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린후 사료가 더있는가 하여 인터넷을 찾아보니 운영자와 면식이있는 이인철박사가 복기대교수의 고조선연구소 와 공동으로 선춘령과 공험진을 찾은 영상이 나와있어 적잖이 놀랐다.
1000년전 고려 예종이 윤관장군을 시켜서 설치했고 , 500여년전 조선조 세종이 지시해서 찾아나섰던 고려의 강토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교수가 대단한 일을 한것이다.
공험진(公嶮鎭) 관할 구역 내에 있었다. 조선 초기 세종 때까지도 함길도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의 동북쪽 700리에 위치해 경계를 이루었다.선춘현(先春峴)이라고도 표기하였다. 경원도호부의 동림성(東林城)을 출발해 북쪽으로 5리쯤에 소다로영터[所多老營基], 다시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會叱家灘), 거기서 강을 건너 10리에 현성(縣城), 그리고 북쪽 90리에 어라손참(於羅孫站)이 있다.거기서 다시금 북쪽 30리에 허을손참(虛乙孫站), 북쪽 60리에 유선참(留善站), 동북쪽 70리에 거양성(巨陽城), 그리고 서쪽으로 60리에 선춘현에 이른다.
그런데 중국군사지도에 바로 그위치에 고려령이 있다.
이래서 군사지도 및 고지도를 연구하는것이 중요하다. 대학교수들 연구자들 제발 고지도,군사지도를 보시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H_pQHyujbE
심제.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원길로이 작성시간 17.08.14 위에 사진만 보시고 또 와아 온데 산성이네 하실까 염려되어 아끼는 사진으로 설명드림. 저 요동반도 끝에 보이는
그런 중, 대형석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 지역은 과거나 현재나 100km 내에서 정병 만명 모우기 어렵기에 굳이 산
성 필요없슴, 주변지역에서 수,당군과 같이 백만등의 침략은 불가능..그런데 그런 관점은 설명은 어디에도 없고
오직 산성 고려?고구려산성??하니 상상속의 중,대형석성등 자꾸 산성에만 방점두면 답이 없슴..척준경이야기 보
듯 여진은 흩어져 계속 보급선기습 흩어진 고려군17만도 방법無. 회령서 대략 250km 그리고 9성으로 병력산개 병
력절대부족..그래서 9성 돌려주고 말 잘들어 으흠~하고 끝낸 전투임. -
작성자史穿 작성시간 17.08.15 高句麗 東端으로 東海谷(동쪽의 큰 마을)은 제대로 지켜내기가 위험하기도 하여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려하던 곳이었다는 기록이 남당유고 고구려사초(략)에 나옵니다. 아마 그 동해곡이 그곳 쯤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후세 대진(발해)의 동쪽 강역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