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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栢松 작성시간26.06.22 new
한국철학- 고려말의 유학이론
1055년에 최충이 사숙을 열어 유학을 가르쳤고, 안향이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유학 이념이 정치 이념으로 자리를 잡자 고려 말에는 많은 유학자들이 중앙 정부에 포진해 있었다.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유학자들은 자기들의 이념에 따라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었다. 유학자들의 분파가 일어났다.
이것은 현실 대응에 대한 방법의 문제였다. 방법론이란 실리와 의리 중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뭐냐 이다. 이러한 파벌 의식은 조선 초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파벌 존립의 가치관도 바뀐다.
성리학의 기본논리는“이 세상은 理와 氣라는 두 가지의 근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理가 氣를 우선한다. 理는 자기 스스로 운동을 나타날 수 있으나, 氣는 스스로 나타날 수가 없다. 스스로가 아닌 만들어져야 나타난다. 理가 氣의 원천이 된다.”이다.
氣는 변화가 잘 오는 마음(心理)과 관련이 깊다. 곧 理는 氣의 도움을 받아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물러선다.(主氣論.) 그러나 理는 불변부도의 절대자이다.(主理論)이 성리학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유학자를 고려왕실보존의 절의파와 조선건국의 관학파로 나누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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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