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인은 식신을 극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하고 타고났다. 편인은 "도식"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밥그릇을 엎고 나아갔
으니 그의 정신이 대단하다.
편인은 자유인이다. 식신을 극해서 스스로 살을 받아들였으니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포기하고 살이라는
어렵고 험한 사지로 자신을 몰아갔으니 우리는 편인을 "활인공덕"이라 칭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처한 것도 아니요 스스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 험한 길로 가고자 했으니 위대한 인물이 이러하고 존경받는
성자 또한 이러할 것이다.
이러한 편인에게 있어 식신은 현실이라는 눈 앞에 놓인 건너야 할 강과도 같은 것이다. 살을 맞이하기 이전에 식신이라는
현실을 도외시 하고 외면해야만 하는데 그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내일 당장 갚아야 할 대출에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가야할 아이들 등록금에 이러한 현실들이 편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부질
없이 느껴진다. 아니 부질없이 느끼고 싶다는 말이 더 합당할 것이다. 현실은 편인에게 이러한 상황을 무시할 수 있게끔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인에게 있어 식신이란 너무나도 인정하기 싫은 현실인 것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며 강변한다. 그 강변이 너무 처절해서 편인 스스로 가슴이 찟어질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놈에
현실이 뭐길래 이 식신이라는 강만 넘으면 저기 살이라는 나를 그냥 뭍을 수 있는 평안한 곳이 있는데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안타까움에 밤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편인을 괜히 효신이라고 했던가.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편인에게 식신이 없다는 것은 아무런 목적의식을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다. 세상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즐거움이 무엇인지
왜 세상을 살아가며 숨을 쉬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매일매일이 똑같고 지겨워서 그 지겨움 마저
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식신이 없는 편인인 것이다.
편인에게 식신이 약하다는 것은 지긋지긋한 현실을 어서 빨리 외면하고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삶을 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다. 그러한 삶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삶의 긍정이고 목표인 것이다.
편인에게 식신이 왕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고 따라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패배감이다.
팔을 움직여도 그냥 저절로 움직이는것 같고 거리를 걷고 있어도 다리가 나를 싩고 나르는 것 같다. 모든 일에 의미는 없지만
현실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이 있기에 열심히 움직이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존재감을 가끔씩 떠올리게 된다.
편인에게 있어 식신은 현실이다. 그 현실은 편인의 이상향과는 너무나 다르며 그 현실을 뛰어넘기 너무 힘들기에 편인에게
식신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인 것이다...
편인에게 활인공덕은 삶의 의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