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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我相(아상), 구마라습은 왜 ‘我想(아상)’이 아니라 ‘我相(아상)’으로 번역했는가?

작성자조성래|작성시간17.12.03|조회수477 목록 댓글 3


    구마라습은 왜 我想(아상)’이 아니라 我相(아상)’으로 번역했는가?

 

  구마라습은 왜 我想(아상)’이 아니라 我相(아상)’으로 번역했는가?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다. 구마라습은 <금강경>을 최초로 한역(漢譯)하면서 我想(아상)’으로 번역해야 할 것을 我相(아상)’으로 번역했다. 여기서 ()은 오온의 한 요소인 ()이고, 我相(아상)我想(아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육조 혜능 대사는 我相(아상)에 대해 해석하기로,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 학문, 가문 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을 아상(我相)’이라고 한다고 했고, 그는 또 수행자의 아상에 대해서는 마음에 []’, ‘[]’라는 의식이 있어서 중생들을 업신여기고, 교만한 것이라고 해설헀다. 이 해석에는 아상(我相)의 반대개념인 무아사상(無我思想)은 찾아볼 수 없고, 아상을 단지 교만심의 의미로만 해석하였다.

아상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데, 이것은 구마라습이 我想(아상)’으로 번역해야 할 것을 我相(아상)’으로 번역해 놓은 데 그 원인이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한국에는 <금강경>의 사상(四相)에서의 ()이 오온(五蘊)에서의 ()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구마라습은 왜 이와 같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 하게 번역해 놓았는가? 그것은 <금강경> 구절의 의미를 왜곡시켜, 그 속에 들어있는 석가의 교설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 하게 하기 위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구마라습은 무아사상(無我思想)을 강조하기 위해 말해놓은 사상(四相)이 본래의 의미대로 전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구마라습은 <성실론成實論>을 번역한 인물이다. <성실론> 6권에 상론(想論)이 있다. 거기에 無我中我想顚倒(무아중아상전도)”라는 구절이 있다. “‘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가운데 라는 인식은 전도몽상이라는 뜻이다. 한 문장 안에 無我(무아)도 있고, 我想(아상)도 있다. 구마라습은 여기서는 我相(아상)으로 번역하지 않고, 我想(아상)으로 번역해 놓았다. 그는 또 AD 402년에 번역한 <금강경>에서는 오온(五蘊) 중 산스크리트어 삼즈냐(samj˜nā)()’으로 번역하였지만, 408년에 번역한 <반야심경>에서는 ()’으로 번역했다. 그는 我想(아상), ‘“라는 인식은 무아(無我)의 반대개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을 번역하면서 我想(아상)我相(아상)으로 번역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我想(아상)이 아닌 我相(아상)으로 번역했을까? 그것은 <금강경>의 무아법(無我法)을 훼손시키거나 없애기 위해 악의적으로 그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브라만교의 4베다와 화엄경, 법화경 등 대승불교의 경전을 접한 뒤에 무아설(無我說), 오온설(五蘊說), 위빠사나수행 등 석가의 교설을 싫어했던 구마라습은 석가의 무아설(無我說)()와 오온(五蘊)()이 결합된 형태인 我想(아상)의 개념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금강경>에서 무아설(無我說)이나 오온설보다는 無有說(무유설)非說(비설)로써 모든 존재를 다 부정해버리고 싶었고, 대승불교의 특징인 공()에 대해 담론하는 불교 쪽으로 이끌어 가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마라습은 석가부처님의 핵심 교설인 무아설(無我說), 오온설(五蘊說), 위빠사나수행, 알아차림 등을 싫어했고, 그 대신 석가의 가르침이 아닌 대승불교의 경전을 받아들여[], 지니고[], 독송(讀誦)하고, 베껴 쓰고[書寫], 그 중에 한 구절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해주면, 그것이 큰 공덕(功德)이 되어, 장차 무량한 복덕(福德)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만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초기의 불교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인 혜교(慧皎, 497~554)<고승전(高僧傳)>에는 구마라습이 16세 무렵 사륵국에서 대승불교의 명망 있는 승려 수리야소마(須利耶蘇摩)를 만나, 소승을 버리고, 대승불교로 전향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소마는 훗날 구마라습에게 <아누달경(阿耨達經)>을 가르쳤다. 구마라습은 오온(五蘊), 18, 여섯 감각기관 등이 모두 공()이고, 무상(無相)이라는 말을 듣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이 경전은 어떤 뜻이 있기에 모든 존재를 다 파괴합니까?” 소마가 대답했다. “눈 등의 모든 존재는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구마라습은 눈이라는 감각기관에 집착하고 있었고, 소마는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 실답지 않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승과 소승을 연구하면서 문답을 오래 주고받았다. 그리하여 구마라습은 이치의 귀결점을 알자, 마침내 대승불교의 경전[方等]에만 오로지 힘쓰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내가 예전에 소승을 공부한 것은 마치 금을 알아보지 못하고, 구리나 돌을 오묘하다고 여긴 것과 같구나!”

구마라습은 그의 소승불교의 스승 반타달다가 대승을 아직 깨닫지 못 했기 때문에 스승에게 가서 교화하려고 했다. 스승 반타달다가 구마라습에게 물었다. “너는 대승에 대해 어떤 특별한 것을 보았기에 대승을 숭상하려고 하는가?” 구마라습이 대답했다. “대승은 심오하고 청정해서 모든 존재가 다 공()이라는 사실을 밝혔지만, 소승은 치우치고 국한되어서 대부분 이름과 모습[名相]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말했다. “네가 말한 모든 존재가 다 공()이라는 말은 아주 염려스러운 것이다. 어찌 눈앞에 있는 존재들을 다 부정하고, 공에만 집착하는가?”

 

AD. 510년에 양()나라 석보(釋寶)가 저술한 <승전(僧傳)>에는 구마라습은 대승을 좋아하여, 그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데 뜻을 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대승불교 경전인 <금강경>에는 수행방법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고, 단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는 선언적인 말만 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어떤 것인지 모르도록 해놓았다. 하지만 초기 대승불교의 경전인 <금강경><반야심경>에는 석가 교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죽이기 위해 모호하게 번역해놓은 것이 我相(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이다.

구마라습은 철저한 대승주의자였다. 그는 수행보다 공()에 대한 담론을 즐기는 스콜라 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승주의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궤변을 많이 늘어놓았다. 그는 모든 존재가 다 공()이고, 그것은 그것이 아니며,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그 어떤 존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오온과 십팔계는 환상[假名]일 뿐, 그 실체가 없는 것들이라고 역설했다.

구마라습은 공사상(空思想)을 담고 있는 반야부 경론(經論)을 주로 많이 번역했다. 공사상(空思想)은 모든 존재를 다 부정하는 부정의 부정의 부정의 교설로서 어떤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구마라습은 또 석가의 교설과 수행을 부정하고, 단지 믿음·신앙만 강조하는 <법화경>도 번역했다. 그는 또 유마거사가 석가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일방적으로 부처님 10대 제자들을 공박하는 말을 하여, 그들의 이미지를 실추시킴으로써 기존 석가불교는 어리석고, 답답한 불교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불법을 왜곡시키기 위해 저술된 <유마경>도 번역했다. 그는 또 <유마경><금강경>에 대한 주석서도 저술하였다. 구마라습은 <반야><삼론(三論)>의 불교를 가장 중시했고, 그가 널리 천양한 경전은 <법화경>이었다.

여태까지 금강경의 사상(四想, 四相)의 해석 문제를 가지고 옆길로 빠져, 조금 길게 논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및 중국불교에서는 ()의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국 및 중국불교에서 ()의 개념을 제대로 모르는 것은 구마라습 등의 대승불교도들이 오온의 개념을 알 수 없도록 방해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

 

* 이 글은 다음 카페 <위빠사나금정선원> 조성래 원장의 글입니다. 카톡으로 이 글을 주변의 귀한 분들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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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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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05 어제 올린 글이 논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대폭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위의 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흰구름 | 작성시간 17.12.05 그동안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고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을, 송곳처럼 찌르며 비판하는 독창적인
    시각이 참으로 신선합니다. 석가의 근본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조성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05 흰구름님, 댓글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 다시 글을 보완하였으니,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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