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의 유학자들
고려말의 유학자들 중에서 고려말 – 조선 초에 활동한 학자들을 통칭하여 ‘초기 성리학자’라고 말한다. 그개 어떤 성리학인지를 딱 부러지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로 정도전-권근 등을 꼽는다. 그 분들 외에는 정몽주 정도이고, 길재도 꼽을 수 있겠다. 정몽주는 학문적 성과보다는 도학적 실천가이다
정도전-권근은 유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학자형 유학자이고
정몽주-길재는 학문 연구보다는 유가 사상을 몸으로 실천하기를 강조했다.
재미있는 사실을 보자.
그러나 조선 성리학을 연 학자로 정몽주와 길재를 꼽는다는 것이다.(정도전과 권근이 아니고.) 그러나 두 분은 조선 성리학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키킨 분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실천가이다. 이 두 분은 성리학을 연구하다든지 한 학문적 성과는 거의 없는 분이라고 한다.
추측컨데 고려말에 정도전-권근과, 정몽주-길재는 서로 대립하는 사이였다. 이렇게 된 이유를 정치적 입장에서 설명해 본다면, 고려왕조 소멸과 조선 왕조 건립의 입장에서 조명해본다면, 조선 성리학을 학문의 입장에서 설명해 본다면 조선 성리학은 정도전, 권근 두 분의 영향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에서 정도전과 권근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유를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려의 소멸과 조선의 창건이라는 과정에서 정도전-권근과 정몽주-길재는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의리론’이 나타났다. 이 과정을 도덕적 근거와 의리 정신을 바탕에 두고 해석하려 했다. 고려 왕실에 대한 충절은 의리론에 포괄되기 때문이다.
참된 학문이란 문장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의식 속에서 내면화 됨으로 인격으로 용해된다. 독실한 실천은 사회적 가치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조선 성리학에서 정도전-권근이 사라지고, 정몽주가 살아남는 이유이다. 이것은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이기도 하다.
더욱이 정몽주-길재 사상은 영남의 유학자들이 널리 수용하여 영남 사림파가 형성된다.
후세의 성리학자들이 정몽주와 길재를 정통성이라고 내린 평가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고려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栢松 작성시간 26.06.21 한국의 철학-고려말의 성리학-유학자
고려말 – 조선 초에 활동한 학자들을 통칭하여 ‘초기 성리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을 연 학자로 정몽주와 길재를 꼽는다.(정도전과 권근이 아니고.) 그러나 두 분은 조선 성리학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키킨 분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실천가이다. 이 두 분은 성리학을 연구하다든지 한 학문적 성과는 거의 없는 분이다.
고려왕조 소멸과 조선 왕조선 성리학을 학문의 입장에서 설명해 본다면 조선 성리학은 정도전, 권근 두 분의 영향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에서 정도전과 권근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려의 소멸과 조선의 창건이라는 과정에서 정도전-권근과 정몽주-길재는 서로 대립의 관계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의리론’이 나타났다. 이 과정을 도덕적 근거와 의리 정신을 바탕에 두고 해석하려 했다. 고려 왕실에 대한 충절은 의리론에 포괄되기 때문이다.참된 학문이란 문장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의식 속에서 내면화 됨으로 인격으로 용해된다. 독실한 실천은 사회적 가치에 공유되기 때문이다.이것이 성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정몽주-길재 사상은 영남의 유학자들이 널리 수용하여 영남사림파가 형성된다. -
작성자촌사람(이동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1 조선 왕실이 자신들이 이론의 배경으로 정도전에서 정몽주로 바뀌 탄다. 왕실 보존에 정몽주의 의리론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백성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위에서 '이게 옳다' 라면, 우-하고 휩쓸려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머리에 먹물이 들었다는 사람도 이리저리 휩쓸리기는 꼭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