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고향으로 간다

작성자갓쓴이|작성시간23.10.26|조회수90 목록 댓글 1
        
        
        햇살이 한결 
        부드럽게 내리는 오후다.
        
        백일을 기다리는 
        첫아기 입술같은 대추알이 
        마당가에 여유롭고 
        
        햇하품에 겨우 얼굴 비집고
        세상 만나는 알밤도 
        
        윤기도는 피부로 
        가지런히 설레고 있다.
        
        감나무 잔가지에 
        달빛이 천만으로 부수어져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뒷동산에 올라 
        지순한 마음으로 손 모우던 때는
        
        소원도 한 색깔로 
        얌전해 좋았는데 ..
        
        그 야트막한 등성이 위에 까지도
        고루 빛살을 뿌리며 
        
        가슴마다 
        서늘히 내려앉는 기운은 
        푸르다 못해 아예 창백하다.
        
        이내가 내린 
        푸르스럼한 저녁 풍경
        나는 그 시간 속에 서 있다.
        
        멀리 좀 더 
        짙푸르게 산이 앉아 있고
        
        그곳으로 
        은색과 청색이 서로 엇갈리며 
        번쩍거리는 강이 흘러 들어간다.
        
        강 옆으로 
        은사시나무들이 
        궁륭(穹隆)을 이루는 곳에 
        
        나도 풍경의 하나로 
        조용히 서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 자취도 흐려지고 
        
        모든 사물이 희미해져
        서로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흐려져서 지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일까?
        
        혹 그것이 
        미래가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내 속에 있는 아직 이름없는 
        그 무엇일까?
        
        투명한 가을 햇살 ,
         
        일렁이는 강물도 눈물을 부르지만 
        해질녘 노을 진 가을 강은
        
        얼마나 
        와락 눈물일 것인가.
        
        또 ,
        
        얼마나 크나큰 서러움일 것이냐.
        그 가을 강물을 거슬러 
        
        우리는 기쁜 첫사랑의 
        산골 물소리를 찾아 
        고향으로 간다.
        
        나무들이 고향으로 
        줄지어 가고 있다.
        
        고향으로 
        고향으로 ..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나무의 고향은 하늘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떠나온 고향 하늘을 그리며 
        
        영원히 순진무구인 세상을 항상 
        꿈꾸며 살아간다.
        
        푸른 달빛이 
        고향으로 가는 길을 
        둥그렇게 비춘다.
        
        바람 불어 추워도 흔들림 없이
        움츠림 없이 하늘로 
        고향으로 가고 있다.
        
        달빛이 
        나직나직 내려오는 달밤
        
        낙엽은 우수수 떨어져 
        대지를 덮고 
        
        산을 살찌워 찬란한 봄날 다시
        꽃으로 피어오를 것이다.
        
        고향마을 뒷동산
        나무아래 눈물로 서 본다.
        
        나이 일흔이 넘어드니 
        아무개야 하고 그냥
        
        이름 부르는 
        사람이 없어 더 서럽다.
        
        내 이름을 가장 가까이서 
        정답게 불렀던 분은 어머니
        
        철없이 놀던 시절 
        어스름이 깔리면 
        
        물 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닦으며 
        골목 어귀에까지 나와 
        나를 부르셨지요.
        
        아침에 입고나간 
        새옷 오지랖에 
        
        콩고물처럼 묻은 흙을
        아무 말없이 
        툭툭 털어주시던 어머니
        
        나는 어디에서 그리운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 음성을 찾을 수 있을까 ..
        
        가을 하늘이 차갑다.
        
        나무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가만이 돌아다 본다.
        
        어부바 ..
        
        아 , 나는 그만
        그 한마디에 
        눈물을 뚝 떨구고 만다.
        
        가을에는 몸도 마음도 
        먼 고향으로 간다.
        
        " 수야 .. "
        
        내 마음은 벌써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고향 뒷동산에 가 있다.
        
        어제는 음력 구월 열하룻날
        어머니 제삿날이다.
        
        가을달이 
        둥두럿 높이 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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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백05 | 작성시간 23.10.26
    입버릇처럼
    엄마가 말씀 하셨지요.
    복있는 사람이나 가을에 갈 수 있단다.

    낙엽 지는
    가을에 딱 사흘만 앓고
    너희들 다 보고 갔으면 참 좋겠구나..

    우리엄마는
    복이 없으셨는지
    한 겨울에 우리들도 못 보고 그렇게 홀로 가 버리셨네요..

    그래서
    더 울었나 봅니다.
    하고 싶은 말씀도 못 하시고.. 보고 싶었을 우리들도 못 보고 그렇게 가셔서..

    그래도
    평상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지요.
    인생 짧단다 .즐겁게 살거라, 자식에겐 늘 져 주거라..

    요즈음에는
    꿈에도 잘 안 보이시니
    아버지 만나 잘 계시겠거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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