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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니벨룽의 반지>제4부<신들의 황혼>... 1990 뉴욕 메트

작성자서푼짜리오페라|작성시간18.06.23|조회수1,008 목록 댓글 8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극장

배경  신화 시대의 바위산, 라인 강가, 기비훙족 왕궁과 라인 강가의 숲

<1990년 4월 뉴욕 메트 / 281분 / 한글자막>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제임스 레바인 지휘 / 오토 쉥크 연출

 

지그프리트.....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사이에 태어난 영웅.............지그프리트 예루잘렘(테너)

브륀힐데........발퀴레였다가 여기서는 지그프리트의 아내...........힐데가르트 베렌스(소프라노)

군터..............기비훙족의 우두머리........................................앤터니 라펠(베이스바리톤)

하겐..............알베리히의 아들. 아버지가 다른 군터의 남동생.....마티 살미넨(베이스)

구트루네........군터의 여동생.................................................한나 리소프스카(소프라노)

알베리히........니벨룽족의 우두머리 난쟁이..............................에케하르트 블라쉬하(베이스바리톤)

발트라우테.....발퀴레. 브륀힐데의 자매...................................크리스타 루드비히(메조소프라노)

세 명의 노른(운명의 여신들,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그베네스 빈, 조이스 캐슬, 안드레아 그루버

세 명의 라인의 처녀들(소프라노)............................................카렌 에릭손, 다이안 케슬링, 메레디스 파르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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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Kenneth Chalmers / 하신애 번역>


바그너 <반지>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 중 <신들의 황혼>


바그너의 <반지> 연작 중 네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신들의 황혼>의 결말부는 오페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스펙터클한 극적 효과들에 대한 음악적 반주로 이루어져 있다. 바그너의 무대 지시문을 읽어보자.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브륀힐데는 말 위에 불타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든다. 불꽃은 즉시 활활 타올라 궁전 밖의 전체 공간을 채우고, 마치 건물 그 자체를 집어삼키는 듯 보인다...... 무대 전체가 화염으로 채워진 듯 보일 때, 타오르던 불꽃이 갑자기 잠잠해진다...... 동시에 라인 강이 둑을 넘어 범람하기 시작한다...... 라인 강의 처녀 세 명이 파도를 넘어 헤엄치는 것이 보인다...... 무너진 홀의 폐허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작열하는 천상의 불꽃을 지켜보고 있다...... 밝은 화염은 마치 신들의 궁전에 이르기까지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신들이 화염에 휩싸여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커튼이 내려온다."


오토 쉥크 Otto Schenk와 귄터 슈나이더-짐센 Gu:nther Schneider-Siemssen으로 이루어진 무대 제작팀은 <라인의 황금>에서 원문에 충실한 동시에 사실적인 방침을 이용하여 서사의 해석을 설계한 바 있다. 흔히 지적되듯 <반지> 연작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첫 지점은 사실상 <발퀴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이러한 방침은 이 종말론적인 결말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전면에 드러나고, 그들은 바그너의 요구들 중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부분까지도 충실히 수행해내었다. (브륀힐데의 말인 그라네는 예외이다). 관객들은 화염에서 하겐이 반지를 손에 넣으려다 끝내 익사하고 마는 라인강의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기적처럼 옮겨 다닐 수 있으며, 커튼이 내려진 후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바그너의 무대 지시문이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오직 서로의 관계로 인하여 이제는 나뉘어질 수 없게 된 연속적인 모티프들, 즉 발퀴레의 외침, 반지 자체, 라인 강의 처녀들 및 발할라를 거쳐 속죄의 마지막 테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음악 안에 명시되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슈나이더-짐센이 여섯 번째로 맡아 하는 <반지>의 무대 제작이다. 그의 시각적 접근법은 당대의 주요한 논평들을 자극했는데, 이것이 무엇이었으며 또한 이것이 무엇이 아니었느냐는 질문들이다. 이 디자이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극도로 정교한 무대 공학이 지닌 이점들을 철저히 이용했고, 이를 통해 대단원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시각적 요소들과 음악적 요소들의 동시성을 얻어낼 수 있었다. 오페라가 개인적인 해석에 의해 정의되기 시작한 최근 10년 동안, 이러한 원문에 대한 충실한 관찰이란 동시에 미학적인 선택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신 낭만주의'는 슈나이더-짐센의 표어이기도 했는데, 그는 이것이 미국에서 우세한 미술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고, 공연장에서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낭만주의 미술가들의 작품은 뚜렷한 시각적 참조물이 되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의 감성으로 충만한 풍경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에 있는 그랜드 캐년 역시 의미심장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디자이너의 말에 따르면 이 그랜드 캐년은 북유럽 전설의 원천인 사가(Saga)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한 광경이 주는 효과를 위해서는 무대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팀은 무언가를 특별히 새로 만들어내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바그너 전통을 현대식으로 이어받는 편을 택했다. 기비훙의 궁전은 바그너가 상상했던 것처럼 라인 강 위로 솟아있고, 궁전 안에 사는 사람들은 롤프 랑엔파스 Rolf Langenfass의 디자인에 따라 전설적인 과거의 모습들을 적절히 떠올리게 하는 의상들을 입었다. 많은 오페라 팬들에게 있어서 바그너의 제작은 유럽과 미국이라는 두 평행선으로 나뉜다. 한쪽은 19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에게서 시작하여 전후(戰後) 바이로이트의 추상에 이르는 논리적인 노선인데, 이는 라 스칼라의 아돌프 아피아 Adolphe Appia(1923년 토스카니니 Toscanini 지휘 하의 <트리스탄>)와 바젤 Basle(<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 의해 추진된 혁명적 시선의 재발견이며, 이후 루트 베르그하우스 Ruth Berghaus 혹은 파트리스 쉐로 Patrice Chereau의 작품에까지 이어졌다. (한 세기에 걸친 바이로이트의 <반지> 제작에 관해서는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를 통해 광범위하게 접할 수 있다.) 무대 제작은 이제 시각적 연합에서 풀려나 작품의 정치적 성향까지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날개 달린 투구와 사실적인 원경을 지닌 다른 한 노선 역시 뿌리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시각 요소들의 점차적인 삭제로 인하여 이 노선은 1988년-1989년의 <반지> 공연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적인 기량을 중시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하지만 1989년의 서구 세계는 바야흐로 변화의 직전에 있었다. 그 해에 붕괴의 위험에 처한 것은 발할 성만이 아니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무대는 무치 제작 당시의 현대적인 시대와 장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는 정말이지 '메트로폴리탄 버전의 반지'였으며, 기존에 대한 반발로서 작용한 것이다. 날개 달린 투구가 사라졌다고 한다면,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의 오프닝 듀엣에서 볼 수 있었던 정형화된 영웅적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그프리트 예루잘렘 Siegfried Jerusalem과 힐데가르트 베렌스 Hildegard Behrens는 각자의 역을 통해 일류 성악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라우라츠 멜시오르 Lauritz Melchior의 중량감이나 비르기트 닐손 Birgit Nilsson의 레이저와 같은 일격은 지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오로지 거부할 수 없는 현대성의 표지인 젊음의 민첩함이었던 것이다. 베렌스는 최초의 <발퀴레> 공연 이후 계속해서 브륀힐데의 역을 맡았고, 보다 발전된 인물을 창조해야 한다는 임무 아래 그녀가 등장하는 세 개의 오페라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들의 황혼>에서 듀엣 곡인 'Zu neuen Taten'을 혼자서 부르고 있다. <신들의 황혼>이 지니는 특징들에 관해 언급했던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자신의 의도는 영웅적인 태도를 공격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억제되고, 윤기 있으며, 가을과 같은 톤'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바그너가 니벨룽 사가(Saga)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음악적 구성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결국 어떤 사건들이 <신들의 황혼>을 이룰 것인가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러한 밑그림의 결과로서 <신들의 황혼>은 <반지>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친숙한 오페라적 요소들을 보다 많이 지니고 있다. 코러스들, 함께 노래하는 인물들, '서약'을 하는 장면조차도 그러하다. 특히 지그프리트의 동화 같은 방랑 이후 등장하는 서로 다른 역할들 사이의 상호교차는 <신들의 황혼>을 진정 전체적인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번 공연에서 베렌스와 예루잘렘을 보완해주는 것은 악마와 같은 열정을 지닌 인물인 하겐 역을 맡은 핀란드 출신의 베이스 마티 살미넨 Matti Salminen이다. 하겐은 브륀힐데의 희생 장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협박을 퍼부어댈 수 있는 저열한 인물인데, 살미넨은 심지어 노래를 하고 있지 않은 순간에조차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목소리 톤을 설정하고 전체적인 속도와 음악적 몸짓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바로 제임스 레바인이며, (서두르지 않는 유려함을 지닌 지그프리트의 장례 행렬을 보라.) 이를 통해 그는 작품 제작의 근원인 낭만주의를 강조하고 또한 강화하고 있다.



=== 대본집 해설 === <번역 및 해설 / 전예완>


<신들의 황혼>


서막의 의미


<신들의 황혼>은 앞의 두 악극과 마찬가지로 3막 구성이지만 서막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막은 노른들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실을 잣고 길이를 결정하여 끊는 모이라이처럼, 에르다의 딸들인 세 노른은 운명의 줄을 엮어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려준다. 과거에 보탄이 지혜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눈을 하나 빼주었고, 세계수(世界樹)에서 창자루를 잘라내었기에 숲이 여위어 버린 얘기, 그 계약수호의 창을 어떤 영웅이 부수었고 그 때문에 보탄은 시든 세계수를 찍어넘겨 만든 장작들로 발할 주위를 쌓고 신들의 멸망을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노래한다. 그들은 줄을 더 엮어 미래를 알아내려 하지만, 반지의 저주가 줄을 갉아먹어 줄이 끊어져 버린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게 된 그들은 어머니 에르다에게로 내려간다. 간주곡 이후, 운명의 줄이야 끊어지든 말든 아랑곳없이 사랑에 푹 빠진 브륀힐데외 지그프리트의 모습이 보인다. 브륀힐데의 절벽에서 함께 살던 지그프리트는 다시 모험길에 오르면서 그 반지를 브륀힐데에게 정표로써 남겨 준다.


이 서막의 기능은 무엇일까? 일단 이제까지의 사연과 현재의 상황을 간추려 알려 준다. 보탄의 과거사부터 신들의 멸망을 스스로 준비하게 된 현재까지의 모습이 이야기되고, 발퀴레 신분에서 사랑에 빠진 한 여인으로 변모한 브륀힐데 그리고 다시 길 떠나는 지그프리트의 모습을 보여주며, 반지의 행방 및 그것의 현재의 의미를 일러줌으로써 라인강변의 기비훙에서 펼쳐질 앞으로의 드라마를 예비한다. 그러나 이 서막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반지의 저주로 인해 운명의 줄이 끊어져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는 지점에서 등장하는 두 연인의 모습은, 인간의 '사랑'이 반지의 저주를 풀어내어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 내용은 그 사실을 명백히 보여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 사랑을 기억하라!"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운명의 질서가 아닌 자유로운 사랑이며, 그 증표가 바로 반지인 것이다.


노른들 장면은 <반지> 전체를 통해 가장 추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라인처녀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모르는 자연물에 가깝지만 '리얼하게' 놀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발퀴레들도 '감정없는 처녀'이긴 하지만 임무 수행의 즐거움과 자매애를 드러내며, 노른들의 어머니이자 태고의 지혜의 화신인 에르다조차 보탄과의 격앙된 장면을 연출해내는 데 비해, 노른들은 '줄을 엮는' 상징적 동작과 더불어 운명의 흐름 그 자체를 나타낸다. <지그프리트> 3막 1장에서의 보탄의 말처럼, '그들은 세계의 강요에 따라 줄을 엮을 뿐, 아무것도 바꾸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 지문에 보면 세 노른이 나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어떤 인간적 유대의 느낌을 주는 관계 호칭이나 어미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여, "동이 터 오는가?", "노래하지 않으려나?", "그대는 아는가?"와 같이 문어투를 사용하였다.


음침한 남자들 vs 빛나는 영웅


앞뒤 따지지 않고 거침없이 행위로 뛰어드는, 자신의 행동 이외의 주변상황에 아랑곳하지 않는 지그프리트의 성격은 <지그프리트>에서와 마찬가지다. 그는 군터를 보자마자 대뜸 '싸우든지, 친구가 되자'고 한다. 죽음의 사냥터에서 서로 술을 마실 때 군터는 지그프리트의 배신을 의심하는 유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지그프리트는 개의치 않고 호쾌하게 술을 막 섞어 버린다. 군터는 그저 한숨을 쉴 수밖에. 지그프리트는 '명랑한 영웅(heitrer Held)'을 넘어 '지나치게 즐거운 영웅(u:berfroher Held)'이다. <신들의 황혼>의 나머지 남자들은 모두 음울하다. <라인의 황금>에는 로게가 있고, <지그프리트>엔 미메가 있었다. 보탄은 격정적인 캐릭터이다. 그러나 <산들의 황혼>은 어떠한가? 군터, 하겐, 알베리히 - 이 음침하기 짝이 없는 흉한 중저음들 사이에서 빛나는 단 하나의 테너, 그가 바로 즐거운 영웅 지그프리트로서, 드라마 내에서 그의 모든 등장은 매우 극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안배되어 있다. 그는 오만이나 거드름도 없고, 겸손도 없다. 언제나 그저 자기 자신일 따름이다. 그는 두려움을 모르고, 반지의 가치도 모른다 - 그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지그프리트>에서 충분히 얘기되었던 바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음모와 격정과 비탄을 전혀 모르는 채 약에 취해 사랑하고, 모험하고, 노래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면서 제정신이 돌아온 순간에도 그는 오로지 브륀힐데와의 사랑만을 안다.


지나치게 즐거운, 즐거움이 넘치는(u:berfroh) 지그프리트와 대조되는 '즐겁지 못한(unfroh)' 사람이 바로 하겐이다. 스스로도 자신을 일컬어 '즐거운 자들을 증오하며, 즐거워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차갑고 뻑뻑한 피'를 지닌 그는 활기 없고 원한에 차 있으며, 음모가 그의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베리히는 이 <신들의 황혼>쯤 오면 집착의 화신, 반지에 대한 집착 그 자체이다. 사랑을 저주하고 포기함으로써 반지를 만들어냈고, 반지를 빼앗긴 고통 속에서 오로지 그것을 되찾는 일만이 존재이유인 그는, 니벨룽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 하겐에게 '즐거운 자들을 증오하고, 그럼으로써 애비인 나를 사랑하라'고 종용하며 반지에의 집착을 집요하게 불어넣는다. 2막 3장, 하겐이 기비훙의 신하들을 불러모으는 장면에서 하겐의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Wehe' 동기는 압권이다. <라인의 황금>에서 알베리히가 사랑에 실패하고 최초로 내뱉었던 그 동기 - 여기서는 비록 주군의 결혼 소식을 좀 더 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가짜로 연극을 하는 중에 외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쾌락을 모르며 빼앗긴 반지에 집착하는 니벨룽의 피가 외치는 고통의 탄식일 수도 있다. 사실 하겐은 드라마 속에서나 음악을 통해서나, 대단한 흡입력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구테 루네, 구트루네


북유럽 신화를 아는 사람, 혹은 판타지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도 '룬 문자'에 대해 들어 보았을 것이다. '룬(Rune)'은 게르만족이 1세기경부터 사용했던 고대 문자이다. 중세말까지도 북유럽에서 일반적 문자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그 주술적 의미와 기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 현대에도 판타지 문학이나 영화, 컴퓨터 게임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룬은 그것을 새겨 넣기만 해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의 문자로, 보탄이 창자루에 새겨 넣은 계약들도 바로 이 '룬'으로 되어 있다. 룬 문자들이 하나씩 새겨진 괘(卦)들은 점치는 도구로 사용되기에, '룬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말했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 'Rune'이라는 단어는 <반지> 전체에 골고루 등장하는데, 문맥에 따라 마법, 주문, 비밀 등의 우리 말로 옮겼고 때에 따라 '계약을 새겨 넣는다' 정도로만 번역하거나 약화시켜 해석한 곳도 있다. 본문에서는 종종 '룬'이 '마법(Zauber)'과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필요한 곳은 주석을 달아 놓았다.


미약을 마시고 제정신을 잃은 지그프리트는 군터의 여동생 구트루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 군터에게 그녀의 이름을 묻는다. '구트루네'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중얼거린다.


Sind's gute Runen,

die ihrem Aug' ich entrate 

그 이름이 뜻하는 행운의 징조를

그녀의 눈에서 읽어낼 수 있을까?


구트루네(Gutrune)라는 이름을 풀면 '좋은(gut) 룬(Rune)', 한마디로 '길조(吉兆)'쯤 되겠다. 구트루네라는 이름을 들은 지그프리트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내가 그녀의 눈에서 읽어낸 것은 길조일까?"라고 혼잣말하고 있다. 즉 이미 약에 취해 사랑에 빠진 지그프리트는, 구트루네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열망하면서 그녀의 눈빛 속에서 '길조' - 그녀의 이름처럼 - 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구트루네'라는 이름이 독일어로 불리는 한 어느 정도의 의역이 불가피하기에,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정화된 반지, 불타는 발할


이제까지 그 '반지'는 이 4부작을 이끌어 오는 견인차 역할을 했으되 극 속에 잠시 등장하거나 암시적으로만 언급되었다면, 이 <신들의 황혼>에서는 본격적으로 드라마 속에 얽혀들어 비극을 주도하는 매개체가 된다. 소유권의 주장도 급박하게 바뀌면서 반지를 둘러싼 이 대작이 대단원에 가까웠음을 암시한다. 지그프리트는 전 소유자인 파프너 얘기를 하며 브륀힐데에게 사랑의 증표로 반지를 넘겨주고, 군터로 변신한 지그프리트는 다시 그녀에게서 반지를 비틀어 빼앗는다. 죽은 지그프리트의 손에 있는 반지를 두고 군터와 하겐이 싸우다 군터가 하겐의 손에 죽는다. 지그프리트의 손에서 브륀힐데가 다시 반지를 빼내고, 화염 속에서 정화된 반지를 라인처녀들이 최종적으로 넘겨 받는다. 하겐은 반지를 따라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뿐인가? 발트라우테는 브륀힐데를 찾아와 계속 반지를 빼버리라고 애원하며, 알베리히는 강박적으로 반지를 부르짖는다. 4부작의 마지막에 이르러 '니벨룽의 반지'는 비로소 무대 위로 크게 떠오른다.


<라인의 황금>에서 반지는 사랑의 등가교환물로서 세상에 태어났다. <발퀴레>에서 법규가 사랑과 갈등을 빚으며 아직 사랑이 승리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반지는 파프너의 동굴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그프리트>에서 반지는 영웅의 손에 들어왔지만, 절대 권력과 부를 가져다준다는 반지의 가치는 자유인인 지그프리트에게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반지는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에게 '사랑' 그 자체이다. 보탄의 창이 부서지고 영원한 계약의 질서가 사라진 상태에서, 두 연인은 '절대권력'으로서의 반지를 추구하는 세계로부터 자신들의 반지, 곧 사랑을 지켜 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반지의 저주는 결국 지그프리트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그가 죽음의 순간에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사랑'의 힘은 죽은 이의 손을 쳐들어 반지를 쟁취하려는 세력들을 물리치며, 그와 하나되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브륀힐데의 사랑은 드디어 반지를 저주로부터 정화시켜 낸다. 그들을 태우고 반지를 정화시킨 불길이 발할을 태우는 불길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들의 죽음이, 반지의 정화가 신들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보다 더 자유로운 자', 오로지 사랑에 의해 인도됨으로써 '웃는 죽음'을 실현한 인간이, 보탄이 소망해 오던 바로 그 일을 완수했기 때문이다 - <발퀴레>에서 토로되었던 보탄의 자기 극복 기획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영원한 보편자인 신들은 멸망함으로써, 인간이 됨으로써 구원받은 것이다.




=== 줄거리 === <Karl Dietrich Gra:we / Mary Whittall 영역 / 하신애 번역>


[바그너의 무대 지시 원문은 이탤릭 체로 표시됨.]


신들의 우두머리인 보탄과 니벨룽 족인 알베리히는 한때 세계의 지배권을 놓고 서로 다투었던 적이 있다. 신과는 달리 난쟁이 알베리히는 그에게 힘과 부를 가져다 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준비를 마쳤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다. 라인 강의 처녀들이 지닌 '라인의 황금'을 훔친 그는 난쟁이들의 우두머리에게 명령하여 니벨룽 족으로 하여금  이 황금을 '힘의 반지'와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해주는 마법의 모자인 타른헬름으로 만들게 했다.

보탄은 이 보물들의 소유권을 얻고 또한 자신을 앞질러간 알베리히를 추월하기 위하여 점차적으로 강제와 의무, 책략과 자기 기만의 그물에 얽매이게 되었다. 결국 보탄은 힘 다툼에서 난쟁이만큼이나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알베리히는 반지에다 저주를 걸어 자신이나 보탄 혹은 그 이후의 누구도 반지를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해버렸던 것이다.

반지를 잃은 비통함과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자각으로 인하여 이 신들의 아버지는 마침내 묘안을 짜내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종족의 몰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의 희망을 새롭고 자유로운 종족이자 자신과는 달리 '적어도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의 힘에 걸어보려 했다. 반면 '사랑 없는' 알베리히는 황금으로 여인의 환심을 사서 '증오의 결실'인 아들 하겐을 얻었다. 이 니벨룽 족속의 아들인 하겐은 힘과 황금을 둘러싼 투쟁을 계속하여 이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서막


발퀴레의 바위 위,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의 동굴 밖


로게의 마법의 불꽃이 비추는 빛 속에서 세 명의 노른들이 보인다. 이들은 태곳적 지혜의 여신인 에르다의 세 딸로서, 세계의 지식으로 이루어진 황금 밧줄을 돌리고 있다. 쌍둥이인 이들은 각자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낸다. 맏이이자 가장 나이가 많은 첫째는 무대 앞쪽의 오른편에 펼쳐진 소나무 가지 아래에 누워 있다. 둘째는 동굴 입구 근처의 암벽에 몸을 기대고 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셋째는 무대 안쪽 중앙에 있는 바위 무대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자갈들 위에 앉아 있다. 침울함과 정적에 싸인 채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한 때 지식의 밧줄의 첫머리는 우주목인 물푸레나무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탄이 그 가지를 꺾어 창의 자루를 만든 이후 우주목은 시들어버렸다. 최근 그의 명령으로 죽은 나무를 베어 넘어뜨려 통나무를 발할 성 둘레에 쌓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멸망의 날에 신들의 궁전을 태워 없앨 준비라는 것이다. 노른들은 그들의 지식을 밧줄로 엮어 나가며 이를 나뭇가지나 바위에 묶어 팽팽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실이 뒤엉키고, 노른들은 알베리히의 황금 도둑질에 관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밧줄은 바위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걸려 생채기가 나고, 이를 다시 팽팽하게 만들려던 노른들의 시도는 급기야 밧줄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노른들은 공포에 질려 일어나 다같이 무대 중앙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끊어진 밧줄 조각들을 쥐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서로의 몸을 한데 묶는다. 그들의 지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들은 어머니인 에르다에게 돌아간다. [......] 하늘에서 여명의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지고, 발 아래에서 타오르던 불빛은 점차 사라진다. 해가 뜬다. 낮이다.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가 동굴에서 나온다. 지그프리트는 전신 무장을 했으며, 브륀힐데는 고삐를 잡고 그녀의 말을 이끌고 있다. 이 영웅은 '새로운 승리의 업적'을 쌓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의 사랑, 그리고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행복감이 주는 황홀경 속에서, 그들은 헤어지기 전에 사랑의 정표를 교환한다.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에게 알베리히의 반지를 주었으며, 브륀힐데는 그의 여행을 위하여 그녀의 말인 그라네를 선사한다. 지그프리트는 재빨리 말을 이끌고 절벽의 가장자리로 향한다. 지그프리트는 길을 내려가 말과 함께 바위 뒤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고, [......] 브륀힐데는 갑자기 산꼭대기 위에 홀로 남는다. 그녀는 바위 틈을 내려다보며 그의 모습을 찾는다. [......] 지그프리트의 뿔피리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온다. 그녀는 귀를 기울인다. 그녀는 절벽의 가장자리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이제 그녀는 저만치 아래에 있는 그를 다시금 볼 수 있다. 그녀는 환희에 차서 손을 흔든다. 그가 즐거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을 본 그녀는 기쁨에 차서 미소 짓는다.


제1막


제1장

라인 강의 둑 위에 있는 기비훙의 궁전

궁전의 뒤편은 완전히 개방된 공간으로, 넓디넓은 강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궁전은 강에 이르기까지 뻗쳐 있으며, 높은 암석지대로 둘러싸여 있다. 군트와 구트루네는 옥좌의 한쪽 편에 앉아 있으며, 그들 앞에는 술잔이 놓인 테이블이 하나 서 있다. 테이블 앞에는 하겐이 앉아 있다. 그는 알베리히와 그림힐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서, 자신의 이복형제인 군터와 구트루네(그들의 아버지는 기비히이다)를 자신의 계획에 몰래 끌어들이려 한다. 비록 적출 자손이라는 이점을 누리고 있기는 하나 그들은 하겐의 '영리함'을 존경하고 있었다. 하겐은 그들에게 늦추지 말고 어서 결혼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달성할 수 없는 듯 보이는 욕망들로 그들을 부채질한다. 구트루네는 반드시 '가장 강한 영웅'인 지그프리트를 그녀의 남편으로 맞이해야 하며, 군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브륀힐데를 그의 부인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트루네는 지그프리트에게 망각의 묘약을 마시게 하여 그의 기억을 지워야 하는데, 이는 지그프리트를 구트루네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미래의 처남을 위해 브륀힐데를 신붓감으로 데려온다는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함이다. 뿔피리 소리가 지그프리트의 도착을 알린다. 하겐은 그를 부르고, 지그프리트는 강가를 향해 배를 돌린다.


2장

지그프리트가 그의 배를 강가에 댄다. 하겐은 이를 강둑에 사슬로 묶는다.

지그프리트는 말과 함께 강가로 뛰어오른다. [......] 군터는 하겐과 합세하여 둑에 서 있다. 구트루네는 옥좌에 남아 찬탄으로 눈을 크게 뜬 채 지그프리트를 바라본다. [......] 지그프리트는 군터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그라네를 하겐에게 맡긴다. 하겐은 말을 끌고 간다. 한편 구트루네는 하겐의 신호에 응답하여 지그프리트 몰래 왼쪽에 있는 문으로 나간 후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군터는 지그프리트와 함께 앞쪽으로 걸어 나와 궁전 안으로 향하고, 그에게 들어오라고 초대한다. 어떠한 강제도 없이, 또한 자신이 덫에 걸리고 있다는 어떠한 자각도 없이 지그프리트는 니벨룽의 보물인 반지와 타른헬름에 관한 하겐의 질문에 대답한다. 그는 타른헬름이 지닌 마법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 하겐의 말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다. 하겐은 구트루네의 방문 쪽으로 가서 문을 연다. 구트루네가 들어오고, 그녀는 술로 가득 찬 뿔잔을 들고 나와 지그프리트에게 접근한다.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를 생각하며 축배를 승낙한다. 그는 뿔잔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대고 단 한 번의 긴 몸짓으로 잔을 비운다. 그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애써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구트루네에게 뿔잔을 돌려준다. 지그프리트는 그 즉시 격렬한 열정에 빠진 채로 그의 눈을 구트루네에게 고정시킨다. 구트루네는 부끄러운 듯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 그는 열렬히 그녀의 손을 잡는다. [......] 구트루네는 무의식 중에 하겐의 눈을 쳐다본다. 그녀는 머리를 조심스럽게 기울여 자신이 지그프리트에게 어울릴 만한 가치가 없음을 나타내는 듯한 몸짓을 한다. 그녀는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다시금 홀을 떠난다. 하겐과 군터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이, 지그프리트는 마치 마력에 빠진 사람처럼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 지그프리트로부터 아내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군터는 실은 그의 마음이 브륀힐데에게 있음을, 그러나 브륀힐데를 보호하는 화염의 벽 때문에 그녀를 얻겠다는 희망을 버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브륀힐데의 이름을 들었을 때 지그프리트가 보인 반응은 이미 그가 그녀에 관한 기억들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음을 드러낸다. 그는 황홀경에 취해있던 자신을 가다듬고서 활기를 띤 채 군터에게로 향한다. 구트루네의 손을 다시금 잡고서 그는 자신이 기꺼이 타른헬름의 힘을 빌려 군터로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군터를 위해 브륀힐데를 데리고 오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 약속의 증표로 그는 피로 맺은 의형제의 서약을 제의한다. 하겐은 신선한 와인으로 뿔잔을 가득 채우고 이를 지그프리트와 군터에게 건넨다. 그들은 각자의 칼로 팔에 상처를 내어 이를 뿔잔의 입구에 갖다 대었으며, 또한 두 개의 손가락을 뿔잔에 얹었다. 하겐은 그들 사이에 서서 뿔잔을 받쳐들고 있다. 하겐은 서약에 참여하지 않으며, 지그프리트와 군터가 서약의 술을 다 마시고 나자 칼을 빼어 뿔잔을 두 조각으로 자른다. 군터와 지그프리트는 악수를 한다. [......] 더 이상의 지체 없이 둘은 브륀힐데의 바위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구트루네는 지그프리트의 갑작스러운 출발에 깜짝 놀란다. 하겐은 그녀에게 그가 떠나게 된 이유 및 그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은' 열망에 자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녀는 초조함과 흥분에 휩싸인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지그프리트는 이제 노를 움켜쥐고 하류를 향해 저어가며, 곧 시야에서 사라진다. 하겐은 그의 성공이 가져다 준 음흉한 만족감에 젖고, 그에게 반지를 가져다 줄 앞으로의 계획들에 관해 심사 숙고한다.


3장

발퀴레의 바위 꼭대기

(서두와 같은 장소)

브륀힐데는 동굴의 입구에 앉아 생각에 빠진 채 말없이 지그프리트의 반지를 바라본다. 더없이 행복했던 기억들에 사로잡힌 채 그녀는 반지를 키스로 뒤덮는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 브륀힐데는 [......] 희미하게 보이는 먼 곳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폭풍을 머금은 검은 구름이 나타나 바위 무대의 가장자리 근처로 다가간다. 발퀴레 중의 한 명이자 브륀힐데의 이복자매인 발트라우테가 발퀴레의 바위에 오른다. 브륀힐데는 반가움과 흥분을 느끼며 보탄이 그녀에게 내렸던 처벌을 거두어들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발트라우테는 사실 브륀힐데의 근처에 가지 말라는 보탄의 엄명을 일부러 어긴 것이다. 그녀는 브륀힐데에게 늙은 신의 마지막 남은 소망을 들어달라고 간청한다. 보탄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멸망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반지를 라인 강의 처녀들에게 돌려주는 것만이 신들과 세계를 알베리히의 저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브륀힐데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반지와 떨어져야 한다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 반지란 그저 지그프리트가 준 사랑의 증표일 뿐이었던 것이다. 임무에 실패한 발트라우테는 서둘러 돌아간다. 곧 폭풍을 머금은 구름이 숲 밖으로 떠오르고, 이는 바람을 타고 멀어진다. [......] 저녁은 저물어 가고 있다. 꼭대기 밑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점차 밝아진다. 브륀힐데는 이러한 풍경들 속에서 평화로워 보인다. 아래쪽에서 지그프리트의 뿔피리 소리가 들리고, 점차 가까워진다. [......] 브륀힐데는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바위 무대의 가장자리로 달려간다. 화염이 높이 치솟고, 지그프리트는 이를 피해 높은 바위 위로 뛰어오른다. 화염의 기세는 즉시 움츠러들고, 그들을 비추는 빛은 이제 아래쪽에서 비친다. 타른헬름을 써서 얼굴의 반을 가린 지그프리트는 오직 눈만을 자유롭게 드러냈을 뿐이다. 그는 군터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브륀힐데는 주춤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무대 앞쪽으로 달아나고, 그곳에서 놀라움에 사로잡혀 할 말을 잊은 채 그녀의 눈을 지그프리트에게 고정시킨다. [......] 스스로를 기비훙의 군터라고 소개하는 이 남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녀는 지그프리트의 반지를 낀 손을 뻗어 위협하려 한다. 그는 그녀 앞으로 나선다. 그들은 서로 분투한다. 그녀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스스로를 쥐어뜯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달려나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기를 반복한다. 지그프리트는 다시 그녀에게 달려든다. 브륀힐데는 도망가고, 그는 그런 그녀를 붙잡는다. 그들은 다시 분투한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낸다. 브륀힐데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다. 마침내 그녀는 패배한 자와 같이 그의 팔 안에 쓰러지고, 그녀의 눈은 의식을 잃은 채 지그프리트의 눈과 마주친다. '군터'는 그녀에게 동굴의 방을 자신과 함께 쓸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지그프리트는 자신이 '형제로서의 신의'를 지켰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칼을 불러 증인으로 삼고, 노퉁을 그와 군터의 신부 사이에 놓아둔다.


제2막


1장

기비훙의 궁전 밖에 있는 라인 강변

오른쪽에는 홀로 향한 열린 입구가 보인다. 왼쪽에는 강둑이 있는데, 이는 높이 솟아오른 암석지대에서부터 수많은 산긷들과의 교차점을 거쳐[......], 장면의 뒤쪽을 지나 오른쪽까지 연결되고 있다. [......] 밤이다. 하겐은 창을 팔에 안고 방패를 옆에 둔 채 홀의 기둥에 기대앉아 잠들어 있다. 순간 달이 솟아올라 하겐과 그 주위 사물들에게 거친 빛을 뿌린다. 이제 알베리히가 보인다. 그는 하겐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의 팔을 아들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알베리히는 아들에게 무력해진 보탄이 어쩔 수없이 남겨두어야 했던 반지의 힘의 소유권을 지그프리트, 즉 신들의 아버지의 후손인 그로부터 빼앗아야 한다고 간곡히 타이른다.


2장

라인 강은 점차 강해지는 여명의 빛으로 인하여 붉게 물든다. 하겐은 행동을 개시한다. 지그프리트는 강둑 근처의 관목 숲 뒤에서 불쑥 나타난다. [......] 그는 그의 본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타른헬름을 머리에 쓰고 있다. 그는 이제 타른헬름을 벗어 그것을 벨트 아래에 밀어 넣고 앞쪽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타른헬름을 이용하여 자신을 기비훙의 궁전으로 이동시켰으며, 하겐과 구트루네에게 구애 작전의 성공과 더불어 군터와 브륀힐데의 도착이 곧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한다.


3장

하겐은 기비훙의 신하들을 호출하여 군터와 그의 신부를 맞이하라고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가 지니기 마련인 흥겨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그들이 반드시 무장을 갖추어야 하는지, 또한 왜 신랑 신부를 소란한 기세로 몰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그저 모호한 이유만을 둘러댈 뿐이다. 고대하던 한 쌍을 실은 배가 강변에 도착한다.


4장

군터는 브륀힐데와 함께 배에서 내린다. 신하들은 공손하게 줄지어 선 채 그들을 맞는다. 그들이 환영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군터는 엄숙하게 브륀힐데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끈다. 그는 그녀를 신하들에게 선보인다. 브륀힐데는 창백한 얼굴과 내리깐 시선으로 그를 따른다. 그는 결코 시선을 맞추려 하지 않는 그녀를 이끌고 홀로 향하며, 그곳에서는 지그프리트와 구트루네가 부인들을 이끌고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그프리트는 브륀힐데가 그의 신부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곧 다가올 두 쌍의 혼례식에 대해 얘기한다. 그가 군터를 신랑으로서 가리킬 때 그녀는 지그프리트가 뻗은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 즉시 무서울 정도의 격렬함에 사로잡힌다. 지그프리트와 군터가 보인 당황한 듯한 반응들은 그녀에게 어떠한 계략이 펼쳐졌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되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반지를 응시하며 백일몽에 빠져있는 지그프리트를 지켜보았다. 지그프리트가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용인 파프너와 싸워 그를 죽이고 반지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비통함과 절망에 싸인 채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야말로 그녀의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호소는 진실하게 울려 퍼지고, 이는 곧 지그프리트가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어서 자신을 이 죄과로부터 해명해보라는 재촉을 받는다. 하겐이 자진하여 나서서 그의 창에다 결백을 맹세하도록 한다. 신하들은 지그프리트와 하겐을 둘러싸고 원을 그린다. 하겐은 창을 내밀고, 지그프리트는 오른손의 손가락 두 개를 창 위에 얹는다. 그는 브륀힐데가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자신은 결코 군터와 피로 맺은 의형제의 신의를 깨뜨리지 않았다고 맹세한다. 브륀힐데는 이에 대한 역습으로서 하겐의 창을 축성하여 지그프리트의 위증에 대한 복수를 실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지그프리트가 내심 후회한 것은 타른헬름이 그를 완전히 변장시켜주지 못했다는 점이며, 이것이 그가 추측할 수 있는 이유의 전부였다. 그는 '여인의 분노'는 불타오르다 곧장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애써 군터를 위로한다. 다툼을 끝맺기 위해 그는 즐거운 태도로 부인들과 신하들의 혼례식 초청에 대한 화제를 꺼낸다. 지그프리트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그의 팔을 구트루네에게 두르고서 그녀와 함께 홀 안으로 멀어진다. 부인들과 신하들은 그의 모습을 좇아 뒤를 따른다. [......] 이제 오직 브륀힐데, 군터, 하겐만이 남는다. 군터는 한 켠에 있는 의자 위로 쓰러지듯 앉아 깊은 수치와 분노를 느끼며 얼굴을 가린다. 브륀힐데는 무대 앞쪽에 선 채 비통한 시선으로 잠시 지그프리트와 구트루네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윽고 고개를 떨어뜨린다.


5장

브륀힐데는 이 일에 뭔가 '악마의 술책'이 끼어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결국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이 계략에 대해 복수를 시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지그프리트의 몸에 '마법'을 걸어 그 어떤 타격 하에서도 상처받지 않게끔 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만은 '주문'의 보호를 받지 않았는데, 이는 그녀가 적에게 결코 등을 돌리지 않는 지그프리트의 성격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브륀힐데는 하겐에게 지그프리트가 지닌 취약점에 관해 알려준다. 하겐은 수치에 잠긴 군터의 눈앞에 반지와 무한한 힘의 소유에 관한 가망성을 들이대며 살인 계획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다음날 군터는 마지못해 지그프리트의 살인 계획을 승낙하고, 단 구트루네에게는 사냥 도중 일어난 사고였다고 전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브륀힐데와 군터는 복수의 서약을 한다. 하겐은 자신이 벌써 보물의 소유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그의 아버지인 알베리히를 '반지의 제왕'이라고 칭하기까지 한다. 군터는 브륀힐데와 함께 홀을 향해 거친 기세로 몸을 돌리고, 이제 혼인 축하 행렬의 물결이 그들을 향해 이어진다. 앞장선 소년 소녀들은 즐거이 달려와 화환으로 장식된 막대기들을 흔든다. 지그프리트는 방패 위에, 구트루네는 의자 위에 앉은 채로 신하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있다. [......] 브륀힐데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하는 구트루네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브륀힐데가 거칠게 고개를 돌리자, 하겐은 얼른 둘 사이에 끼어들어 그녀를 군터 쪽으로 보낸다. 군터는 한번 더 그녀의 손을 잡고, 신하들에게 자신을 방패 위로 오르게 할 것을 명한다. [...]


제3막


제1장

라인 강 옆, 야생의 숲이 이루어진 암석 골짜기. 라인 강은 배경으로부터 흘러나와 가파른 절벽을 지난다. 라인 강의 처녀 세 명(보글린데, 벨군데, 플로스힐데)이 수면 위로 떠올라 원을 그리며 헤엄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원무를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태양을 향해 열렬한 인사를 보내며, 태양의 빛이 반지의 소유자인 지그프리트를 그들에게 인도해주기를 바란다. 위쪽에서 지그프리트의 뿔나팔 소리가 들린다. [......] 그들 세 명은 모두 재빨리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춘다. 전신 무장을 갖춘 지그프리트가 절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겐이 제안했던 사냥은 근처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지그프리트는 한 도깨비의 유인에 의해 동료들로부터 멀리 떨어졌고, 이곳 강둑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라인 강의 처녀들은 교태와 희롱으로 그를 유혹하여 반지를 돌려받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실패한다. 오직 그의 지나친 욕심에 대한 비난만이 그를 잠시 동요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님프들은 이러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듯 다시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춘다. 그들은 보다 험악한 수단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한다. 한편 지그프리트는 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 손가락에서 반지를 뽕아 공중에 높이 던져 올린다. 라인 강의 처녀들은 진지하고 엄중한 기색을 띤 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러나 저주에 대한 그들의 경고와, 그가 만일 반지를 계속 간직한다면 언젠가 그가 용을 죽였던 것처럼 오늘 당장 살해당하고 말 것이라는 예언은 오직 그의 고집만을 부활시켰을 뿐이다. 비웃음을 띤 채 그는 그들의 간청을 거절한다. 그가 지닌 완고함과 운명에 대해 탄식하며, 그들은 브륀힐데를 설득하여 반지를 돌려받기 위해 기비훙의 궁전 쪽으로 멀리 헤엄쳐간다. 그 날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반지의 후계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지그프리트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한 발을 강변 옆에 있는 바위 위에 올려놓고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서 있다. [......] 위쪽에서 사냥 뿔피리의 소리가 들려오고, 점점 가까워진다. [......] 지그프리트는 몽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뿔피리로 부름에 응답한다.


2장

신하들이 절벽의 꼭대기에 모이고, 하겐 및 군터와 더불어 아래로 내려간다. 사냥 모임은 오전 내내 성공적이었으며, 이제 휴식과 음료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지그프리트는 침울하고 시름에 젖은 군터의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싶었다. 하겐이 이 영웅을 설득하여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그들을 즐겁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그를 길러준 아버지인 난쟁이 미메와 스스로 노퉁을 벼렸던 일, 파프너와의 결투 및 보물의 획득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겐은 하인을 시켜 뿔잔을 채우게 한 뒤 허브의 즙을 짜 넣는다. 이는 지그프리트의 기억을 즉시 되살려낼 수 있는 해독제였다. 그는 넋을 잃은 채 잠자는 브륀힐데를 깨웠던 키스에 대해 상기하고는, 군터와의 신의에 대한 위반과 의도치 않게 범하게 된 위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덤불 속에서 두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올라 지그프리트의 머리 위를 돌고는 다시 라인 강 쪽을 향해 날아간다. [......] 지그프리트는 뛰어오르듯 일어나 하겐에게 등을 돌린 채로 까마귀들을 바라본다. [......] 하겐은 창을 들어 지그프리트의 등을 꿰찌른다. 군터와 신하들은 놀라 하겐을 붙잡으려 한다. 지그프리트는 양손으로 그의 방패를 집어 높이 쳐들고, 이를 하겐에게 던지려 한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이미 그를 떠난 뒤였다. 방패가 그의 등 뒤로 떨어지고, 그는 방패 위로 쓰러진다. 하겐은 냉철한 어조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자신의 행동은 오직 위증에 대한 복수였을 뿐이다. 그는 침착하게 몸을 돌려 언덕을 향해 걸어간다. 그가 밀려드는 황혼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군터는 비통함에 잠겨 지그프리트의 옆에 무릎을 꿇는다. 신하들은 연민에 잠겨 죽어가는 남자의 주변에 모여든다. 지그프리트의 마지막 생각은 그의 '신성한 신부'인 브륀힐데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죽음을 맞는다. 구경꾼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 움직이지 않는다. 밤이 찾아온다. 군터의 말없는 명령에 따라 신하들은 지그프리트의 시신을 어깨에 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 그들은 엄숙한 행렬을 형성한 채 느린 움직임으로 언덕을 오른다. 달이 구름 사이를 뚫고 솟아오르고, 행렬이 꼭대기에 오르는 동안 그들에게 점점 더 강한 빛을 뿌린다.


3장

기비훙의 궁전

밤이다. 달빛이 라인 강의 수면에 반사되어 비친다. 구트루네는 자신의 방에서 나와 홀로 들어간다. 악몽에 의한 불안감과 강변으로 내려간 채 돌아오지 않는 브륀힐데에 대한 염려로, 그녀는 지그프리트의 귀환만을 고대한다. '사냥의 파국'을 알리는 하겐의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구트루네는 커져가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다른 사냥꾼들의 귀환을 지켜본다. 램프를 든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횃불을 든 군중들이 지그프리트의 시신을 떠메고 온 자들의 행렬을 둘러싼 채 거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 행렬은 홀의 중앙에 도착하고, 신하들은 시신을 급히 만든 연단 위에 내려놓는다. [......] 구트루네는 비명을 지르며 지그프리트의 시신 위에 겹쳐 쓰러진다. 전체적으로 놀라움과 비탄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군터는 정신을 잃은 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구트루네로부터 살인자로 지목 받은 군터는 손가락을 들어 '저주받은 멧돼지'인 하겐을 가리킨다. 하겐은 그가 복수의 행위를 실현했음을 알리고 험악한 태도로 반지를 요구한다. 군터는 '배상의 신성한 권리'를 얻었다는 이복동생의 주장에 대해 반발한다. 하겐은 군터를 공격하고, 군터는 이를 방어한다. 그들은 칼을 뽑아 싸우기 시작한다. 신하들은 필사적으로 이들을 갈라놓으려 한다. 하겐의 일격이 군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 하겐이 지그프리트의 손으로 향하자 죽은 자가 위협적으로 손을 들어올려 이를 막는다. 구트루네는 군터가 쓰러질 때와 마찬가지로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른다. 모두가 죽음의 충격을 받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장면의 뒤쪽에서 브륀힐데가 나타나 의연하고 엄숙한 자세로 무대 앞까지 나온다. 이 지그프리트의 신부는 구트루네의 비탄을 멈추게 한다. 군터의 누이는 그제서야 지그프리트의 기억에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단 한 명의 여자가 바로 브륀힐데임을 절망적으로 깨닫는다. 구트루네는 머뭇거리며 지그프리트로부터 몸을 돌리고, 군터의 시신 위로 쓰러진 채로 생명을 잃는다. 그녀의 시신은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는 채로 극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다. 하겐은 무대의 반대편에 서서 오만한 자세로 창과 방패에 기댄 채 음침한 생각에 빠져 있다.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를 향한 긴 묵상에 잠긴 채 홀로 무대 중앙에 서 있다. 그녀는 이제 엄숙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띤 채 남자와 여자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브륀힐데는 반지를 라인 강의 처녀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신들과 세계를 반지의 저주로부터 구할 것이며, 불이 가져다 주는 죽음을 통해 다시금 지그프리트와 연결될 것이다. 젊은 남자들이 [......] 궁전 밖 강둑 근처에 거대한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이를 꽃과 허브를 뿌린 융단으로 덮어 장식한다. [......] 브륀힐데는 이제 지그프리트의 충실함과 불충함에 얽힌 역설들을 해명했으며, 신들이 지닌 '영원한 유죄'에 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신하들에게 몸짓하여 지그프리트의 시신을 장작더미 위로 옮기게 한다. 동시에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어 이를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바라본다. 앞서 그녀가 라인 강의 처녀들과 얘기하는 동안 그들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명료하게 설명해주었으며, 그녀는 그들의 '훌륭한 조언'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서 지그프리트의 시신이 안치된 장작더미로 몸을 돌린다. 그녀는 신하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커다란 횃불을 받아든다. [......] 그녀는 보탄의 까마귀들에게 브륀힐데의 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불의 신 로게를 임무에서 풀어내어 발할 성으로 향하게 하고, 신들에게 멸망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여 발할 성에 모이도록 할 것을 당부하고 이들을 날려 보낸다. 그녀는 횃불을 장작더미 위로 던지고, 불길은 빠르게 타오른다. 두 마리의 까마귀는 강변 옆의 바위로부터 날아올라 뒤편을 향해 사라진다. 브륀힐데는 그녀의 말이 두 남자에게 이끌려 오는 것을 본다. 손가락을 교차하여 축복의 표지를 만든 채,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 향할 것이다. 그녀는 말 위에 올라 불 속으로 뛰어 들 준비를 마친다. [......] 그녀는 말을 박차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에 뛰어든다. 소리를 내며 타오르던 화염은 그 즉시 기세가 높아지며, 궁전 밖의 전체 공간을 채우고 마치 건물 그 자체를 집어삼키는 듯 보인다. 공포에 질린 남자와 여자들은 어떻게든 무대 앞쪽으로 도망가려 애를 쓴다. 무대 전체가 화염으로 채워진 듯이 보일 무렵, 불길은 갑작스레 꺼지고 연기만이 남는다. 연기는 무대 뒤쪽을 향해 떠돌다 이윽고 두꺼운 구름의 층 사이로 보이는 지평선에 걸린다. 라인의 강물이 일제히 둑을 터뜨리고 장작더미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한다. 라인 강의 처녀 세 명은 범람하는 물결 속에서 헤엄을 치고, 이제 장작더미 부근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반지의 거절을 당한 이후 하겐은 커져가는 경악 속에서 브륀힐데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라인 강의 처녀들을 보았을 때 마침내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는 급히 그의 창과 방패와 투구를 벗어 던지고서 미친 사람처럼 물 속으로 들어간다. [......] 보글린데와 벨군데가 팔로 그의 목을 휘감은 채 헤엄쳐 그를 좀 더 깊은 곳으로 끌어들인다. 그들보다 앞서 헤엄치던 플로스힐데는 강으로 돌아와 되찾은 반지를 높이 쳐들고서 기쁨에 넘친다. 지평선 위에 걸린 어두운 구름의 층이 점점 밝아지는 붉은 불길에 의해 갈라진다. [......] 궁전의 지붕과 벽은 무너지고, 이 무너진 폐허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격한 놀라움의 기색을 띤 채 천상을 가로질러 번지는 불길을 응시하고 있다. 화염의 밝기가 최고조에 이를 무렵 발할의 궁전은 하늘의 가운데서 그 모습을 나타내며, 발트라우테가 1장에서 묘사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신들과 용사들이 보인다. 강한 화염이 궁전 안으로 밀어닥치는 것이 보인다. 화염이 신들을 완전히 집어삼켰을 때, 커튼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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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은진 글>


신들의 황혼

리하르트 바그너


연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작품인 〈신들의 황혼〉은 1848년 청년 시절의 바그너가 대본작업을 시작하여 61세가 되는 1876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신들의 황혼〉이라는 제목은 세계의 멸망을 가져오는 신들의 전쟁을 일컫는 북유럽어 ‘라그나로크’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지만, 바그너는 이를 인간 세계의 멸망이 아닌 신들의 세계의 멸망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하였다. 한때 바그너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니체의 저서 《우상의 황혼》은 〈신들의 황혼〉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이었다. 〈신들의 황혼〉은 1876년 첫 번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나머지 3개의 음악극과 함께 초연되었다.


청년 바그너와 노년의 바그너


〈신들의 황혼〉의 대본은 청년 시절의 바그너가 완성한 대본 〈지크프리트의 죽음〉을 토대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청년독일단 시절의 바그너, 혁명적 아나키스트로서의 바그너, 포이에르바흐의 지지자로서의 바그너의 면모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후 1854년 경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접한 이후, 바그너의 세계관은 이전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된다. 실제로 2부인 〈지크프리트〉의 음악작업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한 것에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변화된 세계관 역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크프리트〉를 16년 만에 완성한 뒤 〈신들의 황혼〉에 착수했을 때에도 바그너는 이러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노년에 이른 바그너의 이념은 청년 시절에 완성한 대본에 담긴 내용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라는 대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음악극을 작업하기 위해 새로운 대본을 쓴다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대본을 수정하는 대신, 젊은 시절의 세계관과 쇼펜하우어적인 세계관이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음악을 쓰기로 결심한다.


오케스트라가 중심이 되는 음악극


〈신들의 황혼〉에서 지배적인 표현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오케스트라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오페라라기보다는 연기가 동반된 관현악곡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미 전작인 〈지크프리트〉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크게 확대한 바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면서, 〈신들의 황혼〉은 더없이 묵직하고 풍부한 음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음향은 또한 새로운 라이트모티브 작법에 힘입은 바 크다. 전작인 〈지크프리트〉에서 이미 그 형태를 보여준 새로운 작법은, 여러 개의 라이트모티브들을 대위법적으로 조합하여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전작들에 사용된 백여 개의 라이트모티브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복잡한 대위법과 서정적 흐름을 동시에 연출해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풍부하고 두터운 음향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신들의 황혼〉은 〈니벨룽의 반지〉의 다른 음악극과는 달리 각 막을 여는 전주곡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오케스트라가 단독으로 서사를 진행하는 삽화적인 장면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 삽화적 장면들은 이후 독립적인 관현악곡으로 연주되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도 완결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성의 사랑을 통한 구원


〈신들의 황혼〉은 전작들에서 이어져온 마법의 반지를 둘러싼 암투와, 이로 인한 신들의 멸망을 보여준다. 신들의 왕 보탄은 반지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되찾아 신들의 세계를 구원할 순수한 영웅으로 지크프리트를 내세우지만, 그는 마찬가지로 반지를 탐내는 하겐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결국 지크프리트는 보탄의 기대와는 달리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지도, 반지에 내려진 저주를 풀어내지도 못한 것이다.


정작 이 저주의 고리를 끊어내는 인물은 브륀힐데이다. 보탄의 명령을 거역한 벌로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평범한 여인으로서 지크프리트를 사랑하는 브륀힐데는, 신들의 탐욕과 부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크프리트가 계략에 빠져 죽음을 맞자 브륀힐데는 반지를 불태워 저주를 정화시킨 뒤, 원래의 주인인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줌으로써 길고 긴 암투를 끝낸다.


이처럼 바그너는 타락한 정치와 낡은 종교에 대한 환멸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사랑을 제시한다. 특히 이 사랑은 여성의 희생적인 헌신을 필요로 한다. 브륀힐데가 결국 지크프리트를 뒤따라 죽음을 택하는 장면은, 여성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는 바그너의 사고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신의 지배를 벗어난 인간의 자율성


또한 〈신들의 황혼〉은 낡은 신들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신들의 황혼〉을 이끌어가는 두 인물은 신들의 세계와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다. 지크프리트는 보탄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욕망을 따르고 오류를 범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브륀힐데는 한때 신의 속성을 지닌 발퀴레였지만, 지크프리트를 사랑하는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질투와 복수심을 느끼는 인물로 표현된다.


이처럼 가장 평범하고 인간적인 본성을 지닌 두 인물이 결국 반지의 저주를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성한 것이며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포이에르바흐의 사상과 닿아 있는 동시에, 인간의 의지와 본성이 세계 그 자체라는 쇼펜하우어의 사상과도 닿아 있다. 결국 〈신들의 황혼〉은 낡은 세계의 제약과 악습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담아내고 있다 하겠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서막


대지의 여신 에르다의 세 딸인 운명의 여신 노른이 모여 앉아 운명의 실을 자으면서 신들의 세계에 닥칠 어두운 미래를 예언한다. 급기야 운명의 실이 뒤엉켜 끊어져 버리자, 노른들은 자신들의 지혜가 끝났다고 탄식하며 절망에 빠진다.


한편 브륀힐데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지크프리트는 용사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브륀힐데는 자신의 애마 그라네를 그에게 내어주고, 지크프리트는 사랑의 징표로서 마법의 반지를 그녀에게 준 뒤 길을 떠난다.


1막


막이 오르면 기비흉족의 성이 보인다.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은 아버지가 다른 형 군터에게 불꽃 속에 잠들어 있다는 브륀힐데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녀와 결혼할 것을 권한다. 또한 군터의 여동생 구트루네에게는 용사 지크프리트를 추천한다. 군터와 구트루네가 이에 동의하자, 하겐은 지크프리트에게 약을 먹여 먼저 브륀힐데를 잊게 하려는 계략을 짠다.


마침 지크프리트가 기비흉족의 성에 도착하자 하겐은 그를 성으로 초대한다. 구트루네는 과거의 모든 사랑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을 지크프리트에게 먹이고, 브륀힐데와의 사랑을 모두 잊어버린 지크프리트는 아름다운 구트루네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청한다. 군터는 결혼을 허락하는 대신 브륀힐데를 데려올 것을 명하고, 지크프리트는 이를 기꺼이 수락하면서 군터와 형제의 연을 맺는다.


짧은 간주곡이 연주된 후 장면이 바뀌면서, 브륀힐데가 반지를 바라보면서 지크프리트에 대한 그리움에 잠겨 있다. 이 때 발퀴레 중 하나인 발트라우테가 등장해,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주고 신들의 멸망을 막아달라는 보탄의 바람을 전한다. 그러나 신들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 브륀힐데는 이를 거절하고 발트라우테는 실망 속에 퇴장한다. 곧이어 지크프리트의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는데, 정작 브륀힐데 앞에 나타난 인물은 군터였다.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를 데려가기 위해 마법의 투구를 사용해 군터로 변신한 것이었다. 브륀힐데와의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린 지크프리트는 폭력을 휘두르며 브륀힐데로부터 반지를 빼앗고 억지로 그녀를 끌고 간다.


2막


기비흉족의 성에서 잠든 하겐의 꿈속에 아버지 알베리히가 나타나, 신들의 몰락이 가까웠음을 알리면서 지크프리트에게서 반지를 빼앗을 것과 절대로 반지를 라인 처녀들에게 돌려주지 말 것을 명한다.


아침이 되자 성으로 돌아온 지크프리트가 하겐과 구트루네에게 자신의 공적을 이야기하고, 하겐은 뿔피리를 불어 일족들을 모이게 한 뒤 군터와 브륀힐데의 결혼식을 알린다. 브륀힐데를 이끌고 나타난 군터는 자신들과 지크프리트와 구트루네의 합동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한다. 구트루네와 함께 있는 지크프리트를 보고 놀란 브륀힐데는, 군터에게 강탈당한 것으로 알고 있던 반지가 지크프리트의 손에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폭력으로 납치한 것이 바로 지크프리트였음을 알아차리고 분노하게 된다. 구트루네와 사랑에 빠진 지크프리트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브륀힐데는 복수심에 불타, 지크프리트가 자신을 데려오면서 겁탈했다고 말한다. 격노한 군터가 지크프리트를 책망하자,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하겐의 창에 손을 얹고 신의를 지켰음을 맹세한다.


절망에 빠진 브륀힐데에게 다가간 하겐은 자신이 지크프리트에게 복수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알아내고자 한다. 브륀힐데는 자신이 지크프리트를 마법으로 축복하여 결코 패배하지 않도록 했지만, 그의 등에는 축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크프리트의 급소를 알아낸 하겐은 군터를 부추겨 다음 날 있을 사냥에서 지크프리트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지크프리트와 구트루네를 둘러싼 결혼 축하 행렬이 입장하고 ‘결혼의 환성의 모티브’가 연주되면서 막이 내린다.


3막


사냥감을 쫓던 지크프리트가 라인 강변에 다다르고, 라인의 처녀들이 나타나 반지에 얽힌 저주를 알려주며 반지를 돌려 줄 것을 부탁한다. 지크프리트가 이를 거절하자 라인의 처녀들은 언젠가 한 고귀한 여인이 반지를 돌려주러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사냥이 끝나고 하겐, 군터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지크프리트는 라인의 처녀들을 만난 것과 그들의 예언을 이야기한다. 하겐은 지크프리트의 술잔에 기억을 회복시키는 약을 집어넣고,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 지크프리트가 미메를 죽이고 브륀힐데를 사랑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 때 보탄이 부리는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오고 하겐은 까마귀를 보며 등을 돌린 지크프리트를 창으로 찌르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기억을 완전히 되찾은 지크프리트는 브륀힐데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면서 숨을 거두고, 지크프리트의 장례 행렬이 조용히 성으로 향한다.


지크프리트의 유해를 본 구트루네는 비탄에 빠지고, 하겐은 지크프리트에게 복수한 대가로 반지를 요구한다. 결국 군터와 하겐은 싸움을 벌이고 군터는 죽임을 당한다. 브륀힐데는 라인 강변에 장작을 높이 쌓아 올리게 하고, 지크프리트의 유해를 운반케 한다. 보탄의 끝없는 탐욕을 원망하면서 브륀힐데는, 저주받은 반지는 불로 정화하여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줄 것이며, 지크프리트를 태운 불꽃은 발할 성을 태워 신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적은 편지를 보탄이 보낸 까마귀에게 전한다. 반지를 정화하여 라인 강에 던진 브륀힐데는 마침내 애마 그라네에 올라타 지크프리트의 유해를 태우고 있는 불꽃 속으로 뛰어든다.


이때 라인 강에서 세 처녀들이 헤엄쳐 오고, 하겐은 반지를 빼앗으려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하겐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라인의 처녀들은 반지를 되찾아 기뻐한다. 지크프리트를 태운 불꽃은 기비흉 성을 완전히 태우고 발할 성까지 태워버리고 신들의 세계는 멸망한다.


‘여명과 지크프리트의 라인 기행(Siegfrieds Rheinfahrt)’

브륀힐데의 애마 그라네를 타고 떠나는 지크프리트의 여정을 묘사한 관현악곡으로, 웅장한 ‘영웅의 모티브’와 ‘발퀴레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웅의 모티브’가 제시된 후 멀리서 ‘뿔피리의 모티브’가 들려오고, 평화로우면서도 명랑한 음악이 이어지면서 라인 강을 지나는 지크프리트의 행로를 그린다. ‘브륀힐데의 모티브’와 ‘발퀴레의 모티브’가 끼어들면서 경쾌함과 용맹함을 더해준다.


하겐의 망보기, ‘여기 앉아 망을 보며(Hier sitz' ich zur Wacht)’

1막에서 지크프리트가 마법의 약을 마시고 구트루네에게 청혼하는 것을 엿들으며 회심에 찬 미소를 지으며 하겐이 부르는 노래로, 느리고 장엄한 선율로 제시된다. 하겐의 노래가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다가올 음모와 불행을 암시한다.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Siegfrieds Trauermarsch)’

낮은 금관선율이 장중하게 음악을 시작하고, 현악성부와 타악기가 가세하면서 슬픔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목관이 연주하는 애조 어린 선율이 이어지고, 다시 금관성부와 타악기의 팡파르가 강렬하게 제시되면서 영웅의 죽음을 기린다.


브륀힐데의 희생, ‘집으로 날아가라 까마귀들아!(Fliegt heim, ihr Raben!)’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전주에 이어 브륀힐데가 격정적인 선율로 노래하면서 보탄의 까마귀들에게 편지를 전한다. 곧이어 현악성부가 반음계진행을 웅장하고 극적으로 제시하면서 브륀힐데는 애마 그라네에 올라탄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발퀴레의 모티브’를 연주하고, 브륀힐데의 선율 역시 ‘발퀴레의 모티브’의 일부를 노래하면서 불꽃 속으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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