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도보여행' 방인데 도보여행이 아닌 그냥 여행후기를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요.... 비록 걸으며 한 여행은 아니지만 그래도 엉뚱한 딴 얘기 아닌 여행기(旅行記)니까 올려도 허용되겠죠?....(^^) 개인적으론 몇분께 말씀드린 것도 같은데... 저는 태어나길 저 남쪽의 섬진강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코흘리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우리 집이 남쪽의 항구도시로 이사를 가게되어 사춘기시절은 항구도시에서 자랐답니다 때문에 저는 고향이 두 군데인 셈이죠 내가 태어난 고향과 내가 자란 고향..... 지금도 1년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우리 조상들 산소와 친척들이 있는 섬진강가 내 태어난 고향과 우리 부모님이 계시는 항구도시 내 자란 고향을 다녀오곤 한답니다 태어난 곳 자란 곳 모두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그런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건 너무나 이상한일일겁니다 ( 뭔 소리여? ^^ ) 두 군데의 내 고향을 여러분들께 소개 드리고싶어 그동안 남도 내려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덧붙여 가며 고향자랑 좀 하겠습니다 ( 찍어 논 사진 찾고 설명 붙이고 이미지 계정하고 등등..하면서 시간이 하도 걸려 시간 날 때마다 쉬엄 쉬엄 하다보니 요 게시물 완성하는데 대략 한달은 걸렸다는 사실을 참조 해주시길....^^ ) 제가 태어난 곳은 한 마디로 깡촌마을 이죠 요즘은 매화축제니 뭐니 해서 세상에 조금은 알려진 곳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야말로 깡촌 이었던 곳이랍니다.춘향재 ↑ 서울서 우리 고향을 가려면 춘향과 이몽룡의 고장 남원을 거쳐가게 되어있죠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춘향재`랍니다 요즘말로 치면 춘향의 언덕이란 뜻이겠죠 아주 옛날 춘향이 남원을 떠나는 이몽룡을 눈물로 전송했고 변학도의 꼬장으로 옥에 갇히기 전까진 저곳 언덕마루에서 춘향은 옷고름을 씹으며 이몽룡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곳인가 봅니다 지조의 상징 성춘향 홧팅~~! 절개의 상징 성춘향 홧팅~~! 아자~~! (^^)
화개장터 ↑ ......화개 장터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근처에 있는 곳이죠 사진으로 보이는 저곳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최근에 조성된 장터이구요 원래 오리지널 화개장터는 저 뒷쪽 한100여m떨어진 곳에 있는 초라하고 구차한 모습이랍니다...전형적인 옛날의 후줄근한 장터 모습.... 사진 뒤쪽편 개천건너의 오리지널 화개장터 허름한 식당에서 섬진강 재첩국에 막걸리를 한잔 곁들이면 죽음이랍니다..아니, 예술이랍니다 (^^)
강가 고향길 ↑ 우리고향마을 가는 직전의 길목입니다 전 세계에 저렇게 한가한 찻길은 없을 겁니다... 차안에서 음악 빵빵하게 틀어놓고 저길을 스쳐가면............ 스쳐가면...................... 안 스쳐가 본 분은 그 기분 모를 겁니다 ^^ 옛날엔 바위 같은 돌맹이들이 울퉁 불퉁 박혀있었는데 지금은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있죠 제 개인적으론 울퉁불퉁한 길이 낭만과 추억에 젖을 수 있어 좋았는데.....^^
섬진강 ↑ 내 고향 마을 앞을 흐르는 은모래 눈부신 섬진강 모습입니다 지금은 강 모래가 저 정도 이지만 제가 어렸을 적엔 눈이 부셔 강을 바라 볼수 없을 정도로 고운 은모래가 드넓게, 사막처럼 펼쳐져 있었답니다 그 때는 몇 길 밑의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물도 맑았고 맑은 강물엔 은어들이 강속을 메우다시피 무리지어 다녔었죠 수면에서도 보이는 은어떼를 대나무 가지로 후려쳐서 잡을 정도로 은어가 흔했었답니다 지금은 그놈의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고운 모래를 사그리 퍼간 바람에 사진으로도 언듯 보이지만 은모래보다 자갈이 눈에 많이 띄어 제 가슴을 아프게 한답니다.. 사진에 찍힌 내 고향 바로 앞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랍니다 섬진강 전체를 놓고보면 원래 모래의 1/10 정도만 남아있는 셈이죠 고향 어른들 말씀을 빌리면 과거 군사정권시절 강건너 하동지역 당시 권세 막강한 여당 국회의원이 모래채취 업자의 편에 서서 섬진강 모래 채취를 적극 추진 허용했기 때문에 섬진강 모래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공화당때 민정당때 하동 국회의원 이었던 그놈 이름을 난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답니다 그래도.... 아직은 은어가 종종 보이는 그런 맑은 강이랍니다.
섬진강-2 ↑ 고향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모습을 다시 소개합니다 섬진강 은모래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거든요 코흘리개 어렸을 적 난 우리엄마 무명모시 치마폭을 붙들고 저 은모래를 사박 사박 밟으며 강 건너 하동 장이나 화개 장에 따라가곤 했었죠 옛날엔 근 30리 길인 장터 길을 모두 걸어다녔답니다 다니는 차도 없었거니와 교통편이 있었다해도 차비가 없었거든요....
고향 마을 입구 ↑ 내 고향 입구입니다 우리 고향 쪽에서 동네 어귀를 찍은 거죠 저 마을 어귀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지요.....
본가 ↑ 저 산 자락밑 조그만 집들 중 어딘가에 내가 태어났던 집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꼭 내가 태어난 집, 내가 태어난 방에서 잠을 잔답니다 그러면 왜그리 잠이 잘 오는지......마치 엄마 품속 같지요.....^^
마을 뒷산 ↑ 우리 고향마을 뒷산 매화나무랑 밤나무 심어진 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 밑 산자락 아래 옹기 종기 모여있는 집들 중에 제가 태어난 집이 있지요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변의 은모래가 보일겁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은 이쪽은 전라남도 이구요 섬진강 건너 저쪽은 경상남도 하동이죠 옛날엔 주변이 하도 조용해 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 땅에 있는 이쪽 사람과 경상도 땅에 있는 저쪽사람이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눌수 있을 정도였답니다 멀리 보이는 강 건너 마을좌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박경리의 유명한 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가 있습니다.
개울 ↑ 마을뒷산 조그만 개울 계곡의 바위틈사이로 흐르는 물입니다 정말 맑죠? 요즘도 우리 고향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목마르면 저 물웅덩이에 머리를 박고 그냥 벌컥 벌컥 마신답니다 도시에서 패트병에 담아 비싼 돈 받고 파는 생수라는 것 보다 물맛이 훨씬 좋죠... 서울서 한번씩 내려가 마을 뒷산의 그늘진 계곡에 앉아 물소리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젖다보면 시름도 갈등도 미련도 잠깐이지만 깡그리 잊게된답니다 하마터면 세월 가는 것까지 잊어먹고 늙어 죽을 때까지 거기 주저앉아 있을 뻔 하곤 하죠 산골에 쳐박혀 있으면 " 사는 게 뭔데 이렇게도 사는 거고 저렇게도 사는 건데 자연에서 태어나 구름처럼 덧없이 흐르다 내 태어난 자연으로 다시 그렇게 조용히 돌아가는 게 사람 사는 일인데 무엇에 그리 집착하고 무엇에 그리 한탄해야하는지 다 부질없는 것...... " 이런 엄청난 생각을 갖게된답니다 (^^) 모질게 억척스럽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태어난 자연 앞에서 나를 곰곰이 둘러보면 내 신세에 거만할 것도 한탄할 일도 전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성을 자라게 해준 항구도시 ↑ 이번엔.............코흘리개였던 제가 깡촌에서 이사를 와서 청년기때 까지 자랐던 남쪽의 항구도시 전경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이 바로 저의 이성을 자라게 해준 곳이죠 저기 멀리 보이는 저곳 구석 구석, 골목 골목에 제 사춘기의 애절한 사연 하나 하나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답니다 생각 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곳...(^^)
돌산대교 ↑ 제가 자라온 항구도시인 육지와 그 앞에 떠있던 섬을 잇는 연육교입니다 이름하여 돌산대교...섬에서 뭍 쪽을 찍은겁니다.
어촌 ↑ 항구도시 인근의 작은 어촌마을.... 제가 자란 곳 주변엔 이런 어촌이 무진장 많이 널려있지요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 눈으로 살자 -그리운 바다 성산포 中-섬 바위 ↑ 저는 지금도 제가 자란 곳에 가면 한번도 빠짐없이 이곳을 들려서 저 바위 위에 앉았다 온답니다......오동도라고 들어들 보셨는지요?..... 저곳이 오동도의 한 부분입니다.
절벽 ↑ 오동도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장면입니다...... 아래의 코발트빛 바다하며...짜릿하죠? 뛰어내리고 싶죠? ^^
오동도 동백나무 숲길 ↑ 한낮에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백나무로 빽빽하답니다 동백나무 숲옆엔 이 충무공이 임진왜란때 화살대로 썼던 신호대( 대나무 일종 ) 숲이 울창하죠.
동백나무 ↑ 오동도는 어딜 가나 이렇게 동백나무가 많죠 동백이피면 절경이랍니다
섬에는 어딜가나 동백이 있다 동백이 없는 섬은 동백을 심어야지 동백은 섬을 지키기에 땀을 흘렸다 동백은 바위에 뿌리박기에 못이 박혔다 동백은 고독이 몰려와도 울지 않았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中-바닷가 바위 ↑ 제가 사춘기 때 무료하면 찾아와 낮잠을 즐겨 잤던 곳입니다 지금도 시간 여유있게 내려가면 이 바위 위에서 한 반나절정도 낮잠을 자고 온답니다.
나는 때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中-남쪽바위 ↑ 팔베개하고 드러 누워 있으면 갈매기 우는소리, 은물결 파도소리 먼 통통배 노래소리 들리는 오동도의 또다른 한쪽 구석입니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그리운 바다 성산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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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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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해남사랑 작성시간 04.10.25 친구님 덕분에 오랜만에 그리웠던 곳의 사진을 잘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곳에서 태어나서 제가 좋아하는 곳에서 자라셨다니 새삼 다시 보게됩니다. 언제 한번 섬진강 백사장에서 강물에 발담그고 막걸리나 한잔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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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친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4.10.26 두군데의 제 고향에 애정을 보여주신 모든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제 태어난 곳은 '다압면'이랍니다 해남님..그니까 구례쪽에서 보면 섬진강 하류 방향이죠...금오도 당연히 알죠..그곳서 6년이나 계셨군요.. 우리 두 사람 진한 인연같습니다..^^..담에 섬진강 백사장에 발담그고 막걸리 한잔 할날 저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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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솔숲길 작성시간 04.10.26 강에 바다에 산에 .... 친구님 고향엔 없는거 없이 다 있네요. 우와....저도 가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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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민의회 작성시간 05.01.25 태어난곳..자란곳에 대한 애정이...진하게 배어나는 군요// 잘 보았슴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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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골든리버 작성시간 08.11.05 와우~~~~~~~반가워요~~~~^^*
춘향재 ↑
서울서 우리 고향을 가려면 춘향과 이몽룡의 고장 남원을 거쳐가게 되어있죠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춘향재`랍니다
요즘말로 치면 춘향의 언덕이란 뜻이겠죠
아주 옛날 춘향이 남원을 떠나는 이몽룡을 눈물로 전송했고
변학도의 꼬장으로 옥에 갇히기 전까진 저곳 언덕마루에서
춘향은 옷고름을 씹으며 이몽룡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곳인가 봅니다
지조의 상징 성춘향 홧팅~~!
절개의 상징 성춘향 홧팅~~!
아자~~! (^^)
화개장터 ↑
......화개 장터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근처에 있는 곳이죠
사진으로 보이는 저곳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최근에 조성된 장터이구요
원래 오리지널 화개장터는 저 뒷쪽 한100여m떨어진 곳에 있는
초라하고 구차한 모습이랍니다...전형적인 옛날의 후줄근한 장터 모습....
사진 뒤쪽편 개천건너의 오리지널 화개장터 허름한 식당에서
섬진강 재첩국에 막걸리를 한잔 곁들이면 죽음이랍니다..아니, 예술이랍니다 (^^)
강가 고향길 ↑
우리고향마을 가는 직전의 길목입니다
전 세계에 저렇게 한가한 찻길은 없을 겁니다...
차안에서 음악 빵빵하게 틀어놓고 저길을 스쳐가면............
스쳐가면......................
안 스쳐가 본 분은 그 기분 모를 겁니다 ^^
옛날엔 바위 같은 돌맹이들이 울퉁 불퉁 박혀있었는데
지금은 길이 말끔하게 포장되어있죠
제 개인적으론 울퉁불퉁한 길이 낭만과 추억에 젖을 수 있어 좋았는데.....^^
섬진강 ↑
내 고향 마을 앞을 흐르는 은모래 눈부신 섬진강 모습입니다
지금은 강 모래가 저 정도 이지만
제가 어렸을 적엔 눈이 부셔 강을 바라 볼수 없을 정도로 고운 은모래가
드넓게, 사막처럼 펼쳐져 있었답니다
그 때는 몇 길 밑의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강물도 맑았고
맑은 강물엔 은어들이 강속을 메우다시피 무리지어 다녔었죠
수면에서도 보이는 은어떼를 대나무 가지로
후려쳐서 잡을 정도로 은어가 흔했었답니다
지금은 그놈의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고운 모래를 사그리 퍼간 바람에
사진으로도 언듯 보이지만 은모래보다 자갈이 눈에 많이 띄어
제 가슴을 아프게 한답니다..
사진에 찍힌 내 고향 바로 앞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랍니다
섬진강 전체를 놓고보면 원래 모래의 1/10 정도만 남아있는 셈이죠
고향 어른들 말씀을 빌리면 과거 군사정권시절 강건너 하동지역
당시 권세 막강한 여당 국회의원이 모래채취 업자의 편에 서서
섬진강 모래 채취를 적극 추진 허용했기 때문에 섬진강 모래가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공화당때 민정당때 하동 국회의원 이었던 그놈 이름을 난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답니다
그래도.... 아직은 은어가 종종 보이는 그런 맑은 강이랍니다.
섬진강-2 ↑
고향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모습을 다시 소개합니다
섬진강 은모래는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거든요
코흘리개 어렸을 적 난 우리엄마 무명모시 치마폭을 붙들고
저 은모래를 사박 사박 밟으며 강 건너 하동 장이나 화개 장에 따라가곤 했었죠
옛날엔 근 30리 길인 장터 길을 모두 걸어다녔답니다
다니는 차도 없었거니와 교통편이 있었다해도 차비가 없었거든요....
고향 마을 입구 ↑
내 고향 입구입니다
우리 고향 쪽에서 동네 어귀를 찍은 거죠
저 마을 어귀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지요.....
본가 ↑
저 산 자락밑 조그만 집들 중 어딘가에 내가 태어났던 집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꼭 내가 태어난 집, 내가 태어난 방에서 잠을 잔답니다
그러면 왜그리 잠이 잘 오는지......마치 엄마 품속 같지요.....^^
마을 뒷산 ↑
우리 고향마을 뒷산 매화나무랑 밤나무 심어진 밭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 밑 산자락 아래 옹기 종기 모여있는 집들 중에 제가 태어난 집이 있지요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변의 은모래가 보일겁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은 이쪽은 전라남도 이구요
섬진강 건너 저쪽은 경상남도 하동이죠
옛날엔 주변이 하도 조용해 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 땅에 있는 이쪽 사람과
경상도 땅에 있는 저쪽사람이 두런 두런 얘기를 나눌수 있을 정도였답니다
멀리 보이는 강 건너 마을좌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박경리의 유명한 소설 `토지`의 무대였던 '평사리'가 있습니다.
개울 ↑
마을뒷산 조그만 개울 계곡의 바위틈사이로 흐르는 물입니다
정말 맑죠?
요즘도 우리 고향사람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목마르면 저 물웅덩이에 머리를 박고
그냥 벌컥 벌컥 마신답니다
도시에서 패트병에 담아 비싼 돈 받고 파는 생수라는 것 보다 물맛이 훨씬 좋죠...
서울서 한번씩 내려가 마을 뒷산의 그늘진 계곡에 앉아
물소리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젖다보면 시름도 갈등도 미련도
잠깐이지만 깡그리 잊게된답니다
하마터면 세월 가는 것까지 잊어먹고 늙어 죽을 때까지
거기 주저앉아 있을 뻔 하곤 하죠
산골에 쳐박혀 있으면
" 사는 게 뭔데
이렇게도 사는 거고 저렇게도 사는 건데
자연에서 태어나 구름처럼 덧없이 흐르다 내 태어난 자연으로
다시 그렇게 조용히 돌아가는 게 사람 사는 일인데
무엇에 그리 집착하고 무엇에 그리 한탄해야하는지
다 부질없는 것...... "
이런 엄청난 생각을 갖게된답니다 (^^)
모질게 억척스럽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태어난 자연 앞에서 나를 곰곰이 둘러보면
내 신세에 거만할 것도 한탄할 일도 전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성을 자라게 해준 항구도시 ↑
이번엔.............코흘리개였던 제가 깡촌에서 이사를 와서
청년기때 까지 자랐던 남쪽의 항구도시 전경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이 바로 저의 이성을 자라게 해준 곳이죠
저기 멀리 보이는 저곳 구석 구석, 골목 골목에
제 사춘기의 애절한 사연 하나 하나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답니다
생각 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곳...(^^)
돌산대교 ↑
제가 자라온 항구도시인 육지와 그 앞에 떠있던 섬을 잇는 연육교입니다
이름하여 돌산대교...섬에서 뭍 쪽을 찍은겁니다.
어촌 ↑
항구도시 인근의 작은 어촌마을....
제가 자란 곳 주변엔 이런 어촌이 무진장 많이 널려있지요
섬 바위 ↑
저는 지금도 제가 자란 곳에 가면 한번도 빠짐없이 이곳을 들려서
저 바위 위에 앉았다 온답니다......오동도라고 들어들 보셨는지요?.....
저곳이 오동도의 한 부분입니다.
절벽 ↑
오동도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장면입니다......
아래의 코발트빛 바다하며...짜릿하죠? 뛰어내리고 싶죠? ^^
오동도 동백나무 숲길 ↑
한낮에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백나무로 빽빽하답니다
동백나무 숲옆엔 이 충무공이 임진왜란때 화살대로 썼던
신호대( 대나무 일종 ) 숲이 울창하죠.
동백나무 ↑
오동도는 어딜 가나 이렇게 동백나무가 많죠
동백이피면 절경이랍니다
바닷가 바위 ↑
제가 사춘기 때 무료하면 찾아와 낮잠을 즐겨 잤던 곳입니다
지금도 시간 여유있게 내려가면 이 바위 위에서 한 반나절정도
낮잠을 자고 온답니다.
남쪽바위 ↑
팔베개하고 드러 누워 있으면 갈매기 우는소리, 은물결 파도소리
먼 통통배 노래소리 들리는 오동도의 또다른 한쪽 구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