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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의 탄생
3월 18일 금요일
당장 짐을 챙겨 그네들 집으로 가야 했다. 저녁 잘 먹고 가만 있던 우리 내외가 갑자기 복닥불이라도 난 것처럼 떠들썩하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허둥대자 함께 계시는 노모께서도 의아스러운 모양이시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지만 이 밤중에 온 식구가 솔권(率眷)해서 둘째 손자네 집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니 아무래도 썩 마음이 내키지가 않으신 것 같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 안양 임곡에서 인천 송도 걔들 집까지는 정확이 30 km, 시간은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새로 생긴 제3경인 고속도로는 안양과 송도를 거의 일직선으로 잇는 자동차전용도로라 우리를 위해 만든 길이라 할 만큼 이용이 편리하다. 우리가 거처를 이곳에 정할 때도 두 아이들 집과의 거리가 우선 고려의 대상이 됐던 게 사실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워낙 지역이 넓고 교통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큰아이네 집은 강남 대치동이다. 거기까지는 20km 정도, 그래도 시간은 역시 30분 가량 걸린다. 그것은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한 과천대로를 따라 양재 I.C.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아이들이 사는 곳과는 딱 중간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모친과 집사람 나 세 식구가 가서 며칠 머무를 생각을 하고 대충 준비를 해서 떠났다. 거기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쯤이었다. 출산이 임박하자 불규칙적으로 진통(陣痛)이 온다 뿐이지 임산부의 상태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단다. 초산 때에도 순산이었으니까 이 번에도 순조로우리라는 기대는 했던 바다. 그때 우리 내외는 뉴욕에 살고 있었다. 그들 내외는 필요한 준비를 해서 서둘러 병원으로 떠났다. 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다. 그들이 집을 나선 시간이 밤 10시 40분경이다.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손자 녀석은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거기다 왕할머니까지 출동을 하자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잠 잘 시간이 됐는데도 잘 생각이 없다. 엄마 아빠가 병원에 간다면서 집을 나가자,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어리둥절하기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겨우 두 돌이 지난 아기지만 평소에 엄마의 몸 상태며 동생이 생긴다는 등의 이야기를 누차 들려주었고 다짐도 받아둔 터라 그런지 조금도 보채지 않고 이해를 하고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이 참으로 기특하다.
녀석은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다 뿐이지 못 하는 말이 없고 못 알아 듣는 말이 없다. 어린 아기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보다 더 신기할 수가 없다. 옛 어른들이 영리해서 말을 잘 듣는 어린 아기를 보고 ‘강아지보다 낫다’ 하시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성장 과정, 특히 아기들의 지적 발달과정은 한 마디로 경이(驚異) 그 자체다. 보기만 해도 귀여워 죽을 지경인데 강아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영리하니 이 어찌 어린 손주가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으리요.
어디 나뿐이겠느냐만 일단 손주 하면 나는 껌벅 넘어가는 사람이다. 손주가 좋아서 죽고 못사는 할아버지란 말이다. 만약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자 손녀가 없다면 노년에 그들의 삶의 모습이 어떨까 자못 궁금하다. 하기야 손주 없는 노인들도 없지는 않다. 그들에 비하면 손주의 재롱을 보는 노년의 삶은 그만큼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조손(祖孫)의 관계에서 득실을 따지자면 조(祖)가 단연 유리하다 하겠다. 그러니 그들 손(孫)이 조(祖)에게는 그렇게 귀엽고 소중한 존재가 될 수밖에.
그날 밤 사이에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사태 추이(推移)를 수시로 보고하라고 아들에게 당부는 해뒀지만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벽녘이 되자 드디어 전화 벨이 울린다. 희소식이다. 순산을 했단다. 2011년, 辛卯 3월 19일, 토요일(음력 2월 보름)
한때 우리 내외는 손녀 보기는 영 글렀다는 생각에 체념을 한 적도 없지 않았다. 며느리 둘은 튼실하고 똑똑한 손자를 낳아 훈장을 이미 하나씩은 받은 상황이다. 큰아기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 이후로는 지금까지 소식이 감감한 상태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손녀를 얻게 된 기쁨은 배가 된다 하겠다. 우리 내외는 적선(積善)이나 자선을 베푼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노년의 모든 복을 다 누리게 되는지 그저 감사, 또 감사한 마음뿐이다.
회임(懷妊)에서 출산까지 열 달 동안 일구월심(日久月深) 태아에게 쏟은 지극정성에다 진통과 산고(産苦)를 무릅쓰고 순산을 한 작은아기, 그가 너무도 대견하고 장하고 기특하고 고맙기 이를 데 없다. 그는 정녕 우리 가문의 또 한 사람의 일등공신이다. 작은아기는 훈장을 하나 더 받게 됐다.
생명의 탄생은 우리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위대한 생명의 탄생은 있을 수 없다. 출생까지의 전 과정에서는 신의 섭리를 좇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탄생에는 환희와 희열만이 아니라 동시에 경건과 경외가 없을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이 거저 내리시는 선물인 동시에 은혜요 축복이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 인간이 어찌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있으리요.
집에 남아 있던 식구 네 사람은 점심을 먹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세상으로 내려오신 공주님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생후 10시간 만에 극적 상봉이 이루어진 셈이다. 두 살짜리 오라비, 할머니, 할아버지 게다가 아흔 일곱이신 왕할머니까지 마중을 가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만남의 자리이었겠는가. 그런데도 공주님은 눈도 뜨지 않고 잠만 잘 자고 있다. 그도 열 달 만의 세상구경이 힘이 들었나보다.
주말이라 그날 오후에는 멀리 경주에서는 외할머니, 큰이모, 이모부가 올라오셨고, 서울에서는 작은이모가 면회를 왔다. 이래저래 온통 기쁨으로 들뜬 오늘은 공주님의 탄생에 소리 없는 그러나 커다란 팡파르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 복된 하루였다. Happy birth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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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松島에서 / 草雲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박종승 작성시간 11.03.25 예쁜 공주 출산을 축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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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namd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3.26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녀 얻은 기쁨에 요즘은 입꼬리가 귀밑에 걸렸습니다만,
이런일로 회원 여러분과 할께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하는 게 유감입니다.
춘설이 난분분한 가운데 춘빙화 (春氷花)도 피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봄은 벌써 이만치
우리 발밑에까지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박선생님과 우리 회원님들 모두 싱그러운
봄과 더불어 더 멋진 산행, 신나는 산행 만끽하시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