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일 : 목요일-1997년 10월 16일
<달빛 아래 마지막 오름길>
어찌어찌 잠이 들었던가.
한숨 자고 눈을 뜨니 원형 텐트의 지붕이 희끄무레하다. 밖에는 달빛이 환하고, 저만치서 포터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손전등을 더듬어 시계를 보니 밤 11시 12분.
아직 자정까지는 한참 남았건만 다시 잠들기는 애초에 틀린 듯했다. 초저녁까지 멀쩡하던 두통이 되살아났고, 귀에서는 희미한 이명까지 들려온다. 어제의 무릎 통증도 여전하다.
정상까지는 앞으로도 6~7시간을 더 올라야 한다.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문득 걱정이 스쳐 갔지만, 이제는 육체보다 정신력이 버텨야 할 시간이었다. 지금부터의 등반은 산과의 싸움이라기보다 내 한계와의 싸움이었다.
밤 12시 12분.
르믈레가 뜨거운 차와 비스킷을 가져왔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새벽 1시에 출발할 예정이다.
텐트 안에는 입김이 훅훅 서리고 손끝이 얼얼하다. 옷을 여러 겹 껴입었는데도 한기가 스며든다. 비스킷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대신 침낭 발치에 넣어 두었던 물병을 꺼내 양손으로 감싼다. 아직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다. 육포 몇 조각을 꺼내 천천히 씹으며 기운을 돋운다.
그저께부터 써먹은 나만의 요령이 있었다. 낮 동안 휴대하던 플라스틱 물병 두 개에 뜨거운 물을 채워 오게 한 뒤, 수건으로 감싸 침낭 속에 넣어 두는 것이다. 하나는 발치에, 다른 하나는 손에 쥐고 자면 제법 따뜻했다. 고산의 차가운 밤을 견디게 해준 작은 지혜였다.
방한복과 방한모, 두터운 가죽장갑까지 갖춰 입고 텐트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바람은 잠잠했다.
만월은 휘영청 밝고 사위는 적막하다. 바로 앞 위쪽으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키보(Kibo)의 만년설이 달빛 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오른편의 마웬지(Mawenzi)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오토가 내 복장을 꼼꼼히 살펴본다.
“정상은 바람이 강하고 매우 춥습니다. 지난주에는 영하 25도까지 내려갔어요.”
나는 헤드랜턴 끈을 방한모 위로 단단히 조이고, 트레킹 스틱 길이를 다시 맞추었다. 배낭 속 여분의 배터리도 확인했다.
이제부터는 정상을 향한 마지막 관문이다.
지금까지는 킬리만자로가 관대한 얼굴로 나의 오름을 지켜보았다면, 이제는 마지막 통과의례를 준비해 놓고 있는 듯했다. 마치 군장을 꾸리고 전선으로 투입되는 병사처럼 긴장감이 온몸을 팽팽하게 조여 왔다.
길은 예상대로 혹독했다.
평균 40도가 넘는 가파른 화산 모래 비탈길이었다. 발은 푹푹 빠지고 숨은 턱밑까지 차오른다. 한 걸음을 내딛으면 반 걸음쯤 미끄러져 내려오는 듯했다.
어제까지는 내 뒤를 따르던 오토가 이제는 앞장서서 길을 열어 간다. 그 역시 방한복과 방한모, 스키 고글까지 갖춘 완전무장의 모습이다.
보름달이 워낙 밝아 랜턴조차 필요 없었다.
나는 다시 만월을 랜턴 삼는 행운을 누렸다.
달빛만이 비추는 킬리만자로의 밤.
적막한 산길을 따라 우리는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은 끝없이 위로만 이어졌다.
가끔 암벽에 가로막힌 듯 보이던 길은 바위틈을 돌아 다시 이어졌고, 거대한 암반 위를 지나면 또다시 모랫길이 나타났다. 밤사이 자갈과 모래 위에 내려앉은 서리는 달빛을 받아 마치 금강석 가루처럼 반짝였다.
얼마를 올랐을까.
뒤를 돌아보니 까마득한 아래 모쉬 시내의 불빛이 허공에 떠 있는 별무리처럼 아련하다.
반면 달빛에 비친 키보의 설봉은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봉우리는 어느새 능선 뒤로 숨어 버리고 길은 다시 끝없는 지그재그 모래밭으로 이어졌다.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전날의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고산증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거워지고 발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나는 거의 졸면서 걷고 있었다.
오토가 자주 걸음을 멈추며 말을 건다.
“졸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잠은 막무가내였다.
문득 보병학교 시절 야간행군 도중 졸며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토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계속 말을 붙였지만, 나는 대답조차 하기 싫었다.
“Are you OK?”
“I'm OK.”
겨우 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잠을 쫓아 보려고 랜턴을 켜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눈이 부셔 더 졸렸다. 다시 랜턴을 끄자 달빛이 하얗게 나를 감싸 안았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오른쪽 무릎도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묘한 오기가 생겨났다.
‘그래,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으며 어둠 속을 올랐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어느새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마웬지 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날이 새고 있는 것이다.
달이 산 너머로 사라지자 비로소 랜턴이 필요해졌다. 희미한 불빛을 의지해 기다시피 능선을 오르던 중, 저 위쪽에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마지막 힘을 짜내 능선 위로 올라서자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이 바로 해발 5,750m의 스텔라 포인트(Stella Point)였다.
분화구 가장자리에 선 순간, 까마득한 아래로 거대한 화산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 옛날 뜨거운 용암이 솟구쳤을 그 거대한 흔적이 침묵 속에 누워 있었다.
밤새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졸음이었다.
피로 때문이었는지 고산증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눈앞이 가물거려 길조차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졸린 눈을 애써 크게 뜨고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이미 구름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키보 봉의 거대한 만년설 빙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밤새 산의 어두운 옆구리를 돌아 올라온 끝에 마침내 만나게 된, 킬리만자로가 보여주는 장엄한 새벽의 얼굴이었다.
<우후루봉 ― 침묵의 정상에 서다>
스텔라 포인트에 올라서자 비로소 마랑구(Marangu) 루트를 따라 올라온 등반객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내가 올라온 웨스턴 브리치 쪽 루트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길이었지만, 그들 역시 하나같이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해발 5,700m가 넘는 고도에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산을 오르고 같은 고통을 견뎌낸 사람들 사이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연대감이 생기는 법이다.
이곳부터 우후루봉까지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르막길이었다.
오토의 말에 따르면 12월 이후 우기가 시작되어 눈이 쌓이면 이 구간이 훨씬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길 위에 눈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완만한 길이라고 해서 결코 쉽지는 않았다.
밤새 가파른 화산 모래 비탈을 기어오르다시피 올라온 데다 이제는 해발 6,000m에 가까운 고도였다. 한 걸음을 떼는 일조차 천근만근이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두터운 장갑 속 손끝이 시렸고, 나는 방한모를 귀까지 깊숙이 내려썼다.
다행히 사람들을 만나고 찬바람을 쐬자 밤새 괴롭히던 졸음은 조금씩 사라졌다.
왼편으로는 키보의 만년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 햇살을 받은 빙벽은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났고, 그 아래로 드리운 푸른 그림자는 신비로운 색조를 띠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 빙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굽이의 바위 언덕을 돌아섰을 때였다.
저만치 앞쪽 평탄한 언덕 위에 깃발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후루봉이었다.
아프리카 최고봉, 해발 5,895m.
밤새도록 내가 향해 온 목적지였다.
그토록 가까워 보이는 곳이 어찌 그리 멀게 느껴지던지.
마음은 벌써 도착해 있는데 다리는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이쯤 되면 육체의 힘은 거의 바닥난 상태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의지뿐이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그렇게 마지막 남은 거리를 힘겹게 메워 나갔다.
아침 7시 10분.
마침내 나는 키리만자로의 정상, 우후루봉에 섰다.
그러나 우후루봉은 내가 상상해 왔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동경했던 눈부신 만년설 봉우리가 아니라, 그 뒤편에 자리한 완만한 언덕 같은 모습이었다. 눈도 거의 없었고, 화려하거나 웅장한 느낌도 없었다.
그곳이 정말 아프리카 최고봉이라는 사실이 선뜻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오랫동안 상상해 왔다.
정상에 서면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이 한눈에 펼쳐지고, 끝없는 초원 위를 달리는 야생동물들의 무리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일 것이라고.
그러나 실제의 우후루봉은 놀라울 만큼 소박했다.
높이를 과시하지도 않았고,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다.
순간 작은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하나의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정말로 높고 위대한 것은 저처럼 소탈한 법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가장 겸손하고, 가장 크면서도 가장 조용하다.
우후루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문득 세상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큰 사람은 자신의 높이를 떠들지 않는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디며 묵묵히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킬리만자로는 정상에 선 내게 그런 가르침을 건네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루트를 통해 올라온 등반객들이 도착해 있었다.
호텔에서 가이드 브리핑을 함께 들으며 ‘킬리만자로’ 맥주를 나누어 마셨던 요하네스버그의 쾌활한 세 청년과 스코틀랜드에서 온 부부도 눈에 띄었다.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고 축하했다.
산에서는 국적도, 인종도, 직업도 중요하지 않다.
같은 어려움을 견디고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온 사람들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동지애가 생겨난다.
나는 방명록을 펼쳐 도착 시각과 함께 ‘서울에서 온 이 아무개’라고 큼지막하게 이름을 적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잠시 생각했다.
나 역시 이제 저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먼저 이곳까지 무사히 이끌어 준 충직한 가이드 오토와 한 장.
함께 고생한 호텔 친구들과 몇 장.
마지막으로 독사진도 남겼다.
훗날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순간을 기억하게 해 줄 소중한 기록이었다.
산의 정상에 서면 늘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내가 가진 정열과 용기와 인내를 모두 쏟아부은 끝에 얻는 짧은 환희.
그리고 삶의 어떤 진실이 번갯불처럼 스쳐 지나가는 순간.
아마도 나는 그 느낌을 찾아 산에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상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에는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다시 내려와야 한다.
정상은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다.
20여 분을 머문 뒤 오전 7시 30분경, 우리는 하산을 시작했다.
나는 평소 ‘산을 정복했다’거나 ‘정상을 정복했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조금 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의연히 서 있을 뿐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잠시 정상에 올라섰다고 해서 그것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산이 넓은 품으로 인간을 받아준 것이라 해야 옳다.
벌레 한 마리가 어렵사리 사람의 머리끝까지 기어올랐다고 해서 벌레가 사람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선 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만은 충분히 대견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정상을 밟았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내려오는 발걸음은 올라올 때와는 전혀 달랐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탈진 직전의 상태로 거북이처럼 기어오르던 내가 이제는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힘내십시오!" 하고 격려를 건넬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짧은 사이에 킬리만자로의 정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 받은 것일까.
산 아래 세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신감과 충만함이 가슴속에 차오르고 있었다.
<하산 ― 다시 숲으로 돌아오다>
스텔라 포인트를 지나 바라푸(Barafu)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어느새 날은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바라푸 헛이 있는 방향이 까마득한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밤새 내가 올라왔던 길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저토록 가파르고 먼 길을, 그것도 캄캄한 밤중에 어떻게 올라왔단 말인가.
마치 남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듯했다.
올라올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막상 내려다보니 그 길은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쉽사리 오를 수 없는 험준한 비탈이었다.
하산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화산재와 자갈로 이루어진 비탈길은 발을 디딜 때마다 푹푹 꺼졌다.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등산화 속으로는 모래가 계속 들어와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털어내야 했다.
오토는 이번에는 제법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안에 므웨카(Mweka) 헛까지 내려가 여유롭게 쉬려면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밤새 나를 괴롭히던 졸음은 해가 뜨면서 사라졌지만, 정신은 아직도 몽롱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다.
오토는 저만치 앞서 내려가고, 나는 뒤에서 묵묵히 그를 따라갔다.
올라올 때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던 길을 내려올 때는 불과 두 시간 남짓 만에 주파했다.
오전 9시 30분.
마침내 바라푸 캠프에 도착했다.
밤새 이어진 고된 산행을 마쳤건만 이상하게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저 눕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어제 초저녁 잠깐 눈을 붙인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깊은 잠이 아니라 뒤척이며 보낸 선잠이었다. 자정 무렵 일어나 준비를 마친 뒤 새벽 1시에 출발했고, 다시 텐트로 돌아온 시각은 오전 9시 반.
무려 열 시간 가까운 시간을 쉬지 않고 깨어 걸은 셈이었다.
식사를 하고 곧바로 하산 준비를 해야 했지만, 나는 오토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딱 30분만 자겠습니다."
그리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눕혔다.
중천에 떠오른 햇볕을 받아 텐트 안은 마치 사우나처럼 후끈거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침낭 위에 몸을 던지자마자 깊은 잠이 몰려왔다.
얼마나 잤을까.
식사 시간이 되었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정확히 30분이 지나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식욕은 여전히 없었다.
결국 치킨 누들수프 한 그릇과 따뜻한 차 몇 잔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쉬라(Shira) 헛에서 헤어졌던 같은 호텔 출신의 다른 두 팀이었다.
그들은 애로우 글레이셔(Arrow Glacier) 루트를 통해 우후루봉에 오른 뒤 스텔라 포인트를 거쳐 이곳으로 내려와 쉬고 있었다.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방명록에서 내 이름을 보고 이미 내가 먼저 정상을 밟고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축하를 건넸다.
정상은 혼자 오르는 것이지만, 기쁨은 함께 나눌 때 더욱 커지는 법이다.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다시 짐을 꾸려 므웨카 루트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지나왔던 황량한 화산지대를 지나자 풍경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회색 모래와 자갈뿐이던 땅에 노란 꽃과 흰 꽃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운이 다시 느껴졌다.
길은 점차 아래로 길게 뻗어 내렸고, 어느새 관목숲 사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이끼들이 실타래처럼 길게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구름은 숲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고, 비는 오락가락 내렸다.
멀리 아래쪽으로 므웨카 헛이 어렴풋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닿을 듯 가까워 보였지만, 오토는 아직도 한 시간이 넘게 남았다고 했다.
산에서는 늘 그렇다.
눈에 보이는 거리와 실제 거리는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길가에서 뜻밖의 반가운 풍경도 만났다.
프로티아(Protea) 군락이었다.
크고 탐스러운 꽃들이 안개 속에서 유난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에서나 보던 꽃을 이 높은 산중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훗날 이 꽃들을 다시 보게 되면 오늘의 안개 낀 하산길도 함께 떠오를 것 같았다.
오후 늦게 므웨카 헛에 도착했다.
숙영지는 해발 약 3,100m, 열대우림이 시작되는 경계 지점의 관목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해가 비칠 때는 포근했지만 구름이 몰려오면 선들선들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풍부한 산소였다.
고도가 낮아지자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며칠 동안 숙면을 방해하던 두통과 메스꺼움, 무기력감도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열대우림 속 오솔길을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키스 호텔(Key's Hotel)의 침대에서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문득 깨달았다.
오늘 밤이 텐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을.
며칠 동안 추위에 떨고 비를 맞고, 불편한 잠자리를 견디며 때로는 투덜거리기도 했던 시간들.
하지만 산을 떠나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런 고생들이 먼저 그리워질 것이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렇다.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순간보다 그 시간을 함께했던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가슴 뛰던 기억들이 더 오래 남는다.
킬리만자로의 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나는 텐트 밖으로 나와 잠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 정상은 내 뒤에 있었다.
그러나 킬리만자로가 내게 남긴 감동과 가르침은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일 이 산을 떠나더라도, 오늘 새벽 우후루봉에서 맞이한 그 찬란한 햇살과 침묵의 순간은 오래도록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게 킬리만자로에서의 마지막 텐트의 밤이 서서히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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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노원 작성시간 26.06.14 박사님, 흥얼거리던 조용필의 노래처럼 이끌려 들어온 글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탄자니아의 만년설 산으로만 알았던 킬리만자로의 진짜 얼굴을 박사님의 생생한 기록으로 마주하네요.
환갑을 바라보는 그떄의 연세에 그 높은 산을, 그것도 밤을 새워 정상을 딛고 우후루봉(5,895m) 표적을 남기셨다니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십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필력 덕분에 저도 함께 등반한 듯 숨이 가빠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대청봉 오르며 쩔쩔맸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밤새 졸음과 고산증을 이겨내며 걸으셨을 박사님의 강인한 다리와 의지력이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새삼 상상이 됩니다. "산이 인간을 받아준 것"이라는 겸손하고 귀한 가르침 마음에 잘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