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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한 병

작성자숙온 서해숙|작성시간26.06.14|조회수72 목록 댓글 7

 정구씨를 열흘째 간병하고 끝나는 날이다. 교대시간을 정확하게 지킨 보호자는 불쑥 참기를 한 병을 내민다. 직접 농사지어 짰다고 했다. 얼떨결에 받아 쥐고 말을 더듬으며 고맙다고 했다. 줄 것이 마땅찮다며 정중히 인사하는 노부부가 어찌 그리도 닮았던지. 몸집은 작고 말랐으나 얼굴에 선한 빛이 역력했다. 참기름 건네주는 손마디가 그분들의 고단했던 삶을 대변해 주었다. 마디마디 휘어진 모습은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시다 가신 친정어머니의 손가락들과 닮아 있었다. 노부부는 환자의 후견인인 큰 누님 내외였다.

 

 간병 일을 접수하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환지일지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센터에서는 간단한 정보만 주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부디 이번에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간병사가 되게 해달라고 고상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이런저런 핑계로 냉담중이지만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이 생기면 기도는 한다. 부족한 제가 새 환자에게 정성을 쏟게 해달라는 간절함이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질병의 환자라도 두려움이 거두어진다.

 

 정구씨를 처음 본 순간 움찔 놀랐다. 그는 깡마른 체구에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온 상태였다. 십년째 요양병원에서 와상환자로 지내다가 몸 상태가 악화되어 대학병원인 Y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이상하게 배가 볼록하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 폐렴 치료가 급선무라 했다. 스물다섯 살인 환자의 둘째딸이 일주일간 간병을 했단다. 한창 젊음을 만끽할 나이게 중환자를 돌보다니 눈물겹게 기특했다. 무슨 사연인지 부인이 없는 정구씨는 오른손으로 침대를 올려라 내려라 지시하고 목 쪽으로 손이 가면 가래 제거 작업인 셕션을 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가끔 글씨도 쓰는데 손에 힘이 없어 해독이 어렵다. 그는 서울 중심부 국세청에 첫 발령을 받은 공무원이었으며 근무 중에 뇌경색이 와서 중환자가 되었단다. 무탈하게 일 했었다 해도 지금 퇴직을 한 상태이겠지만 지병을 털고 일어나서 일터로 복귀할 희망을 품고 있었다. 면도를 아주 귀한 일과로 여기는 모습이 미사 중에 신부님이 포도주 잔을 닦듯 성스럽기까지 했다.

 

 연일 폐 사진을 찍고 복부 사진도 찍더니 폐렴은 잡히는데 대장에 문제가 있는지 봐야한단다. 젊고 멋있는 주치의가 장갑을 끼고 또 끼고 네 켤레나 끼더니 잠깐 달려가서 수술실에 들어갈 때 쓰는 푸른빛의 모자와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며칠 전에 한 번 관장을 하고 나서 삼일동안 몸에서 냄새가 나더란다. 그 동안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암환자들이 먹는 고단백 음료와 과일로 식사를 대신했다. 정화조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나니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몹시 괴로워했다. 내리 일주일을 관장을 하며 대장 내시경을 하고 병이 호전되고 보니 순전히 배설의 문제였다. 급한 불을 끈 정구씨는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고 나는 주둥이를 노란고무로 칭칭 감아 야무지게 싸 맨 참기름을 귀히 안고 귀가했다.

 

 길게는 한 환자를 6개월 돌봤으며 짧게는 삼일 간병했지만 답례로 참기름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한 달에 백오십만원의 국민연금을 받아 생활하면서 왕복 100km나 되는 텃밭에서 농사짓는 게 유일한 낙이라는 노부부가 손수 가꾸고 짠 참기름 한 병이 내게는 모진 각성제가 되었다. 환자의 누나였던 주보호자는 열아홉평의 아파트에서 친정조카까지 아홉명이 살았는데 암에 걸리는 바람에 부업을 접었단다. 지병의 휴유증으로 그 어떤 화장품도 못 바른다는 일흔셋의 나이인 그녀의 얼굴은 지금 우리 아파트 뜰에 피어나는 목련 같았다.

일터가 시공간에 갇혀서 얼굴 맛사지 못 받고 파마도 제 때 못함을 무척 속상해 했는데 정구씨 누님을 뵙고 나니 최고의 미용은 선한 마음씀씀이란 생각이 간절했다. 한병의 참기름이 그 어떤 조미료보다 고소하게 내 삶을 버무려 주었다 (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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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박명희 | 작성시간 26.06.18 남평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모님을 간병하시고 계시다니 대단하시고 훌륭하십니다. 그야말로 노노케어이시네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십시오.
  • 작성자숙온 서해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4 이른시간에 남평 선생님 선플을 읽고 맨공 중 답글을 씁니다. 저도 욕심을 내봤습니다만 요즘 유튭이나 쳇GPT가 워낙 자상해서요.
    제가 일이 힘들 때 자기 주문을 합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 사해 주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케어합니다. 그야말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배워도 익혀도 끝이 없네요.

    직접 부인을 간병하시다니 그것도 그 긴세월을요 존경합니다. 전 돈버는 재미에 더하여 절 수발 하는 남편에게 소일꺼리 제공도 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일타삼피격이지요. 남편이 빨래와 반찬만들기 소소한 심부름 다 해 줍니다. 환자가 선호하는 반찬ㆍ간식도 사다 주고요. 그 성과에 따라 간병비를 나눕니다. 기준은 제가 정하고요. 그 금액이 작거나 많아도 군말이 없습니다.

    졸작을 읽어 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시니 신명이 납니다. 강의는 조금 체질이긴
    한데 제 프로필이 허접해서 누가 의뢰나 하겠습니까? 저 한교총소속 부모교육 강사 한 적 있는데 제가 많이 배운 계기였기도 합니더.

    부디 건강하셔요.

    잠깐 모기가 절 매뉴 삼아 회식하고 가네요
  • 작성자(혜원)임춘희 | 작성시간 26.06.14 서해숙 선생님의 글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다녀가곤 합니다. 선생님을 알고 부터 처음 만난 "참 기름 한 병" 이란 수필 한 편이 나를 울컥하게 합니다. 휴일의 이른 아침에 말입니다. 서해숙 선생님 화이팅! 입니다.
  • 작성자정임표 | 작성시간 26.06.14 정구씨 누나라는 분이 정말 하늘이 내려준 천사입니다. 나이 일흔 셋에 친정 조카까지 포함해서 열 아홉평 아파트에 아홉이나 거느리고 살면서 동생까지 돌본다고 하니 남의 일이지만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뇌졸증 편마비가 정말 무섭네요
  • 작성자박명희 | 작성시간 26.06.18 참기름 한 병을 가져 온 분도 천사이지만 숙온샘께서도 천사입니다. 환자 간호는 천사 같은 마음이 아니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평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묵묵히 하는 간호사를 존경하여 왔습니다. 좋은 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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