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초연 1942년 10월 28일 뮌헨(클레멘스 크라우스 지휘)
배경 1775년경 파리 근교 백작의 대저택
<2013년 6월 빈 국립극장 / 163분 / 한글자막>
빈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 연출
마델레인.....백작부인 혹은 女백작.....르네 플레밍(소프라노)
백작...........마델레인의 오빠............보 스코부스(바리톤)
플라망........작곡가.........................마이클 셰이드(테너)
올리비에.....시인............................마르쿠스 아이헤(테너)
라 로셰.......무대연출가...................쿠르트 리들(베이스)
클레론........여배우.........................안젤리카 키르흐슐라거(메조소프라노)
그외 남녀 가수들, 발레리나, 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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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R. 슈트라우스의 탄생 150주년을 축하하는 빈 국립오페라의 화려한 프로덕션
"음악이 먼저인가? 극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은 오페라가 처음 만들어졌던 시기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논쟁과 고민을 낳아왔다. 슈트라우스 역시 이 고민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1942년 뮌헨에서 초연되었던 그의 오페라 <카프리치오>는 바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오페라의 배경은 부퐁 논쟁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던 18세기 후반의 파리 근교다. 여백작을 사이에 둔 연적이자 친구인 작곡가 플라망과 문학가 올리비에르는 음악과 문학 중에서 무엇이 우위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여기에 무대연출가 라 로셰와 음악애호가인 백작 남매, 그리고 여가수 클래롱이 참여하면서 논쟁은 점점 더 열기를 더해나간다.
본 공연은 2013년 6월 빈 슈타츠오퍼의 무대에 올랐던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의 화려한 프로덕션을 담은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슈트라우스 히로인인 르네 플레밍을 비롯하여, 보 스코부스, 쿠르트 리들, 안겔리카 키르흐슐라거, 마이클 셰이드, 마르쿠스 아이헤 등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본 공연은 작곡가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가장 성대한 축하선물의 하나가 될 것이다.
<카프리치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완성한 가장 마지막 오페라다. 이 오페라의 근원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3년 슈테판 츠바이크가 우연히 대영박물관에서 이탈리아 오페라 대본집을 발견한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츠바이크가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 이 대본집은 요제프 그레고르에게 인계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와 작곡가 자신에 의해서 독일어 리브레토가 완성되었다. 슈트라우스는 1941년 8월에 이 오페라를 완성하였고, 이듬해 10월 28일 뮌헨에서 클레멘스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단막 오페라이지만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을 요구하는 긴 작품이기에, 7장 이후에 휴지를 두고 두 부분으로 나누어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오페라의 배경은 부퐁 논쟁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던 1770년대의 파리 근교에 자리 잡은 한 백작의 대저택이다. 백작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다. 작곡가 플라망과 시인 올리비에는 그녀를 사이에 둔 라이벌이다. 둘의 감정싸움은 "음악이 먼저인가? 문학이 먼저인가?"라는 논쟁으로 발전한다. 여기에 무대연출가인 라 로셰와 백작 남매, 그리고 백작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인기가수 클래롱이 합세하면서 논쟁은 점점 더 열기를 더해나간다. 모두가 자리를 비우고 여백작 혼자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 그녀는 이제 작곡가와 시인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슈트라우스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함으로써 최종 선택을 관객들에게 내맡긴다.
=== 작품해설 === <2011 뉴욕 메트 영상물 내지 해설 / 조지 홀 George Hall / 김종윤 번역>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카프리치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오페라 <카프리치오 Capriccio>만큼 악조건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원래 아이디어는 슈트라우스의 극본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로부터 나왔다. 오랜 기간동안 슈트라우스와 함께 작업해왔던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이 <아라벨라 Arabella>의 극본을 수정하던 중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슈트라우스는 츠바이크가 그의 대체자가 되어주길 바랬다. 실제로 츠바이크는 벤 존슨(Ben Jonson)의 연극을 기반으로 한 코메디 <말 없는 여인 Die schweigsame Frau>의 극본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1935년 <말 없는 여인>이 드레스덴에서 프리미어를 가질 때 쯤, 나치가 독일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고, 슈트라우스는 오페라 포스터에서 유태인이었던 츠바이크의 이름을 빼는 문제로 정권과 다툼을 벌였다. 결국 츠바이크의 이름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이후 슈트라우스는 그의 동의도 없이 임명되었던 제국음악회(Reichsmusikkammer) 회장직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 때문에 슈트라우스의 작품에 대한 츠바이크의 기여는 그들 사이의 비밀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츠바이크는 1934년 독일을 떠나 망명생활을 시작했고, 결국 1942년 브라질에서 부인과 함께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츠바이크는 문학 연구작업을 통해 지오반니 바티스타 카스티(Giovanni Battista Casti)가 썼던 살리에리(Salieri)의 코메디 <음악이 첫째, 말은 둘째 Prime la musica, e poi le parole>의 극본을 찾아냈다. 1786년 빈에서 모차르트의 <극장 지배인 Der Schauspieldirektor>과 함께 첫 무대를 가졌던 이 작품은, 초기 오페라 창작가들로부터 이어져내려온 오래된 갈등인 '음악과 극본 중에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츠바이크는 이 아이디어를 재해석해보자고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에 완전히 매료된 슈트라우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극본을 쓴 사람은 츠바이크가 소개한 극본가 요제프 그레고르(Joseph Gregor)였다. 그레고르의 극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슈트라우스는 그가 좋아했던 지휘자인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에게 극본을 보여주었고, 크라우스가 극본의 마지막 수정작업을 맡게 된다. 하지만 슈트라우스 또한 극본작업에 참여했으며, 살리에리와 카스타의 원작도 많이 작품에 포함되었다. 당연히 크라우스가 첫번째 공연의 지휘자를 맡았다.
슈트라우스는 <카프리치오>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길 원했다. 그는 1894년에 첫번째 오페라인 <군트람 Guntram>의 프리미어 공연을 하기도 전부터, 지휘자이자 작곡자로서 오페라를 그의 가장 주요한 장르로 여겼고, 이 작품은 오페라에 대한 그의 마지막 선언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가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카프리치오>는 1942년 10월 28일 뮌헨에서 첫 공연을 치뤘다(그 극장은 이듬해에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카프리치오> 이전에 작곡했으나 아직 공연을 하지 않고 있었던 그의 다른 작품 <다나에의 사랑 Die Liebe der Danae>은 1944년 잘츠부르크에서 드레스 리허설을 가졌으나, 이후 제3제국의 전국민 전투태세 명령으로 인해 모든 공연이 금지되면서 실제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결국 <다나에의 사랑>은 1952년 잘츠부르크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이때는 슈트라우스가 죽은지 이미 3년이 지난 뒤였다.
<카프리치오> 작곡 당시의 슈트라우스의 주변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세계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 속에서 슈트라우스는 그가 사랑했던 유태인 며느리와 손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개인적인 고민을 해야만했던 슈트라우스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카프리치오>는 많은 이들이 '낭만적인 현실회피'라고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다. 오페라 세계의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인물들의 특성과 그들 사이의 관계와 갈등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슈트라우스는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를 주장했다. 그러한 가치가 가장 위험에 처해있던 바로 그 시기에 말이다. <카프리치오>는 영웅적 용기를 가진 작품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권위에 저항하는 작품이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가 작곡했던 음악 중 가장 아름다운 음악들을 담고 있다.
=== 줄거리 === <2011 뉴욕 메트 영상물 내지 해설 / 마이클 케네디 Michael Kennedy / 김종윤 번역>
이 이야기는 1920년대 파리 근교의 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장면 1
젊은 미망인이자 백작부인인 마들렌(Madeleine)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벌어진다. 작곡가 플라망(Flamand), 시인 올리비에(Olivier)가 생일파티를 위해 플라밍이 쓴 현악 6중주곡의 리허설을 듣고 있으며, 연출가 라 로슈(La Roche)는 잠을 자고 있다. 음악을 듣고 있던 플라망과 올리비에는 상대방 또한 백작부인과 사랑에 빠져있음을 발견한다. 과연 플라망의 음악과 올리비에의 시 중에서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음악이 먼저고 언어가 둘째인가, 아니면 언어가 먼저고 음악이 둘째인가? 그들은 백작부인에게 결정을 맡기기로 한다. 라 로슈가 잠에서 깨어 논쟁에 참여한다. 그는 음악도 시도 최고의 예술장르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장르, 즉 극 연출이 그 둘보다 우월하며 음악과 시를 종으로 부린다고 주장한다. 그는 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믿는다. 화려한 무대장치, 멋진 대사, 최근에 올리비에와 교제했던 여배우 클레론(Clairon)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과 같은 요소들을 말이다. 라 로슈는 클레론이 올리비에의 연극에 등장하는 백작의 상대역을 맡기 위해 저택으로 오고있다고 말한다. 플라망과 올리비에, 라 로슈는 극장에서의 리허설을 위해 준비한다.
장면 2
백작과 백작부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음악과 시의 장점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백작은 그에게 음악은 큰 감흥이 없다고 말하며, 언어가 항상 음악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동생인 백작부인에게 그녀가 작곡가 플라망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놀린다. 이에 대항하여 백작부인은 여배우 클레론의 이름을 언급한다. 백작은 그가 클레론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는 쉽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졌다가 쉽게 관심을 잃어버리는 삶이 좋다고 말한다.
장면 3
라 로슈와 그 일행들이 돌아온다.
장면 4
클레론이 리허설을 위해 도착한다. 클레론과 백작은 올리비에의 연극의 한 장면을 연습한다. 연습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대사를 통해 백작은 클레론에 대한 자신의 열정적인 마음을 소네트로 낭독한다. 그는 축하를 받고, 라 로슈는 그들을 리허설장으로 데려간다. 플라망과 올리비에는 백작부인과 남는다. 올리비에는 백작부인에게 백작이 소네트를 잘못된 사람에게 읊었다고 언급하며, 그 소네트는 원래 백작부인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던 것이라고 말한다. 올리비에는 백작부인에게 소네트를 다시 낭송한다. 플라망은 그것을 재빨리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라진다.
장면 5
플라망이 없는 사이, 올리비에는 백작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장면 6
플라망은 자신이 방금 작곡한 소네트를 들려주기 위해 돌아온다. 올리비에와 플라망은 소네트의 진정한 저작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말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백작부인은 그녀 자신이 진정한 저작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라 로슈는 올리비에를 리허설장으로 데려간다.
장면 7
플라망 또한 백작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백작부인에게 음악인지 시인지, 플라망인지 올리비에인지 결정해달라고 요청한다. 백작부인은 다음날 아침 11시에 답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백작부인은 옆방의 리허설 소리를 들으며 홀로 생각에 잠겨있다. 그녀는 가벼운 다과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한다.
장면 8
연습이 끝나고, 백작과 그의 여동생 백작부인은 그들의 연애관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대화를 나눈다.
장면 9
다른 사람들이 돌아온다. 가벼운 다과를 서빙하는 동안, 라 로슈는 공연에 참여하게 될 발레리나를 소개한다.
플라망과 올리비에는 언어와 음악에 대한 논쟁을 다시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도 논쟁에 참여한다. 백작은 오페라라는 장르 전체를 비웃는다. 라 로슈는 듀엣을 부르는 두 명의 이탈리아 싱어를 소개한다. 라 로슈는 백작부인의 생일파티를 위해 그가 준비한 작품, 'The Birth of Pallas Athene'와 'The Fall of Carthage'를 발표한다. 일행은 그 아이디어가 너무 촌스럽고 허세가 넘친다며 비웃는다. 이 장면을 본 이탈리아 싱어들은 그들이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음식을 챙긴다.
라 로슈는 결국 자신의 주장을 펼칠 기회를 얻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논박한다. 그는 오페라에 대한 자신의 강한 신념을 표현한다. 그는 드라마를 통해 살과 피를 가진 생물로써의 인간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플라망과 올리비에에게 그들의 장르를 대표할만한 멋진 새로운 작품을 써보라고 명령한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화해의 표시로 올리비에와 플라망은 오페라를 쓰기로 결정한다. 백작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바로 오늘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오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장면 10
일행들이 헤어진다.
장면 11
8명의 하인이 등장해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그들의 관점 - 그들은 "백스테이지"의 관점이라고 표현한다 - 에서 이야기한다. 하인장이 그들에게 휴식시간을 부여한다.
장면 12
리허설 도중 잠이 들었던 프롬프터 무슈 토프(Monsieur Taupe)가 등장한다. 그는 하인장에게 그가 없으면 공연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극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일행에서 홀로 떨어져버렸다고 푸념한다. 하인장은 그를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마지막 장면
백작부인이 하인장과 함께 등장한다. 하인장은 두 개의 메세지를 전한다. 하나는 백작이 그날 밤 저녁을 집에서 먹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올리비에가 다음날 아침 열한시에 오페라의 엔딩을 듣기 위해 전화하겠다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백작부인은 소네트를 듣고난 이후 작곡가와 시인이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고 한탄하며 다음날 아침 같은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을 걱정한다. 그녀는 스스로 소네트의 두 소절을 불러본다. 그녀는 둘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오페라 엔딩을 생각해 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하인장이 준비가 끝났다는 말로 문제를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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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서푼짜리오페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6.07.22 <불멸의 오페라 3 / 박종호> 공연평 ★★★
<카프리치오>의 장점이자 단점은 끝없이 레치타티보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글 자막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작품의 하나인데, 좋은 프로덕션이 한글 자막을 넣어서 나왔다. 연출은 18세기의 글루크 시대를 재현하고 있는데, 화려한 의상 등이 볼거리다. 플레밍은 9년 전의 가르니에 극장 녹화판과 비교해서 여전히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보 스코부스(백작)와 안젤리카 키르히슐라거(클레롱)의 유연한 연기와 마이클 셰이드(플라망)의 열정적인 가창 등이 돋보인다. 크리스토퍼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빈 국립극장 오케스트라는 명불허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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