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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 ♡ 시인방

1톤 트럭에 싣고 온 봄

작성자김별|작성시간14.03.24|조회수121 목록 댓글 10

1톤 트럭에 싣고 온 봄 / 김별

 

며칠 전까지 눈이 내리던 골목길에

1톤 트럭 한 대가

응달진 곳에 얼음을 깨듯 우렁찬 목소리로 접어듭니다.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가 두 근에 오천 원”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소복소복 담긴 빨간 딸기가

꽃인 듯 탐스러워

높다란 담벼락 너머에서 나비가 날아오를 것만 같은데...

 

묵은지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아직 잠긴 문을 여는 것이 두려웠을까

멍멍이마저 꼬리를 감춘 빙판길을

조심스레 빠져나가는 트럭의 호기 있던 목소리는

어느새 때 지난 허기에 지쳐 쇳소리가 섞여간다

 

“싸고 맛있는 딸기가 한소쿠리에 오천 원”

 

두꺼운 겨울외투의 내 주머니엔

동전만 몇 개 달랑 달랑...

“미안합니다”

“봄 한바구니 사 들이지 못해서...”

그렇지만 아저씨 많이 파셔서

유난히 눈도 많고 추웠던 이번 겨우내 얼어있던

사람들 무릎이며 가슴에

쑥뜸 같은 불덩이 하나씩 놓아 주세요

 

그리고 봄을 싣고 오셨으니

다 팔지 못한 봄일랑은 아까워 마시고

그냥 아저씨 몫으로 챙기세요

낡은 1톤 차 빚으로 남으면 어떤가요

물건 값은 수박 철에 갚을 요량으로

남루한 겨울옷 벗어버리고 봄맞이 새옷도 한 벌 사 입으세요

 

아지랑이처럼 지나가버린 1톤 차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박스 줍는 할머니가

빈 손수레를 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박스 없어요?”

나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아...

보던 신문이며, 책

그리고 내 시집 몇 권을 건네주었다

“할머니... 이것 팔면

딸기 한 근 사 드실 수 있나요?

모자라면 다시 오시구요“

동전 몇 개쯤은 더 보태드릴 수 있어요

담벼락에 모인 햇살 때문이었을까

 

잠시 현기증이 이는데

할머니의 주름진 웃음 속에서

비로소 훨훨 눈부신 나비가 날아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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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4 그런 정과 사랑을 밝은미소야님께서 많이도 주셨습니다.^^*
    님은 마치 꽃의 화신처럼 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기롭게 합니다.
    님을 알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의 칙칙한 옷과 마음까지도
    꽃물이 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흑백사진 같던 겨울의 사람들을
    화려한 봄꽃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만 같습니다.
    언제나 밝고 맑은 향기와 넉넉함과 넘치는 열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밝은미소야님...^^*
    님의 손길로 뿌릿신 꽃들이 이 봄을 다 채우고도 남을 것만 같습니다.
    님의 주머니에는 언제나 꽃씨들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아요.
    그 꽃씨들 어둡고 슬프고 고통스런 그늘진 곳을 꽃밭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아요.
    그런 님이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4 존경스럽습니다. 언제나 그 고운 손길... 사막의 도시에 꽃씨를 뿌려주세요.
    님의 뒤만 따라가면 언제나 꽃밭일테니까요.^^* 사랑으로 가득한 꽃밭...^^*
    향기가 넘칠 것 같아요.
  • 작성자시지야 | 작성시간 14.03.24 김별님!
    딸기 오천 원과 빈 박스가
    트럭기사와 할머니의 소담스런
    아름다운 사랑을 시작하게 하다.
    그곳에서 봄나비가 날아올랐다.
    소담소담 이야기에 감동입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김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24 시지야님 안녕하세요.
    마음결이 꽃잎처럼 향기롭고 고운 분이신 것 같네요.^^*
    그렇기에 딸기 오천 원과 빈 박스가
    그냥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사람의 정과 사랑으로 보인 것일 것 같아요.^^*
    그늘진 담장을 넘어 날아오르는 나비를 님도 보셨으니...
    세상이 한결 감동이겠지요.
    키싱그리머가 그려진 얼굴이 재미있습니다. ^^*
    고마운 선물로 받겠습니다.
    오늘 봄빛이 천지에 가득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겨울공주 | 작성시간 14.03.24 김별 님 빨간 딸기 한바구니에 담긴 마음이
    바구니에 담겨 있는 딸기보다
    더 붉고 아름답습니다.

    굵은 허리에 주름진 손 으로
    폐지를 줍는할머니 의 모습이
    예전 저의 할머니 생각이 드네요.

    할머니를 생각하는 고운 정성이 보입니다.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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