

발췌해 제 마음에 담아둘까 합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화폐 통계에 잡히는 것만이 경제의 전부인양

3만 달러 '선진화'와 '성장제일'에 목숨을 겁니다.

 

하지만 더 크고 중요하며 실질적인 '삶의 경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급자립의 경제'와 '사랑의 경제', 그리고

'너그러운 대자연의 경제'입니다.

 

돈으로 주고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자급자립의 생산노동과

돌봄, 나눔, 보살핌, 상부상조의 무보수 노동 (중략)

 

→ 관계와 선의로부터 비롯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GN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가정주부와 살림하는 남편, 할아버지 할머니를

'무직이며 경제활동이 없는' 집단으로 여깁니다.

 

1995년 유엔의 인간개발 보고서에 의하면

무보수 노동은 16조 다러로 전 세계 생산량의 3분의 2에 달하지만

세계경제통계는 이를 제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요.

 

→ 사회복지는 기존에 돈으로 살 수 없던 것들을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앞서서 시장화(Voucher, 노인장기요양보험...)하고 있진 않는지요...

 

사람의 선의를 서비스 상품화 하는데 앞장서는 것은 아닌가 염려됩니다.

 


 

이렇듯 돈으로 주고 받지 않고 그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보살핌, 돌봄, 나눔, 상부상조의 '이웃 관계'가

사회복지 서비스로 재편되는 지금,

 

녹색평론 99호(2008년 3,4월호)에 실린

'아직 포섭되지 않은 마음의 목록'의 내용과 맞물려 또 다른 함의를 줍니다.

 


 

(중략) 요즘 나를 사로잡고 있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아직 돈에 포섭되지 않은 마음의 목록'이다.

 

아직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나포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친절과 배려 같은, 타자에 대한 마음 씀씀이일 것이다.

 

→ 비록 장기요양보험처럼 '사랑의 경제' 부분이 시장에 들어왔다 한들, 아직 남은 마음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중략)

 

친절과 배려가 진정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경제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목이나 축이시라고

사과나무 하나를 내놓는 마음은 친절이 아니라 배려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의 인사는 친절이 아니다.

경제논리다.

친절에 경제논리가 개입하는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는 변질된다.

 

→ 한덕연 선생님 말씀처럼

사회사업가가 (업으로)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

보통의 대인관계가 아니라

불평등하기 쉬운 소위 '특정 경제 종사자(소위 전문가) 대 대상자'로 만나게 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재가 하에

그 사람들을 돕는 일로서 돈을 받는 사회사업가.

 

어쩌면 사회사업가의 시작부터 '경제'관념이 들어가는 바람에

사회사업가는 버는 사람, 대상자는 받는 사람이란 식의

불평등한 관계가 생기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또한 사회사업가의 '친절함'에도 경제논리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사자들이 사회사업가에게 가끔 하는 말인

"누가 누굴 먹여 살리는데..."라는 항변에서

이미 사회사업가로 사는 사람은 

경제논리가 들어간 친절에 포섭되진 않았는지 염려합니다.

 

 

기계적인 인사말이 오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되고,

승객은 그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가 되어버린다.

친절은 경제논리에 포섭되고 말았다.

 

→ 기계적인 어르신 안부전화, 인사말, 서비스...

안부전화와 인사는 단지 사람된 도리로 마땅히 해왔던 것인데

그 것조차 하나의 사회복지 서비스가 되어버린 것이 지금인데,

 

만약 앞으로 당사자의 평가, 만족도 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 진정성으로부터 우러나온 친절함조차

이미 상품으로서 등급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 마음부터 가다듬습니다.

 

(중략)

 

우리가 소비자, 고객이 되는 사이,

친절은 기업과 상점의 서비스 메뉴얼로 빨려 들어가

제복을 입고 방긋방긋 웃고 있다.

 

친절은 (경제논리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즉 공동체의 윤활유가 아니다.

 

그렇다면 배려는?

배려는 아직 남아있다.

친절이 공적 영역에서, 수평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면

배려는 상대적으로 사적영역에서 수직적으로, 그리고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친절한 아버지는 이상하다.

(중략) 아버지는 자녀를 배려해야한다. (중략)

 

친절을 빼앗겼지만, 배려는 아직 남아있다.

물론 곳곳에서 배려가 시혜나 은전으로 왜곡되고 있기는 하지만.

 

→ 누구를 칭하는 이야기인지 거듭 생각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쓰라린 지적으로 들리는...

 

 

(중략)

 

산업문명이 친절을 빼앗아갔다.

친절이 경제논리의 서비스 차원으로 변질되었다.

 

우리가 배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낱처럼 남아있는 배려를 살려내야 한다.

 

→ 약자와 지역사회의 관계 속에서

배려가 살아 숨쉬는 관계를 다시금 생동시켜야 한다고

사회사업가에게 소리치는 듯 합니다.

 

 

배려가 친절보다 더 아름답거나 그 효과가 강력해서가 아니다.

친절과 배려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상호보완적인 마음 씀씀이기 때문이다.

배려하는 마음씨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윤리적 주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를 기대할 수 없다.

 

친절은 공적 영역에서의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작은 배려가 친절이다.

그리고 보다 깊은 친절이 배려이다.

 

그런데 친절은 소멸되었고, 배려는 공적영역으로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친절과 배려를 연결하는 선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다.

배려를 키우고 나누지 않으면 친절은 영원히 복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적영역에서 친절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배려는 사적 영역 깊숙이 파고 들어가,

가족이나 집단 이기주의, 기득권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 경제논리에 이미 포섭된 사랑의 경제 중 '친절'...

돌이키기 힘들다면 경제논리에 그나마 덜 포섭된 '배려'부터 살리는 일,

그렇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의 관계'가 풍성해지도록 공작하는 일이

사회사업가에게 남아있다 여겨집니다.

 

작은 일,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으로부터 출발해서

공생성을 살려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 파편화될지도 모르는 사회와 개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배려가 살아있는 관계,

당사자의 인격이 흠집나지 않고 살아있는 관계를 지향한다면

사회사업가의 할 일은 보다 분명해지지 않을까요.

 

공생성, 그것에 집중해야겠지요.

 

그렇지 않고

이대로 서비스, 시장화 하는 것에 앞장선다면

배려와 친절은

사회복지 서비스 상품의 하나의 평가 항목 또는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람 사이 자연스러운 이웃 관계에서 비롯하는 배려와 친절마저 온전히 시장화된다면

특히 기존 관계가 빈약하거나 깨지기 쉬운 약자들은

그 과정에서 더욱 빨리 소외(시장화)되진 않을런지...

 

그리고 자연스러운 배려와 친절이

경쟁시장 내에서 서비스의 평가항목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사회사업가는 마치 A/S 기사님들처럼

당사자의 만족도 평가에 벌벌 떨거나 스트레스 받게 되진 않을런지...

결국, 자승자박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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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이주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03 한덕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남을 살림으로써 나도 살리는 '살림살이'가 생각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 작성자한덕연 | 작성시간 08.12.03 사회사업 자체는 경제에 포섭(?)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사업가가 주선하는 것, 즉 사람 사이에 사람들의 관계와 살림살이 속에 흐르는 "배려, 도움, 나눔"은 경제에 편입될 수 없고 자본에 포섭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사업가는 돈을 받는 직업인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약자를 배려하고 돕고 나누도록, 그렇게 살리며 살도록 주선하고 거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이 일이 우리의 직업입니다. 우리의 직업 자체는 시장에 편입되어 있고 또한 자본에 포섭되어 있는 것, 맞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써 소통되는 배려.도움.나눔은 그렇지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이주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2.03 자본에 포섭될지도 모르는 '순수한 배려,도움,나눔'을 지키고 생동시켜 사람들 삶 속에 자연스레 녹여내는 일. 그 일을 곧 할 사람으로 가슴이 뜁니다.
  • 작성자한덕연 | 작성시간 08.12.03 귀한 글, 고맙습니다.
  • 작성자윤재호 | 작성시간 08.12.03 "'배려, 도움, 나눔'은 경제에 편입될 수 없고 자본에 포섭될 수 없는 것입니다","우리의 직업 자체는 시장에 편입되어 있고 또한 자본에 포섭되어 있는 것, 맞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써 소통되는 배려.도움.나눔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체+개체가 아닌, 보이지 않는 기로 연결되어 있는 동양적 사고방식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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