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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교수

6월 16일, 애덤 스미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13|조회수36 목록 댓글 3

6월 16일, 애덤 스미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부와 자유, 공감의 원리를 말한 위대한 사상가

『국부론』 너머의 철학자·경제학자·사회심리학자

 

                                                                                                                       

이성규 국립경국대 무역학과 교수 ‘맨서 올슨 연구소’ 소장

6월 16일은 “애덤 스미스 탄신일(誕辰日)”(‘애덤 스미스의 날’)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이 날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애덤 스미스가 ‘1723년 6월 5일에 세례를 받았다’라는 사실로부터 탄신일을 추정할 수 있다. 1752년에 있었던 달력 변경을 고려하면 이 날짜는 ‘1723년 6월 16일’에 해당한다. 당시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 파이프(Fife)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난 지 며칠 후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6월 16일이 애덤 스미스의 탄신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그리고 ‘사회심리학자’로 “획기적인” 저서인 『국부론』(1776)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생활의 원리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오늘날 우리는 “애덤 스미스 탄신일”을 기념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가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서 『국부론』(1776)에서 그는 ‘근대적 경제번영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그리고 ‘경제번영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는지’를 유토피아적이 아니라 실사구시적 및 과학적으로 상세히 설명했다.

 

 

부를 창출하는 인간 협력의 원리

애덤 스미스 이전에 사람들은 부(富)는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우리는 다른 부족이나 국가를 정복하거나 왕의 총애를 받아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생산적인 노동, 혁신, 분업과 전문화, 거래나 매매, 상업, 무역 등을 통해 ‘부(富)가 실제로 어떻게 창출(創出)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 생산성을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아마추어처럼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전문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전문 도구들을 사용하여 더 많은 물건을 더 높은 품질과 더 낮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잉여 산출물들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들을 다른 사람들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교환을 통해 양 당사자 모두가 이익(‘상호이익’)을 얻는다. 만약 거래의 양 당사자가 모두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들은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거래를 통해 판매자는 대가로 돈을 받게 되지만, 구매자는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얻고 자신이 지불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얻으려 할 것이다. 물론,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할 때 자비심이나 상대방의 필요성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이익’(own interest; ‘이기심’)만을 염두에 둘 것이다.

우리는 빵집 주인이나 식료품점 주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순수한 ‘선의’나 ‘자비심’으로 우리에게 음식을 주거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래가 양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상호이익’ 또는 ‘동반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이익’도 증진시키는 신비스러움이 나타난다.

즉, 거래에서 ‘판매자에게 이익’이 발생하면 ‘구매자에게도 이익’이 발생한다. 그 결과 어느 한 개인의 ‘자신의 이익’ 추구는 ‘더 넓은 사회’에도 이익(‘사회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특히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선순환(善循環)적인 결과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달성되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단순히 ‘선구적인 경제학자’일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인간이 서로에 대해 ‘자연적인 공감심’(natural empathy; ‘자연적인 동정심’)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점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그러한 마음과 욕구가 ‘인간을 윤리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품위 있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타인의 존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1753)으로 명성을 떨친 ‘도덕철학자’였다. 『도덕감정론』은 오늘날 우리가 ‘진화론적 접근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덕론’에 도입했다. 여기서 애덤 스미스는 ‘자연이 인간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심(empathetic feelings)을 부여했다’라고 주장했다. 즉, 인간은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심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점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분업과 자유로운 교환이 부를 창출하는 원리를 밝혔으며, 『도덕감정론』에서는 공감과 도덕이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힘임을 설명했다.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 사회심리학자였던 그는 자유와 협력이 번영의 토대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사상적 길잡이로 평가받는다

인간에게 공감심이 없다면 ‘이기적’ 인간은 함께 살아가고 협력할 수 없을 것이다. 『도덕감정론』은 당시 큰 성공을 거두어 그는 스코틀랜드의 한 젊은 귀족의 개인 교사로 고용되어, 유럽을 순회하며 교육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때 애덤 스미스는 또 다른 위대한 저서인 『국부론』(1776)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국부론』 또한 매우 중요한 저서로 알려졌으며, 무역 장벽들과 관영 독점, 복잡한 세금 제도 등을 철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세기 자유무역 시대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기심과 공감심, 인간 본성의 두 축

또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일 뿐만 아니라 도덕철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1759년에 출간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사회심리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의 도덕관념을 설명하고자 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자연적 동정심”(natural sympathy; ‘자연적 공감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성이 인간이 도덕적이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기초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의 ‘이기심’(self-interest)에 기반한 경제학과 인간의 ‘동정심’(공감심)에 기반한 도덕론 설명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첫 문장에서 이기심과 동정심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과 동정심(공감심)이 배타적이지 않으며 ‘음양의 원리’처럼 “상생 관계”가 있음을 주장했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은 매우 ‘복잡’하다. 빵집 주인은 자신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돈을 벌기 위해) 때문에 우리에게 빵을 제공해 주지만, 동시에 물에 빠진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동정심’으로) 강에 뛰어들어갈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두 책은 ‘이기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평화롭고’(도덕적 영역), ‘생산적’(경제적 영역)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밝혀내려는 상호 보완적인 시도였다.

이기심은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강제나 강압이 없고 경쟁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한, 이기심은 선(善)을 행하기 위한 힘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어떠한 통제나 제약이 없이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에 의존한다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리듯이 ‘조화롭고 평화로우며(도덕적 영역), 효율적인(경제적인 영역) 사회 질서’ 속에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는 ‘조화롭고 평화로우며, 효율적인 사회 질서’라는 신비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인간 행동의 자연적 원리’를 밝혀내려 했다.

애덤 스미스는 또한 예술, 언어, 정치, 법, 과학적 방법론 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고 저술했다. 무엇보다도 애덤 스미스는 진정한 ‘최초의 사회심리학자’(social psychologist; 사회 현상을 심리적으로 고찰·연구하는 학자)였다. 인간 심리(心理)의 모든 측면과 그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우리 자신과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 그리고 만족’이 일방(一方) 번영이나 통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각국은 ‘상호번영’(‘동반번영’)보다는 ‘자신만의 우위’(‘자국만 번영’)를 위해 서로 싸우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시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기보다는 ‘통제’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애덤 스미스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애덤 스미스를 단순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知性人) 중 한 명으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를 실사구시적으로 알려준 위대한 선구자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는 그의 생일을 기억하고 마땅히 축하해야 한다. 오늘날 애덤 스미스의 가르침을 성공적으로 실천하여 ‘K-국부’를 이룩한 한국에서도 “애덤 스미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딸기’였다.

출처 : 교수신문 2026.06.12  https://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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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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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습노 | 작성시간 26.06.13 인류는 우리의 본성에 "이기심"과 "동정심"이 있음을 알려 준 애덤 스미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탄신일"을 축하해야 마땅합니다. Happy Birthday, Adam Smith!
  • 작성자박노원 | 작성시간 26.06.13 70년 전 중3 시절, 상과대(상대)에 다니던 형님이 비싼 돈을 주고 사 와 책장에 꽂아 두었던 『국부론』이 생각납니다. 그 시절 이 책이 무슨 책일까 궁금해하며 들쳐보던 추억이 아련하네요.
    7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성규 교수님의 글을 통해 그 비밀을 풀었습니다. 부의 창출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경제학 책인 줄만 알았는데, 그 밑바탕에 도덕적 원리와 인간에 대한 '공감', 그리고 '이기심과의 조화'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당시 대학생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며 공부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년 시절 예수님의 손인 줄로만 알았던 '보이지 않는 손'의 진짜 의미를 일깨워주신 귀한 글, 참 고맙습니다.
  • 작성자습노 | 작성시간 26.06.14 박노원 박사님은 애담 스미스가 중시한 "동정심"(sympathy)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군요. 동정심은 훌륭한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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