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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을 닮고 싶다.

작성자김대희|작성시간26.06.06|조회수76 목록 댓글 6

호박꽃을 닮고 싶다.

 

 

김대희

 

  손자가 좋아하는 호박전을 부친다.

프라이팬위에서 노릇노릇 하게 익어가는 전을 바라보니 절로 미소가 번진다.

고소한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지자 오래전 기억 한 장면이 떠오른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어른들은 임산부가 좋은 음식을 먹어야 예쁜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남편은 어디선가 잉어를 먹으면 눈이 예쁜 아이가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 직접 구해 와 정성껏 끓여 주었다. 그러나 비린내가 부담스러워 몇 숟갈 뜨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물치가 좋다는 말을 듣고 또 다시 가물치를 구해 왔다. 어머니께서 큰 솥에 넣고 끓이시는 데 힘이 얼마나 좋았던지 솥뚜껑을 밀어 올리며 튀어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신랑이 온몸으로 솥뚜껑을 누르며 쩔쩔 매던 모습은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렇게 첫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내 삶에는 호박이 깊숙이 들어왔다. 산모에게 늙은 호박이 좋다며 남편이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호박을 구해왔다. 어머니께서는 커다란 호박을 삶아 삼베 보자기에 막대기로 정성껏 틀어 꾹 짜서 빛깔 고운 호박즙을그릇에 담아 내 앞에 놓아 주셨다. 부기를 빼고 기운을 돋운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챙겨 주셨고, 나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한 그릇씩 마시곤 했다. 덕분에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 정도 이었지만, 그 속에는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호박은 참 쓸모가 많은 채소다.

가을이면 시골마당 한편에 누워 있는 둥근 호박이 먼저 떠오른다. 투박한 생김새지만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애호박은 식탁위에 반찬으로 오르고, 늙은 호박은 죽이 되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씨앗마저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심심할 때 까먹을 수 있으니 버릴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인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내가 손자를 위해 호박전을 부친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전을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비 오는 날 둥글게 썬 애호박에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전을 부친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노릇하게 구워진 호박전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식구들이 둘러 앉아 따끈한 전을 집어 먹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행복한 모습이다.

 

  어느 수필가는 호박꽃을 순실한 농부의 꽃이라고 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넉넉한 품과 따뜻한 정을 품고 있는 꽃이라는 뜻일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 운동회가 있던 날 이 생각난다. 한 친구가 직접 만든 호박식혜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식혜는 보기에도 고왔지만 맛은 더욱 깊었다. 그 소박한 음식 속에는 친구의 정성과 배려가 담겨 있었고, 그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이가 들수록 호박을 좋아하게 된다. ‘호박이 넝쿨째 굴어 들어왔다는 속담처럼 호박은 풍요와 복을 상징한다. 또한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속은 알차고 따뜻하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화려함보다 넉넉함이 꾸밈보다 진심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청춘이었을 때는 화려한 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담장 아래 피어있는 노란 호박꽃이 자꾸 눈길이 간다. 호박꽃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백합처럼 고고하지도 않다. 그러나 새벽 햇살을 받으면 황금빛 등불처럼 환하게 빛난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묵묵히 열매를 키워낸다.

 

  문득 돌아보니 내 삶은 그와 달랐다. 작은 일에도 쉽게 서운했고, 남의말 한마디에 오래 상처를 받았다. 지나간 일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세월은 흘렀지만 내 마음은 아직 덜 익은 호박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어머니가 꼭 짜주시던 호박물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고 마셨던 따뜻한 호박 물도, 식구들이 둘러 앉아 먹던 호박전도, 운동회날 친구가 건네준 달콤한 호박 식혜도 모두 누군가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기억이었다.

 

  호박은 늘 넉넉함으로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바란다. 나도 언젠가는 호박꽃처럼 살 수 있기를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 자신의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도 주위를 따듯하게 만드는 사람, 넉넉한 품으로 누군가를 품어 주는 사람이 되기를.

 

노릇하게 익어가는 호박전을 뒤집으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닮고, 호박꽃의 넉넉함을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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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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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른숲 | 작성시간 26.06.07 호박꽃은 얼핏 보면 어리석고 둔한 꽃 같지만 넉넉함을 주는 농심의 꽃입니다. 글을 잘 풀었습니다.
  • 작성자김주희 | 작성시간 26.06.07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정답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울타리를 휘감으며 큼직하게 핀 꽃, 벌들의 놀이터, 쌈으로 먹던 호박잎, 칼국수의 위의 파란 애호박 채, 어머니가 부처 주시던 노릇노릇한 호박전...맛나게 읽었습니다^^
  • 작성자황보0락 | 작성시간 26.06.07 저는 호박꽃을 보면 호박벌과 호박 범벅이 제일먼져 생각이 납니다. 늘 넉넉함으로 남아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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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양홍철 | 작성시간 26.06.14 "문득 돌아보니 내 삶은 그와 달랐다. 작은 일에도 쉽게 서운했고, 남의말 한마디에 오래 상처를 받았다. 지나간 일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세월은 흘렀지만 내 마음은 아직 덜 익은 호박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호박과 관련된 추억들, 그리고 호박의 특성을 묘사 한 후 이렇게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셨군요.
    작가님, 화이팅입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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