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Dongan Q.T Zine

5/10 ; 예수님과 베드로의 질문과 대답

작성자곽노선|작성시간13.05.10|조회수811 목록 댓글 2

 

동안 QT : 2013. 5.  10 금요일                                                     

주님의

임재 속으로

찬양으로 주님의 임재 가운데 나갑니다.

찬송가 315 / 복음성가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21:15-25   (예수님과 베드로의 질문과 대답)              

 

예수님은 세 번 부인한 흔적을 지우기라도 하듯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의 대답을 듣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질문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찾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의 허물을 없애주시고 그를 새로운 사람으로 세우셔서 주님의 양들을 위탁하시며 돌보라고 맡기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의 사역을 묻는 베드로에게 자기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며 사람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신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Meditation, [2013. 5. 10 ] 곽노선 집사

예수님과 베드로의 질문과 대답

[성경본문] 요한복음 21:15-25

   말씀 Scripture I 본문을 3번 정도 읽으며 전체적인 뜻을 파악하기/ 내게 다가오는 말씀들을 적어보기

[내 양을 먹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예수님의 관심은 먹는 데 있지 않고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전도자의 사명을 일깨우시는 데 있으십니다. 아침식사 후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마태복음 16:17바요나 시몬이라는 말은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으로 본문의 전통사본의 읽기와 같습니다. 옛날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도망쳤듯이 시몬 베드로는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고기잡는 옛 직업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요나처럼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님께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6:16; 6:69 전통사본). 또 그는 마지막 유월절 저녁식탁에서 주께서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을 말씀하실 때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고( 26:33)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는 그의 단호한 마음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26:35). 그러나 그는 그 밤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수치스러운 연약과 실패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연약한 인간이었으나 그의 마음에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그것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의 고백은 그의 신앙고백이었고 그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주께서는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에게 이미 주셨던 사명을 다시 새롭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그를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전도와 목양(牧羊)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집입니다. 교회는 주께서 사랑하셔서 피흘려 사신 백성들의 연합체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교인들은 하나님의 양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입니다. 목사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들을 먹이며 보살피라고 세움받은 분들입니다( 20:28; 벧전 5:1-4). 베드로는 이제 고기잡는 옛 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제 전도와 목양의 사명을 기억하고 그 사업을 위해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6.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17.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주께서는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치라.” 주께서는 세 번째로 또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대답도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세 번이나 반복된 주의 질문에서 우리는 그 내용의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주님을 참으로 사랑합니까?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까? 이것은 중요한 질문입니다. 주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대답을 듣기를 원십니다. 우리는 꼭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으니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를 알지 못한 자이거나 믿지 않는 자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6:22).

 

        사도 바울은 또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 5:14-15). 그는 또 말하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14:7-8). 우리 모두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하고 그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으실 때마다 반복해서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양(牧羊)은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교회와 성도들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며 헌금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많은 신실한 전도자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한 명의 전도자를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 전도 사역, 곧 교회 사역을 위해 협력하는 모든 직원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이 세우신 전도자들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은 곧 그에게 한 것이며 하지 않은 것은 곧 그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5:40, 45). 또 주께서는 그가 파송하시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주를 영접하는 것이요 그를 대접하는 것은 곧 주를 대접하는 것이며 그 행위에 대한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40-42).

 

        주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으신 후 목양의 사명을 일깨우신 것은 목양의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들 중에 영혼들을 다루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오만가지의 더러운 질병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일보다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도 없겠지만, 사람의 영혼과 인격의 결함들은 육신의 질병들보다 더 치료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구원은 영적 병들을 치료하는 일과 같고 교회는 그런 병원과 같습니다. 인간의 죄성(罪性)은 여러 종류의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입니다. 그것은 뿌리뽑히지 않는 질병과 같습니다. 그런 죄인들을 다루며 가르치며 책망하며 위로하며 돌보는 것이 목양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억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만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죄로 인해 영혼과 인격에 병든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양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18.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19.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는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을 것을 암시하십니다. 초대교회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은 그가 주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는 암시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주께서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주의 일꾼된 우리는 주의 발자취를 따라 고난을 받고 순교도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고( 20:24), 또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딤후 1:8).

 

        고난을 각오하며 사는 것은 단지 전도자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주께서는 말씀하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16: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1:29).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0. 베드로가 돌아다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 제자는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서, "주님, 주님을 넘겨줄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베드로가 이 제자를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2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23. 이 말씀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들 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뿐이다.

 

         베드로는 돌이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던 잡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를 보고 예수께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주께서는 베드로가 그를 따를 때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다른 이의 일에 관여치 말고 주님만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일꾼들은, 비록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위해 바른 말을 하고 잘못된 일들을 지적하는 일들이 간혹 있으나, 다른 사역자와 비교하거나 경쟁하거나 참견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하면 됩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자도 다 그런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충성하면 됩니다. 우리는 남의 일을 상관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 앞에서만 충성하고 하나님의 명령만 준행해야 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는 주의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는 오해가 있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너는 상관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이해력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24.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또 이 사실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4-25,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아멘]

 

        주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 만찬석에서 주의 품에 의지하였던 그 제자가 바로 이 책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가 아는 대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입니다. 이 사실은 본서에서 그가 자신의 이름을 감춘 겸손한 미덕에서 짐작될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실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내용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을 선택하여 이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라는 말씀은 사도 요한 당시의 교회의 공동적 증거이며 사도 요한의 글에 대한 초대교회의 보충적 증거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가 증거한 대로 이 책에 기록된 사도 요한의 증거들은 다 참된 증거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성격입니다. 성경은 일차적으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들입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주께서는 옛날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듯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합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속죄의 은혜를 받은 자마다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전도와 목양(牧羊)의 일을 귀히 여깁시다. 세상에 선하고 귀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셔서 이루신 일, 곧 택한자들의 구원의 일보다 더 선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그들을 구해내는 것이 전도이며 구원받은 자들을 가르치며 보살피는 것이 목양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임무입니다. 우리는 전도와 목양의 일을 가장 크고 귀하게 여기고 이 일을 위해 마음과 물질을 바쳐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주님을 따릅시다. 주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은 또한 그를 따르는 길입니다. 그것이 참된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되 주께서 당하신 것과 같은 고난을 각오하며 따라야 하고,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치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 앞에서만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바이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구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그분만을 따릅시다.

 [김효성 강해서 拔萃]

 

     [베드로에게 내려진 사명]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양을 치는 목자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제자들에게 양을 보살피는 목자의 책임이 양도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승천 후에 제자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순교자의 자세로 복음 전도에 헌신하게 됩니다. 더욱이 주님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베드로는 죄책과 실의를 극복하고 초대 교회의 형성 과정에 중차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데일리 성경 拔萃]

묵상 Mediatation I 말씀 안에 머물며 하나님 경험하기 /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믿음으로 성령과 하나되는, 성령에 순종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깨달음과 교훈, 감사, 책망 회개)

 

15그들이 아침을 먹고 나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1시몬이여, 이 사람들보다 그대가 나를 a 2사랑하십니까?” 그가 예수님께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3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4어린양들을 5b먹이십시오.

요한의 아들 시몬---여기서 주님은 그분 자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자기 자신의 힘, 곧 자기의 타고난 힘을 너무 과신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귀한 것이었지만, 그는 자기의 타고난 힘을 부인하고 처리해야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타고난 힘과 자기 과신이 처리될 수 있도록, 그가 세 번이나 주님의 면전에서 주님을 부인하여 철저히 실패하도록 하셨습니다( 18:17, 25, 27). 더욱이 베드로는 주님의 부름을 떠나 뒤로 물러가는 데 앞장섰다. 주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그의 천연적인 확신도 이 실패를 통하여 처리된 것이 틀림없지만, 그는 다소 실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시어 그분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회복시키시고, 그분의 교회를 목양하는 일을 당부하셨으며, 그를 순교하도록 준비시키시어 베드로가 자기의 타고난 힘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고 주님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하십니까?”  이 헬라어 단어는 사랑보다 높고 고귀한 사랑을 말합니다. 21 16절에 있는사랑하십니까라는 단어도 동일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이 헬라어 단어 사랑친밀한 사랑을 가리킨다. 21 16절에 있는사랑하는이라는 단어와 17절에 있는사랑하십니까’(2), ‘사랑하는이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단어이다.

이 헬라어 단어는 친밀한 사랑을 가리킨다. 21 16절에 있는사랑하는이라는 단어와 17절에 있는사랑하십니까’(2), ‘사랑하는이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단어이다.

내 어린양들을 먹이십시오요한복음 15장에서 열매 맺음은 속 생명의 풍성이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린양들을 먹이는 것은 속 생명의 풍성으로 그들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먹이려면, 우리가 주님의 신성한 생명의 풍성을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복음서는 우리가 주님께 참여하기 위한 두 가지 필요 조건으로 이러한 것들을 제시합니다.

 

16내 양들을 목양하십시오목양은 양 떼( 10:14, 16), 즉 교회( 20:28)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건축과 관계있습니다( 16:18). 후에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서에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먹음으로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집의 건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고(벧전 2:2-5), 또한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라고 당부했습니다(벧전 5:1-4).

 

17주님께서 나를 아십니다이 절에서 첫 번째아십니다는 내적이며 주관적인 의식을 가리키고, 두 번째아십니다는 외적이며 객관적인 지식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8장 각주 551 참조. 이 절에서알다라는 의미로 두 헬라어 단어가 사용됩니다. 첫 번째는 외적이며 객관적인 지식을 가리키고, 두 번째는 내적이며 주관적인 의식을 가리킵니다. 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외적이며 객관적인 지식으로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은 아버지를 내적이며 주관적인 의식으로 알고 있다고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8내가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합니다. 그대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동여매고 그대가 원하는 곳을 다녔으나, 그대가 늙어서는 그대의 팔을 벌릴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띠를 동여매어 그대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19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후에 베드로는 이것을 언급했습니다(벧후 1:14). 여기서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베드로가 자신에 속한 어떤 것이나 자기 자신의 뜻에 의하지 않고, 그분을 죽기까지 따르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이었습니다.

 

22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대는 나를 따라오십시오.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거기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내가 올 때까지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분은 거기 계셨기 때문에 오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셨다가 나중에 그들에게로 돌아오시겠다는 뜻이었다면, 어떻게 그분께서나를 따라오십시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그분을 따를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와 관계가 있습니다. 보이는 임재의 방면에서는, 그분께서 떠나셨다가 후에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임재의 방면에서는, 그분께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떨어져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그들은 주님을 따를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부활 후에 주님은 제자들이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깨닫고 익히고, 이 임재에 따라 살도록 그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해 40일 동안 그들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1:3-4). 21 23절에서 주님은 자기를 따르다가 죽을 믿는 이들도 있고 자신이 올 때까지 남아 있을, 즉 살아 있을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23다만 내가 올 때까지 남아 있게 하고자 한들---” 요한복음 마지막 두 장이 포함하고 있는 일들은 매우 광범위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에는 교회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분을 찾음, 부활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남, 나타나신 주님을 체험하여 부활의 결과에 관한 계시그분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가 그분의 형제들임를 받음, 주님의 임재를 누리기 위해 믿는 이들과 집회함,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성령을 불어넣으시고 또 우리가 주님의 위임과 권위를 가지고 그분을 대표하도록 보내어짐,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생계를 위해 주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움, 타고난 힘이 제거된 후 주님을 사랑함, 교회의 건축을 위해 양 떼를 목양함,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자신의 뜻에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의 인도에 따라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또한 그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익히는 것 등입니다.

 

25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만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나는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담아 두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절은 요한복음 20 30절부터 31절까지와 함께 요한복음이 생명과 건축을 증언하기 위하여 약간의 선별된 사례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마태복음 28장에 있는 둘째 단락에서는 주님의 승천이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오늘날에도 여전히 땅에 계시며, 믿는 이들과 함께하시고, 또한 이 시대의 끝까지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끝은 주님께서 눈에 보이는 영광 안에서 나타나실 때(벧전 1:7, 살후 1:7), 즉 눈에 보이는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보이는 임재 안에서 땅으로 돌아오실 때입니다( 16:27). 마태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인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영적 왕이신 주님께서 부활의 영 안에서 여전히 땅에 계시며,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 가운데 천국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주님께서 이 땅을 떠나시어 하늘들로 승천하신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삼일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육체가 되시어( 1:14)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고( 1:29), 사람을 위한 구속의 죽음을 성취하신 후에 부활 안에서 변형되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으며(고전 15:45), 믿는 이들에게 들어가시어 영원토록 그들의 생명이 되심으로 결코 그들과 분리되실 수 없으시다는 것을 계시하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분께서 승천 안에서 떠나가시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복음서는 삼일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완성시키셨는지, 즉 어떻게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하셨는지를 온전히 계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핵심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영원한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기름을 부으시고 위임을 주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하시는 일은 삼일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셔서 사람과 연결되심으로써 수행되었다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보여 줍니다. 주님은 먼저 육체 안에서의 죽음을 통해 사람을 위해 구속을 성취하셨고,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셔서( 20:22) 그들과 연결되실 수 있으시도록( 17:21), 곧 그들이 삼일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도록, 부활을 통하여 그 영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가 되셨고, 사람들의 죄들을 없애시고 사람들 안에 들어가시어 그들의 생명이 되실 수 있으셨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삼일 하나님의 충만한 표현인 그분의 몸을 조성하는 지체들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믿는 이들 안에 계심으로 그들의 모든 실재가 되시고, 믿는 이들의 몸이 구속받아 변형될 때까지 보이지 않게 그들과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믿는 이들이 눈에 보이는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완전히 연결되며 그분과 완전히 같게 되어, 삼일 하나님과 구속받은 백성과의 영원한 상호거처로서 완성될 새 예루살렘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적용 Application I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와 구체적인 실천 찾기

 

 주님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몸으로 육신으로 뼛속 깊이 사랑하겠습니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겠습니다.

 

기도 Prayer I 내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주님을 보다 높고 고귀하게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친밀하게 사랑하게 하소서.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깊고 높고 넓게 사랑하게 하소서. 성령과 교통하고 순종하고 하나되는 삶이 내 안에서 이뤄지게 하소서.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

 

 

개인: 부르신 곳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교회: 주일에 진행되는 소망부 긴사랑 나드리 프로그램이 순적하게 진행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가득한 시간 되게 하소서

선교: 이상철/이민아/재현/재하(일본) – 어떤 변화 속에서도 자녀(지현, 재하)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기호헌 | 작성시간 13.05.11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고 싶은 말씀,
    묻고 싶은 것이 참 많으셨을텐데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만 세번씩이나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작성자기호헌 | 작성시간 13.05.11 베드로가 비록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였고
    또 사명을 놓아버리고
    앞장 서서 물고기 잡으러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베드로의 허물과 실수가 그렇게도 많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서 부정적인 것들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드로에게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네가 나를 사랑하잖니? 그러니까 내 양을 먹이렴>이란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