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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삼국지]종회, 강유, 등애의 최후

작성자diablo|작성시간15.03.15|조회수1,734 목록 댓글 6

종회의 뱀꿈--------------------------------------

 한편 종회는 지난밤 꿈이 하도 뒤숭숭하여 강유에게 해몽을 부탁하며, “내가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수천만 마리의 큰 뱀이 나를 물어뜯었소. 이꿈은 길몽입니까? 흉몽입니까?” “제가 해몽에 자신은 없지만, 뱀이란 용종이지요. 그러니 길몽이라 생각됩니다. 대사를 앞두고 천하를 얻을 하늘의 예시인가 봅니다.” 강유가 다시 한 번 길몽을 강조하며 종회를 기분좋게 달래 주었다.

 하지만 강유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일찍이 강유는 제갈공명에게 기문둔갑술까지 전수받아 해몽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큰 뱀이 여의주를 물면 용이되어 승천하나, 땅에 떨어져 살게 되면 이무기가 된다. 이 이무기가 종회를 물었으니 이는 흉몽이지만 강유는 거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종회를 달래고 위로해야 했다.

 종회는 길몽을 꾸어 천시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고 의기양양해저 강유에게 묻기를 “성중에 감금한 제장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그동안 살펴보니 천시를 몰라 함께할 자들이 없어, 화를 불러올 위인들입니다. 속히 처리해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강장군이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속히 처리하시오.” “속히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유는 곧 종회의 명에 따라 군사를 거느리고 간다.

 

구건의 계교-------------------------------------------

 한편 종회의 곁에서 이를 알게된 심복 구건이 궁중에 갇혀있던 옛 상사인 호군 호열에게 몰래 찾아가, 갱도에 넣고 죽일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호열은 구건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호연에게 우리가 죽음에 처한 상황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옛정을 생각해서 내 절박한 상황을 아들 호연에게 알려만 주게.” 하고 말하자, “은인께서는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힘닿은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고 구건이 호열에게 약속을 한다.

 이후 구건은 종회를 찾아가 아뢰기를 “주군께서 제장들을 연금시켜서 모두 식사를 하는데 불편이 많습니다. 믿을만한 사람을 정하여 음식을 가지고 왕래케 하는 것이 어떨지요?” “그렇다면 네가 음식을 운반하는 책임을 지라.” “주군의 분부대로 식음을 전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구건은 내 말을 명심하라. 나는 너를믿고 큰 일을 맡겼으니, 이 일이 탄로 나면 그 책임은 너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종회는 구건을 너무도 깊이 믿으며 제장들을 감시하게 했다.

 구건은 몰래 호열과 친한 사람을 호열에게 들여 보내고, 호열은 친구를 보고 편지를 주어 아들 호연에게 전하라 부탁했다.

 편지를 받은 친구는 그날 밤, 쉬지않고 호연에게 달려가서 밀서를 전하자, 호연이 아비 호열의 밀서를 보고 크게 놀라 이 사실을 모든 영문에 알렸다.

 그러자 모든 제장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럴 수 없다며 호연의 영채로 몰려가 “우리가 목숨을 버릴지라도 의롭지 못한 명령은 따를 수 없다.” “그렇소. 나 호연은 정월 18일 종회의 영문으로 쳐들어가 멸절시키자고 제의하오.” “옳습니다. 우리 모두 찬성이오. 반적 종회를 멸절시킵시다.”

 감군 위관은 시종 주시하다가 마지막 결론을 내리고는, 곧 인마를 정돈하고 구건에게 호열과 감금된 제장들에게 거사를 알리게 했다.

 

위관의 거사(종회와 강유의 죽음)--------------------------------------

 한편 강유는 종회의 명령대로 제장들을 죽이려고 가다가,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발생하더니 그대로 혼절해 버리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깨어났다.

 이때 궁 밖에서 난리가 난 듯, 고함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사면에서 군사들이 쳐들어오고 있었다. 종회는 강유가 몸져 누워있으니 더욱 급하여, 전문을 모두 닫아걸고 군사를로 하여금 대항케 하지만, 다친 병사가 수십이 되었고 궁 밖은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다.

 위병들은 “역적 종회를 죽여라!” 하고 고함을 지르며 도끼로 전각문을 부시고 불을 지르며 들어왔다. 문이 허물어지자 종회의 군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하고, 이를 본 종회가 직접 칼을 뽑고 “도망치지 마라!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는가!” 하고 고함을 지르며 두어 명의 무사를 처버리지만, 날아오는 큰 화살 한 대가 종회의 심장을 뚫어버린다.

 한편 강유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전위로 올라가자 위병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비록 병든 몸이지만 용력을 다하여 칼을 휘둘러 순식간에 십 여 명의 위병을 베어버렸다. 그러나 강유는 갑자기 가슴통증이 도지자 쓰러지며 소리치기를 “내 계획이 무산된 것은 오로지 천명이로다!” 하며 스스로 칼을 목에 대어 긋고 자결해 버린다. 이때 강유의 나이 59세였다. 이 싸움은 종회와 강유가 죽자 곧 종지부를 찍는다.

 

등애의 죽음--------------------------------------

 위관은 싸움이 끝나자 “종회의 반란은 끝났다. 모든 군사들은 각자 영문으로 돌아가 명을 기다려라!” 하고 영을 내린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은 영채로 돌아가고, 몇 명의 장수들이 남아 강유의 시체를 거두어 촉의 한을 갚는다고 강유의 배를 갈랐다.

 시뻘건 간 사이에 달걀보다 더 큰 쓸개가 새파랗게 있자 “허어! 그놈 담 한 번 크네. 대단히 큰 담이야.” 하고 한마디씩 하고는 곧 강유의 집으로 달려가, 그의 가족들을 잡아다가 저자에 끌어내어 죽였다.

 한편 등애의 부하들은 강유와 종회가 죽자, 등애를 함거에서 풀어주려 면죽성으로 급히 말을 몰아 달려갔다. 이를 위관이 보고받자 크게 놀라며 “등애는 내가 잡아 함거에 실었기에 만일 등애가 풀려난다면 나는 등애에게 곧장 잡혀 죽게 될 것이다.” 걱정하자 곁에 있던 호군 전속이 “지난날 등애가 강유땅을 취하고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내가 이 원수를 갚겠소이다. 감군께서는 이를 나에게 맡겨 주시오.” “고맙소. 실수 없게 속히 처치하시오.”

 위관은 전속에게 5백의 기마병을 주어 등애 부자를 죽이라 명을 내리고, 전속이 급히 달려 면죽성에 당도하여, 함거에서 내리는 등애에게 인사를 한 후, 순간적으로 칼을 꺼내어 등애의 목을 내리쳐 죽였다. 방심이 등애의 목숨을 가져간 것이다. 이를 바라보던 아들 등충이 크게 놀라 전속에게 달려들었으나, 무기가 없는 맨손이다 보니 칼을 맞고 죽게 된다.

 한편 사마소는 종회를 잡고자 단단히 벼르며 장안으로 천자를 이끌고 출정하던 중, 허무하게 종회가 죽어 버리고 곧 강유도 죽었으며 등애마저 죽어 버렸다는 보고를 받는다. 사마소는 그냥 낙양으로 회군하게 되었다. 사마소로 봐서는 아주 잘된 일이었으며, 위관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무법천지 성도와, 안락공에 봉해진 후주---------------------------

 위 경원 5년인 함희 원년 봄 2월, 오장 정봉은 촉한이 망하자 원정 갔던 군사를 거두어 귀국하고, 중사승 화핵은 오왕 손휴에게 아뢰기를, “우리 오나라와 촉나라는 순치관계였습니다. 머지않아 사마소가 우리나라를 공격해 올 것이오니,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의 말이 옳소.” 손휴는 화핵의 말을 받아들여, 육손의 아들 육항을 진동장군으로 삼고 형주목을 겸임하게 하여 강구를 지키게 하고는, “정봉은 병마를 총독하고 좌장군 손이는 남서와 연강 일대를 지키고 수백개 영문에 둔병하라.” 하고 명을 내리는 등, 손휴는 제장들을 요충지로 보내 위병의 침입에 철저히 대비를 한다

 한편, 종회의 반란을 통해 죽은 자가 강유, 종회, 등애 뿐만이 아니고, 촉에서는 연이어 장익과 태자 유선, 한수정후 관이가 위병에 의해 살해 되었다. 느닷없이 태자가 죽고 여러 장수들이 살해되자 성도 사람들은, “전쟁은 끝났는데 태자와 장수들을 왜 죽이는가?” 하고는 크게 놀라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며, 서로 죽이고 달아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성도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10일이 지나자 사마소는 가충을 성도로 보내어 방을 붙이고 백성을 위로하게 했다. 방의 효과는 금새 나타나 들끓던 민심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무법천지의 세상이 재빨리 안정을 찾아갔다. 가충은 위관에게 성도를 지키게 하고 후주 유선을 낙양으로 데려갔다. 후주가 낙양으로 떠날 때, 상서령 번건과 시중 장소, 광록대부 초주, 그리고 극정만 따랐고 요화와 동궐은 병을 핑계로 따르지 않았으나, 얼마 뒤 요화는 망국의 한을 품고 울화병이 터져 죽고 말았다.

 한편 후주는 어려움 없이 낙양에 당도 하였고, 후주를 만난 사마소는 후주를 책망하며 “촉주가 실정(實情- 정치를 잘 못함)을 했으니 마땅히 참해야 겠소.” “저는 진공에게 지은죄가 없으며, 진공의 군대가 너그럽다 하여 바로 항복을 하였는데 이 무슨 말입니까?”
 후주는 벌벌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자 후주를 바라보던 백관들이 사마소에게 “촉주가 비록 나라의 기강은 잃었지만 일찍 항복해서 예를 갖추었으니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긴 저런 위인이야 살려두나 죽이나 그게 그것이 아니겠는가? 용종인줄 알았더니 미꾸리만도 못한 모질이구나!”
 사마소는 후주의 면전에서 막말을 함부로 하고 백관들의 말대로 후주를 살려두고 안락공(安樂公)에 봉하고는, 살 집과 급료를 주고 비단 1만필에 동비(童婢- 어린 여종) 백명을 주었다. 그리고 아들 유요와 신하 번건, 초주, 극정에게 후작을 봉하자 후주는 진공 사마소에게 큰 절을 올리고 대궐을 나왔다.
 또한 사마소는 무사를 시켜 내관 황호를 잡아와 저자에서 능지처참했다. 나라를 좀 먹고 백성을 해롭게 한 자는 철퇴를 내린다는 충의정신을 강조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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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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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diabl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16 갑자기 가슴통증에 거사를 실패하고 죽음을 택한 강유를 탄식한 시이다.

    ‘천수땅에 영준이라 자랑한 사람/ 양주땅에서 나온 기이한 재주다./ 계보는 강태공의 후예요, 병법은 무후의 제자였다./ 담대하니 두려움이 없고 영웅의 마음 맹세코 돌리지 아니 했네./ 성도에서 몸이 죽는 날 한나라 장수들 남은 슬픔이 있었네./’
  • 작성자diabl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16 훗날 등애가 죽은것을 슬퍼한 시인이 시를 지어 등애의 죽음을 탄식했다.

    ‘어려서부터 계산이 빨랐고/ 꾀가 많아 용병도 잘했다./ 영롱한 눈동자 지리를 판단했고./ 하늘을 우러르며 천문을 보았네./ 말을 달리니 산부리가 끊어졌고/ 군사를 몰고 가니 돌길도 갈라졌다./ 공을 다 이루고 몸이 그만 죽었구나!/ 원통하다. 그 한은 한강 구름에 엉키었구려./’
  • 작성자diabl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16 후주 유선은 나라가 망한 후 사마소에 의해 안락공에 봉해진다. 만일 현덕이 살았다면, 자룡이 살았다면 얼마나 분해하고 원통해했을까?
  • 작성자diabl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21 강유의 계보는 강태공의 후예라고 시에서도 나와있어, 한족의 싸움판에 동이족의 활약이 있는 것을 알수 있다. 특히 강감참 장군의 시호에 天水(천수)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천수 땅에서 태어난 강유와 연관된 단어가 아닌가 하여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하겠다.
    강감찬 장군의 시호를 적어 보면 <檢校太尉門下侍郞洞內史 門下平章事天水縣開國男 食邑三百戶>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에 묻어온 천수현(天水縣)은 무엇일까? 강유가 태어난 천수현은 아닐까? 강유의 태생지를 기념하여 강감찬 장군의 시호에 붙여 넣었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작성자diabl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3.21 다 아는바와 같이 위장들이 종회를 죽이고 강유도 죽이고, 그리고 그 가족들도 모두 다 죽였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역적은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던 연좌형벌이 엄격하던 전국시대에 강유의 혈통이 어떻게 보존되어 이어져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드날렸던 강감찬 장군의 시호에 천수라는 단어가 묻어 있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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