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온돌과 장독대: 영어가 한국어처럼 되었고, 한국어가 영어처럼 되었다. 4/4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12|조회수26 목록 댓글 1

3. 생활용품이나 주거문화, 일상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자기들의 일상생활을 투사하여

 

독특한 영어식 표현을 사용했다. 생활 습관과 풍경에 대한 미군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일상적인 모습들에 대해 그들만의 해석이었고 사용하였던 것이다.

 

* (Kat)에 대해서도 미군들은 갓을 보고 여러 별명을 붙였다. Stove-pipe Hat (굴뚝 모자), Horsehair Hat (말총 모자), Korean Top Hat (한국식 비단 모자), Black Halo (검은 무리/후광/광배) 같은 것이 있는데, 특히 말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해한 기록이 많다. 어떤 병사는 마치 투명한 검은 위성 안테나를 머리에 올린 것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 마루 문화에 대해서도 신기해 하였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는 풍습을 보고 Shoe-free Zone(맨발구역), Sock House(양말 집), Barefoot House(맨발 집), 등의 표현을 썼다. 한국 사람들이 마루나 방안 활동 공간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문화'인 실내문화(House-Shoeing Culture, 실내화 문화)는 미군들은 매우 불편하면서도 흥미롭게 여겼다. 그래서 집 안에서 신는 슬리퍼나 맨발 문화를 보고 ‘Take-off Culture(맨발 문화)’라고 부르거나, 특정 장소의 실내화를 그렇게 불렀다.

 

* 업어주기(Back-carrying)가 있다. 아이를 등에 업는 한국 엄마들의 모습을 보고 미군들은 이를 Baby-Backpacking(애기 업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큰 문화적 차이로 다가왔던 것이다.

 

* 침 뱉기(Public Spitting): 목욕탕이나 거리에서 침 뱉는 문화는 당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흔했으나, 미군들은 이를 목격할 때마다 Spitting Habit(침 뱉는 습관)이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당시 미국 위생 관념과는 큰 충돌이 있었던 현상의 하나였다. 특히 목욕탕에서 열심히 때를 밀어서 깨끗해진 몸과는 달리 목욕탕 바닥에 카악 카악’, ‘퉤 퉤하면서 가래침을 뱉는 행동은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천박한 민도로 보였을 것이다.

 

* 공동목욕탕 문화도 미군들이 가장 충격적으로 본 생활문화 중 하나였다. 회고록에 나타나는 표현들로서는 human soap(비누 인간), community bathtub(공동 욕조), giant family bath(커다란 가족탕), 특히 여러 사람이 같은 탕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낯 설어했다.

 

* 온돌은 한국 문화 가운데 가장 찬사를 받은 것 중 하나이었다. 미군들의 별명을 보면 Korean Radiator(한국형 방난로), Floor Furnace(마루 화덕), Magic Floor(마술 마루), Warm Floor System(따뜻한 바닥방)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겨울에 방바닥이 따뜻한 것을 처음 경험하고 놀란 기록이 많다. 아궁이와 연탄에 대해서 미군들은 Fire Hole(불구멍), Ground Stove(바닥 난로), Korean Furnace(한국식 화덕)라고 부렀다. 특히 연탄은 Black Hockey Puck(새까만 하키 공), Korean Fuel Biscuit(한국식 납작탄) 같은 별명이 있었다.

 

* 장독대를 보고는 Pot Garden(항아리 정원), Jar Farm(단지대), Korean Refrigerator(한국식 냉장고)라고 부른 사례가 있다. 이 중에서 특히 Korean Refrigerator는 발효식품 저장 기능을 보고 붙인 표현이다.

 

* 연필 깎기 흥미롭게도 1950년대 미군 교관들이 한국 학생들의 칼 연필 깎는 칼을 보고 놀란 기록이 있다. 당시 미국 학생들은 이미 휴대용 연필깎기(pencil sharpener)를 많이 사용했다. 한국 학생들의 연필 깎기 칼을 보고 미군들은 Whittle Pencil(연필깎기), Boyscout Pencil(보이스카우트 칼)이라고 표현했다. 칼로 나무를 깎듯 연필을 깎는 모습이 보이스카우트 기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입학했을 당시 홍성에서 하든대로 가새 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연필을 깎았는데 애들이 선생님 한테 내가 흉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일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 빨리빨리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1960~70년대 주한미군들은 한국인들의 성급한 업무 방식을 Hurry Hurry Korea(얼른얼른 한국), Quick Quick People(빨리빨리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오늘날 학자들과 외국의 학자들이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의 요인의 하나로 분석하고 있으며, 나아가 AI시대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중심에 있게하는 DNA가 되고 있다.

 

* 이 밖에도 직관적이고 단순 명료한 은어도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낯설은 타국셍활에서 미군들처럼 언어 장벽을 넘기 위해 단어 하나에 상황을 담는 방식을 선호했다. Number One(1), Number Two(2)는 화장실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군대식 은어가 한국의 공중화장실 문화를 지칭하는 말로 변하기도 했다. Mama-san(엄마), Papa-san(아빠)은 한국의 중년 남녀를 지칭할 때 쓰인다. 일본에서는 우리말로 ‘~에 해당하는 ‘~(さん)’이라는 접미사를 성에 붙여 호칭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식 영향을 받아서 Mama-san, Papa-san이라고 했던것 같다. 그들이 이해하는 위계질서 안에서 '부모'라는 친근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단어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중에는 상인이나 식당 주인 등을 부르는 일종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졌다. 주한미군 부대에 배속된 한국군 병력을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US Army)라고 불렀으며, 이 단어 자체를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사용하여 미군 부대 내의 한국인 병사를 통칭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들을 꼽으라면, 미군들이 한국 문화를 바라보며 붙인 별명 가운데 온돌(Korean Radiator), 장독대(Korean Refrigerator), 지게(A-frame)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미국에는 없는 독특한 기술과 생활방식에 대한 감탄에서 나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회고록을 읽을 때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국 문화로는 온돌, 장독대, 지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026.6.1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박노원 | 작성시간 00:06 new 연재를 더해 갈수록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며 자기 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문화와 습관들을 보고 얼마나 놀라웠을지, 지금 다시 돌아보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릴 적 그토록 어렵고 가난하게 살았던 삶이 떠올라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참 불쌍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미국 병사들의 눈에 비친 갓,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마루 문화, 아기를 업는 모습, 길거리의 침 뱉기나 공동목욕탕, 그리고 그들이 찬사를 보낸 온돌과 장독대까지… 특히 연필깎이가 없어 칼로 연필을 깎던 모습이 '보이스카우트 칼'이나 '흉기'처럼 보였다는 일화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마지막에 언급하신 '빨리빨리 문화'는 저 역시 해외 봉사 활동을 다닐 때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체감했던 문화라 더욱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덕분에 옛 기억을 따뜻하게 더듬어봅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