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아주 좋은 공부를 하는군요?
부럽습니다.
철학은 아주 중요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선 형이상학(形而上學)의 꽃이요 종합학문이라 합니다.
인문학 박사를 철학박사(Ph. D. : Doctor of Philosophy)라 합니다.
저는 면접 때 전공학과 정의를 물어보았습니다.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답변하는 사람은 희귀(稀貴)하고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선무당이 압도적 다수(多數)였습니다.
철학 전공자라면 아마 다음 같은 질문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식(知識)과 지성(知性)의 차이는?” 또는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을 한 마디로 하면?”
일언가파(一言可破)ㆍ일어도파(一語道破)
자기 전공학과도 “한마디로 정곡을 찌르지”못하는 석ㆍ박사 자녀!
허리 빠지게 가르친 부모가 그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우리대학의 현주소 아닙니까?
개인적으로는 80만 시간(望百망백)도 살기 어려운 짧은 인생 낭비,
국가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사회비용 지출 아닙니까?
조물주에는 임무, 사명(使命 : mission) 불이행 아닙니까?
나는“정의를 못하면서”
남이 말하면 “대충 알아듣는 찍기 수준을”안다고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스로 지도자 감이 아니라 “머슴 감”임을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이처럼
함량미달 머슴 감이나 찍어내는 불량공장 같은 대학은 빨리 정리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육은 피아노 배울 때의 “건반(鍵盤)”, “악보(樂譜)”처럼
기구(器具) 이름과 용어 정의(定義) 익힘부터 시작합니다.
잘한 시작은 반 이룸(Well-begun is half-done.)이라 합니다.
첨부의 글이 잘한 시작, 좋은 시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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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知識人)과 지성인의 정직성(正直性)
정의(定義)를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
① 지식과 지성 ② 지식인과 지성인 ③ 지성인의 정직성을 가르치지 않으면
양두구육(羊頭狗肉)의 학위(學位) 판매점이지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지식(知識)과 지성(知性)
知識은 아는 것, 앎 자체
知性은 지식 + 실천이다.
♣ 예수 성경(聖經)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26)에서
“믿음”에 “지식”을 대입하면 행함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된다.
지식인(知識人)과 지성인(知性人)
지식인은 아는데 그치는 사람(止識人)이다.
언과기실(言過其實), 실천보다 입만 살은 사람이다.
입만 살은 선무당(NATO : No Action Talks Only)이다.
지성인은 언행이 일치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인(人)이다.
이성(理性)의 힘으로 이상(理想)을 실현시켜나가는 사람이다.
지성인의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
다음의 가치관과 이념(행동강령ㆍ행동기준)을 말한다.
소극적으로는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불의(不義)하지 않는다.
-견리망의(見利忘義), 허언(虛言)과 사기(詐欺)를 하지 않는다.
-불법ㆍ위법ㆍ탈법ㆍ비리(非理)와 결탁하지 않는다.
-빙공영사(憑公營私)ㆍ당동벌이(黨同伐異)ㆍ동이불화(同而不和)하지 않는다.
-소속 집단과 민족을 배신하지 않는다. 등.
적극적으로는 정의사회구현과 국리민복을 위해 사명(使命)을 다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 견위치명(見危致命)의 선봉에 선다.
-집단이기주의 대신 화이부동(和而不同) 한다.
-대안을 제시하고 자기행동에 책임을 진다. 등.
지성인이 정직(正直)하지 못하면 무식함만 못하다.
사기꾼ㆍ탐관오리(貪官汚吏)ㆍ정상(政商) 모리배(謀利輩)ㆍ황금의 노예ㆍ
권력의 매와 개(鷹犬응견)가 되기 쉽다.
불신과 양극화 사회로 몰아가는 기세도명(欺世盜名)의 독재자로 전락한다.
문맹률이 높았던 해방 전후만 해도 선무당 지식인도 희소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순기능(順機能)보다 역(逆)기능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계효용(限界效用) 영(零) 이하의 잉여(剩餘)인간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지성인의 정직성을 가르치지 않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 한다.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A 토인비의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에 해당하는
정직하고 창조적인 지성인(知性人)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대학에서 양산하는
회수(回收 : 리콜) 폐기도 할 수 없는 걸어 다니는 불량품이 아니다.
그런데 지성인과 지식인을 쉽게 정의하는 사람이 드물다.
지성인의 정직성을 배웠다는 학위소지자가 희소(稀少)하다.
대학 망국(亡國)현상 이대로는 안 된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석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5.05 <필우(筆友) 또는 통신붕우(通信朋友 : 펜팔)>
독서상우(讀書尙友),
옛날에는 독서를 통하여 경사(經師)와 인사(人師)를 접했다.
그러나
현대 전자 사회연결망(Social Network Services) 시대엔
국경을 초월한 필우(筆友)가 대세(大勢)다. -
작성자덕산 작성시간 15.05.05 하하하하하하! 철학은 역시 어려워요!
그러나 <지성인이 정직(正直)하지 못하면 무식함만 못하다>는 말씀엔 동의 합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용을 씁니다. 하하하하하하! -
작성자성산(省山) 작성시간 15.05.06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선무당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지당 작성시간 15.05.06 일반인들이 학위소유자를 보는 눈도 어디다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실력의 소유자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학력수준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앞서는 것도 큰 문제다. 지난번 선거에 국회의원 출마자들이 남의 논문을 베껴내서 학위를 취득했다는 기사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혀를 차게 한 사건도 그 한 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엉터리박사가 천명이 넘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어느 국회의원이 조사해 보니까 이들 엉터리박사 이백 여명이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요즈음 정부 요직이나 정치판에서도 박사학위의 소유자가 아니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
작성자지당 작성시간 15.05.06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권력이나 경제력을 소유하고 있는 그들이 각처에 난립한 대학들과 적당히 유착하여 손쉽게 따낸 학위일 것이라는 추측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박사학위의 신뢰를 추락시킨 원인이다.
모름지기 박사는 博士여야 한다. 박사가 薄士여서는 안 된다. 정부에서는 얄팍한 제도로 박사를 양산하는 실태를 파악하여 국민 누구나가 박사학위를 지닌 사람들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사회를 조성해 나갈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박사(薄士)들이 박사(博士)학위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설치는 풍토를 하루 속히 지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당수필 薄士와 博士 의 후미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