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지간
송경화
초등학교 3학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전학을 갔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2공장이 지어지는 바람에 그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전학해 온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아 3학년도 삼부제 수업을 했다. 전학하던 날 엄마가 급한 볼일 함께 못해서 내가 1학년 여동생을 데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교무주임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잠시 후 3학년 주임 선생님이 학생기록부를 건네받아 훑어보시고는 내 손목을 이끌고 본인의 반으로 데리고 가셨다. 긴 복도를 걸어가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넌 참 용기가 있는 아이구나.”
그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리고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불안과 긴장으로 떨고 있던 나를 미리 알아봐 주셨다. 얼마나 떨리고 무섭든지…. 내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하도 커서 선생님이 들으셨나? 했다. 그 후로 담임이 되신 선생님은 모두에게 항상 칭찬으로 자신감을 심어주셨고 친절한 말투와 재미난 이야기들로 친구들은 선생님을 무척 따랐고 나는 선생님 덕분에 새 학교의 두려움을 일찌감치 덜 수 있었다. 한 반에 6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던 그 시절에는 선생님의 든 지휘봉 하나에 눈빛과 호흡이 하나가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자 부모님 이상의 커다란 존재였다.
요즘 교권이 바닥을 떨어졌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사제지간의 존경과 사랑은 예전에는 있고, 지금은 없는 아련한 추억에조차도 끼지 못한다. 일부의 학부모는 선생님 위에 군림하고 학생은 선생님을 조롱과 멸시를 서슴지 않는다. 선생님은 학부모와 학생을 무서워하고 학생의 인권을 앞세워 그들의 일탈에 대해 비겁한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현재 공교육을 싸잡아 매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제 자식을 위한답시고 교단 앞에 선 선생님들을 사사롭게 옥죄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선생님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아울러 백년대계 중 가장 으뜸이고 심열을 다해야 하는 게 난 교육이라 생각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선생님은 학생들의 버팀목이자 길라잡이가 되며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무한 신뢰할 수 있는 끈끈한 사제지간이 되길 바란다. 늘 가고 싶은 학교, 즐거운 면학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선생님과 학생이 따스한 눈빛의 교감만은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들의 말씀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고, 삶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 있다. 50여 년 전 긴 복도를 함께 걸어가시며 다독여 주셨던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 안에 존경하고 그리운 선생님 한두 분쯤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박웅 선생님,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