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모음 ‘ㅔ’ 울렁증
김인기
나도, 참! ‘어제’를 ‘어재’로 쓴 적은 없으면서, ‘모레’는 왜 이러나? 어째 ‘모래’가 바른 듯해. 그러면 ‘아재’와 ‘아제’는 또 어떤가? 나는 언제나 ‘새우’를 ‘세우’로 쓰고 싶어진다. 뭐가 맞더라? 급기야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도 ‘-개’인지 ‘-게’인지 헷갈려. 나도 어이가 없다. 단모음 ‘ㅔ’ 울렁증. 내가 수십 년 동안 이런다.
나도 당황스럽다. 다시 생각해 봐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내가 왜 이러는지 짐작하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이었거나 5학년이었던 어느 봄이었을 것이다. 그때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다. 옆에 앉은 짝과 서로 바꿔 채점도 했다.
“100점인 사람 손 들어!”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100점이었으니까.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그 선생의 성함도 얼굴도 깡그리 잊어버렸고, 내 짝이었던 녀석조차 누구였는지 도통 까마득하지만, 당시에 내가 몹시도 무안했던 건 분명하다. 아마도 이게 그만 마음의 상처가 되었나 보다.
“뭐? 네가 100점이라고? 어디 보자.”
시험 문제는 20개였는데, 내가 ‘쓰레기통’을 ‘쓰래기통’으로 잘못 받아 적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100점이 아니라 95점이었다. 원래 경상도 사람들은 ‘에’와 ‘애’의 발음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런 만큼 이런 거야 사소하기도 하거니와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누구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넘길 일이지 딱히 뭐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내게는 이렇게 후유증으로 남았다.
나는 늘 ‘ㅔ’와 ‘ㅐ’가 헷갈려서 글을 쓸 때마다 사전을 뒤적여 확인한다. 오늘 살펴본 것이 내일이면 또 의심스럽다. 과연 별난 울렁증이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 일찍 했더라면 이미 해소했을 불안과 긴장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러다가 바로 며칠 전에도 그만 실수했다. 숙부님이 작고하여 내가 추도사를 썼는데, 내 심정이 뭘 확인하고 어쩌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이고야, 자그마치 50여 년 전이었잖아. 그게 뭐라고, 아직도 이래. 이제는 아무도 모를 듯한 그 사건을 굳이 애써 되새길 것도 없는데. 그러면 이건 어디까지나 다소 별난 억측일 뿐인가? 또는 근거 없는 망상이거나. 그러나 나는 이걸 꼭 이렇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인간사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본인도 연유를 몰라. 이를테면 어느 모자라는 부모가 화가 나서 이랬다고 하자.
“어휴, 어쩌다가 저런 게 나서!”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을 상대로 악담하는 부모들도 전혀 없지는 않다. 조상님이 보우하사 이러고도 아이들이 멀쩡할 수는 있으나 더러는 그 가슴들에 내내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지 않으랴. 그나마 당사자가 나중에라도 그게 그럴 만했다고 수긍하고, 자기도 부모가 되어 자식들 일로 속을 끓여보면, 새삼스레 뒤늦은 효심이 솟구치기라도 하려나. 그러나 이 또한 쓸쓸하다.
예전 산골 아이들은 대단했다. 과연 그 모습들이 명랑하기도 했겠지만 꾀죄죄하기도 했을 거야. 요즘은 발견조차 어려운 이[蝨]도 저마다 몇몇 마리씩 보유했다. 그때가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거야. 날씨가 제법 쌀쌀했으니 3월이었거나 11월이었을 텐데, 선생님이 어느 날은 세수도 안 하고 학교에 온 녀석들을 교실 밖으로 모두 내쫓았다. 당장 개울로 나가서 씻고 오라고.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김인기! 너도 나가!”
그날 나는 세수하고 등교했기 때문에 억울했다. 그러나 선생의 고함에 놀라 나도 아이들과 함께 교문 밖 개울로 우르르 몰려가서 다시 얼굴에 물을 묻히고 돌아왔다. 물론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만큼 다시 씻고 오는 게 당연했으나,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던 당시의 나는 선생님의 처사가 부당하게만 보였다. 나는 집에서 세수하고 왔으니까. 그렇다고 이 때문에 무슨 후유증이 남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건 ‘받아쓰기 사건’과는 다르게 남들 앞에서 나 홀로 무안을 당한 게 아니다. 선생님이 공연히 별스러운 거지, 내 얼굴이 어때서? 이게 아이들의 심리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나중에 그게 완벽히 수긍이 된 것이다. 비록 세수한 얼굴이더라도 땟국으로 얼룩졌다면, 다시 씻는 게 당연하다. 와, 그러고 보니, 가시덤불은 곳곳에 있네. 어쩌면 누군가는 물을 몹시 겁낼지도 몰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참, 어렵다.
[2026.3.24.]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유당 노병철 작성시간 26.03.24 회충때문에 '똥'검사를 받아야 했던 시절. 놀기 바빠서 잊어버렸고 짝꿍인 말숙이 똥을 나눠서 냈습니다. 그런데 말숙이는 멀쩡했고 나만 불려나가 회충약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습니다. 엄청 쪽팔렸던 기억이 납니다.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김인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3.25 제가 글을 다소곳이 썼지만, 사실은 이게 여간 심각한 사안이 아닙니다.
제가 산골에서 대구 어느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얼마 뒤 한 여자 아이가 또 전학을 와 한 반이 되었어요.
어느 날은 담임 선생이 책걸상 모두를 뒤로 물리고 뭐라고 길게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들이 차렷 자세로 꾸지람을 한참 듣는 그 와중에
새로 전학 온 그 아이가 그만 더는 참지 못하고 오줌을 요란하게 싸버린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가 누군지도 다 잊어버렸지만,
이건 분명히 당사자에게 오래오래 남을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실수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다 누구와 대판 싸웠는데
그 상대가 그날따라 밖에서 사고가 나서 사망해버렸다거나.
이게 꼭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 하지만
본인은 평생 마음의 짐이 됩니다.
제가 회원님들의 글을 더러더러 읽으면서 무척 괴이하게 느끼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 정황상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나 모두 무난하지?'
'이게 어쩌면 핵심에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게 아닐까?'
제 스스로 '내가 과민한가?' 반성도 하면서 종종 이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