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에서 찾아볼 게 있어 검색하다가 우연히 불교신문 사설위원 홍사성님의 다음 기사를 발견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여기 퍼 올린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지 못했으면서도 초선, 2선 3선, 4선을 성취하고 공처 식처, 무소유처, 비상처, 비비상처의 선정(禪定)을 성취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참되지 못한 사람이다. 반대로 자신이 귀족출신이고, 용모가 단정하며, 말재주가 뛰어나며, 박학다식하고, 장로이며, 옷차림이 위의에 맞고, 검소하고, 절제가 엄정하고, 아난나행을 하고, 초선과 비상비비상처정을 성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살피며 삼독심을 끊어 없애려는 사람이 있다. 그가 참된 사람이다.”
중아함 21권 <진인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 경전의 요점은 참다운 수행자(眞人)란 아홉 가지 선정을 모두 성취했느냐와 관계없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탐욕과 분노와 우치를 얼마나 줄였느냐가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삼독심이 남아있다면 스스로 아무리 잘난 척해도 또는 남들이 훌륭하다 칭찬해도 참다운 수행자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전의 지적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수행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수행이라면 선정을 닦아 돈오견성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한 소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소식만 얻으면 마치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모든 번뇌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생사윤회에서 벗어난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와 같은 돈오견성을 체험한 분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있다면 그분들은 현저하게 탐진치를 극복했는가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수행자를 만나본 적이 별로 없다.
이는 바꿔 말하면 불교수행이란 무슨 대단한 경지의 깨달음을 얻는데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한소식이 아니라 만소식을 얻었더라도 삼독을 줄이지 못했다면 불교수행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불교수행의 목적은 한 소식 또는 깨달음이 아니라 삼독의 극복과 참다운 행복(涅槃)의 성취에 있다. <진인경>이 콕 찍어서 강조하는 것도 이 점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잣대로 나를 돌아보면 어떤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뿐이다.
[불교신문2948호/2013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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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01 법수님, 댓글 반갑습니다. 님의 댓글에서 가지고 싶은 마음은 貪(탐)을 말하는 것이고, 어리석음은 痴(치)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가지고 싶어하는 것, 즉 탐하는 대상은 뭐라고 봅니까?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이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얘기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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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법수 작성시간 13.12.02 어리석음이란 팔정도의 바른 견해(정견)를 모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영혼이 불멸한다거나,죽으면 모든게 끝이라거나하는 상견과 단견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상, 고, 무아의 삼법인과 사성제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한 상태가 아닌지요?
탐하는 대상은 식욕, 성욕, 수면욕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와 금전과 권력, 승부,나를 알리고 싶은 명예욕 등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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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02 역시 법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법수(法首)님 답게 괜찮은 답을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가지고 싶어하는 대상은 오온, 즉 몸[色], 느낌[受], 인식[想], 행위[行], 의식[識]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붓다의 원음에 해당하는 아함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 몸과 마음을 갖고 싶어 하고, 오온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는 윤회를 계속 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데, 갖고 싶어하는 대상은 오온,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이라고 봅니다. 어두움, 치암(痴暗) 등으로 표현되는 어리석음은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깜깜하게 어두운 것입니다. 자신 내부를 관찰해들어 가는 것이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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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12.02 조성래 철저하게 의식을 자기 안으로 거둬들여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색, 수, 상, 행, 식의 작용을 밝게 알아가야 합니다. 불교는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합니다. 불교를 어떤 추상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본인의 고통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고통해결, 고통해결", 이 말이 나의 문제로 와닿지 않는다면 아직은 더 열심히 경전을 보고, 공부 모임에도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경전 번역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정확한 길로 안내해주는 도반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늙어만 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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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법수 작성시간 13.12.02 추상적인 지식은 정말 고의 해결엔 도움이 안됩니다. 남보다 지식을 조금 더 안다는 것이 고의 근원적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공부모임엔 2월경 부터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디서도 듣기힘든 적확한 해석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