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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3)-미메시스(mimesis), 예술적 인식의 가능성

작성자신종찬|작성시간15.04.22|조회수972 목록 댓글 3

 

미메시스(mimesis), 예술적 인식의 가능성

 아도르노는 이렇게 예술이 현실과의 관련 속에서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미메시스’라는 개념에서 얻는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로 ‘모방’이나 ‘흉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어른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의 소꿉놀이나 동물이나 기차를 흉내 내며 노래하는 것도 모두 일종의 미메시스이다.

 서구 예술사에서 미메시스는 ①눈에 보이는 대상의 외적 측면 그 자체를 재현한다는 의미와,②대상을 규정하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을 재현한다는 뜻이다. 플라톤은 회화나 조각을 ‘깨어 있는 눈을 위한 백일몽을 만드는 기술’이라며 실재처럼 보이는 가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폄하하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미메시스란 대상의 본질적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대상에 대한 ‘인식’과 이를 통한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것이라 했다. 즉 모방을 통해서 참된 인식을 얻을 수 있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으로서 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 모방에는 ‘보편적인 것(the universal)’의 모방과 ‘이상적인 것(the ideal)'이 있다.

 아도르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을 ‘대상과의 동화(同化, assimilation)’라는 의미로 보다 확장하였다. 즉 합리적 주체가 발전되기 인전의 단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대상과 같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험에 처한 곤충이 주변과 유사한 색깔로 변화하거나 죽은 척 하는 의태(擬態, protective mimicry)이다. 이는 죽음과 동회되거나 ‘사물화 됨으로써’ 위험을 피한다. 미메시스의 다음 단계로는 주술 단계이다. 원시시대에 제천에서 주술사는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연이나 악과 유사하게 흉내 내는 행위를 한다. 아도르노는 이런 주술적 제천은 그가 주장한 ‘합리적 계몽의 목적’과 같이 ‘자기령보존’의 목적에서 나온 것이기에 ‘합리적 실천의 원초적 형태’라고 이해한다. 이런 행위는 인간의 합리성이 발전함에 따라 점차 사라져간다. 이제 대상과 비슷해지려는 미메시스가 아니라, 주체의 보존과 자연 지배를 위해 대상과 거리를 유지하고 타지를 지배하려는 개념적 인식이 요청되었다.

 동일성의 원칙에 따라 대상의 비동일성과 차이를 억압하는 추체의 폭력적 동일화인 ‘합리성에 의한 개념적 인식’과는 달리, 미메시스란 대상과의 유사성을 인식하고 생산하는 능력으로서, 대상에 대한 단순한 모방을 넘어서 대상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메시스는 인간의 지성적 능력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무시되어온 대상에 대해서도 감정적 측면을 공유한다. 즉 낯선 것과 동화하고 친화하려는 대산 친화적 관계를 의미한다.

 아도르노는 “오늘날은 몸으로 자연에 동화하려는 대신에 ‘개념을 통한 확인’ 다시 말해 다양한 것을 동일한 것 곡에 집어넣는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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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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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23 이제야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이 왜 벌레로 변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합리적 사고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즉 미메시스를 초월한 동화의 단계에 이른 것이군요.
    그렇다면 동양의 한시에서 자연과 내가 무아별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으니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작성자정찬경 | 작성시간 15.04.23 어렵네요
    창작을 잘하기 위해
    모방을 하는 단계를
    성실히 거쳐야 한다고
    어느 책에서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종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23 걸작을 모방하는 것도 되지만
    문학적 대상인 자연을 모방하고 직접 그 대상이 되어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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