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손
김 상 립
내가 몸이 아프기 시작한 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체중이 계속 준다는 것이었다. 70키로가 조금 넘던 체중이 이젠 50키로 후반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더 변해버린 데가 바로 손과 목이다. 선배들이‘나중에 늙으면 목하고 손은 숨길 수 없으니 미리 잘 관리하라’고 일렀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었다. 전보다 목이 많이 가늘어지고 피부가 늘어지니 쭈글쭈글하고 있었던 근육의 흔적만 외롭다. 그래도 목은 한 여름철을 제외하면 스카프를 두르던가 목 티를 입으면 조금은 커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자위하지만, 자주 노출되는 손은 어쩌나 싶다.
대개 남자 손을 예쁘다고 표현하기 쑥스럽지만, 내 손은 남자 손치고 꽤 괜찮은 편이었다. 손에 살이 붙어 제법 통통하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가축도 기르고 농사도 지어 봤지만, 그 후론 주로 사무실에서 일을 했던 까닭이리라. 그래서 어디 나가서 악수를 하거나 손을 쓸 데가 있어도 거리낌 없이 내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 반대로 평생 거친 일을 한 사람 손 같아서, 손 등의 혈관도 돌출되고 피부는 주름투성이니 내보이기가 민망할 정도다. 실제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한 결과라면 달리 문제될 것도 없을 터이지만, 병으로 인하여 1년여만에 그렇게 달라졌으니 참 씁쓸하다.
년 초에 자고 나면 손가락이 아프고 주먹 쥐기가 어려워져서 신경외과로 찾아가서 몇 가지 검사를 했더니, 퇴행성 관절 염이라 한다. 손을 많이 쓰지 말고, 뜨거운 물에 손을 자주 담그고 주물러 주는 게 효과가 있다 했다. 정 견디기 어려 우면 약을 줄 터이니 두고 먹어라 하기에, 수술할 수는 없는지 물었더니 ‘글세 아직 수술을 권하기가…’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병원을 방문했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이어서 손가락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그리고 왼손의 약손가락 끝 마디가 점점 굽어지며 왼쪽 방향으로 약간 휘어진다. 꼭 독사 머리 모양이다. 내 손 안에 독사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기막혀서 아픔을 참고 누르고, 비틀고, 별 짓 다해 봤지만 효과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평소 하던 대로 그냥 살자는 주의로 억지로 참아가며 살고 있다. 그래도 어쩌다 전등불 밑에서 내 손을 유심히 드려다 보고 있으면 괜히 콧등이 시큰해진다.
독일의 저명한 화가인 알브레이트 뒤러(1471-1528)의‘기도 하는 손’이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현재 독일 누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이 그림은 놀랍게도 연필로 드로잉(drawing)한 작품인데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비록 그림 속의 손은 주름 투성이고 거칠며 마디가 굵어져 있지만 볼수록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물론 그림에 얽힌 얘기가 널리 알려져 있어 좋게 보이는 측면도 있겠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따뜻한 생명력이 살아나와 진짜 기도하는 사람의 손같이 느껴진다.
그림에 대한 뒷얘기는 대략 이러하다. 젊은 날 뒤러는 화가가 될 결심을 하고 도시로 가서, 같은 꿈을 가진 또래 프란츠를 만나 함께 미술공부를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둘은 매우 가난했기에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육체노동이 너무 고되어 그림을 충분히 그릴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프란츠는‘내가 먼저 일을 하여 네가 미술 학교에 다니도록 도와주겠다. 나중에 성공 하면 나를 밀어 달라’고 말했다. 뒤러는 친구의 도움으로 미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화가로도 크게 성공하여, 프란츠를 도와주러 찾아왔다.
하지만 프란츠는 그 동안의 고생으로 뼈마디가 일그러져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상태였다. 뒤러는 뒤틀어진 친구의 손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한다. 어느 날, 그는 기도하는 프란츠를 보게 된다.‘하느님, 저는 일을 너무 심하게 했기 때문에 제 손으로는 이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 뒤러는 부디 성공한 화가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아직도 변함 없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뒤러는 북 바쳐 오르는 감정을 간신이 누르며 종이를 꺼내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즉석에서 그렸다 한다.
사람의 손을 보면 그가 살아온 내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하던 데,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내 손도 고왔는데 건강관리를 잘 못하여 이 모양이 되었다고 말할까? 아니다. 구차한 변명도 싫으니 차라리 젊었을 때 막노동을 자주했더니 라고 말해버리자. 내 손보다도 더 거친 프란츠의 손은 그렇게 아름답다고 널리 평가 받고 있는데, 나는 이 나이 되도록 뭘 하고 살았단 말인가? 도대체 내가 단 한 번이라도 타인과의 약속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졌던 때가 있었던가? 또 도움이 필요한 낯선 사람을 위해 정성껏 두 손 모아 기도한 적은 몇 번이나 되는가? 비록 험하게 보이는 손도 잘 살아온 사람의 손은 멋있게 보일 텐데 말이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절에 가서도 합장하고 빌지 않는 사람 이다. 물론 영험 하다는 바위 앞에서 두 손 모아 발원하지도 않지만, 정성껏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어떤 곳이던 되려 슬쩍 피해버린다. 아마 내 어머니가 평생을 흰 소복을 입고 빌고 빌며 살았던 삶이 너무 신산(辛酸)해 보여 내가 기피하려 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일찍부터 복이라는 게 빌어서 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렸으니 굳이 사정하고 구걸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지금 내 한 몸에 붙은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런 질병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 지기를 충심으로 간구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늙어가게 해달라고 정성껏 빌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먼 길 떠났으면 좋겠다.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