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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원 박사

해외봉사는 나의 팔자에 있었다. 1/25

작성자달스탄|작성시간26.06.14|조회수27 목록 댓글 3

박노원의 몽골에서의 봉사,  제1화    

푸른 하늘의 나라, 몽골에서의 첫날밤

 

2012년 9월 2일 일요일

 

12시 반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마침내 징기스칸 공항에 발을 디뎠다. 몽골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출발 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졸였던 마음이 비로소 내려앉았다. 봉사를 위해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수많은 교육 자료와 물품들이 혹여나 세관에 걸릴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인화성 에어로졸(Freezing Aerosol) 한 품목만 제외하고는 모두 무사히 통과되었다. 다만 병리학 교육을 위해 준비한 슬라이드 짐이 너무 많았던 탓에 12만 원의 수하물 초과 비용(Over-charge)을 지불해야 했지만, 이 또한 현지 아이들과 의료진을 위한 소중한 밀알이 되리라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자, 몽골에서 가장 막역한 사이인 닥터 툴(Dr. Tuul)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내 키만 한 무거운 짐들을 함께 끙끙대며 앞으로 머물 숙소로 운반해 주었다. 내가 묵을 곳은 9층 아파트 단지 중 7층에 위치한 곳이었다. 새로 깔끔하게 수리를 마친 아파트라 공간이 아주 넓고 아늑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은 위치였다. 몽골 시내에서도 제법 번화한 거리를 지나, 내가 앞으로 봉사하게 될 병리학 센터(Pathology Center)까지 걸어서 딱 15분 거리였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는 중간 규모의 마트가 3개나 있어서 앞으로 식재료를 사고 시장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첫 단추가 참 잘 꿰어진 느낌이다.

 

낮에는 18도로 완연한 가을날 같던 날씨가 저녁이 되자 순식간에 4도까지 뚝 떨어졌다. 몽골의 악명 높은 추위를 익히 들었기에 미리 준비해 온 두툼한 겨울 점퍼를 꺼내 입고, 당장 며칠간 먹을 식재료를 사러 마트로 향했다. 낯선 타국 땅이지만 든든한 버팀목도 생겼다. 닥터 툴의 집이 바로 내 앞집인데다, 현관문을 함께 공유하는 옆집 며느리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동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거대한 아파트 숲속에 말이 통하는 이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깊은 안도감과 신뢰가 차올랐다.

 

저녁에는 닥터 툴이 고생했다며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은근히 기름진 몽골 전통 양고기 요리를 기대했으나, 식탁에 차려진 것은 상추, 당근, 오이, 콩깍지 무침 등으로 만든 뜻밖의 기름기 없고 담백한 채식 위주의 음식들이었다. 멀리서 온 손님의 건강을 배려한 따뜻한 성의가 느껴졌다. 식사 자리에는 그녀의 남편과 며느리, 사위, 그리고 재롱둥이 손자 손녀들까지 온 가족이 모여 복작거렸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대가족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가족 문화와 몽골의 가족 문화가 그 어떤 나라보다 닮아있음을 절감했다. 국경은 달라도 사람 사는 온기는 매한가지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방 안은 고요했다. 아직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고, TV를 켜보니 알아들을 수 없는 몽골말만 흘러나와 이내 전원을 껐다. 첫날밤의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문명과 단절된 적막함 때문일까. 낯선 방 안에서의 첫 저녁이 조금은 따분하고 쓸쓸하게 흘러갔다.

 

밤이 깊어갈수록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몽골의 혹독한 추위가 나를 깨워 시계를 보니 새벽녘이었다. 영하로 떨어진 듯한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웅크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살 사이로 까만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 속에서 유난히 크고 예리하게 빛나는 몽골의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별빛을 바라보며,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2012년의 교육봉사 날들을 가만히 그려보았다. 몽골에서의 진짜 첫날이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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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달스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박노원 박사의 몽골에서의 봉사와 체류기를 읽기 시작하니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저를 아껴주시던 서울 농대 왕인근 교수님께서 생전에 강조하시던 주술과 같은 촌철의 말씀, publish or perish ! 그 분의 '국립대학교 서울대 교수 40년'(?)이란 자서전에 빼곡히 실천한 글귀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유행했던 '적막강산', '적자생존'은 결이 엇나도 한 참 엇나는 것입니다.
  • 작성자습노 | 작성시간 26.06.14 지난 10월에 몽골에서 느낀 점은 우리는 물자가 풍부한 나라이지만, 몽골은 물자가 부족한 나라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동작은 느리고 눈빛은 더 이상 간절하지 못하지만, 몽골 대학생들의 눈빛은 순수하고 형형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작성자박노원 | 작성시간 26.06.14 내가 심교수와 인연이 된것도 몽골이라는 공통분모때문이요 나는 정년 퇴직후의 일이고,심교수는 현직에 있을때에 일이니 나와의 봉사의 시간차이가 10~15년 이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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