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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 시인방

보리수

작성자김별|작성시간15.06.07|조회수513 목록 댓글 5

 

보리수 / 김별

 

당신 뜰에 보리수는 지금쯤 맛있게 익었을까요

늘 닫혀 있던 대문가에 꽂혀있던 고지서처럼

부재한 날들이 주던 낯설음과 익숙한 편안함이

몇 계절을 몇 해를 지나도 정지해버린 시간처럼

아무런 기별도 없이 불쑥 찾은 발길에도 그대로 일 것 같습니다.

 

이맘 때 쯤은

울밑에 앵두도 붉어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조용히 지고 있을까요

비린 듯 텁텁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비가 그친 뒤 물비린내처럼 되살아나는 걸 보니

돌담엔 돌나물도 이끼처럼 푸르렀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마당가엔 조용히 진 감꽃도 고스란히 말라가겠지요,

감꽃목걸이를 꿰어 걸어주지 못한 것이

문득 가슴을 저리게 하다가

산마루를 넘지 못한 선한 노을빛이 되었습니다.

 

두려운 세상사에 흉흉한 인심은 더해져

신록으로 가득 찬 도시조차 사막인 듯

황량하고 뜨겁고 삭막해

어디 숨 쉴 곳조차 없는 날들이 새삼 낯설 것도 없지만

 

저녁 무렵

잡풀을 뽑다가 아픈 허리를 펴고 바라 본

큰 물가에 바람은 여전히

못 다 비운 그 마음을 씻어주기에 충분하겠지요.

수육을 얹은 상추쌈에 잘 익은 된장을 뜨고

술잔까지 겹들인 넉넉하고 풍성하던 저녁상을

어쩌면 다시는 마주 하지 못할 것 같아

허물어지듯 턱 막혀버린 가슴이

허한 것인지 허기진 것인지

깊이 숨을 들이쉬어도 호흡이 다 차지 않습니다.

 

산처럼 돌아앉아 무심히 지키려던

옹이진 마음 어느 한 귀퉁이를 뚫고 솟은 물길이

어느새 강물처럼 휘어져 흐른 세월까지 지키진 못했나 봅니다.

달맞이꽃처럼 남모르게 피었던 마음도

강심처럼 깊어져

허튼 원망이나 아픈 그리움보다는

돌에 새긴 이의 미소를 배워 가실 줄 압니다만

 

마음 한 자락 접고 여는 일은

뒷문을 열었다 닫는 일만큼이나 속절없는 것

목숨을 지키고 놓는 일보다 무엇이 쉽고 어렵다 하겠습니까

부질없이 사랑하다 미워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 해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실없는 다툼으로 보내버린 세월보다

가만히 손을 밀어 넣으면

아랫목처럼 따듯하던 그 가슴이

세월의 나이테로 싸일 것 같습니다.

 

그 지켜주지 못한 무언의 약속이

아프고 미안해

혀끝에 녹는 보리수 한 알이

뜨거운 눈물 맛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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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국화2687 | 작성시간 15.06.08 굿모닝 멋진 한주되세요
    어릴적배고파서 감꽃도 많이도 주워먹았는데 히힛
    . 우물가엔 들국화가 노랗캐 흐드러 지게피었찌요 세월이 흐르고보니 애틋한 추 억이되었네요 ㅎ ㅎ
    행복하고 멋진한주 되세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20 반갑습니다. 귀한 말씀에 인사가 늦었네요. 무덥고 지루하고 위험한 날들... 그렇지만 나무처럼 싱그럽게 잘 보내시고 계시지요. 님의 말씀에서 애틋한 추억 떠올려 봅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나기 되세요. 감사합니다. 들국화2687님
  • 작성자솔체영 | 작성시간 15.06.10 마음 한 자락접고 여는 일은
    뒷문을 열었다 담든 일만큼이나 속절없는것.....

    왜 이리도 공감이 가는지....ㅜㅠ
    나이가 익을수록 마음도 넉넉해지고 해야하건만
    이유없이 눈물샘은 시도,때도없이 주책맞게도 자꾸만 터져나오니 이젠 나이탓이라 하기엔 .....참 한심한 마음마져드네요

    별쌤 안녕하시지요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부를 묻는것이 일이 아닌 일이 되버렸네요
    건강살피시며 점점 강해지는 햇볕에 별샘의 청량하고 애잔한 고운글들 많이 감상할수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20
    솔체영님 잘 계시지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귀한 사람일수록 더 무심하게 ^_^ 대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이해하실 줄 아는 아무 근거 없는 마음 때문이지요. ^_^ 요즘 시절,,,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럽고 싫지요. 그렇기에 오히려 남의 일 보듯하며 살아야겠지요.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님의 공감의 말씀이 흐뭇하기보다는 짠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뜻이 있는 까닭이겠지요. 모쪼록 나무처럼 강물처럼 싱그럽고 늘 변함없는 날들 되세요.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솔체영 | 작성시간 15.06.20 김별 네~이리도 잘 지내고있네요
    또한 별쌤의 고운글에 얼마나 바쁘실지도 감히 짐작을 하고요 ㅎ
    정말이지 요즘은 無心하라를 맘속으로 되새기며 살지요
    너무 집착하고 온정신을 쏟아붓기보단 때로는 무심한듯이 바라보는 마음도 필요한듯 싶네요
    별 일 없으시면 그걸로 된것이아닐까요
    언제고 또 이렇듯 좋은글과 함께 오실테니 말이죠
    한바탕 션스레 내린 빗줄기에 마음도 세상도 깨끗해지는 느낌이네요
    주말밤을 여유로이 바늘과 벗삼아 시간을 보내고있네요
    별쌤의 주말밤도 편안하시길요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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