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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꿈

3월, Tragedy(4)

작성자gionex(12윤선호)|작성시간17.03.27|조회수53 목록 댓글 4

그날 밤, 아저씨는 아버지와 한참을 통화한 후 나를 불러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는 조금 피곤한 듯했다.

“인마, 사내자식이 남들 다 하는 공부하면서 뭘 그리 유세를 떠냐? 

몸과 마음을 좀 더 강하게 단련시켜 봐! 그렇게 약해 빠져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 

하여튼 이번 주말에 네 엄마가 내려가서 보약이라도 좀 해먹이겠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끊는다.”

“네.”

아버지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느릿한 동작으로 송수화기를 아저씨에게 돌려주고 꾸벅 인사를 하고 2층 내 방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조금 기분이 좋아질 것도 같았지만 아버지의 질책이 계속 뇌리에 남아 기분이 씁쓸했다. 


나는 헤드폰을 쓰고 카세트를 켠 후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항상 꽂혀 있는 테이프, 비지스의 ‘트래지디’가 헤드폰을 통해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볼륨을 내 귀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크게 높였다. 

베리 깁이 내 귀에 바짝 대고 비극이라고 외쳐댔다. 정말 비극이었다. 

그런데 더 비극인 것은 왜 비극인지를 내가 도통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뿌연 안개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만 할뿐,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없었다. 

공부는 제법 한다고 하는데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는 않고, 

이런 상황에서 무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무서워지기까지 하고,

게다가 종수 형의 말들이 묘한 방향으로 변형되어 치고 들어와 이렇게까지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지, 

굳이 대학엘 갈 필요가 있는지 등 공부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생각이 많고 복잡하기만 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머릿속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웅얼거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는 꼼짝도 않고 누운 채 그저 의식만 살아서 노래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

어머니가 내려오셨다. 

토요일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문 앞에서부터 온통 한약 냄새가 가득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지어온 한약을 계속 달이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하나씩 달여서 내게 먹이겠다고 한 모양이지만 어머니 성격에 그런 신세를 질 턱이 없었다.

“이거 다 달여서 냉장고에 넣어 둘 테니 아침, 저녁으로 한 대접씩 따라서 데워 먹어, 알았지?”

나는 그렇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한약 달이는 데만 열중하고 정작 나에게는 몇 마디 말도 붙이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나는 어머니 옆에 잠시 서 있다가 그냥 내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내려갈까 하다가 그냥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뜨니 방 안에 먹물을 엷게 풀어놓은 것처럼 주변이 어슴푸레했다. 

낮과 밤의 경계. 

특히 낮잠을 자다 이런 시간에 깨면 괜히 가슴이 시리고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어둠과 함께 밀려온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외롭지 않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어머니가 아줌마와 함께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 잤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라.”

어머니의 따뜻한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작정했다. 

원래는 아버지께 편지로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왕 어머니가 내려오셨고, 어머니는 언제나 내 편이었으니 어머니를 통해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저녁을 다 먹은 후 나는 어머니를 내 방으로 모셨다. 

나는 몇 번이나 말을 빙빙 돌리다가 겨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엄마, 나 휴학할래요.”

“그게 무슨 소리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병원에서는 신경성 위염이라고, 마음을 편히 먹어야 나을 수 있대요. 

근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마음을 편히 먹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1년 휴학을 하면서 병도 치료하고 또 밀린 공부도 하면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몸도 몸이지만 공부가 더 문제였다. 

지금 상태로는 나에게 닥칠 결과가 너무 무섭고 불안했다. 

1년을 휴학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나에게 1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다면 그 동안에 확실하게 국영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매달렸다. 

나로서는 이사갈 때 전학가겠다고 매달리던 때보다 훨씬 더 절박했다. 

나를 달래던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힘드냐? 그래, 알았다. 내가 올라가서 아버지와 상의해보마.”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낮잠을 잔 까닭도 있었겠지만 휴학 후의 계획을 짜느라 잠이 오질 않았다. 

휴학을 하고 일단 한두 달 정도는 푹 쉬면서 몸을 추스르는 거야. 

그런 다음에는 공부를 해야지. 

일단 영어는 ‘종합영어’를 한 번 복습하고 ‘영어의 왕도’를 두 번 정도 보면 되겠지. 

수학은 ‘해법수학’을 역시 두 번 정도 보면 완벽하겠지?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면 될 거야. 

나머지 과목이야 내년에 복학해서 그 때부터 공부해도 되는 거고... 

교무실 앞 복도 게시판에 붙어 있는 내 사진이 눈에 아른거렸다. 

대학에 합격하여 포효하는 내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벽을 넘어야 했지만 나는 벌써 휴학이 결정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그렇게 이런 계획 저런 계획을 세우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꿈 없이 편안한 잠이었다.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가신 다음 날 밤에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전화를 했었다고 아주머니가 알려주었다. 

나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동생이 받아서 아버지를 바꿔주었다.

“그래, 엄마 말 들어보니 몸이 많이 상한 모양이던데, 견디기 힘들 정도냐?”

아버지의 말 속에서 내 휴학에 대한 긍정의 기운이 약간 엿보이는 것도 같았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휴학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그래”, “그래”만 반복하면서 내 말을 들었다. 

한 10분이나 혼자 떠들었을까,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자 아버지가 낮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빈아.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휴학은 하지 말고 거기서 공부를 마치는 걸로 하자. 

그런 다음에 차라리 재수를 해라. 그러면 내년에 집에서 따신 밥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으니 더 좋지 않겠냐? 

지금 휴학을 해도 내년에는 또 너 혼자 거기 가 있어야 하니 나나 네 엄마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니 지금 몸이 그렇게 힘들면 좀 쉬엄쉬엄 공부해라. 그리고 내년에 집에 올라와서 재수를 하는 걸로 하자. 알겠냐?”


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반격이었다. 

내 머릿속은 손익을 따지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드디어 답이 나왔다. 

휴학은 1년을 쉬는 것이지만 재수는 1년을 더 하는 것이었다. 

또 현재가 중요하지 1년 뒤는 알 바 아니었다. 

비록 조삼모사라고 해도 내게는 현재가 더 중요했다. 

나는 다시 급하게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 이치로 본다면 아버지의 논리가 훨씬 설득적이었다. 

결국 나는 아버지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나의 휴학에 대한 꿈은 그렇게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나는 지난 토요일 밤의 그 화려했던 내 꿈의 궁전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망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힘없이 내 방으로 올라와 옷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벗어나고 싶었던 이 상황에 도로 갇혀버렸다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긴 휴학을 한다고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년이면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준비를 좀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 몸의 준비, 무엇보다 공부의 준비를. 

그런데 이제 틀려버렸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벗어나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고, 피하고 싶었고,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날들이 내 정면에서 나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헤드폰을 찾아 머리에 쓰고 카세트라디오의 플레이 단추를 눌렀다.

Tragedy, When you lose control and you got no soul, it's traged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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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3.27 주말에 개인적인 일과 교회 일이 겹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기다리...신 분은 없으시겠지만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 작성자마리사(7회 왕혜경) | 작성시간 17.03.28 기다렸어요. 글이 왜 안올라오나 해서.
    지금 회상하고 있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매일 복닥거리며 같이 살고 있는 나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계속 깜짝 깜짝 놀라고 있다는 거.
    아침 자율학습 시간 영어듣기방송이 나오고 있는데도 계속 사물함 근처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아이가 있어
    "얼른 교실에 들어가거라" 한 마디 했더니 "왜요? 저 똥싸고 왔어요" 돌아온 대답.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지, 어쩌면 지도라는 말 자체가 가당키나 한건지...
    독자 있으니 선호씨, 계속 꾸준히 올려줘요.
  • 작성자gionex(12윤선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3.28 하하~^^
    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말씀에 힘입어 계속 가보겠습니다.^^
  • 작성자바다(13변해숙) | 작성시간 17.03.29 며칠전에 분명 댓글 달았는데 사라졌네요 사라진건지 써놓곤 안올린건지 ...
    선호오빠 덕분에 트래지디 가사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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