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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 시인방

삼등사 가는 길

작성자김별|작성시간14.03.19|조회수62 목록 댓글 8

삼등사(三燈寺)가는 길 / 김별

 

물 맑고 객도 없는 천등산 깊은 골짜기

화전도 못 일구는 하늘 아래 피난 곳

송이 따고 두릅 따고 고사리 꺾어

질화로 토장국에 옥수수밥을 먹으며

세상의 법도 나라님 말씀도 상관없이

반은 신선을 닮고 반은 산을 닮은

산수유꽃 토종꿀 같은 사람들 살았네

 

골이 깊을수록 해는 일찍 떨어져

동솟재 메밀밭보다 댓 뼘쯤은 큰 하늘밭에 별이 총총 박히고

산초씨보다 까만 밤은 한잠을 자고 나도 그대로인데

콩기름 접싯불 밑에

산 같은 남정네와 박꽃 같은 아낙이

칡넝쿨 같이 엉켜 한 세월 잊고 사는 토막집에도

꼭 하나 근심이 있어

상투머리 흰 터럭이 성성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한

말 못 할 금실이었네

 

굴뚝새 우는 간장빛보다 진한 밤

문풍지에 어리는 달빛은 부러울 게 없는데

산짐승도 깨어나는 첫새벽까지 헛기침으로 지새우는 밤은 늘어

박우물의 감로수를 떠놓고 빈 치성에도

정성이 부족인지 정이 부족인지

해마다 개복숭아 신살구만 지천이고

기다리는 소식은 재 너머 뻐꾸기울음보다 아득히 멀어

범바우 지나 삼등사 가는 길

돌탑은 무너지고 산딸기만 붉었다 혼자 지던 윤유월

 

솜씨 맵시 맘씨 어느 것 하나

버릴 것도 보탤 것도 없었건만

너럭바위 같은 품으로 업어주고 안아주고 얼러주는

님 같은 서방을 바라볼 면목도 염치도 없어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한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크나 큰 죄업의 용서를 비는 마음과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오누이처럼 살으리라는

비수처럼 독하고 햇솜보다 따듯한 품으로

 

한 달에 한 번 혹은 보름에 한 번 가는 한나절 길 장터에서

오갈 데 없는 비렁뱅이 여자를 데려다 손수 씻기고

며느리 맞듯 딸 보내듯 일월성신 치성으로 

은비녀에 쪽 찐 머리 올려주어 씨받이로 들였는데

여인은 심성이 곱고 얼굴이 곱고 태도 고와

이태 안 가 낳은 옥동자는 다섯 살에 천자문을 뗀 신동으로

학문은 성현이요 인품은 성인군자 선비로

천지신명 칠성님 삼신할미 부처님 점지해 준 복덩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건만 그 어미 그만

몸 푼 이듬해 복사꽃 피던 날에

유정히 흐르는 계곡물에 뜬 꽃잎처럼

황천길 떠나고 말았네

 

으름 다래에 도토리술이 익어가고

캐지 못한 더덕이며 산삼 송이 능이 석이가 그대로인데

전쟁보다 무서운 것이 세상사일까

박달나무 같이 야문 사람들도 하나 둘 봇짐을 쌌고

환갑 다 되어 본 아이도 공부 길을 도회지로 떠나

내외도 묻힐 자리 버려두고

놋숟가락이며 옻칠그릇 이불보퉁이를 지고 이고 따라 떠난

다시는 못 올 길

남겨진 빈집은 몇 해 안 가 쑥풀이 우거지고

돌담도 하르르 하르르 무너져 내린 세월 그 너머

 

세상 안을 밝히는 등이 하나

세상 밖을 밝히는 등이 하나

그 속에 백 팔 번뇌로 살아가는

결 고운 마음을 밝히는 등이 또 하나

싸리꽃 흐드러진 삼등사 가는 길

약초꾼도 길을 잃고

해종일 산꿩만 울어 지쳐

이제는 잊혀 진 옛이야기 전설이 되었네

아기 울음을 우는 살쾡이가 새끼 치고

반딧불 잡고 놀던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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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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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0 석포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는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비가 조금 내리는 날의 아침이네요. 행복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석포 | 작성시간 14.03.20 님 저는 님의글에 몇번 리플을
    단 기억이 납니다.
    편안한밤 되세요..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1
    ^^* 네 고맙습니다.
    말이 헛나왔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촌녀 | 작성시간 14.04.15 우리네 어머니 아니
    우리네 삶이었던 시절
    씨받이 여인을 두었지요
    귀한글 잘 보았읍니다
    언제나 존경합니다^_*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4.15 촌녀님은 그 시절을 이해하시네요.
    그런 삶을 지나 오늘에 이른 거지요.
    씨받이로 살았던 여인,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요즘도 현대판 씨받이는 있다고 하지요.^^*
    언제나 존경한다는 말씀에 부끄럽습니다.^^* 저도 님의 시 좋아합니다.
    아주 깊은 심성을 가지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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