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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에서 온 편지

7월 9일 연중 제 14 주간 수요일

작성자이상훈(바오로)|작성시간25.07.09|조회수116 목록 댓글 1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 곧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회개의 실천이라는 지상의 사명을 함께 할 사도들, 열 두 제자를 뽑으시는 장면을 전합니다. 자신과 함께 할 자신의 최측근,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 아니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후에 이 지상의 교회를 세울 주춧돌이 될 제자들을 뽑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하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뽑으시는 열 두 제자의 모습을 전하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이례적으로 열 두 제자의 자세한 이력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제자들의 모습, 곧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당시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제자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정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들이 그 제자들이었으며,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던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종국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사람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잘나가고 똑똑한 유명 집안의 재력 있는, 세상으로부터 떠받들여지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로 뽑힌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소외받고 버림받는 사람들,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결국에는 자신을 제자로 불러주신 주님을 팔아넘길 죄인들이 제자들로 불리움 받았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위 가난한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박해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있는 이들, 하루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며 자신과 함께 하느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함께 할 이들을 뽑으실 때, 당신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 곧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자신과 언제나 늘 함께 하는 이들이 바로 자신의 사랑의 사목의 주 관심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곁에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을 외면한 채,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내 곁에 나의 형제가 외로움에 몸서리 치고 있는데, 내가 사랑을 선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오늘 독서의 창세기의 말씀은 야곱의 아들 가운데 형제로부터 미움을 받고 심지어 형들로 인해 죽음의 위협에까지 처해졌던 꿈쟁이 요셉이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눈에 들어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야기를 전하면서 다시 형들을 만나 요셉이 형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게 하는 장면을 전합니다.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형들에게 막내 동생을 데리고 자신의 앞으로 오라고 명하자 요셉의 형제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거야.” 그러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하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창세 41,21-22)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형제를 죽이려한 요셉의 형제들은 그 죗값을 치르게 됨을 알고 자신들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온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뒤늦은 후회일 뿐, 이미 지나간 그들의 잘못의 처절한 결과에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은 어찌 보면 매 순간 나약한 본성으로 죄의 유혹에 빠지고, 그 결과를 죄를 짓는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요셉의 형제들이 통렬히 후회하는 모습이 오늘 말씀을 대하며 저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오늘 말씀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항상 죄의 유혹 앞에서 무력하고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내가 지은 죄로 인한 결과들로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무엇을 바라시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비유적으로 잘 나타내줍니다. 이를 마르코 복음을 인용한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복음환호송의 이 말씀처럼 예수님이 선포하는 복음의 말씀은 상처와 고통으로 아파하는 우리들을 모든 상처가 깨끗이 나아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회개할 때, 다시 말해 내 주위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나의 사랑과 관심을 쏟아 그들과 사랑을 나눌 때, 그 때에 비로소 우리 안에서 하느님이 이루시는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시편의 말씀을 인용한 영성체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 34(33),9)

 

 영성체송의 이 말씀처럼 좋으신 주님을 맛보고 깨달은 사람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죄인들을 당신의 제자로 불러 주시고 그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일을 이루신 주님만을 바라며 주님께로 나아간다면 우리 역시 그 분으로부터 빛을 받아 우리 얼굴에 더 이상 부끄러움이 없는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이 전하는 진리, 곧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사랑의 기적을 여러분의 삶 안에서 체험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그리하여 그 사랑의 체험 속에서 언제나 기쁘고 행복한 나날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 3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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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규필스테파노 | 작성시간 25.07.10 독서에서 요셉의 형제(형)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였으며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형제들을 용서로 화해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같은 말씀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사도'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만 뽑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깨서 모퉁이 돌이 되시고 사도들은 주춧돌, 우리들은 그 위에 세워진 건물의 하나하나의 조각들입니다.
    이렇게 잘 구성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두는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나고 있습니다.
    한 몸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는 남들 보다 더 중요한 사람도 없고 덜 중요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른 민족들,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 가지 마라" 는 뜻은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은 가지 말고 나중에 가라"는 뜻이랍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배제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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