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슬픈역사ㅡ남한산성 전투ㅡ남한산성 도립공원 ㅡ 남한산성 수어장대 연주봉 웅성 ㅡ남한산성 서문 남한산성 둘레길 ㅡ좋은 인연 산행
작성자경운이작성시간25.03.01조회수542 목록 댓글 0남한산성 南漢山城
연주봉 웅성
수어장대 서문 암문 산행
남한산성 코스
마천역 출발 ㅡ남한산성 입구ㅡ
남한산성 둘레길 ㅡ연주봉 웅성 ㅡ
암문 ㅡ남한산성 서문 ㅡ수어장대
ㅡ암문 통과 ㅡ만천역으로 하산 ㅡ
약 8km 약 5시간 소요
남한산성의 슬픈역사
남한산성전투
南漢山城戰鬪
병자호란 때인 1637년 1월 10일
부터 2월 24일까지 45일 동안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청나라 군대에 맞서서 인조(仁祖)와
조선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농성전을 벌였으나, 포위되어
고립되자 항복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했던
인조(仁祖)는 후금(後金)과 형제의
관계로 동맹을 맺기로 하며 화친을 했다.
그러나 1636년(인조 14) 후금의
왕인 홍타이지[皇太極]는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며 조선에
군신(君臣)의 관계로 복속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홍타이지는
직접 13만에 이르는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했다.
홍타이지는 마부타[馬福塔]와
잉굴다이[英俄爾岱]로 하여금
돌격대를 이끌고 한양을 향해
신속히 진격하게 했으며,
동생인 도도[多鐸]와 조카인 요토
[岳託]에게는 병력을 이끌고
이를 지원하게 했다.
그리고 동생인 도르곤[多爾袞]과
자신의 맏아들인 후거[豪格]는
만주와 몽고의 병사들로 구성된
좌익군(左翼軍)을 이끌고
남하하게 했으며,
자신은 형인 다이샨[代善]과 함께
본대를 이끌고 조선으로 향했다.
1636년 12월 28일 선양[瀋陽]을
출발한 청나라 군대의 주력은
1637년 1월 5일 압록강 북안의
진강(鎭江)을 거쳐 조선으로 진입했다.
청나라 군대는 정묘호란 때와는
달리 조선군이 지키고 있던
의주의 백마산성(白馬山城),
평양의 자모산성(慈母山城), 황주의
정방산성(正方山城) 등을 우회
해서 한양으로 향했다.
때문에 조선의 조정은 청나라 군이
개성 부근에 이르른 1월 8일에서야
전쟁이 발발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나라 군대가 이미 개성 부근까지
남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조는
심 귀원(沈器遠)으로 하여금 한양을
지키게 하고, 강화도로 피난을 준비했다.
1월 9일 봉림대군(鳳林大君)ㆍ
인평대군(麟坪大君)을 비롯한
왕자들과 세자빈 등의 왕족들이
먼저 강화도로 피신했다.
그날 저녁 인조도 강화도로 가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마부타의 돌격대가
이미 양철평(良鐵坪, 지금의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인조는 신경진(申景禛)
으로 하여금 이들을 막게 하고,
자신은 도성을 빠져나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향했다.
1월 10일 인조는 김류(金瑬)의
건의로 남한산성을 벗어나
강화도로 가려고 했지만, 눈이
내려 이동이 어려워지자 포기했다.
인조는 청나라 군대의 진영에
최명길(崔鳴吉)을 사신으로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그리고 청나라가 왕의 동생과
대신(大臣)을 인질로 보내라고
요구하자 종친인
능봉수(綾峰守) 이칭(李偁)을
동생이라고 속여 판서
심집(沈諿)과 함께 보냈다.
그러나 거짓임이 드러나자
청나라는 세자를 인질로
보내라고 조건을 바꾸었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척화론
(斥和論)을 주장하는 신하들이
많았으므로
인조는 청나라의 요구를 거절하고,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근왕군(勤王軍)을 이끌고 상경하도록
지시하며 청나라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당시 남한산성에는 도성의
방위를 맡고 있던 어영청(御營廳)을
중심으로 1만3천여 명의 병력이
집결해 있었지만, 식량은 겨우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분량만 비축되어 있어서
장기 농성전을 벌이기는 어려웠다.
1월 14일 도도가 이끄는 후속 부대가
남한산성에 도착하면서 청나라
군대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조선군은 화포를 쏘며
청나라 군대의 공격을 물리쳤다.
1월 15일 5만여 명에 이르는
본대를 이끌고 개성에 도착한
홍타이지는 사신을 보내 투항을
권유했으나 인조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청나라 군대가 1월 17일
부터 공성 장비들을 동원해 대규모
공격을 가해오면서 남한산성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1월 26일 홍타이지가 이끄는
본대가 한양으로 진격해오자
한양을 지키던 심기원은
광릉(光陵)으로 물러났다.
한양을 점령한 홍타이지는 1월 29일
한강을 건너 탄천(炭川) 인근으로
이동해 주둔했다.
이처럼 5만에 이르는 본대까지
합류하면서 남한산성은 청나라의
대군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각 도의 관찰사와 병마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상경해
남한산성을 지원하려 했으나,
조직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제각기
움직이다가 청나라 군대에 격파당했다.
청나라 군대는 2월 1일부터 이른바
‘홍이포(紅夷砲)’라고 불리던
서양식 대포를 이용해 남한산성에
포격을 퍼부으며 공격을 해왔다.
청나라 군대의 포격으로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고 성 안에서도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게다가 성 안의 식량마저 부족해
지면서 조선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졌다.
그러자 인조는 2월 7일 홍서봉(洪瑞鳳)
ㆍ최명길ㆍ윤희(尹暉)를 보내 화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조는 2월 13일 이홍주(李弘胄)ㆍ
최명길ㆍ윤휘를 다시 보내
화의를 요청하고,
2월 15일에는 군신의 관계로
복속하겠다는 항복의 서신을
홍타이지에게 전했다.
그러나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직접
성을 나와 항복할 것을 요구하고,
인조가 이를 거절하면서
화의는 무산되었다.
그러자 홍타이지는 2월 16일
도르곤으로 하여금 강화도를
공격하게 해서 그곳에 피신해
있던 200여 명의 왕족과
대신들을 포로로 붙잡았다.
그리고 세자와 왕자 1명을 인질로
보낼 것을 투항의 조건으로 내세우며,
인조에게 직접 성을
나와 항복하라고 위협했다.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 안의 항전
의지는 완전히 꺾였다.
2월 23일 인조는 조정에서
척화파를 대표하던 윤집(尹集)ㆍ
오달재(吳達濟)ㆍ홍익한(洪翼漢)을
청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그리고 2월 24일에는 세자를
비롯한 50여 명만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서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
삼전동인 삼전도(三田渡) 나루로
가서 홍타이지에게 신하의
예를 하며 항복을 했다.
전쟁이 끝나자 2월 26일 홍타이지는
먼저 청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3월 4일 항복 조건에
따라 소현세자 이왕과
봉림대군 이호가 인질이 되어
도르곤을 따라 청나라로 향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
[ 南漢山城 守禦將臺 ]
남한산성에서 수어청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2021년 12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수어청의의
장수(將帥)가 군사를 지휘하던
군사시설이다.
서장대라고도 불렸으며,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하여
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굽어볼 수
있는 관측소의 역할을 하였다.
수어장대는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개축할 때 함께 건립되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후금의 군사적 압박,
이괄의난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이에 조정은 왕실의 보전과 한성의
수비를 위한 보장처
(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한성과 가깝고 방어요새로 적합한
남한선성을 왕실의 보장처로 삼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정비하고,
조선 왕실의 보장처로 갖추어야 할
여러 행정, 군사 시설을 설치하면서
군사 지휘소인 수어장대도 함께 건립되었다.
1686년~1711년 사이에 그려진
「남한산성도」에 따르면 당시에는
남한산성의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5개의 장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수어장대는 지금과 달리
단층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남한산성의 5개의 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게 되었고,
이후 1751년(영조 27)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이층누각으로 증축하고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 바깥쪽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 라는
편액을 내걸었다.
이후 1896년(고종 1)에 유수 박기수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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