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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수필)공부

4. 수필의 깊이와 넓이(9)

작성자신종찬|작성시간14.01.04|조회수361 목록 댓글 4

4. 수필의 깊이와 넓이

1)균형 잡힌 수필 쓰기

 글 쓰는 일이 땅을 파는 일이라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너무 넓게 파거나 너무 깊게 파기 마련이다. 넓이와 깊이에서 균형 잡힌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질에 관한 어느 정도의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글쓰기 과정에서 자기 체질에 대한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더라도 반성적인 자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은 당연히 깊이와 넓이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작품일 것이다. 수필에서 넓이와 깊이란 무엇일까? 넓이는 수필가의 내면과 외면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수필은 작가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다. 자기 반성적이고 자기 고백적인 것이 수필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글감이나 수필가의 관심이 개인의 신변과 일상의 테두리 안에 갇히는 수가 많다. 이런 경우 넓이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관심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깊이는 제재를 해석하는 통찰력이다. 작은 것 혹은 변두리 것도 전체를 아우르는 법칙과 구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드러나는 겉면에만 집중하는 성긴 관찰력으로는 사건과 대상 너머의 의미를 찾아낼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대상은 나름의 의미를 깊이 간직한다. 얼마나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잠재하는 의미를 찾아내느냐가 문제다. 의미를 찾아낸다는 것은 개별성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보편적인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깊이라고 할 수 있다.

 

2)경험의 보편화

 수필은 인생의 경험을 담아낸다. 신변잡기 수준에 머물면 문학적 감동을 주기 어렵다. 독자와 공감대를 얻으려면 그것이 인간 삶의 보편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로병사의 인간 운명만큼 보편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서 죽는다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고, 이는 또한 보편적이고 순수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은 인간의 죽음과 운명을 순수하게 보편적인 사건으로만 전제한다면 수필쓰기가 아니라 철학에 가깝다. 수필을 포함하는 문학이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사유함으로써 철학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문학은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형상화를 통해서 그곳에 도달한다.

 문학이 다루는 운명과 죽음은 보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인칭적인 사건이다. 수필가는 작품에서 자기의 운명이나 죽음과 관련된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차원에서 출발하는 운명과 죽음에 대한 사유과정에서 얼마만큼 깊이를 얻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 깊이가 주는 무게가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운명과 죽음의 문제로 귀결되는 인생살이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와 개인의 구체적인 사건 사이의 균형과 긴장이야말로 수필을 수필답게 하는 핵이다.

 

3)수필의 서술 방법

 문학창작과정에서는 설명이나 논증보다는 묘사나 서사 같은 형상화가 주를 이룬다. 현실이나 체험의 형상화가 문학의 본령이다. 그러나 수필은 다른 일면을 가지고 있다. 수필의 창작과정은 교술(敎述)이다. 교술이란 “알려주어서 주장하고 어떤 사실을 서술한다.”는 뜻이다.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어떤 주장을 펴거나 사실을 기술하는 언어사용 방법이 바로 바로 교술이다. 형상화와 대립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형상화는 대상과 사물과 사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관념과 정서를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형상화이다. 시에서의 형상화는 추상적인 관념이나 정서를 구체적인 존재물을 통해 말하는 방식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있는 그대로’로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고 꾸미는 일이라는 점에서 ‘허구화’에 가깝다.

 교술은 실제 체험을 매개로 하여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직접 기록하고 기술하는 작업이다. 교술은 본질적으로 언어의 심미적 사용보다는 실용적인 사용에 더 접근해 있다. 이런 면에서 교술로서의 수필은 문학적 형상화나 언어의 심미적인 사용과는 거리가 있고, 메시지 전달 쪽이다. 물론 수필의 본질은 정제된 결과물로서 메시지 자체일 수는 없다. 수필은 사물이나 사건을 구체적으로 부여주든, 특정한 관념을 직접 진술하든 간에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에서 보편성을 지향하는 철학적인 사유와 어떤 관점에 입각한 해석은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수필은 세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세상 읽기’라고 볼 수 있다. 그 읽기 방법은 외골수여서는 아니 될 것이고, 여러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이 필요하다. 세계를 보는 시선이 분명한 것에서부터 무수한 중간 항까지 미칠 수 있어야 전체를 균형 있게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훌륭한 수필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좋은 수필가가 되려면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고,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삶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해내며, 대상이 지니는 내면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

 

4)수필의 현주소

 수필은 시나 소설에 비하여 여러 이유로 문학으로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필가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수필쓰기에 대한 자의식의 확대다. 생활과 일상의 단정한 기록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느 독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개인 신상 발언으로 일관하는 작품은 진정한 수필아라고 하기 어렵다. 치열한 실험정신, 수필에 대한 진지한 자의식,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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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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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유소 | 작성시간 14.01.04 1. 좋은 수필가가 되려면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고,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삶의 보편적 원리를 발견해내며, 대상이 지니는 내면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
    2. 치열한 실험정신, 수필에 대한 진지한 자의식,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철학이 필요하다.
    참 좋은 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말이군요.
  • 답댓글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04 그렇습니다.
    신재기 교수는 제가 알기에는 수필을 전공한 몇 안 되는 교수 중의 한 분입니다.
    그리고 수필의 비평과 메타비평을 가장 활발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종래의 나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쓰는 글이 수필이어서는 수필이 주변문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합니다.
    버틀런트 러셀처럼 에세이로 가고, 현실문제로 가야 노벨상으로 갈 수 있다고도 주장 합니다.
    한구에 유핼하는 비슷비스한 종류의 서정수필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며,
    수필 심사에 시인이나 소설가를 참가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유소 | 작성시간 14.01.04 신종찬 한 번 우리 모임에 초대해서 강의를 듣는 건 어떨까요?
  • 답댓글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04 유소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수필의 신세대 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모 교수는 이제 너무 식상합니다.
    특히 시난 소설로 성공한 분들이 가볍게 여기로 슬 수 있는 글이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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