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 르노 바르바라스
진정으로 새로운 것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물일 수가 없고 어떤 과정일 수도 없다. 그것은 일종의 비존재(nothingness)이다. 그러므로 새로움의 가능성을 묻는 것은 이러한 비존재가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거기에는 단 한 가지 대답이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새로움은 사건(event)으로 존재한다. 사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어나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사건은 그것에 대한 원인이든, 이유이든 간에, 주어진 것 속에서, 존재하는 것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러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르노 바르바라스(김상환․장태순․박영선 엮음),『동서의 문화와 창조: 새로움이란 무엇인가?』(이학사, 2016)
해석과 감상
예술작품의 가치와 생명은 새로움(novelty)에 있다. 그 새로움이란 어떤 ‘사물’을 말하기도 하고, ‘과정’과 ‘사건’을 일컫기도 한다. 메를로-퐁티 현상학의 가장 대표적인 연구자로 지목되는 르노 바르바라스(Renaud Barbaras, 1955~)는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사건’ 현상에 그 방점을 두고 있다. 그는 현상학에서 출발하여 생명철학과 정신분석학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면서 새로운 현상학적 존재론을 모색한다. 새로움에 수반되는 미적 감수성과 상상력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생기(生起)하며, 그 사건은 비존재(非存在)와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비존재의 비(非)는 존재가 ‘아닌’ 것이라기 보다는 존재의 ‘다른’ 모습이며, 다른 장소(Atopos)를 지칭한다. 비의 존재는 현대시와 예술을 새롭게 규정하는 토대가 되며, 배아(胚芽, embryo)와 같은 근본적인 새로움의 사건 속에서 탄생한다. 해가 지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매양 있는 자연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일련의 과정과 미세한 차이를 생성하는 힘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퓌시스(Physis)’라는 존재 사건에 해당한다. 퓌시스가 가장 높은 의미의 포이에시스라면 시의 아름다움은 객관과 주관, 이성과 감성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근원적인 사건, 즉 존재사건(Ereignis)이 일으킨 빛의 파문이다. 그리고 변화무쌍한 존재를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이 포이에시스(Poiesis, 고정된 정의를 거부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창작 일반)라면, 시는 지상의 인간이 고안해 낸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김동규,「시가 아름다운 이유-하이데거 시론(詩論)을 중심으로」참조) 그것은 곧 마음의 무늬와 결이자 행역(行易)이다.
한편, 비(非)는 시(詩)와 동일한 모음 'ㅣ'을 가지고 있어 양자는 그 속성과 함의로 보아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시가 다른 경험, 다른 감정과 언어라면, 시적인 것[詩性, poeticity]은 다른 것들, 즉 ‘타자/부재/비존재’에 대한 사유와 방법을 말한다.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경계의 지점에 시의 묘운(竗韻)이, 묘운의 시가 존재한다, 그리고 사건으로서 시는 즉비(卽非)의 언어와 세계에 속한다. 하여 즉(卽)은 비(非)이며, ~이다[is]와 ~이 아니다[is not]가 공존해 있다. 모든 사물들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섞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진정한 새로움은 혼돈 속의 질서를 간파하고 구축하는 비존재의 사건, 혹은 사이-존재에 있다. "가로수들이 촉촉이 비에 젖는다/ 지우산을 쓰고 옛날처럼 길을 건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적막하다" (이시영, 「사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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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락당 작성시간 26.06.15 새로움에 수반되는 미적 감수성과 상상력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생기(生起)하며, 그 사건은 비존재(非存在)와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비존재의 비(非)는 존재가 ‘아닌’ 것이라기 보다는 존재의 ‘다른’ 모습이며, 다른 장소(Atopos)를 지칭한다. 비의 존재는 현대시와 예술을 새롭게 규정하는 토대가 되며, 배아(胚芽, embryo)와 같은 근본적인 새로움의 사건 속에서 탄생한다. - 그렇다. 김상환 평론가의 말씀처럼 '시는 언어와 언어 이전의 세계'를 동시에 불러낸다. 시는 언어 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시는 시간이면서 장소이고, 장소 이면서 사건이다. 결국 시는 지구에 있기도 하고, 지구 밖에 있기도 하다. 언어는 언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