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초(任鐵樵)
庚 五 年 壬 一 兄 支
死 遊 直 天 門 魂 符 芮 | 丙 十 月 戊 六 [世] 支
驚 天 螣 天 門 醫 蛇 柱 | 丁 七 庚 九 父
傷 福 太 天 門 德 陰 心 | 1773년 음력 4월 18일 辰시 <乾命>
81 71 61 51 41 31 21 11 1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陽遁
芒種 下元 9局 | |
戊 六 辛 十 鬼
生 絶 九 天 門 命 天 英 | 九 癸 七 財
| 己 二 丙 四 父
景 歸 六 天 門 魂 合 蓬 | ||
壬 一 乙 五 官
杜 絶 九 天 門 體 地 輔 | 辛 八 己 八 孫
開 禍 朱 天 門 害 雀 冲 | 乙 三 丁 三 孫
休 生 勾 天 門 氣 陳 任 |
임철초자평
무더운 여름철에 태어났는데 연지 巳火는 남방의 旺火이니 절지에 앉은 연간의 癸水는 약한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니 그것으로서는 가득 실린 한 수레의 짚의 불을 어찌 끌 수 있겠는가.
이 사주는 연간과 월간이 합하여 化火하니 용신인 시간의 壬水 殺을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억지로 火로 변화하여 겁재가 되니 미쳐 날뛰는 양인만 돕고 巳 중 庚金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안 된다.
壬水가 비록 자기 신고(身庫)에 통근하였으나 金의 생조함이 없으므로 청고(淸枯)한 상(象)인 데다가 운마저 초년 40여 년을 木火로 주행하여 겁재와 양인만 생조한다.
이리하여 위로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이름을 이룩하지 못하였고 아래로는 전답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였고 창업도 못하였으며, 육친 골육관계도 그림의 떡과 같았고 반평생의 사업도 역시 뜬구름과 같았다.
卯 운에 이르니 壬水는 절지이고 양인은 생을 만나 골육의 변괴를 당하였고 이로써 가운은 기울고 재산은 탕진하였다.
당시에는 명리학을 배우지 아니하였을 때라 역학자를 초청하여 추산(推算)하여 보았으나 허황하게 포장하여 명리(名利)가 여의하여 성공한다고 하였으나 뒤에 보니 털끝만큼도 맞지 않았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또 나는 타고난 성격이 편고하고 옹졸하여 성실한 것만 좋아하고 허황되고 부앙한 것은 싫어하며 아첨할 줄 모르고 오만함이 많았으니 교류 왕래에 매양 딱 잘라 바른 말을 하니 어울리지를 못하였다.
내가 늠름(凜凜)하였던 것은 나의할아버지에 이은 아버지의 충후(忠厚)한 가르침을 감히 실추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부터 가업은 형편없이 망하여 갔으므로 마음 속에 두었던 명리학을 호구지책으로 하게 되었다.
대저 여섯 자 한 몸으로서 멀리 큰 뜻과 소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한갓 작은 기예로서는 웃음거리밖에 될 수 없었으니 이는 나 스스로 생각해 볼 때 命運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매사에 이익이 될 수 없었다.
이로부터 수레바퀴의 패인 자국 속의 고인 물에 사는 붕어의 신세처럼 겨우 몇 되 몇 말의 물로써 한계를 맞아야 하게 되었다.
땅에도 한계가 있고 時에서도 곤궁함이 있는 것이니 슬프도다. 命運이 아니면 안되니 그 바르게 이르는 바를 순수하게 받아야겠더라.
註
신왕이 지나쳐 시간의 壬水 편관 칠살이 용신인데 용신의 힘이 부족하여 크게 발전이 안 되었다고 자탄을 하고 있는 것은 맞는 사실이나 임철초선생이 놓친 내용이 하나 있다. 그것은 연주 癸巳에서 보면 월지, 일지가 공망이라는 사실이다. 사주의 핵심에서 절반이나 공망이니 승려 역술인의 팔자는 어쩔 수 없다.
기문둔갑해설
임철초선생이 자기성격을 일러 “편고하고, 옹졸하여 성실한 것만 좋아하고 허황되고 부앙한 것은 싫어하며, 아첨할 줄 모르고 오만함이 많았고, 교류 왕래에 매양 딱 잘라 바른 말을 하니 어울리지를 못하였다” 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즉 싫고 좋은 것이 분명했고, 타인을 다소 깔보기도 했으며 대인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런 성품은 기문 世궁에 경문(驚門)이 있어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문(驚門)은 지나친 정의감으로 다소 구린내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바른 말을 하는편이라 대인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까칠한 성격의 대표주자인 등사(螣蛇)까지 있으니 스스로 일러 오만하다고 토로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丙加戊의 비조부혈격(飛鳥趺穴格)이라 생각이나 행동은 고상하였으리라 보여지고 나름 따르고 추종하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며, 世가 비록 승쇠(乘衰) 거쇠(居衰)하여 부격(富格)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극빈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궁에서 재(財)가 七⦁九로 상전(相戰)하며 연지궁에서 형(兄)이 중궁을 충극하니 처복(妻福)은 없었을 것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우명 작성시간 18.12.09
기문을 배우긴 했지만 그것도 안 써먹으니 곧 잊아삘고 마는군요.ㅎ;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817161 51 41 31 21 11 1
己 庚 辛 壬 癸 甲 乙 丙 丁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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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우명 작성시간 18.12.10
원국은 합관존살하여 양인용살격이 성격되었군요.
비록 신태왕하고 용신 칠살이 약하면서 조열하지만 어쨌든 성격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운에서 오랫동안 꼬여 패격으로만 치닫게 되네요.
-정사대운엔 정임합으로 상신합거
-병진대운엔 상신을 유지하니 간신히 패중유성
-을묘,갑인대운에는 인성 甲,乙이 식신 戊를 쳐내
정관 癸를 살리니 관살혼잡으로 패격,
-계축,임자대운에는 다시 관살혼잡과 중살로 패격
-신해,경술대운에는 재성 庚,辛이 용신 칠살 壬을 생조하니
비로소 좋은 운이지만,
평생 좋은 적이 없었다는 실상에 따르면, 이 대운까지 살지 못했을 공산이 크군요.
물론, 신해 재성대운에 대운 자체는 성격이더라도, -
답댓글 작성자우명 작성시간 18.12.09 우명
丁,戊,己 세운이 되면 칠살의 합,극제에 의해 대운의 재성 辛이
양인격에 그냥 탈재되니 파격이 심하겠지요.
아무튼 이 사주는 묘하게도 대운에 의해 계속 관살혼잡이 이어진 경우가 됩니다.
그러나 군핍한 환경에도 명리학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관살혼잡의 영향을 받긴하지만,
-신왕사주였고,
-관살의 조후는 필요로한 사주였다는 점이
오히려 자신의 운명에 진지한 관심을 두게 만들어
비주류 학문인 사주학을 연구하는 동력원으로 작용했을 상황이 엿보입니다.
열악한 환경이 특징적인 위인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되려면 패운 속에도 맷집이 강해야 하니,
일단 신왕하고 봐야 의지를 살릴 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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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우명 작성시간 18.12.10 우명
위 댓글 중..[..상신 칠살을...]을 [..용신 칠살을...]로 바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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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현각 작성시간 18.12.09 양인격에 孤煞이 무력하여 문제가 되네요..
계축대운부터 孤煞이 힘을 얻게되니,
유명세를 타게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