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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7월, 아픈 여름(3)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7.14|조회수126 목록 댓글 4

나는 내 실력을 겸허히 받아들여 8번 타자에 우익수를 맡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를 통해 우리 팀이 선공하기로 했고,

나는 더그아웃이라고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시합을 지켜봤다.

 

날씨는 참으로 좋았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공터에는 우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캐치볼을 하거나 축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는 우리 시합을 보는 중간 중간 다른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봤는데, 그 중에 정호가 보였다.

정호는 ‘갈매기’라고 하는 학교의 축구 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갈매기’와 다른 팀이 시합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호가 ‘갈매기’ 소속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 공을 차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호는 아마 공격수인 것 같았는데 몸놀림이 제법 좋았다.

 

정호도 내가 오늘 여기서 야구 시합하는 것을 알 텐데......,

축구가 더 빨리 끝날 테니 끝나고 이리로 오라고 할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왼 쪽 눈 아래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눈앞에 번쩍하고 빛이 났다.

빛은 바로 고장난 텔레비전의 화면처럼 변하면서 시야를 가리고 이어서 비릿한 피 냄새가 맡아졌다.

 

파울 볼에 맞은 것이었다.

그것도 라인드라이브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정신을 잃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같이 야구했던 한 친구의 아버지 병원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둘러싸고 있다가 내가 눈을 뜨자 기쁨과 반가움의 인사들을 했다.

그들 중에 정호도 있었다.

 

의사이신 친구 아버지에 의하면 공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눈에 정통으로 맞아 실명할 수도 있었다며,

다행히 뼈에도 이상이 없어 부기만 빠지면 괜찮다고 했다.

거울을 보니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눈 아래가 퉁퉁 부어있었다.

우리는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야구 시합에 걸려있던 내기 돈으로 빵집에 가서 빵과 우유로 실컷 포식을 했다.

 

부기는 금방 가라앉았지만 보라색 멍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학교에도 소문이 다 난 상태였지만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은

“박주정, 또 술주정부리다 싸웠냐?”라는 등 볼 때마다 놀려댔다.

승은이 누나는 멍든 부위를 계속 문질러주라고 날계란을 챙겨주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진희는 안타까운 표정과 재미있다는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 등지로 떠났던 선배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돝섬’ 선배들은 해마다 그랬듯이 어느 날 우리 재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재학생들은 1학년부터 우리 3학년까지 열 명 남짓이 모였다.

선배들은 우리 앞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자신들의 수험생활 경험담이나 과목별 공부 방법 등을 이야기해주었다.

내로라하는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의 조언은 나름 들어줄 만했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선배들은 맥주로, 우리는 음료수로 건배를 해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후 선배 한 사람이 2학년 후배를 데리고 들어왔다.

선배는 후배의 뒷목을 잡고 씩씩거리며 들어왔고 뒷목을 잡힌 후배는 고개를 내리깔고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이놈이 말이야, 화장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질 않겠냐?

어디서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어?

그것도 선배들 다 있는데 말이야.”

다른 선배들은 일부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는 덩달아 흥분하여 그 후배를 성토하며 머리를 쥐어박고 뺨을 때렸다.

“우리 써클 이름이 아깝다. 이런 놈은 제명해버려야 돼.”

“어디 2학년이 건방지게.......”

그 중 한 선배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박영빈. 네가 지금 재학생 회장 아니냐? 도대체 후배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이야?”

 

나는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알기로 그들 중 몇몇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1학년, 2학년일 때 이런 모임에서 그들이 선배들 몰래 담배피우는 것을 자주 목격했었다.

그들이 후배에게 담배 피운다고 뭐라 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은 ‘후배’가 ‘선배’들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것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난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대학 1학년부터 군대를 갔다 온 4학년까지

그렇게 많은 기수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질 않나.

똑같은 선후배인데 대학생은 되고 고등학생은 안 된다는 것인가.

게다가 후배는 선배들에게 예의를 갖추느라 몰래 화장실에 가서 혼자 담배를 피운 게 아닌가.

그랬으면 못 본 척하고 오면 되지 무얼 그리 호들갑을 떨며 폭력을 행사하느냐는 말이다.

좋다, 더 양보를 해서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공부에 방해가 되니 그래서 못 피우게 하는 것이라 하자.

그렇다면 좋게 말로 타이르면 될 것이지 왜 저렇게 폭력을 가하느냐는 말이다.

 

나는 그들의 이중성에 화가 났다.

자기들은 이제 개구리가 되었다고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렇게 선배 노릇을 하려는 건가.

이렇게 자기들의 권위를 세우려는 것인가.

나는 갑자기 선배들이 가소로워졌다.

나는 식탁 위에 있던 한 선배의 담뱃갑을 집어 들고 하나를 빼어 물었다.

그리고는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비록 정의의 사나이는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형님들, 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든 선배들과 후배들이 동작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에게 착한 모범생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선배들이 나를 좋아했고, 그런 이유로 그들이 추천하여 내가 재학생 회장을 맡게 된 것이었다.

“야, 영빈이 너.......”

“너 인마, 왜 그래?”

선배들이 서로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들 하시라고요. 형님들도 다 해봤던 일 아닙니까?”

한번 어색해진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임은 끝이 났다.

나는 후배들을 먼저 보내고 선배들께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분위기를 망쳐버렸습니다.”

몇몇 선배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실망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우울한 생각을 털어버리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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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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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14 이번 주는 내일 많이 바쁠 것 같아 미리 올립니다.

    그리고...
    내용 중에 선배님들과 돝섬에 대해 나쁜 인식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그렇듯 그 내용은 순전한 허구이며 제 상상의 산물입니다.
    다만 영빈이의 심리를 표현하고자 하다 보니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너무 언짢게 생각지 말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작성자마리사(7회 왕혜경) | 작성시간 17.07.15 호호호 나도 조심해야겠네?
    선호에게 잘못한 게 없나 잠깐 생각 중....
    근데 솔직히 선호 얼굴도 잘 몰라.
    갤러리에 사진 하나 올려도 좋을 것 같은데?
    글 쓰는 사람은 누구 눈치 보면 좋은 글 쓸 수가 없지.
    이렇게 이중성을 드러낸 선배가 누군지 말만 해.
    나보다 기수 낮으면 지금이라도 불러다 군기 잡을께...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17 아이고, 선배님.
    무슨 말씀을...^^;;
    돝섬에는 그런 분 안 계셨습니다.
    저보고 상상력과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혼내신 광제 형님 외에는... 하하.

  • 작성자최기석 | 작성시간 17.07.19 지난주 카페 결석으로 오늘 함께 읽습니다.
    돝섬회원의 인물 묘사가 현장의 사실적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섬세하군요.
    행여 비 돝섬원이 이 글을 읽고 오해의 여지도 충분히 있고요.
    가상현실을 실제 존재 현실에 빠져들게 하는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재학시절,
    선후배간 실제 이런 현실은 전혀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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