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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한국철학(13) - 처용가 읽기

작성자촌사람(이동민)|작성시간26.06.12|조회수22 목록 댓글 2

     처용가를 ㅏ한국 사상으로 읽기

 처용가를 국문학에서 다룬다. 국문학에서 다루는 읽기와 우리의 민족 사상으로서의 처용가 읽기는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민족 사상의 입장에서 글을 써본다.(나는 평범한 일반 독자임으로 반대 평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펼쳐보는 것이 공부가 아닐까요.)

 

 내가 학교에 다닐 때(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처용가 읽기를 배웠다. 국문학지이신 양주동 선생이 이두문 읽기로 풀어낸 것을 배웠다. 내용은 달 박은 밤에 술을 한 잔 하느라 밤 늦게 집에 오니 아내가 외간 남자와 누워 있더라. 그래서 내가 자리를 비켜준다는--- 조금은 황당한 내용으로 설명해주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누어있는대, 자리를 비켜주어?’ 어린 나이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 후로는 고명하신 교수님도 양주동의 주장을 따르는 글을 쓴 것을 읽었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 내가 무속에 관심을 가지고 이책, 저책을 뒤지다 보니, 무당의 하는 일에는 질병 치료는 아주 중요한 업무였다. 그래서 무의(巫醫)라고 한단다. 아하, 그렇다면 처용은 아내가 병이 들자(역신이 침범하자) 역신아 물러나라는 무가(巫歌)를 불렀으리라, 그 무가가 바로 처용가 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처용가는 주술적인 주문이었는지 모른다.

 질병을 앓을 때 지금도 많은 하층민이 무속적인 방법을 사용해본다. 그러나 얘존애눈 몸과 마음을 바쳐 의존하였을 것이다. 많은 한국민이 무속적인 방법을 생활 철학으로 믿고, 삶의 방식을 의존한다면, 이것이야말라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인 사상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처용가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에도 많이 응용하여서, 고려가사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처용 무가는, 처용 신화는 통시성을 지닌 한국인의 가장 두터운 사상이 날까.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용은 동해 용왕의 아들이다. 태생부터 신이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무당이다. 신라시대의 헌강왕 때 왕실에서 남산 신을 달래려 굿 마당을 벌린 기록으로 보아, 무속 신앙이 하층민에게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실까지도, 말하자면 신라 백성 전부가 위존하였던 신아이다. 고대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력(불교보다)을 행사하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갓바위에 가면 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등, 모속적인 행위가 보인다. 아직도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머물고 있는 사상인 것이다.

처용가는 처용의 하늘같이 넓은 심성을, 더 나아가서 신라인의 폭 넓은 심성을 나타내는 문학작품이 아니고, 신라 백서의 삶과 직결된 사상체계로서의 무가이다.

 

 지금도 처용의 사상은 한국인의 마음 속에 머물고 있다. 새해가 오면 벽사의 표현으로 대문에 붙이는 무서운 얼굴, 즉 처용이 우리 생활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버리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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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야웅 | 작성시간 26.06.12 처용가는 단순한 무속의 춤과 노래가 아니라...
    신라인들 즉 우리 민족이 지닌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처용가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무한한 인내와 용서와 사랑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
  • 작성자栢松 | 작성시간 26.06.13 질병을 앓을 때 지금도 많은 하층민이 무속적인 방법을 사용해본다. 많은 한국민이 무속적인 축귀의식 방법을 생활 철학으로 믿고, 삶의 방식을 의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인 사상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처용가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에도 많이 응용하여서, 고려가사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처용 무가는, 처용 신화는 통시성을 지닌 한국인의 가장 두터운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용은 동해 용왕의 아들이다. 태생부터 신이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무당이다. 신라시대의 헌강왕 때 왕실에서 남산 신을 달래려 굿 마당을 벌린 기록으로 보아, 무속 신앙이 하층민에게만 퍼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실까지도, 말하자면 신라 백성 전부가 위존하였던 신이다. 고대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력(불교보다)을 행사하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갓바위에 가면 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등, 모속적인 행위가 보인다. 아직도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머물고 있는 사상인 것이다.
    처용가는 처용의 하늘같이 넓은 심성을, 신라 백서의 삶과 직결된 사상체계로서의 무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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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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