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學이 들어오다
신라시대에 儒學이 들어 온 것은 분명하다. 500년 경에 만든 시라 비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漢字로 쓰여진 비석들이다.(진흥왕 순수비를 비롯하여 ---)
漢字의 용도를 보면 文字로, 漢文學으로 그리고 儒學으로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보면 비석의 한문은 문자의 용도라 하더라도 유학도 들어왔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신라가 인재 등용을 위해서 국립교육기관인 國學을 설치하였다.(682) 교육기관이니 만큼, 틀림없이 유학도 공부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또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788) ‘논어와 효경’을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이대의 신라에 儒學이 들어와서 공부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라의 조정에서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등, 한문을 전문으로 알아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또 그런 한학자들이 분명히 있었다. 대표적인 학자로 설총과 강수를 꼬는다. 강수가 한 말을 옮겨보자. ‘불교는 속세를 벗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유학의 도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우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가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강수의 말은 신라시대에 유학의 필요성을 표현한 가장 적절한 망리 아닐까.
설총이 경전 해설서로 구경(九經)을 썼다고 하나 전해오지 않는다. 그의 작품(문학)으로 유일하게 전해오는 화왕꼐(花王戒) 유학의 실천적 덕치주의를 우화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신라 말이 되면 당나라에 가서 유학을 공부하고 온 유학자들(특히 숙위 학생들로, 이들은 대부분이 육두품이었다.)은 당시의 지배자들인 진골 계통의 사람들과 신분적 차별주의에 갈등을 겪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이 신라 조정을 떠나 지방 호족에게로 갔다고 한다. 이 사실은 그들이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원하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라에서 고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발해의 유학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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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栢松 작성시간 04:31 new
한국철학-유학이 들어오다
신라500년경에 만든 신라 비석이 여러곳에서 발견된다.한자로 쓰여진 비석들이다(진흥왕순수비 등).
신라가 인재 등용을 위해서 국립교육기관인 國學을 설치하였다.(682)또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여(788) ‘논어와 효경’을 공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이대의 신라에 儒學이 들어와서 공부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라의 조정에서는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등, 한문을 전문으로 알아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학자로 설총과 강수를꼽는다. 강수가 한 말은 ‘불교는 속세를 벗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유학의 도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우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가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강수의 말은 신라시대에 유학의 필요성을 표현한 가장 적절한 말이다.
설총이 그의 작품으로 유일하게 전해오는 화왕꼐(花王戒) 유학의 실천적 덕치주의를 우화 형식으로 표현했다.신라 말이 되면 당나라에서 儒學을 공부하고 온 유학자들(특히 숙위 학생들로, 이들 대부분이 육두품이었고 신분적차별주의)이 갈등을 겼었다.많은 사람이 신라 조정을 떠나 지방호족에게 갔다.결과적으로 고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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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
작성자촌사람(이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47 new
유학이야말로 조선 사람을 가장 많이, 강력하게 내려진 사상이 아닐까요. 삶의 지침서가 아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