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별 차별과 이를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
최근(9.26 MBC) TV뉴스를 보니 대기업들이 채용설명회를 할 때 서울 시내 소위 명문 6개교에만 기회를 주고 나머지 서울의 중하위 대학과 지방대에는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채용 원서나 인터넷 접수 시에도 그들 명문대생들에게는 보통과 다른 입사 지원서 양식이나 ID를 배분하여 다른 학교 출신자들과 차별을 짓는다고 합니다.
제가 거기서 느끼는 것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정말 멍청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기업(私企業)들이 어떻게 신입사원을 뽑고 관리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평가할 때 학력이나 학벌 하나로 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입니다. 저의 저서 『교육공화국』 149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 대기업 인사관리의 불합리성
“이런 관점에서 본인은 논리적 사유의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 필자의 신간 『논리의 탄생』은 그런 관점에서 국민들의 논리적 교육을 목적으로 쓰여진 하나의 참고서이다. 그리고 학벌차별이나 지역감정 같은 야만적인 문제도 근원적으로는 국민들의 합리적, 논리적 사유의 결핍에서 야기되는 문제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자.
<인간(주체)과 그의 속성의 관계>
여기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와 부분을 혼동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즉 한 사람의 내용은 그림 좌측의 속성(attributes)의 전부인데 우리사회는 그 중의 하나인 학력으로만 그 사람의 전체 역량을 평가한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형식주의 혹은 간판주의의 오류이다. 즉 한 주체의 역량을 오직 한 두 가지 형식으로만 판단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도외시하는 논리적 오류이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은 수많은 능력과 장점 그리고 특징 등을 가진 하나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 한다거나 혹은 시험을 잘 친다는 것은 한 인간이 가진 수많은 장점들 중의 하나의 장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적 존재이다. 한 때 그가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평생 갈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세에 본 한 번의 시험으로 한 인간의 전 생애의 가치평가가 결정된다. 그러니 수능시험 치고 대학에 한 번 입학하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이 진짜 그렇게 한다면 이는 결국 기업 인사과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취업 설명회는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채용 원서와 ID 문제에 대해상위 6개 대학 출신에게 다른 원서와 ID를 배분하여 그들을 여타학교 출신자와 구별한다면 이는 행정 편의주의 밖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런 학벌 차별하는 대기업들 조만간 망합니다. 왜냐면 사람의 역량이나 실력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어떻게 인재를 선발 할 수 있습니까? 요즘 한국의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노하우(Knowhow) 그리고 아이템을 개발하지 못하고 또 업적이 부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참다운 인재 선발의 시스템과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 역시 입시위주의 무능한 교육을 받아서 결국 스스로 무능해 진 것입니다. 정부, 공무원 뿐만 아니라 사기업까지 이렇게 학벌주의에 젖어 있다는 것은 곧 이 나라가 망한다는 징조입니다.
(2) 노예 양성의 한국의 교육
소위 좋은 대학 들어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그들이 진정 지성적이거나 탁월한 재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좋은 부모 만나서 비싼 사교육 받고 시험치는 요령 혹은 살인적인 암기력을 가진 순응의 천재일 뿐입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결코 천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교육부나 학교에서 말하는 학력, 이는 실은 암기력입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창의력은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뽑는 것처럼 시간이 감에 따라 저절로 술술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학원 선생들이나 교사들이 매를 들고 학생들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한다고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SBS 뉴스 추적(9.24)을 보니 강남의 유명학원들은 거의 수험생들을 두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그런 매를 맞는 수험생 역시 그를 "사랑의 매"라고 하며 달게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수험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점수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예적인 학습을 받은 아이들이 설령 명문대에 들어간들 무슨 훌륭한 일을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의 교육, 이는 노예를 키우는 교육입니다.
학력, 이는 노비문서입니다.
명문대 이는 고급 노예라는 증서입니다.
결국 이 나라는 고급 노예들이 저급 노예들을 다시 부리는 노예들의 나라입니다. 진정 이 나라에 자유인은 없습니다. 단지 조금 눈치 빠른 노예와 둔한 노예가 있을 뿐입니다. 진정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노예해방 그것입니다.
노예 제도를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공교육을 통한 정치입니다. 즉 노예 생산이 아니라 자유인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이 나라에 진정한 천재를 산출하고 또한 그들의 창조적 활동을 통해 나라에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최근(9.26 MBC) TV뉴스를 보니 대기업들이 채용설명회를 할 때 서울 시내 소위 명문 6개교에만 기회를 주고 나머지 서울의 중하위 대학과 지방대에는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채용 원서나 인터넷 접수 시에도 그들 명문대생들에게는 보통과 다른 입사 지원서 양식이나 ID를 배분하여 다른 학교 출신자들과 차별을 짓는다고 합니다.
제가 거기서 느끼는 것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정말 멍청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기업(私企業)들이 어떻게 신입사원을 뽑고 관리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과 역량을 평가할 때 학력이나 학벌 하나로 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입니다. 저의 저서 『교육공화국』 149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 대기업 인사관리의 불합리성
“이런 관점에서 본인은 논리적 사유의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 필자의 신간 『논리의 탄생』은 그런 관점에서 국민들의 논리적 교육을 목적으로 쓰여진 하나의 참고서이다. 그리고 학벌차별이나 지역감정 같은 야만적인 문제도 근원적으로는 국민들의 합리적, 논리적 사유의 결핍에서 야기되는 문제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자.
<인간(주체)과 그의 속성의 관계>
여기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체와 부분을 혼동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즉 한 사람의 내용은 그림 좌측의 속성(attributes)의 전부인데 우리사회는 그 중의 하나인 학력으로만 그 사람의 전체 역량을 평가한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형식주의 혹은 간판주의의 오류이다. 즉 한 주체의 역량을 오직 한 두 가지 형식으로만 판단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도외시하는 논리적 오류이다.
다시 말해 한 인간은 수많은 능력과 장점 그리고 특징 등을 가진 하나의 복합체이다. 따라서 공부를 잘 한다거나 혹은 시험을 잘 친다는 것은 한 인간이 가진 수많은 장점들 중의 하나의 장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적 존재이다. 한 때 그가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평생 갈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세에 본 한 번의 시험으로 한 인간의 전 생애의 가치평가가 결정된다. 그러니 수능시험 치고 대학에 한 번 입학하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들이 진짜 그렇게 한다면 이는 결국 기업 인사과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취업 설명회는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채용 원서와 ID 문제에 대해상위 6개 대학 출신에게 다른 원서와 ID를 배분하여 그들을 여타학교 출신자와 구별한다면 이는 행정 편의주의 밖에 다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런 학벌 차별하는 대기업들 조만간 망합니다. 왜냐면 사람의 역량이나 실력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어떻게 인재를 선발 할 수 있습니까? 요즘 한국의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노하우(Knowhow) 그리고 아이템을 개발하지 못하고 또 업적이 부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참다운 인재 선발의 시스템과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들 역시 입시위주의 무능한 교육을 받아서 결국 스스로 무능해 진 것입니다. 정부, 공무원 뿐만 아니라 사기업까지 이렇게 학벌주의에 젖어 있다는 것은 곧 이 나라가 망한다는 징조입니다.
(2) 노예 양성의 한국의 교육
소위 좋은 대학 들어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그들이 진정 지성적이거나 탁월한 재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좋은 부모 만나서 비싼 사교육 받고 시험치는 요령 혹은 살인적인 암기력을 가진 순응의 천재일 뿐입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결코 천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교육부나 학교에서 말하는 학력, 이는 실은 암기력입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창의력은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뽑는 것처럼 시간이 감에 따라 저절로 술술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학원 선생들이나 교사들이 매를 들고 학생들에게 가혹한 체벌을 가한다고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SBS 뉴스 추적(9.24)을 보니 강남의 유명학원들은 거의 수험생들을 두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원에서 그런 매를 맞는 수험생 역시 그를 "사랑의 매"라고 하며 달게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수험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여 점수를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예적인 학습을 받은 아이들이 설령 명문대에 들어간들 무슨 훌륭한 일을 하겠습니까?
대한민국의 교육, 이는 노예를 키우는 교육입니다.
학력, 이는 노비문서입니다.
명문대 이는 고급 노예라는 증서입니다.
결국 이 나라는 고급 노예들이 저급 노예들을 다시 부리는 노예들의 나라입니다. 진정 이 나라에 자유인은 없습니다. 단지 조금 눈치 빠른 노예와 둔한 노예가 있을 뿐입니다. 진정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노예해방 그것입니다.
노예 제도를 막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공교육을 통한 정치입니다. 즉 노예 생산이 아니라 자유인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이 나라에 진정한 천재를 산출하고 또한 그들의 창조적 활동을 통해 나라에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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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재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3.09.30 노예적 시간 강사 제도 역시 그런 총체적 교육 모순의 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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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재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3.09.30 그리고 삼성 역시 외국인들이 대주주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현재 한국의 주식 시장은 40%가 외국 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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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edalus 작성시간 03.10.01 저는 대기업이 채용할 때, 사람의 학력보다는 패를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현대 자동차 같은 경우는 고대만 채용한다던가, SK는 서울대만 채용한다던가 하는 것 말이죠.(소문일뿐입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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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Dedalus 작성시간 03.10.01 한 회사 내에서 특정 대학 출신의 사람들이 세를 형성해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나온 대학 출신의 사람들만을 채용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여전히 이런 패거리(경복고, 경기고,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정신에 메여 있다고 봅니다. 이 패거리 정신이 정치, 교육, 행정, 사법 등 모든 분야에서 부패의 원인이 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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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use 작성시간 03.10.01 맞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패거리?없는 사람들...무쟈게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