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 19:16-23
▷제목 : 비루한 사람과 고상한 사람
▷날자 : 2009. 11. 29
성경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소판이라 할만하다.
성품이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삶이 형통한 사람 고난이 연속인 사람, 인격이 고상한 사람 비루한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비루한 사람,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바로 시므이와 시바이다. 이 시간 우리는 이 두 사람의 행실을 살펴보고 오늘 우리 삶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자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한다.
‘비루하다’는 말은 ‘행실이 야비하고 더럽다’는 뜻이다. ‘비루하다’와 반대 되는 말은 ‘고상하다’는 말이다. ‘고상하다’는 말은 ‘인품이나 행실이 품위가 있고 훌륭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시므이와 시바가 왜 비루한가?
먼저, 시므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16절-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다윗이 왕권을 회복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시므이는 급히 다윗 왕을 만나러 왔다. 왜 그렇게 급히 달려왔을까? 이전에 다윗에게 행한 악한 행동 때문이다. 그가 이전에 다윗에게 무슨 행동을 했기에? 함께 찾아 읽어보자.
16:5-8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황급하게 도망할 때에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인격을 모독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새 번역 성경에는 ‘사악한 자여’했지만 이 전 성경에는 ‘비루한 자여’라고 하였다. 우리가 볼 때 시므이는 비루한 자이고 다윗은 고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시므이가 다윗을 보고 비루한 자라고 했다. 주객이 전도 되었다.
그 때 시므이는 왜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
시므이는 베냐민 족속이고, 사울 왕의 가까운 친척이다. 사울이 왕위에 있을 때 권력과 영광을 누린 사람이다. 그런데 사울 왕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하자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다윗이 권력을 빼앗은 것은 아니다. 다윗이 왕권에 대해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다. 아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시므이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왕이 죽었으면 그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다윗이 왕이 되는가?
평소에 다윗이 왕이 된 것을 보고 분노하고 있다가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 쫓겨나 자기 마을 앞으로 지나가게 되자 그렇게 저주하고 모욕한 것이다.
시므이의 이 같은 말과 행동은 다윗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아들의 반역으로 도망가야 하는 괴로움도 말할 수 없는데, 시므이까지 나서서 저러니 그 수치와 괴로움은 하늘에 닿았다.
그러면 다윗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시므이가 급히 다윗에게 달려온 이유가 무엇일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권을 다시 회복하였으니 이전에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만일 다윗 왕이 보복하려 한다면 처형감이다.
시므이가 급히 달려와 어떻게 했는가?
18-20절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이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먼저 다윗 왕 앞에 코가 납작하도록 엎드렸다. 그리고 지난 번 자기가 한 행동은 패역한 범죄 행위였다고 하였다. 그 행동을 잊어주시고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왕께로부터 너그러운 용서를 얻기 위해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내가 제일 먼저 내려와서 왕을 영접한다고 하였다.
시므이는 혼자 오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왔는가?
17절-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우선,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베냐민 지파에서 시므이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자기 개인적인 일에 1,000명을 동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시므이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을까? 우리 베냐민 사람들이 왕의 귀환을 이렇게 많이 나와서 환영한다는 아첨도 있고, 나는 베냐민 지파의 실력자니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협박도 있다.
여기서 시므이를 다시 생각해 보자. 시므이가 자기 죄를 진정으로 뉘우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왕의 권력을 이길 수 없어 굴복했을 뿐이다. 만일 다윗이 지난번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다면 또 다시 저주하고 돌을 던질 사람이다. 자기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자기보다 약한 자 앞에서는 돌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므이는 일정한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정세에 따라 자기에게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기회주의자요, 진실함과 깨끗함이 없는, 더러운 욕망만 가득한 비루한 사람이다.
두뇌의 명석함이 탁월한 다윗이 그의 속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다 알고 있지만 죽이지 않았다. 용서했다.
어떻게 용서했는가?
23절 -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그러나 다윗 왕의 부하 아비새는 달랐다. 아비새는 시므이가 과거 왕에게 어떻게 했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므이가 다윗 왕 앞에 엎드렸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저 놈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시므이에게 죄를 묻고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고 용서해 주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날의 분위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권을 회복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갈기갈기 찢긴 백성들의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다. 국론통합이 다윗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였다. 그런데 시므이를 처형한다면 베냐민 지파가 어떻게 나올까? 자기들의 지도자를 처형했다고 반발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죄를 물어 처형해야 하지만 용서해 주었다.
다윗이 시므이를 용서한 또 다른 이유는 그 날의 분위기다. 왕권을 회복하고 귀환하는 그 날의 분위기는 잔치 분위기다. 모두들 기뻐하고 환영한다. 그런데 다윗이 시므이를 보고 분노하고 당장 처형하라고 명령한다면 잔치 분위기는 공포 분위기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용서해 주었다.
그렇다고 시므이의 죄는 그냥 덮어버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물어야 한다. 다윗은 아비새가 말한 대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런데 다윗을 왕권을 빼앗은 강도처럼 몰아붙이고 저주한 것은 단순히 다윗에게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다. 이것은 그냥 덮어버릴 수 없는 중대한 죄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윗에게 용서를 구했다면 하나님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진정성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윗은 나중에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왕상 2:8-9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시므이를 불러서 아버지 다윗에게 행한 과거의 죄를 상기시키고 앞으로 예루살렘 성안에서만 살도록 주거제한을 명령했다. 만일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므이도 그 말에 동의하고 그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시므이의 두 종이 도망하였다. 그러자 시므이는 그 두 종을 잡으려고 예루살렘을 벗어나고 말았다. 이것을 알게 된 솔로몬은 시므이를 붙잡아 처형했다.
시므이와 함께 온 1,000명 중에는 시바와 그의 아들들 15명도 있었다. 시바도 다윗이 왕권을 회복하고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시므이와 함께 다윗에게 왔다. 시바도 시므이 못지않게 비루한 사람이다. 왜?
사울 왕에게 아들들이 여러 명 있었으나 다 죽었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만 남았다. 사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다윗은 그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처럼 돌보아 주었다. 시바는 그 므비보셋의 종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많은 음식과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다윗을 대접 했다. 그렇잖아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울 때 시바의 행동은 다윗을 감동시켰다.
그 때 다윗은 시바에게 네 주인 므비보셋은 잘 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시바가 말하기를 “왕이여, 므비보셋이 말하기를 이제 백성들이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로 돌리리라 하더이다.”하였다. 그 말의 의미는 다윗이 실권했으니 이제 백성들이 나를 왕으로 모시게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말이다. 사울 왕의 아들들이 다 죽었고 왕위를 이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자기를 아들처럼 돌봐 준 다윗을 배신한 말이다. 므비보셋이 그럴 수가? 화가 난 다윗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재산을 네가 다 가져라.”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므비보셋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시바가 거짓말을 하였다. 자기 주인을 모함 하고 다윗을 속인 것이다.
다윗이 돌아와 므비보셋을 만난다면 거짓말이 다 탄로 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지? 그래서 겁이 나서 시므이와 함께 급히 찾아온 것이다.
결국 그들이 가장 먼저 다윗 왕을 찾아 온 것은 다윗 왕을 진정으로 환영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시바는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기 위해 배신하고, 모함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얼마나 비루한가!
인격이 비루하게 되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남들에게도 해를 끼친다. 마지막에는 비참해진다.
사람이 비루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 재물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 이런 욕심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러면 비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고상한 사람인가, 비루한 사람인가? 여러분은 다 고상한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여러분의 인격이 고상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반대로 비루하게 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가리게 된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야 할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한다. 주변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려면 고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고상한 인격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예수 믿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처음부터 고상한 인격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인간은 다 죄인이고 비루하다.
비루한 인격을 고상한 인격으로 바꾸려면 예수 믿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워야 한다.
부패 타락한 인간의 정욕을 따라 행하면 비루한 자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고상한 자가 된다. 시므이가 다윗에게 저주하고 악행을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사울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시므이가 알았다면 다윗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 성경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혀 놓은 책이다.
고상한 자가 되려면, 세 번째로, 성령이 내 마음을 주장하시게 해야 한다.
육체의 정욕이 나를 주장하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다(갈 5:19-21).
사람이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서 이런 열매를 맺으면 비루한 자가 된다.
그러나 성령이 나를 주장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갈 5:22-23). 사람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고상한 자가 된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자가 된다.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시게 할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은혜 많이 받으면 된다.
은혜 받았다는 말은 성령께서 임하셔서 나를 감동하셨다는 말이다. 내가 은혜 많이 받으면 성령께서 나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사모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은혜 많이 받도록 힘쓰라.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을 받는다고 하셨고,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다.
또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해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비루한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고상한 분은 예수님이시다. 여러분은 예수 닮은 고상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마지막에는 천국에 다 가시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