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으며
김 상 립
갈매기 조나단은 여느 갈매기들과는 달랐다. 보통 갈매기들은 나는 행위를 두고 먹이를 줍기 위해 해변을 잠시 날아올랐다가 되돌아오는 데에 필요한 행위쯤으로 여겼으나, 조나단은 먹는 것보다는 나는 일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 일을 진정 사랑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물고기만 찾아 다녔던 갈매기의 삶을 거부하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채 나는 연습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조나단의 행위를 동료 갈매기들은 분별없고 무책임한 짓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그를 무리에서 추방해 버린다. 눈앞에 펼쳐진 비상(飛上)의 영광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배움마저 거부하는 동료를 떠나서 혼자 지내게 된 그는 더욱 더 나는 연습에 몰입하게 된다.
날개가 찢기고 바다에 처박히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거듭된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던 그가, 드디어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더하여 사고속도(思考速度)의 단계까지 나아가 진정한 삶의 기쁨을 얻게 된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상승하여 천국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존재하는 것은 여러 단계의 의식상승을 통한 자기완성이라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갈매기가 먼 바다를 날지 않으면 권태와 공포, 분노 같은 것에 파묻혀 삶을 짧게, 허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지상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자기가 얻은 깨달음을 전수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마침내 그는 행복과 평안으로 충만한 천상의 세계를 뿌리치고 죽음을 뛰어넘는 과정을 거쳐 지상의 동료들에게 돌아온다.
미국의 소설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는 어느 날 해변을 거닐다가 문득 깨닫게 된 삶에 대한 각성을 갈매기의 꿈(A story of Jonadan Livingston Seagull)이란 소설을 통하여 대략 위와 같이 적고 있다. 특히 작가는 주인공이 고통스럽게 터득한 진리를 다른 동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 곧 삶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1989년 처음 한글번역판이 출간되었고, 그때 읽었는데 초로를 지나며 다시 읽었고, 이제 백설을 이고 세 번째 읽는다. 비록 널리 알려진 고전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의미로 내게는 다가온다. 그가 조나단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깨달음은 바로 인간의 완성과 초월에 대한 것이었고, 물질이 아니더라도 삶에 도움되는 깨달음은 최선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작가는 사람이란 자기 속에 있는 선을 발견하도록 스스로 노력도해야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선을 발견하도록 곁에서 끊임없이 도와주어야 하며, 사랑이란 것도 바로 이런 행위에서 나온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누구나가 마음만 먹으면 꼭 돈이 아니라도 남을 위해 내놓을만한 것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터이다. 어떻게 얻었던, 그것이 어떤 깨우침이건 제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거나 앞서가는 부분이 있다면, 타인을 위해 가르치며 나누어가며 사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근래에 와서 자기가 일생을 바쳐 얻은 결과를 사회에 모두 내어놓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미담의 주인공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무척 다행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세상 살기가 팍팍하고 험난하면 할 수록 상대적으로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인류에게 남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 몰래 개인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얘기는 언제 들어도 충분히 감동스럽다.
다 늦은 나이, 이제 와서 내가 무엇을 남 앞에 내놓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답답하다. 제법 긴 세월을 살아나온 게 분명한데, 그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설명하기조차 궁색하다. 내가 한창때는 돈 버는 일에 매달려 다양한 기회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 보았자 생각대로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요, 목표한 일을 만족하게 이루어 낸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인생을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한적도 있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뭐하나 이렇소 하고 내세울게 없다. 내가 정신 공부를 하며 스스로 깨친 것이 적지 않았다고 믿었었는데, 막상 들어내어 후진들에게 전수하려니 영 자신이 없다. 그 동안 혼자 착각 속에서 그냥 인생을 부산하게 어질러 놓기만 한 것 같아 당황스럽다. 그러고 보니 내가 태어나 여태 살아온 결산은 자신이 사회적 빚쟁이 임을 자인하는 일뿐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그 빚을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다못해 뒤에 오는 이들에게 전할 마지막 편지집(便紙集) 한 권이라도 진심을 다해 만들까 고심 중이다. (2026.6)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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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임표 작성시간 26.06.23 new
감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인간 재생창"이라는 별명이 붙은 육군 제1하사관학교 훈련병 시절인 1976년 2월에서 6월 기간 중에 당시 학교 군인교회 목사이시던 이경순 목사님의 소개로 알게되어 그 이후 기억 미상의 날에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경순 목사님은 '천당을 다녀 왔다"는 말씀으로 당시 필자의 영혼을 사로 잡았는데, 그 덕으로 한참 그리고 많이 방황했습니다만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깨우친 바도 있으니 얻은 것도 참 많습니다.
성서에 언급된 "거듭남"의 개념 (헤르만 헷세가 말한 알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 치는 투쟁의 진정한 개념)이 녹아 있는 굉장한 책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조나단 시걸 리빙스턴 갈매기"가 되고 싶어 좌충 우돌하며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배움을 목말라 하며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옛기억이 떠올라 잠시 행복했습니다. 감사 합니다.