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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3월, Tragedy(3)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3.18|조회수44 목록 댓글 2

나는 실망감을 안고 내 방으로 갔다. 

책을 펼쳐 놓은 지 채 십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졸음이 밀려오고 속도 쓰라려왔다. 

나는 책을 덮고 겉옷을 입었다.


종수 형네 서점에는 형은 없고 형수만 있었다. 

형수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영빈아, 서점 문을 닫고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마침 잘 왔다. 

지금 내가 급히 어딜 좀 나가봐야 하는데 그 동안 서점 좀 봐줄래? 저녁 먹기 전까지는 올 거야.”

“네, 그러세요. 저 책 좀 보고 있을게요.”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형도 없이 형수와 같이 있으면 어색할 뿐 아니라 내 맘대로 책을 보기도 불편할 것 같아 

그냥 돌아갈까 하던 참이었는데 나로서도 나쁠 것 없었다.


나는 공부와 관련된 참고서 종류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유명 작가의 소설, 시집, 철학 서적 등이 꽂혀 있는 서가에 가서 이책 저책 꺼내서 책장을 후루루 넘기면서 읽어보곤 했다. 

책에는 특별한 향기가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책장만 후루루 넘겨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 향기가 정말 좋았다. 

그 향기만 맡고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책 향기를 맡다가 몸과 마음이 충분히 책 향기에 취했을 때 언제나처럼 어문각 클로버문고의 만화를 꺼내 들었다. 

지금처럼 짧은 시간에 지쳐버린 정신을 맑게 정화하는 데에는 역시 만화만한 것이 없었다. 

한참 만화를 읽고 있는데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 명의 여학생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만화책을 덮고 그들을 쳐다봤다. 

그 중 한 여학생이 내 얼굴과 내가 보다 덮어놓은 만화책 표지를 보더니 쿡! 하고 억지로 참는 듯한 짧은 웃음을 토해냈다.

다른 여학생들도 나와 만화책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만화책을 가리면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내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물었다.

“무슨 책 찾으시나요?”

“아, 예. ‘해법수학’ 주세요.”

나는 책을 꺼내어 깨끗한 포장지로 깔끔하게 포장해서 건네주었다. 

나가면서 한 여학생이 자기들끼리 귓속말이랍시고 한 이야기가 내게도 다 들려왔다.

“봤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유리의 성’ 보고 있는 거?”


아니,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유리의 성’을 보면 안 될 일은 또 무엇인가? 

다른 한 여학생이 서점 문턱을 넘어가면서 힐끔 나를 돌아다 봤다. 

고개를 돌릴 때 단발머리가 찰랑거리며 얼굴을 가렸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에는 크고 까만 눈과 오뚝한 코, 그리고 단아한 입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얼굴과 눈에 웃음이 가득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그 여학생에게 급격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만큼 그 여학생의 얼굴과 미소는 내가 여태 어디서도 본 적이 없던 신선하고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굴이 더 뜨거워졌고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여학생들을 붙잡고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나는 그냥 혼자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유리의 성’과 또 다른 만화책을 몇 권 더 보고 난 후 종수 형 내외가 왔다. 

종수 형은 손가락으로 검은 뿔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영빈아, 수고 많았지? 미안하다, 형수한테 이야기 듣고 좀 더 일찍 오려고 서둘렀는데도 이제야 도착했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책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요, 뭐.”

“그래, 그래, 고맙다.”

형수는 서점 안쪽 문을 통해 연결된 안채로 들어가고 형과 나만 서점에 남았다. 

형은 서점의 불을 켰다. 

몇 개의 형광등이 일제히 불을 밝히니 서점 안이 갑자기 빛의 세상으로 변했다. 

나는 그 순간적인 낯설음의 설렘을 가슴 한쪽으로 느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때? 3학년 되고 공부는 잘 돼?”

“아, 네.......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지난 번 시험 결과를 보니 그대로더라고요.”

“그래? 뭐가 잘 안 돼?”

“뭐....... 다 어렵지만 특히 수학이 젤 어려워요. 뜻대로 안 되더라고요.......”

나는 3학년 되어 처음 본 본고사 모의고사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했고 종수 형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야기했다.

“공부에 쏟아 붓는 시간이 많다고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거든. 

적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력 있게 공부하고 핵심을 짚을 수 있으면 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를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네 문제는 뭘까? 공부하는 게 재미는 있어?”

“아니, 형. 공부를 누가 재미로 해요? 고3이라니까 억지로 하는 거지, 안 그래요? 형은 공부가 재밌어요?”

“하하, 하긴 그렇지. 

그래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해서 뭘 어떻게 해야겠다든지 그런 생각이 있으면 공부하는 게 덜 지루하지 않겠니? 

영빈이 넌, 왜 공부를 하는데?”

“물론 좋은 대학 가려고요.”

“좋은 대학 가면? 그 다음엔 뭘 어떻게 할 건데?”

“뭐....... 글쎄요.......”


글쎄, 정말 글쎄라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었다.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간다, 그 다음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이야 했었다. 

다만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일자리 얻고, 그렇게 잘 살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살게 될 것이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선생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를 대학에 보내는 것만이 최종 목표였지 그 다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어떤 목표도 가져 본 적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대학 입학 이후의 일을 물어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라는 게 그저 좋은 대학에 가려고만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이야기를 들은 종수 형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좋은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왜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 좋다. 백 번 양보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하자, 그럼 그 다음엔 뭔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였고 대학엘 간다는 것도 무의미해 보였다. 

흔히 공부를 포기한 친구들이 하던 말처럼, 공부가 밥 먹여 주냐 혹은 대학이 밥 먹여 주냐 하는 생각이 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월요일 주초고사를 끝내고 나니 마음은 더욱 심란하고 속은 또 어찌나 쓰린지 

나는 책상 위에 엎드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억지로 참고 또 참았다. 모든 게 그저 덧없어 보였다.

Dust in the wind,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2)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찬란한 비늘을 반짝이고 있었고 

창문 바로 앞의 벚나무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붉은 망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기분과는 다르게 생동감 있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점심때가 되자 약속대로 아저씨가 오셨다. 

나는 아저씨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배와 입 안을 진찰하고 여기 저기 만져보고 두드려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고3병이네.”

“고3병요?”

나대신 아저씨가 의사에게 물었다.

“네, 신경성 위염이란 건데....... 약 지어 줄 테니 먹고....... 

이건 다른 방법이 없어요. 마음 편하게 먹고, 식사 시간 맞춰 잘 하고....... 얼른 졸업해야지 뭐.”

아주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의사의 설명에 아저씨는 많이 안도하는 듯했다.

“그래도 일단 네 아버지한테 연락은 해줘야겠다.”

약을 받아 나올 때 아저씨는 내 등을 툭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2) Dust in the wind - Kansas(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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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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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고명심(6회 조제순) | 작성시간 17.03.19 내 딸래미도 대학 입시 때문인지 그로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9월 초부터 시작된 대상포진을 참고 있다가 견디기 어려웠던지 10월 초에야 얘기했답니다. 그 후 한달 동안을 치료받으며 쉬어야 낫는다고 해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해서인지 마음에 차는 수능점수가 나오지 않아 많이 울더만. . . . 요즘 고 3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지긴 했나봐요. 나만 해도 대학 졸업한 아들내미를 지가 하고싶어하는 걸 하게 했거든요. 진작 그리 보냈어야 하는 걸 너무 늦어 미안했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그랬거든요. "엄마, 저 조리고등학교에 가고 싶어요."
  • 작성자바다(13변해숙) | 작성시간 17.03.23 그럼 제순선배 아들이 셰프인가요?
    절실하게 하고싶은 게 있다는 거, 진정 부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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